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화 - 실화냐? (1)
30. 실화냐?
후드득-
“끼아아아악!”
높다란 빌딩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커다란 괴조가 미친 듯이 요동치자, 건물이 크게 흔들리며 시멘트 가루와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조심해라, 인간!”
“이크!”
티노의 다급한 경고에 민성은 본능적으로 급히 몸을 피했다.
쿵-
민성은 그가 있던 자리에 떨어진 건물 파편을 내려다보곤,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쿠아아아악!”
기이한 모습을 가진 놈들이 건물뿐만 아니라 신호등, 보도 등 곳곳에 끼어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버섯에서나 상대했던 놈들이 현실로 나타나자, 지금 그가 버섯 속에 들어와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현실인 건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시선을 꺾어 강남 대로변을 바라봤다.
푸쉬익-
급하게 정차한 걸로 보이는 자동차의 모습들도 보였다. 일부는 건물 벽에 처박혀 짙은 연기를 뿜어내기도 했다.
“저 녀석들……. 아무래도 벽을 넘어오면서 겹쳐버린 것 같은데…….”
“예?”
티노의 낮은 중얼거림에 민성이 반문했다.
“아니다, 인간. 한눈팔지 마라. 전부 위험한 놈들이다!”
민성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미리 빼두었던 대검을 꽉 쥐고 상황을 주시했다. 놈들의 위험성은 이미 버섯에서 질리고 질리도록 느꼈다. 만전을 기해야 했다.
“드디어……. 드디어 그 지옥 같은 곳을 나왔구나!”
차도와 보도를 가득 메운 무리들은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빌딩숲을 두리번거렸다.
“고향……. 내 아름다운, 핏빛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고향은 어디에 있지? 분명 벽을 넘으면 토토에 당첨되지 않고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중 인간과 쏙 빼닮은 미남자가 얼굴을 구긴 채,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들을 노려봤다.
“고향은 어디 가고 증오스러운 인간들만 보이는 거지?”
그의 옆에 있던 여인은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설마…… 지배자가 여태껏 우리를 속인 건가?”
남자는 냉기를 풀풀 흘리며 계속 주변을 살폈다.
“키아아아아!”
“쿠웍?”
상황은 마찬가지였는지, 다른 주민들도 당황한 티가 역력했다. 아무래도 속은 게 확실한 것 같았다.
“저건 뭐지? 혹시 영화 촬영 중인가? 그런 것 치곤 상당히 현실적인데?
그들의 괴이한 외관에 놀라 도망친 인간들 외에도, 일부 인간들이 그들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에 작고 네모난 물건을 든 채, 계속 그들을 주시했다.
“저건 뭐지? 설마 함정인가.”
미남자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곤 두르고 있던 검은 망토를 찬찬히 매만졌다.
“아무래도 우리가 올 걸 알고 미리 대비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야, 칼?”
“쯧, 이래서 거짓된 종족의 말은 믿을 수가 없어.”
여인의 말에 미남자는 혀를 차며 입술 사이로 빼꼼 튀어나온 어금니를 씰룩거렸다. 그리곤 힐끗 고개를 돌려 뒤를 살폈다. 다행히도 그들의 일족은 무사히 벽을 통과한 모양이었다.
“일단 밤의 일족은 이곳을 벗어나 적당한 장소에 안착한 뒤, 상황을 지켜본다. 사냥은 그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아.”
“예, 로드!”
남자의 말에 뒤에 있던 일련의 무리들은 검은 망토로 전신을 휘감았다.
푸드득-
‘설마 저것들도 주민인 건가?’
민성은 저 멀리 날아가는 박쥐 떼를 슬쩍 바라보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설령 그의 예상이 맞는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저것들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차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쿠어어어!”
잠시간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놈들은 슬슬 정신을 차렸는지, 인간들을 노려보며 살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그 중, 기다란 보도를 점령하고 있던 거대한 벌레가 먼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 움직인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도로를 파고 안으로 들어가는 벌레의 꽁무니를 촬영했다.
“도망쳐, 병신들아! 도망치라고!”
민성은 촬영 버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급히 일갈했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네가 뭔데 도망치라, 마라 명령이야! 엉?”
오히려 그들은 민성을 타박하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답답한 새끼들아! 도망치라고!”
그럼에도 민성은 목소리를 높여 대피를 지시했다. 자칫 수많은 인명피해가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도망칠 때 도망치더라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살리고 가는 게 맞았다.
“아싸! 이거 인터넷에 올리면 무조건 대박이다.”
“좋아요, 엄청 받겠……. 어어?”
콰르르르-
촬영된 핸드폰을 들고 킬킬대던 사람들의 발밑에 갑자기 금이 쩍쩍 가기 시작했다. 금간 자리에는 이내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안에선,
“쿠워어억!”
흙빛이 감도는 거대한 벌레가 아가리를 벌리고, 그 자리에 서 있던 인간들을 한입에 꿀떡 삼켜버렸다.
“아……. 아……파……. 사…… 살……려…….”
놈의 이빨에 찢겨 반 토막 나 상체만 남은 여자의 몸은, 이내 힘없이 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
“꺄아아아아아아악!”
“미친! 미친! 도망쳐!”
“세상에……. 예린아! 엄마 손 꽉 잡아!”
높은 비명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되었을까. 일순간 얼음이 된 인간들은 누군가의 비명을 기점으로 등을 돌려 급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진작 말 좀 듣지.’
민성은 도망가는 사람들의 등을 보며 혀를 찼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이 많은 듯했다.
‘근데 이렇게 도로변에 깔린 상황인데, 다른 곳이라고 없을까?
