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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42화 (14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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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화 - 퍼지는 씨앗들. (2)

*

종로 부근의 한 빌딩 옥상.

달칵-

“후…….”

비상문을 열고 나온 민성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요 일주간 종이에 적혀 있던 직원 가족들을 ‘비밀스러운 집’으로 옮기느라 꽤나 고생했었다. 조금 전 마지막 가족을 옮기고 나서야 그의 업무는 끝이 났다.

‘전부 구할 수는 없었지만…….’

민성은 조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주민들의 습격을 받아 사망하신 분들도 일부 존재했다. 물론 그의 손을 벗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해당 직원의 생각은 많이 다른 듯 했다.

“왜! 왜 못 구했어, 왜! 이 새끼 가지도 않아놓고 거짓말하는 게 분명해!”

직원은 그의 멱살까지 잡고 버럭버럭 소리 질렀었다. 한 번은 참았지만 두 번은 아니었다.

“그럼, 나가.”

“뭐?”

“부모님 살아 계신지 안부 확인하러 나가라고.”

차갑게 웃으며 문 쪽을 가리키니, 직원의 표정은 샐쭉해졌다.

“그……. 그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 자원봉사자 아니야. 내가 너나 네 부모님 목숨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어? 얼른 나가.”

“그…… 그래도 그만한 힘이 있으면 약자를 책임질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민성은 대답 대신 꺼내든 대검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이왕 이리 된 것, 확실한 본보기로 삼을 생각이었다.

“응, 아니야. 여기서 죽기 싫으면 개소리는 문 밖에서 해. 아참, 중간에 죽어 자빠지는 건 내 알 바 아니니까, 잘 처신하고. 알았지?”

검 끝으로 등을 쿡쿡 찌르니, 얼굴이 하얘진 직원은 결국 문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다른 사람들이 말리긴 했지만 그의 생각을 바꾸진 못했다.

“다른 분들도 잘 들으세요. 저 봉사자 아니에요. 애초에 전부 구할 마음도 없었고. 그냥 제 친한 지인의 아는 사람, 그게 여기 대다수 사람들의 위치예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셨죠?”

냉랭할 정도로 차갑게 말을 뱉은 뒤, 민성은 그대로 문 밖으로 나왔다.

“빌어먹을…….”

한동안 안 피우던 담배가 생각날 지경이었다. 민성은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2월 초. 여전히 매서운 날씨였지만, 눈발은 왜 이리도 거칠게 내리는지 몰랐다.

탕- 탕-

민성은 격렬한 총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발에 시야는 제한됐지만, 군인들의 것이 분명했다. 정부의 판단인지, 군 수뇌부의 독단인지는 몰라도 저들의 대처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쯧쯧…….”

민성은 며칠 전부터, 도시에서 시가지전투를 펼치던 군인들을 떠올리며 혀를 찼다. 앳돼 보이는 청춘들이 저쪽 주민들 손에 피를 흩뿌리며 죽어가던 장면. 지나가다 흘낏 본 상황이었지만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만약 나도 평범한 인생들 중 하나였다면 분명……. 에휴, 지금 남 걱정할 땐가. 그래도 총이 있으니 고전하진 않겠지.’

“캭캭캭!”

거친 눈발 사이로 괴성이 들려오자 민성은 하얀 파카에 달린 후드를 더 깊게 눌러썼다. 아마도 총소리를 듣고 사냥감을 노리러 가는 길임이 틀림없었다.

‘저 새끼들은 날개가 강철로 되어 있나.’

놈들의 눈에 띄면 상당히 성가셔진다. 못 죽일 건 없지만, 공중으로 빠졌다가 다시 습격하는 공격 패턴은 상대하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거기다 스킬인지는 몰라도 각 개체들마다 갖고 있는 특성들도 귀찮음에 한몫 더했다.

“인간!”

“오셨어요?”

“군함새들이었다. 상대했다면 꽤 골치 아팠을 거다. 잘 참았다, 인간.”

민성은 잠시 하늘을 정찰하고 돌아온 티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개 달린 것들만 피하면 나머지 것들은 그런대로 상대할 만했다.

“이동하죠.”

민성은 근처의 백화점을 떠올리곤 티노를 불렀다. 예상했던 대로 가장 급한 것은 식량이었다. 숫자가 많다 보니 쟁여놓았던 생필품들은 금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최악에 최악으로 흘러갈 줄 알았으면 좀 더 쟁여놨을 텐데.’

민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냈다.

‘아루와 신도 데려올 걸 그랬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처음 전화로 연락한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가장 믿음이 가는 일행이자, 전력에 도움이 될 사람들. 가장 먼저 연락을 취하는 건 당연했다.

‘쯧, 아니다.’

민성은 안에서 쉬고 있을 이들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이미 직원 가족들을 구출하는 데 꽤나 많은 체력을 소비했다. 잠시간은 쉬게 놔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빌딩을 내려온 민성은 주위를 경계하며 급히 이동했다.

“얼른 와라, 인간!”

반쯤 무너져 휑한 카페를 지나 우측으로 꺾자, 과거 그가 쇼핑했던 커다란 백화점이 보였다. 하지만 전과 달리 활기찬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탕- 탕-

총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울리는 걸 봐선, 전투는 바로 이 근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얼른 챙길 것만 챙기고 나와야겠어.’

