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146화 (146/303)

# 146

146화 - 퍼지는 씨앗들. (6)

“아…….”

민성은 신음을 흘리며 책 조각을 집었다.

‘젠장. 정령 분신? 장난하나!’

오로지 정령 소유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5성 스킬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나중에 정령을 얻을 수도 있으니 보관하는 게 마땅했다. 허나 문제는 조각, 조각이었다. 스킬로 변형시키는 데 필요한 조각 수 100개.

‘99개를 언제 모으고 있냐.’

여태껏 같은 아이템이라곤 ‘마나 브레이커’ 외에는 얻지 못했다. 조각 100개를 수집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실현 가능성이 떨어졌다.

‘그래도 아직 남은 스킬 상자는 9개. 루비도 8천 개가량 남아 있어. 해볼 만해.’

“그래. 그럴 수 있어! 이제 시작이야!”

민성은 포효하며 책 조각을 한쪽 구석에 던져버렸다. 쓰레기는 빠르게 처리하는 편이 좋았다. 물론 나중에 활용도가 높아진다면 돌아와 다시 챙길 의향도 있었다.

“다음!”

미련을 버린 민성은 곧바로 다음 상자를 빛 위에 올렸다. 잠시 후,

“다음…….”

민성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손에 들린 책 조각을 던졌다. 벌써 구석에 쌓인 책 조각만 4개째.

‘저번 상자에 운을 다 쓴 건가. 아니면 역시 그 코에 영험한 효능이 있었던 건가…….’

연이어 펼쳐지는 조각 행진에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걸 겨우 참는 중이었다.

‘행운 같은 건 스텟이 없나?’

만약 운이라는 스텟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다섯 번째 상자를 빛 위에 올렸다.

펑-

‘오오!’

드디어 빛 사이로 온전한 형태를 지닌 책이 나오자, 감격한 민성은 곧바로 책을 집었다.

[‘성자의 기적’을 획득하셨습니다.]

등급: ★★★★★★

설명: 병든 자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깨웠다는 아이샤 대륙의 대성자 모르한. 그는 모함에 빠져 사형당하기 전까지, 대륙 내를 이동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그의 기적이 다시금 부활한다.

효과: 생명을 가진 개체라면 어떠한 대상도 치료해줄 수 있다. 치료 시 상대방이 갖고 있던 질병, 부상 등을 모두 회복시킨다.

쿨타임: 7일

소모마나: 1,300

‘6성에, 치유계통의 능력인가. 애매하네…….’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책을 바라봤다. 무려 6성 스킬이었다. 공격 계통의 스킬이 아니라는 점은 아쉬웠으나, 충분히 기뻐할 만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6성 스킬……. 효과만 확실하게 보면 좋기는 한데…….’

여타의 스킬에 비해 효과는 확실하지만 단점도 많다. 막대한 마나와 긴 쿨타임 시간이다. 그간 상대했던 능력자 놈들 중에는, 한 스킬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놈들이 많았다.

‘강한 능력도 좋지만 부담 없이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스킬을 배우시겠습니까?]

“……네.”

잠시 고민하던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자의 기적을 내려 받습니다.]

펄럭-

그러자 책장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더니, 안에서 빛의 형체를 띤 무언가가 그의 앞에서 흔들거렸다.

‘천……사?’

언뜻 빛 사이로 하얀 날개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혹은 빛의 환상에 홀린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정체를 가늠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연자여. 빛이 그대를 이끌리라.”

작은 울림과 그의 머리를 매만지는 따스한 기운. 그것을 끝으로 빛은 바람에 촛불 꺼지듯 픽 하고 사라져버렸다.

“…….”

혹시 모를 고통을 예상했던 민성은 아직 온기가 느껴지는 머리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저번과는 좀 다른 것 같네.’

바르타고의 피부와 단타르스의 피. 두 스킬을 동시에 익혔을 때 찾아왔던 고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민성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예정된 고통보다 불현듯 닥치는 고통이 더 괴로운 법이었다.

‘더럽게도 아팠지.’

혼절까지 갔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민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성장통이라 치부하기엔 정말이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후…….”

다행히도 걱정과 달리 추가적인 변화는 없었다. 민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털썩 앉았다. 그리곤 옆에 놓인 상자들을 바라봤다. 아직 남은 스킬 상자는 5개.

“계속 가볼까.”

천천히 몸을 일으킨 민성은 발치에 있던 상자를 집었다. 하나쯤은 원하는 것이 나오길 빌면서.

*

상점, 1층.

“스킬 보고 가세요! 어차피 조각 먹을 코인으로 스킬 사가세요!”

스르륵-

원통에서 내린 민성은 붐비는 매장 안을 살피며 걸음을 옮겼다.

‘나쁘진 않은데…….’

민성은 조금 전 7층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나머지 5개의 상자에서 얻은 스킬은 두 개. 조각들은 나오자마자 마찬가지로 구석에 던졌다. 남은 루비로 상자를 더 보급할까 했지만, 마음을 접었다. 대신,

“끄아아아아아악!”

“이런 시발! 내 스킬이!”

‘찾았다.’

민성은 이내 무리들이 몰린 장소를 발견하곤 서둘러 이동했다.

파지직-

“…….”

“터졌다! 지금이야! 간다!”

파지직-

“갸아아악!”

상시 손님들로 들끓는 장소이자 일확천금을 꿈꾸고 달려드는 용자들을 삼키는 곳. 그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강화판이었다.

‘후…….’

민성은 너풀거리는 책 쪼가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곤 아이템 창에서 푸른 책 두 권을 꺼냈다.