문뜩 불안감이 도진 민성은 의연하게 떠 있는 티노를 바라봤다.
“대략 얼마나 빠져나왔는지 아세요?”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선생의 말에 따르면, 우리 쪽 세계에는 수천에 가까운 종족이 살고 있는 듯하다.”
“그 중 서쪽 벽만 부서졌다고 하셨으니, 못해도 대략…….”
몇백에서 많게는 몇천의 종족이 빠져나왔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리가 처음 상대했던 구름원숭이들이나 데드 앤트도 결국 한 종족에 불과하다, 인간.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는 주민들은 빠져나온 주민들 중 극히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확인사살하실 필요는 없는데……. 응?”
씁쓸히 웃던 민성은 갑자기 눈매를 좁히고 주민들을 주시했다.
“쿠억?”
“다징루고!”
인간들이 등을 돌려 도망치자,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무리들은 저마다 재빨리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당장이라도 인간들을 추격해 묵사발 낼 줄 알았건만, 거대한 벌레가 벌인 것과는 상당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혹시 쟤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들으실 수 있어요?”
민성은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티노를 바라봤다. 물론 생김새부터가 다른데 가능할 리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대화만 통하면 윗놈들이 어떻게든 해결하겠지.’
모든 불신은 불통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화가 된다면 인간은 협상이라는 카드를 한 장 쥘 수도 있는 것이었다.
“종이 다른데 내가 어떻게 알아듣나, 인간?”
“그쵸? 후……. 그나저나 저희도 상황을 보면서 물러날 준비를 하죠.”
아직 빌딩 속에 갇혀 상황을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구해줄 여력은 없었다.
“쿠아아악!”
벌써 본능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놈들도 더러 존재했다. 이곳에 있어 봐야 파도에 휩쓸릴 확률만 높았다. 그때,
“음!”
티노가 한 종족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들의 말은 들린다, 인간.”
“저 돌덩이들이요?”
민성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티노는 발끈하며 꼬리를 쳐들었다.
“락 골렘들이다.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선생 덕에 저들의 언어도 익혔다, 인간!”
“오오! 그럼 저놈들……. 아니, 저 골렘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티노는 잠시 머리를 주억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를 지옥에 가둔 괴물들이 샌드 윔 따위에 놀라 도망친 걸 보고도 모르나? 솔직히 우리가 과거 전투에 패배한 이유도 수많은 변수에 당한 것이지, 그들의 능력에 당한 것이 아니다. 사실 괴물은 우리가 만들어낸 망상일지도 모른다. 괴물들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들이고 우리에겐 그들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들을 말살하면 지배자가 우리를 고향으로 보내줄지도 모른다. 추적해서 전부 죽이자!”
티노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계속 말했다.
“아직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지배자가 깔아둔 함정일 수도 있다. 간악하지만 지혜롭기로 소문난 밤의 일족이 먼저 자리를 뜬 걸 보면 모르겠는가? 괴물들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티노가 말을 끝내자, 민성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의견대립이 저들의 움직임을 막아 세운 주 원인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저놈들한테는 우리가 괴물인 건가?’
묘한 관계에 씁쓸한 웃음만 나왔다.
쿵-
“그어어어어!”
“아무래도 싸우자는 쪽으로 결론 난 것 같다. 미안하다, 인간.”
락 골렘 무리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 대로변을 활보하기 시작하자, 티노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결론을 내렸는지 거동을 시작했다. 날개가 있는 것들은 하늘로 치솟았고, 네 발 달린 것들은 순식간에 대로변을 빠져나갔다.
“그게 왜 티노 님 잘못이에요. 이 빌어먹을 상황에 문제가 있는 거죠.”
민성은 몸을 내빼며, 따라 날아오는 티노에게 미소 지어 보였다.
“그보다 인간. 소중한 인간들은 없나? 수많은 피가 흐를 것 같다. 있다면 잘 챙겨라. 소중한 건 잃었을 때 빈자리가 더 큰 법이다.”
녀석의 말에선 왠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왔다.
“소중한 사람……. 많죠!”
퍼뜩 그의 지인들을 떠올린 민성은 곧장 속력을 높였다.
“키아아아!”
대로변을 벗어난 주민들은 거미줄처럼 펼쳐진 도로를 타고 암세포 퍼져나가듯 순식간에 흩어졌다.
빵-
“이게 도대체 몇십 분째야!”
남자는 클랙슨을 거칠게 눌러대며 소리쳤다. 원래 지금쯤 강남으로 진입했어야 정상이건만, 평소보다 유독 정체구간이 길게 느껴졌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클랙슨 소리를 보아, 기다림에 지친 이는 아마 그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하아, 좃 됐네……. 클라이언트한테 뭐라 말해야 하나…….”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쿵-
“어라?”
남자는 핸들에서 전해져오는 미세한 떨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뭐라 상상도 하기 전에, 이번엔 차체가 조금씩 흔들렸다. 환기를 위해 조금 내린 문틈에선 탄내가 흘러들어왔다.
“아씨……. 어디에서 대형 사고라도 터졌나 보네. 후…….”
남자는 갑갑한 마음에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그때,
쿵-
강한 진동에 손가락 마디 사이에 끼고 있던 담배가 시트에 떨어졌다. 구시렁대며 허리를 숙이던 남자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뭐, 이런…….”
“그어어어어!”
흙빛의 거대한 돌덩이들이 멈춰 서 있는 차들을 짓이기고 있었다. 놈들의 육중한 팔과 다리에 짓눌린 차는 쥐포마냥 납작해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화르륵-
엔진이 터졌는지, 놈들의 돌주먹 사이에선 거친 불길이 치솟았다.
“꾸…… 꿈인가?”
남자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