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134화 - 변혁의 시작 (8)
“이 새끼가…….”
민성은 비틀린 웃음을 흘리며 몰려오는 부하들 사이에 가린 실장을 노려봤다. 대답해줄 마음이 없다면, 그럴 마음이 들게 만들면 될 일이었다. 부하들이 전멸하고 목에 대검이 드리워져도, 놈이 지금처럼의 여유를 갖고 있을지 궁금했다.
“저 새끼 제일 먼저 조지는 놈은 보너스 10억이다!”
“10억!”
실장의 말에 부하들은 눈을 더욱 부릅뜨고 미친 듯이 돌진했다.
‘속전속결로 가자.’
민성은 검자루를 꽉 붙잡고 작게 심호흡했다.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일도 없었다.
“뒈지는 건 너희들이지. 골렘의 굳건한 의지.”
민성 역시 선두에서 호기롭게 달려오는 남자를 향해 마주 달렸다.
“죽어라!”
남자는 들고 있던 짧은 단도를 민성의 목으로 주저 없이 휘둘렀다.
“누가 맞아준대?”
그러나 민성은 피식 웃으며 단도가 목에 채 다가오기도 전에, 대검의 이점인 긴 검신을 이용해 길게 휘둘렀다.
“어어?”
묵직해 보이는 검날이 허리 부분으로 날아오자, 당황한 남자는 재빨리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했다.
푸확-
맥없이 두 동강 난 단도와 함께 주인의 몸도 이등분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갈라진 몸 사이로 쏟아지는 붉은 선혈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다. 일순간 벌어진 사태에 실장의 부하들은 순간 몸을 멈칫거렸다.
“무식하게 싸우지 말고 포위해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이 등신들아!”
‘나는 가만히 있겠냐?’
실장의 명령에 실소를 금치 못한 민성은, 오히려 그것을 기점으로 화살 쏘아지듯 놈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곤 양손으로 검자루를 꽉 쥐고 전방에 보이는 놈들의 복부에 줄 긋듯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푸확-
“끄아아아악!”
놈들의 크게 벌어진 복부 사이로 내장들이 터져 나온다. 극심한 고통 탓인지, 놈들은 벌어진 배를 붙잡고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나 민성은 일말의 동정심도 주지 않았다. 잃어버린 눈을 되찾았다고 해서, 까맣게 변질된 과거의 기억들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개새끼들은 전부 족쳐야지.’
안 그래도 조만간 자각사에 들러 추가 정보를 얻으려 했건만, 오히려 찾으러 다닐 수고를 덜어준 놈들이 고맙기까지 했다.
“이…… 이 새낀 뭐 하는 놈이야!”
순식간에 4명이 전열에서 이탈하자 당황한 놈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등신 새끼들아! 자진해서 포위당해줬는데 뭣들 하고 있어!”
현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실장 놈의 악쓰는 소리도 전해져왔다. 민성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끊임없이 대검을 휘둘러댔다.
“이 시발 새끼가! 뒈져!”
“어딜!”
민성은 고개를 왼쪽으로 꺾어 얼굴로 날아오는 스턴 건을 피해냈다. 동시에 오른손에 넘긴 검자루를 슬쩍 들어 가볍게 내려찍었다.
“끄아아악!”
절규에 가까운 비명소리와 함께, 스턴 건을 쥔 팔이 잘려 바닥에 툭 떨어졌다.
“시끄러워.”
민성은 잘려나간 팔을 붙잡고 울부짖는 놈의 가슴팍에 대검을 쑤셔 넣곤 슬쩍 비틀어 빼냈다.
푸확-
가슴팍에서 터져 나온 선혈이 얼굴을 적셨다. 미간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방울에서 옅은 쇠 냄새가 풍겨왔다. 민성은 왼손을 들어 얼굴을 쓱 닦아내곤 곧바로 다른 먹잇감을 찾아 눈을 돌렸다.
“괴…… 괴물! 저 새낀 괴물이라고!”
