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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44화 (14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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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 퍼지는 씨앗들. (4)

“비켜! 너희는 어미, 아비도 없냐!”

“돌아가십쇼. 이곳은 국가 행정구역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아이템이 없는 사람은 진입조차 불가합니다.”

“저는 조각이 있어요!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요! 들여보내줘요!”

“……불가합니다. 이곳은 국가 행정구역입니다.”

군인들은 바리케이드를 넘으려는 사람들을 막으며 씨름을 벌였다.

‘설마 안에 임시정부가 있다고 진입을 저지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민간인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면 그가 모르는 내막이 있을지도 몰랐다. 잠시간 사람들과 군인들의 마찰을 지켜보던 민성은 이내 관심을 돌렸다. 그리곤 상대적으로 군인들의 경계가 느슨한 곳을 찾았다. 확인은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

‘아까워 죽겠네.’

안전지대로 들어온 민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느슨한 경계망을 찾지 못해 결국 스킬을 사용해 들어와야만 했다. 하루가 지나면 복구 가능하다 해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네.’

민성은 고개를 돌리며 내부를 살폈다. 의외로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마 작금의 상황을 예상하고. 군인들이 통제하기 전에 들어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엄마. 배고파. 추워. 응? 나 배고파.”

“조금만 참으면 군인 아저씨들이 먹을 걸 나눠주실 거야.”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는 어미의 얼굴에는 생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시끄러워! 애새끼 좀 조용히 시켜!”

아이를 노려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에 어미는 아이를 푹 감싸고 고개를 떨궜다.

‘일단 안으로 더 들어가자.’

잠시간 사람들을 관찰하던 민성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상점을 이용하기 위해선, 타워까지 가야 했다. 민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좁은 길을 지나가며 사람들을 바라봤다. 추레한 행색을 한 사람들부터 등에 짐 보따리를 이고 앉을 자리를 찾는 이들까지. 거의 난민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내 자리야! 내가 먼저 왔어! 저리 꺼져!”

“미친 새끼가 개소리 하네! 죽고 싶냐? 엉?”

조금이라도 넓은 자리를 차지해보겠다고 언쟁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툭-

‘이크.’

실수로 남자의 등을 건드린 민성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야! 조심해서 지나가!”

하지만 예민한 반응이 돌아오자, 민성은 슬쩍 고개를 숙이곤 다시 이동했다.

“이미 지방은 아예 불바다가 돼버렸대요.”

“전부 끝났어. 세상이 멸망하려는 게 틀림없어.”

사람들의 힘없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대개 절망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천국 가고 싶으면 예수 믿으세요! 예수천국! 불신지옥!”

물론 일부 예외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을 끌진 못했다. 얼마간 사람들 사이를 지나자, 민성은 점차적으로 길이 넓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오.’

타워에 인접하자 민성은 눈을 빛내며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외곽과 달리, 안쪽은 비교적 한산했다. 대신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막사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거기! 기둥 좀 더 올려봐!”

한쪽에선 군인들이 나무기둥을 얼어붙은 땅에 고정시키느라 고생하는 모습도 보였다.

‘설마 이게 임시정분가?’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TV에서나 보던 인물들이 여럿 오가는 걸 봐선 분명했다.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호기심에 막사 쪽으로 이동하려니, 곧장 경계 서던 군인의 제지가 들어왔다.

‘전세 냈어요?’

민성은 달싹이던 입을 다물었다.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애꿎은 군인들이 뭔 죄가 있나 싶었다. 민성은 방향을 틀어 타워로 이동했다. 하지만,

“제가 지나가야 돼서 그런데, 좀 비켜주시겠어요?”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타워 주변에도 막사들이 있던 터라, 곧장 군인들의 제지를 받았다. 몇 차례 좋게 말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매한가지였다.

‘아오, 진짜! 좋게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니까.’

“아이템 창.”

민성은 검은 대검을 꺼내 정면으로 겨누었다.

“능력자다!”

