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141화 (14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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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 퍼지는 씨앗들. (1)

33. 퍼지는 씨앗들.

‘쯧. 내 이럴 줄 알았어.’

“무슨 말씀이세요?”

민성은 남모르게 혀를 차며 다가오는 점장을 바라봤다.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거니?”

“네. 잘…….”

민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시치미를 뚝 떼자, 윤민수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들어갔다.

“이런 곳을 갖고 있었으면서 왜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았니. 이 정도 크기라면 가게에 있던 사람들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을 텐데……. 대체 왜……?”

윤민수는 일그러진 얼굴을 처량한 웃음으로 최대한 가렸다.

‘이크. 저 표정은…….’

그러나 민성은 저 표정의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르바이트 초창기 시절, 미친놈이라고 생각들 정도의 진상을 상대하셨을 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그땐 칼부림이라도 나는 줄 알았지. 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현실을 직시시켜 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민성은 슬쩍 공간을 눈 속에 넣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점장님. 여기, 생각보다 안 넓습니다. 어찌어찌해서 가게에 있던 사람들 다 데리고 왔다고 생각해보세요.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60평 남짓한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감내하실 수 있겠어요?”

“위기가 잦아들 때까지만, 서로 조금씩만 아끼고 양보하면 괜찮지 않겠니?”

민성의 반박에 점장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져들었다. 하지만 민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잦아들 때까지요? 제가 보기에는 이제 시작이에요.”

티노가 맞는다는 듯 머리를 흔들자, 자신감을 얻은 민성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점장님이 보신 건 빙산의 일각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게 될 확률이 높아요. 말씀하신 대로 전부 이곳에 데려왔다고 쳐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해서 제가 점장님 말씀대로 생존자들 전부 이곳으로 데려오면 그땐……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

민성의 냉랭한 말투에 점장은 애꿎은 신발만 지그시 바라봤다.

“미…… 민성아. 점장님도 날카로워지셔서 그런 거 같아. 그러니까 그만하는 게…….”

“아뇨.”

눈치를 살피던 지혜가 사이에 끼어 분위기를 조율해보려 했지만, 민성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도 사람 버리고 오면 또 이러실 가능성이 높아. 첫 매듭을 잘 지어야지.’

“정말 어떻게든 공간 쪼개서 그 사람들 다 수용했다고 쳐도, 그 사람들 누가 먹여 살립니까? 옷은요? 씻을 곳은요?”

민성은 당장 필요한 물품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그의 생각이 바뀌길 기원했다.

‘정 안 되면…….’

아무리 내 사람을 챙기려 해도,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최악의 경우, 점장님을 내보내는 상황도 고려해야 했다.

“내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마침내 윤민수가 의견을 꺾자, 민성은 그제야 굳어 있던 표정을 풀고 그의 손을 붙잡았다.

“저는 제 사람들 챙기기도 바빠요. 물론 용서받지 못할 짓이란 거 잘 알아요. 하지만…… 다 챙기고 여유가 생기면 그때 한 번쯤은 뒤 돌아볼게요,”

“그래……. 고맙다.”

‘점장님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괜찮겠지.’

민성은 슬쩍 윤민수의 손을 놓곤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직원들에게 미소를 건넸다.

“민성아. 그럼 우리는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야?”

직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질문하자, 민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상황이 호전되면요. 물론 원하신다면 지금 보내드릴게요.”

어차피 구하려 했던 인물들은 모두 구했다. 나머지는 굳이 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알아서 입을 줄여주겠다니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민성이 슬며시 문 쪽을 응시하자 직원들은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한 채 민성을 바라봤다.

“잠시들 여기서 쉬고 계세요. 저는 다시 나가봐야 돼서.”

‘1차 목표는 달성했으니까 이제 다음은…….’

민성은 수첩을 꺼내 전화번호를 뒤적거렸다. 데려와야 할 사람들이 더 있었다. 거기다 직원들의 가족까지 구하려면 아직 통신망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 얼른 움직여야 했다.

“인간! 저쪽 인간들이 인간의 흉을 보고 있다!”

“근데 살인범 새끼 말을 믿어도 될까?”

“이거 막 밀실에 가둬놓고 살인게임 같은 거 진행하는 건 아니겠지? 가족들은 괜찮을까? 시발, 괜히 걱정되잖아.”

티노가 물어온 직원들의 뒷담을 들은 민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누구는 생판 남인 가족의 안전까지 생각해주는데 저런 뒷담을 늘어놓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형!”

그때, 진우가 얼른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똥마려운 것 같은 표정을 보니, 무언가 부탁하려는 게 분명했다.

“응?”

“혹시 저희 가족도 이곳으로 데려올 수는 없을까요?”

민성은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를 향한 맹목적인 지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녀석이 이렇게 상황판단이 빠른 줄은 몰랐다. 민성은 피식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차피 그러려고 했어. 하지만…….”

“아, 쟤들은 형 나가고 새로 들어온 애들이에요.”

민성의 냉랭한 눈빛이 몇몇 직원을 응시하자, 대강 상황을 눈치챈 진우는 서둘러 그들을 변호했다.

“녀석…….”

민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메모장 한 쪽을 찢어 진우에게 건넸다.

“형, 이건……?”

“거기다 직원들 집 주소 적으라고 해. 그래야 찾기 수월해지지.”

“형…….”

진우는 존경스럽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부담스러우니까. 아, 참. 그리고 여기 핸드폰 되니까, 당장 가족한테 전화해서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 계시라고 하고.”

“네, 형!”

신이 난 진우는 곧장 직원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곤 그도 화급히 어디론가 전화 걸었다.

“형, 받아왔어요! 그리고 부모님한테도 집에 꼭 계시라고 말했어요.”

