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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39화 (139/303)

# 139

139화 - 실화냐? (3)

“지금…… 뭐라고 했니?”

“굳이 가게를 안 나가도 도망칠 방법이 있다구요.”

민성은 곧장 점장실로 다가가 문을 살폈다.

‘역시.’

낡은 문고리 중앙에는 자그마한 열쇠구멍이 보였다. 됐다. 열쇠구멍만 있으면 지인들을 무사히 ‘비밀스러운 집’으로 옮길 수 있었다.

“형! 진짜예요? 진짜 도망갈 방법이 있어요?”

“민성아! 사실이야?”

뒤따라온 진우와 지혜 역시 놀란 기색이 다분했다. 흥분했는지 진우는 목청까지 높였다.

“네. 근데…….”

‘조용히 데리고 나가려고 했더니, 쯧…….’

민성은 지인들의 뒤로 다가오는 일련의 무리를 노려봤다. 도망여부를 두고 의견다툼을 벌이던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진우의 커다래진 목소리가 원인인 듯했다.

“이곳에서 나갈 방법이 있다고?”

“괜찮다면 우리한테도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대체로 남성으로 구성된 무리에서 두 명의 남자가 대표 격으로 민성의 앞에 나섰다. 가족들로 보이는 여인과 아이들은 테이블에 앉아 불안과 일말의 희망을 가진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민성은 뒷짐 진 좌측 남자의 등 뒤로 삐죽이 튀어나온 칼날을 보곤 냉소했다.

“적어도 물어보려면 기본적인 예의는 갖추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들고 있는 식칼은 내려놓고 말씀하시죠.”

“아, 이건…….”

남자는 황급히 식칼을 감추며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다.

‘웃긴 새끼들이네.’

수틀리면 칼부림도 불사하겠다는 저들의 의사는 충분히 전달됐다. 협박도 동등한 대상이나 자신보다 못한 이에게나 먹히는 법이다. 민성은 올라오는 웃음을 참으며 작게 입을 벌렸다.

“아이템창.”

민성이 빌딩을 오르느라 잠시 넣어놨던 대검을 다시 끄집어내자,

“느…… 능력자였어?”

일순간 무리에선 놀라움과 당혹스러운 음성이 터져 나왔다. 머릿수와 흉기로 민성을 압박하려던 남자들은 화급히 귓속말로 의사를 교환했다.

“어쩌지?”

“에이, 사기겠지! 요즘 굴러다니는 옷도 타워에서 얻은 아이템이라고 뻥치는 놈들이 한둘이야? 어디서 얻었는지 딱 봐도 낡아빠져 보이잖아! 허세에 넘어갈 필요 없어!”

“그…… 그치?”

자신감을 얻은 남자들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민성을 바라봤다.

“어디서 그런 물건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좋게 좋게 가는 게 서로한테 좋은 길일 것 같은데 말이야. 응? 얼른 말해주지 않을래?”

더 이상 꺼릴 것이 없었는지 남자는 들고 있던 식칼을 앞으로 내보였다.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는 사뭇 떨리기까지 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뭐, 고맙다.”

덕분에 지인만 챙긴다는 일말의 죄책감도 사라져버렸다. 민성은 이죽이며 대검을 들어 남자들의 심장 부근을 겨눴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들입니까! 민성이 너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윤민수는 남자들과 민성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버럭 소리 질렀다.

“그쪽은 빠져! 우리는 저 청년한테 관심 있으니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네가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도 오죽했으면 이러겠나?”

남자들은 대검의 움직임에 시선을 기울이면서도 항변하듯 답했다.

“민성아. 그냥 말해주는 게 어떻겠니? 저 사람들도 상황이 급박해서 그렇지 본질이 나쁜 사람들은 아닐 거야. 어차피 도망가는 것, 다 같이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윤민수는 대검을 쥔 민성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설득을 시도했다.

“점장님.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지도 몰라요. 전 제 사람들 챙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요.”