“괜히 거액이 걸려 있는 놈이 아니었어!”
언뜻 광기마저 느껴지는 민성의 모습에 위축된 부하들이 주춤거리자,
“쫄지 마! 저 새끼도 사람인 이상 지친다고!”
실장은 소리 지르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젠장. 영상도 마냥 믿을 게 못 되네.”
하지만 부하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자, 실장은 중얼거리며 급하게 품속을 뒤적거렸다. 처음 대면했을 때만 해도 순한 양 같던 놈이, 이제는 암사자가 되어 날카로운 이빨로 그들의 목덜미를 노린다.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할지도 몰랐다.
‘누가 괴물인데.’
민성은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끊임없이 대검을 휘둘러갔다. 두려움을 느끼는 그들의 모습에서 모순을 느꼈다. 그들이 납치하고 해체한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를, 저들은 이제야 느끼는 모양이었다.
‘더 뼈저리게 느끼게 해줘야지.’
지옥에서도 잊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커헉!”
민성은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놈의 폐부에 박힌 대검을 쑥 뺐다. 그러자 놈의 신체는 힘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이제 혼자 남았네?”
민성은 유유히 서 있는 실장을 노려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짝짝짝-
“대단한데, 친구?”
실장은 바닥에 지저분하게 늘어진 시체들을 힐끗 쳐다보곤, 박수를 보냈다. 그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젠장, 젠장.’
이번 임무를 위해 데려온 부하만 40명. 하지만 10분 만에 전멸당했다. 동영상과 현상수배서로 가늠했을 때, 이번 일이 수월하지 않으리라곤 예감했었다. 하지만 이런 결말이 나오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어떻게 알았어? 묻잖아?”
“…….”
“마지막이야. 어떻게 알았어?”
실장이 침묵하자, 민성은 해맑게 웃으며 핏물이 떨어져 내리는 대검을 들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 잠깐만!”
실장의 만류에도 민성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기…… 기다려봐!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정말이야! 정……. 뒈져라!”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실장은 품속에서 재빨리 작은 권총을 꺼내 민성을 조준했다.
픽-
소음기가 달려 있는 작은 권총에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소음기를 빠져나간 탄환이 매섭게 회전하며 민성의 심장 부근을 노리고 날아갔다. 하지만,
띠링-
[바르타고의 피부가 광물에 담긴 적의를 감지했습니다.]
[광물들이 바르타고의 피부를 가진 그대에게 굴복합니다.]
탄환은 급하게 궤도를 선회하더니, 민성을 피해 천장에 틀어박혔다.
“지금 뭐 해?”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당황한 실장은 뒷걸음치며 재차 방아쇠를 당겼다.
픽-픽-
그러나 탄환은 여지없이 민성을 피해 바닥에 박히거나 빗겨갔다.
“어…… 어…….”
“뭐 하냐고 묻잖아!”
실장에게 근접한 민성은 대검을 머리 위로 쳐들고 그대로 내려쳤다.
푸확-
“끄아아아아악!”
실장은 허연 뼈마디가 드러난 팔꿈치를 붙잡고 괴성을 질러댔다. 잠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성은 바닥에 엎어져 울부짖는 실장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프냐?”
“으……어…….”
민성의 고저 없는 물음에 실장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를 보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극심한 고통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했다.
“병신 새끼. 이제 말도 제대로 못 하냐? 다른 쪽도 균형을 맞춰주면 입이 트이려나?”
“죄…… 죄송……합니다.”
민성은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가라앉은 눈빛으로 실장을 쏘아봤다.
“살고 싶지?”
끄덕- 끄덕- 끄덕-
“큭…….”
재차 실장이 생존을 위한 간절한 몸부림을 펼치자, 민성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실소했다.
“여태껏 몇 명이나 보냈냐?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대신…….”
민성은 그의 대검에 슬쩍 시선을 주었다.
“대…… 대략 600 정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실장은 그의 업적을 축소시켜 답하며 멋쩍은 웃음을 흘려 보였다.
“600명?”