‘운이 좋은 건지, 없는 건지.’

원래 강화는 그의 선택지에 없었으나 스킬 상자는 그의 생각을 뒤바꿨다. 추가로 얻은 두 개의 스킬들 중 하나인, ‘마나 브레이커’. 사용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기존에 얻었던 게 하나 있었고 결국 그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후…….”

민성은 손에 쥔 책들을 내려다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상점을 올 때마다 들었던 수많은 울부짖음들. 그리고 울부짖음은 지금도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인생, 모 아니면 도지. 터져도 루비로 다시 복원하면 그만이야.’

물론 상자에서 같은 스킬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굳게 마음을 다잡은 민성은 은빛 광채 앞으로 걸어갔다.

“오! 저 양반도 도전하려나 보네.”

“쯧쯧. 불쌍한 희생양 하나 또 추가되겠어.”

“이제껏 성공한 양반들이 몇이나 된다고 저 짓거릴 반복하는 건지…….”

강화대란을 구경하던 손님들은 새로운 희생자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도 책이 터지는 광경을 감상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좋아. 가보자!’

민성이 빛 위에 책을 올려놓자,

“여기! 시작하려나 보다!”

“새로운 제물인가?”

서로 눈치 살피며 강화 타이밍을 엿보던 하이에나들이 그를 주목했다.

“가만……. 근데 저거 못 보던 색인 것 같은데…….”

“응? 파란색?”

누군가의 외침에 손님들은 민성의 손에 들린 책을 주목했다.

“파란색 책도 있었어?”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단 재질의 책. 강화판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물건이었다.

“저…… 저건!”

궁금증을 보이던 손님들 사이로 경악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여 있는 좌중을 뚫고 들어온 난글러스는 흥분한 듯 기다란 코를 뱅글뱅글 돌리며 콧김을 뿜어댔다.

“미친놈. 제정신이 아니야! 제정신이 아니라고!”

“왜요? 혹시 저게 뭔지 아세요?”

“……4성, 4성 스킬이야. 4성 이상부턴 각 등급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다고 들었어.”

손님의 물음에 난글러스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예?”

그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손님들은 다양한 표정을 한 채, 민성을 바라봤다. 조각만 무더기로 쏟아지는 상자에서 2성 스킬만 획득해도 대박 소리를 듣는다. 헌데 4성 스킬이라니. 것도 강화하러 온 걸 봐선 같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가끔 괴물같이 운 좋은 놈들이 4성 이상의 아이템이나 스킬을 획득한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4성 스킬을 강화하는 모습을! 바로 상점으로 오길 잘했어.”

난글러스는 열기 가득한 눈망울로 민성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성공하건 실패하건 강화를 지향하는 그에겐 흥미로운 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저 양반이 4성 스킬 강화한대!”

“뭐? 2성이 아니고?”

“그래! 4성!”

“어디야! 젠장, 비켜봐, 좀!”

난글러스의 설명은 도화선의 불씨가 되었다. 손님들은 삽시간에 민성의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일부는 전망 좋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민성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정확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건 도대체…….’

빛 위에 책을 올리자 나타난 네모난 창 두 개. 민성은 눈앞에 펼쳐진 이색적인 현상에 눈가를 긁적였다.

[강화할 스킬을 창 위에 올려주십시오.]

‘올리면 강화가 되는 건가?’

잠시 망설이던 민성은 메시지가 알려준 대로 창 위에 책을 올렸다.

파지직-

그러자 그의 손을 떠난 책들이 반복적으로 튕겼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이거구나.’

민성은 으레 강화하던 손님들의 절규가 터지기 전 상황임을 알아챘다. 환호와 절규가 갈리기 직전의 상황.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강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성공확률: ?

성공 시: 스킬 북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실패 시: 스킬 북이 모두 소멸합니다.

‘뭐야! 확률 공개는 왜 안 해!’

민성은 성공확률에 버젓이 자리한 물음표를 보곤 이맛살을 구겼다. 낮은 확률이 적혀 있었다면 결정을 재고하려 했으나 물음표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확률을 공개하면 강화를 포기하는 사람이 나올까 봐 그런 건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설은 더욱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어떤 놈 대가리에서 나온 생각인진 몰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킬 보호권 같은 건 없는 건가?’

민성은 그의 아이템 창에 잠들어 있던 장비 보호권을 떠올렸다. 장비 보호권이 있다면 분명 스킬 보호권도 존재할 것이었다. 그러나 민성은 곧 고개를 저었다. 그마저도 VIP 포인트를 달성하고 얻은 물품이었다.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다.

파지직-

“후…….”

민성은 스파크를 튀기는 책들을 지그시 노려봤다.

‘좋아! 가자!’

[강화를 시작합니다.]

민성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스킬 북들이 격렬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오오! 시작했다!”

손님들은 숨죽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일부는 책 두 권을 들고 민성이 실패하길 기원하기도 했다. 4성 스킬. 분명 엄청난 제물이 되어줄 게 뻔했다.

파지직-

격돌하는 책들 사이로 찢어진 종잇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과연…….”

좋든 싫든 이제 곧 결과가 나온다. 강화하는 이들에게는 희비가 엇갈리고 최고로 긴장되는 짜릿한 순간이었다.

‘제발…….’

민성은 두 손 모아 성공을 기원했다.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일. 기도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제발!”

점차 떨어지는 종잇조각이 늘어나자, 민성은 간절하게 외쳤다.

파지직-

“…….”

마침내 책들의 격돌이 멈췄다. 민성은 멍한 표정으로 결과물을 바라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