“민성아…….”

민성의 단호한 말투에 점장은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듯하고 이타적인 아이였다. 그간 사회의 거친 풍파라도 겪은 걸까.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리도 달라져버렸으니, 그저 안타까울 노릇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 막연한 위기에 빠진 걸 알고도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지 못한 그에게는 그 이상 참견할 권리가 없었다.

“서둘러라, 인간! 데몬 레이스들이 냄새를 맡았다! 놈들이 곧 들이닥칠 거다. 얼른!”

잠시 정찰을 맡겼던 티노가 벽을 뚫고 화급히 날아왔다. 눈먼 주민들이 접근하거든 알려 달라 부탁했었다. 다만 생각보다 놈들의 움직임이 빠른 듯했다.

“죄송합니다, 점장님. 시간이 없어서…….”

민성은 그 말을 끝으로 검날이 보이게 대검을 들었다. 그리곤 곧장 남자들을 향해 쏘아지듯 쇄도해 들어갔다.

“얼른 끝냅시다.”

“어……어?”

순식간에 좌측 남자 앞에 도달한 민성은 검면으로 남자의 옆구리를 가볍게 후려쳤다.

“컥!”

바닥을 나뒹군 남자는 희멀건 액체를 게워내며 신음을 흘렸다.

“아빠!”

“여보!”

테이블 쪽에서 안타까운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 이 새끼가!”

민성은 고개를 숙여 눈앞까지 치고 들어온 부엌칼을 회피했다. 그리곤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실어 남자의 머리를 내려쳤다.

“쿠엑!”

“휘두르는 건 좋은데, 다음부턴 역으로 죽을 가능성도 생각하고 휘둘러.”

민성은 뒤통수를 붙잡고 울부짖는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정말 우리랑 같은 사람이야?”

민성이 일순간에 성인 남성 두 명을 제압하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찬 눈빛을 보냈다.

“가만……. 저 대검……. 설마?”

“아! 기억났어! 저 새끼 1급 수배범이야!”

민성을 알아본 누군가의 외침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그러나 민성은 자연스럽게 대검을 갈무리한 뒤, 점장실 문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민성이 문을 열자 안에서는 기이한 밝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 민성아. 이건…….”

사무실이 있어야 할 곳에 빛이 머물고 있자, 당황한 윤민수는 말을 더듬으며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직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놈들이 곧 도달한다, 인간! 저놈들은 위험하다! 서둘러라!”

“캬아아아아!”

벽 너머로 머리를 내밀고 있던 티노의 경고와 동시에, 스산한 웃음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어왔다.

“이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서둘러요!”

“하…… 하지만…….”

민성의 독촉에도 직원들은 섣불리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시간이 없는데.’

민성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아무래도 미지에서 오는 불안감이 원인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까지 배려해줄 시간은 없었다. 티노가 저렇게 경계하는 걸 봐선, 필시 위협적인 놈들인 게 분명했다.

“여기는 그냥 내 사무실이잖니!”

“네?”

윤민수의 발언에 이번에는 민성이 당혹스러워했다. 혹시 열쇠를 잘못 꽂았나 다시 살펴봤지만. 분명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다른 사람 눈에는 저 빛이 보이지 않는구나. 그럼 설마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건가?’

민성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꼈다. 기껏 구하러 왔건만 예상외의 변수에 가로막힐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쩐다…….’

“형이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저는 형을 믿어요.”

그때, 진우가 성큼성큼 문 쪽으로 다가갔다.

“진우야! 잠깐…….”

슉-

진우는 불안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빛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빛에 빨려 들어갔다.

“진우야!”

‘휴……. 다행이다.’

민성은 진우가 사라졌음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다른 직원들을 독촉하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도 얼른 들어가요! 곧 위험…….”

“캬아아아아아!”

민성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괴이한 것들이 벽을 통과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악마? 아니, 유령인가?’

