# 149
149화 - 퍼지는 씨앗들. (9)
“아오……. 더럽게 무겁네…….”
민성은 인상을 찡그린 채, 골렘의 주먹과 맞닿은 검면에 힘을 주었다. 크기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묵직하고 무거웠다.
“오……. 세상에……. 세상에…….”
골렘의 손이 내려오자,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민성이 행한 기적을 바라봤다.
“감탄만 하지 말고 얼른 나가요!”
‘기껏 살려줬더니 뭐 하는 거야.’
민성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답답한 그들의 행동도 그러했지만, 근원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띠링-
[인간 27명을 구출하셨습니다.]
사람들을 구하고 나서 나타난 새로운 메시지. 그 덕에 퀘스트 진행사항을 파악하기는 수월할 것 같았다.
‘겨우 27명……. 뭐 이리 더럽게 까다로워! 후……. 진짜 내가 더러워서라도 꼭 깨고 만다.’
사람들이 황급히 골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자, 민성은 손 틈 사이로 보이는 골렘의 안면을 노려봤다. 얼굴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돌무더기 틈으로 놈의 퍼런 눈이 보였다.
“살 좀 빼, 이 새끼야!”
민성은 재빨리 맞대고 있던 대검을 회수했다. 그리곤 재빨리 골렘의 손 안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놈의 팔에 올라탔다.
“그어!”
당황한 놈이 팔을 들어 털어내려 했지만, 민성은 이미 놈의 어깨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뒈져!”
민성은 치솟은 짜증을 화풀이하듯 그대로 어깨에서 도약해, 놈의 비대한 안면에 대검을 휘둘렀다.
깡-
돌과 대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튀었다. 언뜻 타격을 입히지 못한 것 같았으나, 민성은 효과가 있음을 깨달았다. 베이는 감촉이 확실히 느껴졌다.
“그아아아아아!”
얼굴을 붙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지르는 놈의 반응만 봐도 확실했다.
치익-
거기다 익숙한 마나 타들어가는 소리까지 울려왔다.
‘이 자식 겉만 단단해 보이지 물렁살인데?’
민성은 작게 이죽이며 발광하는 놈을 향해 다시금 몸을 날렸다.
‘어떤 생물체건 머리만 날리면 활동을 멈추겠지.’
원래는 양다리를 분질러 기동력을 제거하려 했다. 허나 겉보기와 달리 야들야들한 놈의 돌 갑주는 그의 생각을 뒤바꿨다. 대검으로 놈의 목에 몇 번 칼질하는 편이 다리 두 쪽을 분지르는 것보다 더 수월한 작업이 될 것 같았다.
“그어어어어!”
분노에 이성이 날아갔는지, 놈은 매서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포효했다.
“큭…….”
귀에서 고통과 함께 이명이 들려왔다. 그러나 민성은 도약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라도 머뭇거렸다간 놈의 두터운 손에 잡혀 으깨질 수도 있었다. 민성은 오히려 더욱 몸에 힘을 주고 놈의 목을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뒈져라!”
놈의 목 언저리까지 접근한 민성은 거침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콰직-
거친 충격음과 함께 놈의 목을 감싸고 있던 돌덩이들이 떨어져 나갔다.
“그어어어어어!”
마나가 타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놈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아직 안 끝났어, 이놈아.”
민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악랄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다시 대검을 번쩍 쳐들고 돌파편이 떨어져나간 부위에 휘두르려는 찰나, 거대한 돌기둥 같은 것이 면전으로 쇄도해왔다.
“어이쿠, 안 되지.”
민성은 재빨리 몸을 뒤로 내빼 순식간에 놈의 어깨 끝 쪽으로 피신했다.
쿵-
“그렇게 느려터진 동작으로 누굴 맞히려고.”
민성은 그가 있던 자리를 덮치는 놈의 팔을 보며 혀를 찼다.
“그어어어어!”
“뭘 봐, 인마!”
놈이 머리를 돌려 죽일 듯이 노려보자, 민성은 이죽이며 쏘아지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죽어!”
삽시간에 놈의 목 언저리에 도달한 민성은 대검을 들어 있는 힘껏 내리쳤다.
콰직-
돌 파편이 떨어져나가 드러난 하연 피부 같은 곳에 검날이 파고들자, 골렘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소용없다니까 자꾸 발광을 하네.”
골렘의 몸이 크게 흔들리자, 민성은 균형을 유지하며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모기만 한 놈이 목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으니, 모르긴 해도 미치지 않고선 배기지 못할 것이었다.
‘모기도 그냥 모기가 아니라 맹독을 가진 대형 모기지.’
“이 나무는 보기보다 단단하구나!”
민성은 재차 날아오는 팔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그리곤 휘파람을 불며 거목에 도끼질 하듯 놈의 목을 후려쳤다.
“그어어어어어!”
“찰진데?”
고통스러운 울림이 들려올 때마다, 민성은 검자루를 잡은 손아귀에 더욱 힘을 실었다. 인간들을 학살하기 알맞았을 커다란 몸뚱이가 독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콰직-
대검으로 내려찍길 수차례, 마침내 갈라진 놈의 목에서 비틀린 소음이 흘러나왔다. 민성은 놈의 마지막이 왔음을 직감했다.
“죽어!”
민성은 괴성을 지르며 번쩍 쳐든 대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벌어져 묘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부위에 검날이 깊이 박혀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빠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민성은 슬쩍 고개를 쳐올렸다.
“그어어…….”
꺾여 균형을 잃은 놈의 머리가 그쪽으로 쓰러져 내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골렘의 몸 역시 힘을 잃고 기울어졌다.
“이크.”
놈이 죽었다는 걸 눈치챈 민성은 놈의 팔을 타고 급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꺄아아악!”