철컥-

“멈춰라! 접근하면 발포하겠다!”

군인들도 곧장 소총을 어깨에 견착하고 그의 심장 부근을 조준했다. 그러나 민성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차피 안전지대에선 전투가 불가하다. 혹여나 그 사실이 깨지더라도 ‘바르타고의 피부’가 있으니 무서울 건 없었다.

“어차피 못 쏘는 거 다 알고 있어. 상관한테 말해. 범법자한테 뚫렸다고, 알았지?”

아마 처벌의 무게가 조금은 낮아질 것이다. 민성은 군인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타워로 이동하려 했다.

“멈춰! 움직이면 발포한다!”

“예, 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으르렁거림에 민성은 손을 들어 좌우로 살짝 흔들어주었다.

‘들어가면 뭐부터 사야 하나. 종류별로 사도 상자 10개씩은 살 수 있겠네. 아니지, 집도 업그레이드해야 하고, 알도 부화시켜야 하는데.’

루비 10,000개. 넉넉한 숫자임에도 사용처를 고민하니 부족한 것 같기도 했다.

찰칵-

방아쇠 당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예상대로 잠잠했다. 어차피 부질없는 짓이란 걸 알았기에 별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때,

“무슨 소란이야.”

한 막사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충성!”

군인들은 몸을 빳빳이 세우고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경례했다.

“무슨 일이야.”

“민간인이 무단으로 침입하려 해서 제지 중이었습니다!”

군인의 말에 남자는 안경을 고쳐 쓰고 민성을 바라봤다.

“너는…….”

민성을 알아본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노려봤다.

‘이 새끼도 여기에 있었나?’

“오랜만입니다.”

민성 역시 살가운 목소리와 달리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이능력자 대책부장 이종범. 악연을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

“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이종범은 낮게 읊조리며 안경을 매만졌다.

“어쩐 일이긴요. 당연히 볼 일이 있으니까 왔죠.”

“돌아가라. 여긴 네놈 따위가 올 곳이 아니다.”

곱지 않은 시선을 담담히 받아낸 민성은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부하들 목숨 팔아서 겨우 살아나신 분이 그런 소리 해 봐야 설득력 없는 거 아시죠?”

“네놈…….”

민성은 일그러지는 부장의 표정을 감상하며 말을 이었다.

“당연히 이번 이변에 휩쓸려 죽으신 줄 알았는데, 살아 계셨네요? 목숨이 질기신 겁니까? 아! 아니면 또 부하들 목숨으로 연명하신 건가?”

“…….”

‘재밌네.’

냉정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표정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민성은 통쾌함에 새어나오는 웃음을 꾹 눌렀다.

“이번 사태가 정리되면 반드시 네놈부터 찾아 죽이겠다.”

부장은 붉어진 눈으로 그를 죽일 듯 노려봤다.

“어이구, 무서워라. 예,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보세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장소 덕에 목숨 건지신 거에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놈…….”

“그럼, 질긴 목숨 줄 계속 잘 보존하고 계세요.”

민성은 한껏 조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이 안전지대가 아니었다면 정말 놈의 목을 벨 심산이었다.

“회의 시작한다는데, 안 가니?”

‘저년은…….’

민성은 막사를 나오는 여인을 발견하곤 급히 몸을 틀었다.

‘저년도 있을 줄은 몰랐는데…….’

부장의 협력자이자 그를 몇 번 낭패하게 만든 인물. 부장 놈의 표정을 좀 더 감상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빠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무리 안전지대라 하더라도, 마주해 봐야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민성은 이종범을 뒤로하고 얼른 타워 문 앞으로 다가갔다.

띠링-

[총 공헌도 1위 강민성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타워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네.”

민성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덜컥-

그러자 으레 그랬듯이 타워의 양 문이 안쪽으로 젖혀졌다. 따스한 빛이 흘러나오자, 민성은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

민성이 쏜살같이 사라지자, 그제야 부장은 꽉 쥐고 있던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던지, 그의 손톱 끝에는 붉은 혈흔이 끈끈히 배어 있었다.