머리에 달린 두 뿔은 악마의 것 같았지만, 창백할 정도로 하얀 몸은 꼭 망령의 옷차림같이 보였다.

“캬아아아아!”

안으로 들어온 레이스들은 초점 없는 하얀 동공으로 산 자들을 노려보더니, 괴성을 지르며 날아갔다.

“뭐, 뭐야 저건! 오…… 오지 마! 으으어어어…….”

레이스의 팔에 발목을 잡힌 남자는 미친 듯 발길질하며 요동쳤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내 축 늘어져 바닥에 엎어졌다. 건장했던 그의 몸은 늙고 추레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도망쳐!”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비명 지르며 레이스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다.

“이 무슨…….”

윤민수는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현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인간! 얼른 도망가야 한다! 놈들에게 닿으면 안 된다! 놈들은 수명을 빼앗는다!”

‘이런, 시발.’

혀를 차며 몸을 날리려던 민성은 황급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시간을 벌기엔 그른 것 같았다.

“빨리 들어가!”

대신 민성은 직원들을 독촉하며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꺄아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윤민수는 일순간 늙어 노인이 된 어린이를 보며 잘게 몸을 떨었다.

“같이 가! 제발!”

“우리도…… 우리도 데려가주세…….”

본능적으로 문이 생로라는 것을 알아챈 생존자들은 다급하게 문을 향해 달려왔다. 와중에 레이스의 팔에 잡혀 엎어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민성아! 저 사람들도 같이…….”

“죄송합니다, 점장님.”

“컥!”

민성은 그의 복부를 세게 후려쳐 제압한 뒤, 티노와 함께 재빨리 문 안으로 들어갔다.

쾅-

“얼른! 얼른 열어!”

“시발 새끼들, 지들끼리만 살려고!”

눈물범벅이 되어 한 발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급히 문을 젖혔다.

“뭐…… 뭐야…….”

하지만 안쪽에는 컴퓨터만 덜렁 있는 단출한 사무실만이 있을 뿐이었다. 직원들과 민성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캬아아아아!”

그 뒤를 레이스 무리가 빠르게 덮쳐왔다.

“아…… 안 돼!”

가게 안은 곧 고요해졌다.

*

청와대 회의실 안. 엄중하고도 묵직한 공기가 실내를 휘감았다.

“보고해.”

기다란 테이블 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심드렁하게 손짓했다. 그러나 그의 양옆으로 도열해있던 남자들은 섣불리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얼마 전, 결국 외압을 이기지 못하고 통과시킨 안건 덕에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하. 보고하겠습니다. 저번에 명하셨던 다주택자 보유매물에 관한 안건입니다.”

와중에 용기 낸 남자는 애써 떨리는 손을 가리며 종이가 담긴 파일을 내밀었다.

“그래서. 방도는 찾았어?”

남자는 건네받은 파일을 한쪽으로 밀쳐낸 뒤, 그를 지그시 바라봤다.

“……예?”

“이론쟁이들이 써 갈겨 놓은 추상적인 상상 말고 현실적인 방도는 찾았냐고. 다주택자가 보유한 매물들 확실히 털어내게 할 방법.”

“가…… 각하.”

보고서를 내밀었던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식은땀을 쏟아냈다.

“이제 내 임기도 얼마 안 남았어. 다음 대선도 우리 여당이 가져오려면, 적어도 개미들이 좋아할 만한 사탕 하나쯤은 던져줘야지. 마음 같아선 장기집권이라도 하고 싶지만, 안 되잖아. 그치?”

“예, 각하. 그쪽으로 가닥잡고 빠르게 추진하겠습니다…….”

오한이 들 정도로 차가운 발언에 남자는 허리를 더욱 깊숙이 숙여 보였다.

“좋아, 다음. 보고해.”

각하의 입꼬리에 걸린 옅은 미소를 확인한 남자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

벌컥-

“각하! 큰일 났습니다!”

남자 하나가 회의실 문을 열고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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