민성은 진우가 내민 종이를 챙긴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네 핸드폰 좀 빌리자. 형이 핸드폰이 없어서.”

적어도 통화망이 끊기기 전까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네, 형!”

진우는 스스럼없이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큰 기대는 하지 마. 밖에 나가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니까.”

민성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알아요, 형. 그래도 저는 형을 믿어요.”

“녀석……. 금방 갔다 올게.”

“다치지 말고, 잘 다녀와.”

지혜도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민성은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고개를 쳐들었다.

“시바 님! 여기서 어떻게 나가요!”

“냥냥냥!”

“우왓!”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성은 그의 몸이 다시 떠올랐음을 느꼈다. 그 뒤를 티노가 곧장 따라붙었다.

‘이 모든 게 티노와 내 기우라면 좋을 텐데.’

민성은 의미 없는 상상을 접곤 알 수 없는 힘에 몸을 맡겼다.

*

대한민국, 부산의 서면 부근.

애애애애애앵-

가로등마다 걸려 있는 확성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이렌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현재 전국에 데프콘 1이 발령된 상태입니다. 바깥에 계신 분은 신속히 건물 안으로 대피하시거나 근처의 방공호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콰직-

거대한 얼음덩이가 팔을 들어 안내 방송이 나오는 스피커를 뜯어 가볍게 뭉개버렸다.

“그나저나 여기가 더러운 괴물들의 세상인가? 상당히 소란스럽군.”

5층 건물 크기에, 전신이 다이아처럼 빛나는 얼음으로 뒤덮인 괴생물체는 인적 없는 도시를 바라보며 인상을 썼다.

“크캭!”

“우루어!”

대신 인간의 사체를 집어먹다가 그를 보고 급히 도망가는 주민들의 모습만이 보였다.

“끽끽끽! 그놈들 눈치 빠른 건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아두르 님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뺀 게 틀림없습니다!”

아두르의 넓은 어깨에 자리하고 있던 설산토끼가 끽끽 웃으며 그의 위용을 치켜세웠다.

“안타깝게도 반만 정답이구나.”

아두르는 껄껄 웃더니 정색하며 높다란 빌딩들을 노려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토끼는 귀를 쫑긋거리며 남은 절반의 정답을 요구했다.

“놈들은 약삭빠르고 꾀가 많은 종족이지. 거기다 밑바닥 모를 잔혹함마저 가진 악마 놈들, 그게 놈들의 정체다. 예전에야 말도 안 되는 룰에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아두르는 팔을 들어 빌딩들 중 하나를 지목했다.

“얼음 꽃.”

아두르가 작게 중얼거리자, 빌딩 위에 크고 아름다운 얼음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꽃은 순식간에 빌딩에 얼음으로 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콰지직-

뿌리가 지나간 자리는 냉기로 얼어붙었고, 그것에 닿은 사람들은,

“으아아아악! 살려줘!”

“엄마! 엄마!”

얼음 동상이 돼버렸다.

“숨어 있는 악마들까지 처리하면 만점짜리 정답이 되는 거지.”

아두르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삽시간에 냉동고가 돼버린 빌딩을 바라봤다.

“끽끽! 역시 서쪽의 주인이자, 냉혹하고 차가운 아두르 님다우십니다. 저는 생각도 못 했는데, 대단하십니다!

토끼는 앞발을 싹싹 비비며 코를 씰룩거렸다.

“얼음 꽃.”

토끼의 칭송에 겸허한 미소를 짓던 아두르는 재차 손을 뻗어 빌딩들을 가리켰다.

콰지직-

“꺄아아아아악!”

“살려줘!”

안내 방송에 따라 빌딩 속에 숨어 있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도처에서 울렸다.

“감미롭구나.”

아두르는 아름다운 교향곡을 듣듯 눈을 감고 저들의 절규를 음미했다. 이내 절규가 얼음 속에 갇혀 멈추자, 토끼는 잽싸게 아두르의 미적 감각을 칭송했다.

“다른 녀석들이 이 모습을 보면, 배 좀 아파하겠어.”

눈을 지그시 올린 아두르는 빙벽이 된 빌딩들을 흡족하게 바라봤다.

“맞습니다! 지금쯤 다른 구역의 주인 놈들, 분명 땅을 치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킥킥킥킥!”

“네 말이 맞구나.”

아두르는 그의 어깨에서 맞장구치는 토끼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곤 다시 그가 만들어놓은 예술작품들을 관람했다. 아름다웠다. 저쪽에서 만든 작품들과는 또 다른 미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휘이이잉-

“음…….”

“아두르 님! 무슨 일이십니까?”

순간, 아두르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토끼는 화급히 그의 의중을 살폈다.

“이곳의 바람은 너무도 따스하구나. 나의 시작점으로 삼기엔 조금 부족한 곳이야.”

그러자 토끼는 킁킁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읽어냈다.

“확실히 북쪽에서 좀 더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긴 합니다만……. 전부 얼려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이곳은 아두르 님이 처음 발 디디신 곳! 엄연히 아두르 님의 거처로 삼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그러면 분명 흩어진 수하들도 아두르 님의 발자취를 보고 금세 모여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이곳을 거처로 삼고 병력을 증강시키시고 위로 진출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잠시간 고심하던 아두르는 결심한 듯 양팔을 하늘로 쳐들곤 중얼거렸다. 그러자 곧, 하늘에서 굵은 눈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을 모든 악마들을 멸하는 기점으로 삼겠다!”

“킥킥킥! 잘 생각하셨습니다!”

토끼는 눈발을 올려다보며 깡충깡충 뛰어댔다.

“지배자 놈…….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 토토로 우릴 농락한 대가는 치러야지…….”

아두르는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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