민성은 오른손에 쥔 대검 자루에 힘을 주고 안으로 진입했다. 전기가 끊긴 내부는 어둡고 음산했다. 그러나 민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어둠에 시야를 적응시켰다.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 내부의 광경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누군가가 한바탕 휩쓸어간 듯 흩어진 물건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민성은 내부를 조심스럽게 돌아다니며 옷가지와 세면용품, 그리고 식료품 따위를 챙겨 박스에 모았다. 그리곤 박스들을 차곡차곡 아이템 창에 집어넣었다.

‘혹시 모르니까 가전제품들도 챙겨가 보자.’

핸드폰도 터지는 곳인데, 시험 삼아 챙겨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 됐어요. 이제 나가요.”

부스럭-

민성은 경계 서고 있던 티노를 부르며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온 방향을 쏘아봤다.

“생존한 인간들이다.”

하지만 티노의 보고에 민성은 겨누고 있던 대검을 슬며시 내렸다. 그리곤 서둘러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탕- 탕-

밖으로 나오자 미세하게 들려오던 총소리가 다시 벼락같이 들려왔다.

“아직도 싸우고 있나 보네요.”

민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에 귀 기울였다. 총소리에 가려진 비명소리가 언뜻 들려오는 듯했다.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네요.”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인간?”

“무너질 때는 적어도 북한과의 전쟁 때문에 그럴 줄 알았거든요.”

어딘가 맥 빠져 보이는 민성의 모습에, 티노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인간들이 한심한 거다, 인간. 당장 눈앞에 위협이 보이지 않는다고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꼴을 보면, 아주 가관들이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들이 조금 앞당겨졌다고 생각해라.”

티노의 발언에 민성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해봐요. 여태껏 바보인 척한 거죠?”

“무슨 말이냐, 인간? 이 정도는 마법의 상자로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근데, 인간……. 설마 여태껏 날 바보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 건가!”

“에이, 설마요…….”

티노의 꼬리가 들리자, 민성은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며 급히 손을 저었다.

“흠……. 뭐, 그건 아무래도 좋다. 근데 인간…….”

‘이 녀석…… 오늘따라 왜 이래?’

평소보다 유독 무거워 보이는 티노의 표정을 보자, 괜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네?”

“인간. 인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보다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진중한 모습도 적응이 안 되는데, 녀석의 의중마저 파악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우리가 버섯에서 주민들을 상대할 때마다 변수가 작용했다.”

‘변수라면 게임을 말하는 건가?’

“변수라면 변수겠죠.”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티노의 말에 동조했다. 와중에 계속 시선을 돌리며 경계하는 일도 늦추지 않았다.

“물론 인간보다 약한 놈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주민들이 대다수였다.”

민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이 허투루 이런 말을 꺼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주민들이 인간 세상에 넘어왔다.”

“변수가 없어졌다는 말씀을 하고 싶으셨나 보네요.”

티노는 정답이라는 듯 꼬리를 살짝 흔들어 보였다.

“인간은 인간 세상으로 넘어온 주민들을 상대할 방법도 찾아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은 다시 버섯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버섯에 들어가기 전과 후의 인간은 상당히 달라졌으니까.”

“…….”

‘……예리한데?’

항상 바보라고만 생각했던 녀석이 오늘따라 유독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한 번도 버섯에서 루비를 채집한다고 얘기한 적 없건만, 녀석은 그 부분을 짚어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것도 예상하지 못하는 바보가 예측해서 더욱 놀라운 일인지도 몰랐다. 민성이 놀란 눈초리를 한 채 침묵하자, 티노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인간들이 절실히 믿던 모든 것들이 무너질 거다. 동료를 모으든, 자력을 기르든, 뭐든 좋다. 끊임없이 힘을 키워라, 인간. 생존을 위해서…….”

티노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녀석은 전방을 잠깐 노려보더니 이내 안색이 하얘져갔다.

‘저것들은…….’

그 역시 티노를 따라 전면을 바라보려 했지만,

“숨어라, 인간! 얼른!”

다급한 속삭임에 민성은 본능적으로 카페의 부서진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

“왜 그러시는…….”

“입 열지 마라, 인간!”

티노는 한껏 깐 목소리로 대화를 차단했다.

‘도대체 이번엔 또 뭐길래…….’

민성은 창문 틈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스르륵-

검은 망토 같은 것을 뒤집어쓴 일련의 무리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어라?’

대규모 인원이 이동하는데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리들은 곧 총성이 울리는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놈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민성은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방금 놈들은 또 뭔데요?”

“아두르의 열 권속들 중 하나다. 주민들은 아두르의 열 손가락이라고도 부른다, 인간. 놈들마저 인간세상으로 넘어온 모양이다.”

티노는 세상 다 산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 아두르는 또 누군데요?”

평소 설명할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에 민성은 궁금증을 드러냈다.

“우리 차원의 서쪽 지역을 관할하던 놈이다. 인간 세상으로 따지면, 음…… 마땅히 비교할 만한 인간이 없는 것 같다.”

“뭐, 아두른지 뭔지 하는 놈은 나중에 설명해주시고, 그놈의 권속은 뭐 하는 놈들인데요?”

“놈들은…… 정신을 지배한다.”

정신지배라는 말에 민성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따지면 차라리 데몬 레이스들이 더 위협적인 것 같은데…….”

“수명이 다해 죽는 건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다, 인간. 그리고 데몬 레이스들은 본능을 따라 움직이는 놈들이다. 닿지 않거나 신성력이 있으면 충분히 죽일 수 있다.”

“……신성력이요? 그걸 먼저 말해주시지…….”

대검에 내제된 신성력을 떠올린 민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허나 녀석을 탓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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