“……예. 아마도…….”
할 말을 잃은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검자루를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이 개 같은 새끼가……. 600명이 누구 개 이름이야? 어?”
그리곤 벌떡 일어나 곧바로 실장의 왼쪽 어깻죽지에 대검을 들이밀었다.
“끄아아아아악!”
오른팔에 이어 왼쪽 팔마저 떨어져 나가자, 실장은 눈동자에 흰자를 가득 드러낸 채 바닥을 뒹굴었다. 민성은 분노에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곤 다시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과다출혈이나 쇼크로 놈이 죽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뽑아내야 했다. 일말의 동정심이나 자비를 베풀 마음도 없었다.
“일어나, 새끼야.”
“끄아아아아아!”
“일어나라고! 네가 지옥에 밀어 넣은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간지러운 수준일 테니. 살고 싶으면 얼른 일어나. 다음은 다리니까.”
민성이 재차 대검을 쥐어 허공에 들어 올리자,
“끄으으윽! 일어……났습니다.”
바닥을 뒹굴던 실장은 고통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기어코 몸을 일으켰다. 살고자 하는 욕망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네가 빨리 답하면 병원으로 이송돼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겠지.”
“뭐……든 물어……보십쇼.”
이제야 대화할 자세를 갖춘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어?”
“저에게…… 지시를 내린…… 분이 위치……추적기를 제공했……습니다. 최초…… 제공자는 저도 잘…… 모릅니다.”
‘만복 노인이 시킨 건가?’
민성은 이맛살을 좁힌 채 생각에 잠겼다. 처음 마주했던 운전기사는 연막 역할이고, 이놈들이 본대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민성은 이내 생각을 접고 핏덩이가 된 실장을 내려다봤다.
“누가 시켰어.”
“박…… 박 회장이…… 시켰습니다.”
애매모호한 답변에 민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먹어. 박 회장이 누군데?”
“중대자동차의 박혜선 회장……입니다. 박…… 회장이…… 머리통만…… 무사히…… 확보하라고…….”
“…….”
‘뭐?’
순간 말을 잃은 민성은 멍하니 실장을 내려다봤다. 지금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개입한 거지? 아니, 그것보다 왜 내 행로가 그년한테 파악됐지?’
민성이 침묵하자,
“제발…… 구급차…….”
실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구급차를 부르짖었다.
“제발…… 구급……차, 구급 차……를 불러……줘…….”
“구급차는 모르겠고,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 정도는 끊어줄게.”
하지만 민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가차 없이 대검을 휘둘러 놈의 목을 쳤다.
푸확-
고통에 일그러진 실장의 머리통이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머리통을 응시하던 민성은 이내 시선을 돌려 천장을 지그시 쳐다봤다. 그에게는 한없이 잔혹한 이름을 이곳에서 듣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미친년이 결국 끝장을 보자는 건가. 그래, 이제 숨죽이며 살 이유도 없지. 찾아가서 물어보자.’
고통도 잊은 채 눈가를 긁적이던 민성은 슬며시 왼손을 내려놓았다,
‘설마 그 일도…… 그년이?’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았다.
“우웨에액!”
“이게 무슨…….”
민성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청년 둘이 바닥에 깔린 시체더미와 흩어져 있는 내장을 보며 경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잘됐다. 너희…….”
“움직이지 마!”
토악질하던 보안요원은 몸을 일으키려는 민성에게 가스총을 겨누며 고함쳤다.
잠시간 자리를 비켜줘라.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받고 실장에게 협조한 그들은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움직이면 쏜다!”
하지만 강경한 말투와 달리 요원의 손은 지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민성은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윗선에다 연락해서 시체 처리나 잘 하라 그래.”
요원들에게 엄포를 놓은 민성은 곧장 방제실 쪽으로 이동했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쏜다!”
민성은 뒤에서 들려오는 긴장한 음성에 조소를 지었다. 겁에 질린 강아지들이 요란하게도 외쳐댔다. 민성은 그들의 소원대로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