“조…… 조심해! 괴물이 쓰러진다!”
“앞으로 가! 얼른 앞으로 가라고!”
거대한 락 골렘의 신형이 기울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화급히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꽉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에서 도망칠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아…… 안 돼!”
쾅-
분리된 놈의 머리통과 힘을 잃은 신체는 삽시간에 인파를 덮쳤다. 그 충격에 쌓여 있던 빨간 눈덩어리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뼈 비틀린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엄마! 누가, 누가 우리 엄마 좀 구해줘요!”
“여보!”
생존자들은 골렘에 깔린 가족들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허나 엎어진 골렘의 몸 사이론 붉은 선혈이 강처럼 흘러나왔다.
“쯧…….”
그 모습을 흘낏 바라본 민성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원체 우람한 몸을 가진 놈이라 죽이고 난 후의 여파도 익히 짐작이 갔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진행되었다. 민성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대검을 휘둘렀다. 그 반동에 따라 검신에 묻은 기이한 액체가 떨어져 나갔다.
‘이럴 땐 좀 어긋나도 되는데 말이야.’
더욱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잠시 훑던 민성은 이내 마음을 다잡곤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그가 쓰러뜨리지 않았더라도 놈들의 주먹에 깔려 죽었을 운명이었다.
‘것보다 문제는…….’
민성은 전방에 그득 몰려 있는 골렘들을 노려봤다. 숫자가 조금 걸리긴 하지만 처리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에 휘말릴 피난민들이 걱정됐다. 정확히는 시민들이 휘말림으로써 구출 퀘스트에 반영되지 않을까 봐 걱정됐다.
‘후……. 그래도 최대한 죽여 봐야지. 빌어먹을 퀘스트……. 그런데 이놈들…… 뭐지?’
동료의 죽음에 분개하여 곧장 달려들 줄 알았건만, 어째선지 놈들은 기동을 멈추고 그를 지그시 노려볼 뿐이었다.
“얼른 덤벼봐, 새끼들아.”
민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지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놈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골렘들이 피난민들을 위협해야 퀘스트 요건에 부합할 것이었다.
“그어어…….”
하지만 놈들은 의미 없는 눈싸움만 걸어왔다.
“뭐 하는 거야? 왜 싸우다 멈춘 거지?”
숨죽인 채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민성을 바라봤다.
“어떡해? 체력이 다 떨어진 거 아냐?”
“지금 저 젊은이가 버텨주고 있어서 그나마 피해가 줄었는데 죽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군바리 새끼들은 나올 생각도 않으니, 결국 다 죽는 거지. 젠장…….”
피난민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민성의 등을 바라봤다. 그들 역시 돌아가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앞은 군인들이 경계선을 펼쳐 진입을 제지하고, 후방은 괴물 같은 것들이 학살을 자행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민성이 놈들에게 무릎 꿇게 될 경우, 그 다음 차례는 바로 그들이라는 것을. 물론 민성이 베어 넘긴 골렘 덕에 약간의 피해가 발생하긴 했지만, 저들의 손에 죽은 숫자에 비하면 먼지만 한 수준이었다.
“결국 저 청년 손에 모든 게 달렸어.”
“젊은 양반, 제발 어떻게 좀 해줘.”
사람들은 작게 흔들리는 민성의 등을 보며 간절하게 외쳤다. 어떤 이들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젠장……. 먼저 들어가야 되나?’
그러나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정작 민성은 먼저 도발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놈들이 피난민들을 위협해야 퀘스트 요건에 부합할 것이고, 움직일 이유도 생기는 것이었다. 위기에 빠져야 구출을 할 것 아닌가? 민성은 애꿎은 입술을 깨물며 대검을 고쳐 잡았다.
‘아니면, 설마……?’
놈들이 움직이지 않자 괜한 걱정마저 들었다. 혹 대형 스킬이라도 준비하나 싶었다. 민성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곤 다시 눈앞에 보이는 골렘의 팔 위로 도약하려 했다. 그때,
‘어째서 지배자님이 직접 나서신 겁니까! 이는 명백한 규율 위반입니다!’
느리고 묵직한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뭐지?’
당황한 민성은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허나 보이는 것이라곤 겁에 질린 사람들과 멈춰 있는 골렘들, 그리고 이 상황을 조용히 관전하고 있는 군인들뿐이었다.
‘잘못 들었나?’
민성이 다시 움직이려는 찰나,
‘제 말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지배자시여!’
“…….”
‘도대체 누구지?’
확실했다. 분명 머릿속을 울리는 이 묵직한 목소리는 환청 같은 것이 아니었다. 민성은 눈매를 좁히고 재차 주위를 살폈다. 역시나 목소리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것보다 지배자? 지배자가 존재한다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건 공헌도 1위 특전으로 나만 대면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피난민들을 바라보던 민성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골렘 측을 바라봤다.
‘맞습니다! 이쪽입니다!’
골렘들 중 하나가 머리를 위아래로 까딱이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다른 골렘보다 좀 더 몸집이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저놈은 어떻게 나한테 말을 걸 수 있는 거지? 통역 스킬이라도 갖고 있는 건가?’
골렘과 인간. 엄연히 다른 종족이다. 대화가 될 리 없었다. 그럼에도 민성은 놈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대화를 원하는 것 같으니 응해줄 생각이었다. 어떤 말을 뱉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상황을 보다가 수틀리면…….’
민성은 언제든 달려들 수 있도록 검자루를 고쳐 잡았다. 말투를 봐선 공격할 의지가 없는 것 같았지만, 아직 긴장의 끈을 놓기엔 일렀다. 대화로 타협하는 척하는 것도 함정의 일부 일 수 있었다.
“그래서.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자꾸 부르는 건데?”
놈이 말을 알아먹을까 싶었지만, 민성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놈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