“무슨 일이니?”

이종범의 곁에 다가온 여인은 닫힌 문을 힐끔 바라봤다. 그리곤 곧장 고개를 돌려 상냥한 미소를 던졌다. 하지만 부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문을 노려볼 뿐, 답이 없었다.

“흠…….”

여인은 입술을 매만지며 부장의 손에 밴 핏물을 바라봤다. 아직 차원 전투가 벌어지지 않은 상황. 현재 타워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전 전투에서 공헌도 순위에 들어갔던 10명뿐이었다. 그 중 부장에게서 이런 반응을 이끌어낼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혹시, 그 아이니?”

부장의 몸이 움찔거리는 걸 봐선 맞는 듯했다.

“저런……. 아무래도 그 아이에게 한 소리 들은 모양이구나.”

여인은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부장의 어깨를 감싸려 했다.

“괜찮…….”

“착각하지 마십쇼.”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한기 서린 반응뿐이었다. 부장은 내려앉은 눈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그쪽과 손잡으면 저 빌어먹을…… 능력자들을 더 빠르게 일망타진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능력자 우호정책을 펼치라는 당신의 말도 따랐습니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부장은 숨을 한 번 고르곤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뭡니까?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지 않습니까? 놈에게 씌웠던 누명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거기다 능력자 놈들도 모자라서 이제 사람 사는 세상에 괴물 새끼들까지…….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진정하렴.”

여인은 빙긋이 웃으며 그를 어린아이 달래듯 달랬다. 그러나 그간 쌓인 게 많았는지, 한 번 터진 이종범의 분노는 식을 줄을 몰랐다.

“저희가 추진하던 총기 보유 합법화도 전시상황으로 필요 없어졌습니다. 남은 거라곤 공무원 대우로 끌어들인 쓸모없는 능력자 놈들뿐인데, 지금 상황에서 어디다 씁니까? 괴물들 상대로 고기방패나 시킬까요? 아니면 사병들 시다바리나 시키면 되는…….”

쉑-

날카로운 단검이 부장의 뺨 언저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안전지대의 효과 덕에 부상은 없었지만, 부장은 정신이 번쩍 들어 눈앞의 여인을 바라봤다. 한순간의 분노에 말려 감정을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베테랑답지 못했다.

“목소리를 낮추렴. 듣는 귀가 많으니까.”

여인은 주변을 지나다니는 군인들과 관료들을 가리켰다. 그리곤 부장의 곁에 붙어 그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분노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지만, 시선은 언제나 냉철함을 유지하렴. 길고 굵게 연명하는 길이니까.”

살기가 맴도는 여인의 목소리에, 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조심……하겠습니다.”

“착한 아이네.”

살기를 거둔 여인은 다시 상냥한 미소를 머금곤 대화를 지속해 나갔다.

“오히려 기회란다. 얼마 전에 그랬지? 총이 통하지 않는 괴물들이 다수 존재했다고.”

여인의 물음에 부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마 전, 연례회의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분명 그러했다. 수많은 사병들과 민간인들의 피로 얻어낸 정보였지만, 그 사안은 고위급 관료를 제외하곤 철저히 비밀에 붙이라는 명을 받았었다. 총이 안 통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병들의 전의가 깎여나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사안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확인해보고 왔단다.”

“뭐가 말입……. 아!”

부장의 반응에 여인은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설마 능력은…….”

“그래. 총이 듣는 녀석들도, 그렇지 않은 녀석들에게도 능력은 통한단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여인은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부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뿌린 씨앗은 잘 자라고 있단다. 그리고 나중엔 결실을 맺게 되겠지.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말렴.”

“……예.”

“자, 이제 얼른 회의에 참석하러 가렴.”

여인은 부장의 어깨를 몇 번 토닥여주곤 그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듯 사라져버렸다.

*

‘오랜만이네.’

문 안으로 들어온 민성은 익숙한 타워 내부를 살피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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