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132화 - 변혁의 시작 (6)
‘그나저나 대책부 놈들……. 마음에 안 들긴 해도 일은 잘하나 보네.’
저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밖으로 나와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능력자 대책부가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사회는 향후 꽤나 혼란스러운 시국을 맞게 될 것이다!
‘멍청한 노인네. 혼란은 개뿔.’
민성은 만복 노인의 예측을 떠올리곤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처음 능력자들이 등장했을 때야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박멸하고 억압해야 할 존재로 여겼지만, 사람들도 점차 생각이 달라지는 듯했다. 당장 아침에 핸드폰으로 읽었던 뉴스만 해도 그러했다.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승용차를 완력으로 뒤집고 피해자를 구출해낸 능력자, 이인인가?]
댓글의 의견은 양쪽으로 갈렸다. 의외로 능력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댓글이 많았다. 일부 네티즌은 능력자들이 사회에 끼치는 피해나 일반 범죄자들이 일으키는 범죄의 횟수나 큰 차이가 없다는 통계자료를 들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연일 능력자들의 범죄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는 다른 나라들의 이슈를 담은 해외토픽을 보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대응이 빠르긴 했지.’
전직 군인 출신인 대통령이라 그런지 대응력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았다. 아쉬운 점도 없진 않았다. 얼마 전에는 타워로 강제 소환된 외국인들을 무상으로 귀국시키는 안건이 타결되어, 국민들의 아쉬움과 분노를 사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위치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쩌겠어.’
그 역시 국민으로서 아쉬움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 곧 무뎌지고 익숙해질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민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보이는, 일어로 적힌 작은 간판을 바라봤다. 핸드폰을 들어 위치를 확인해보니, 이곳이 맞는 것 같았다. 간판 밑에는 작은 입구가 있었고, 입구 뒤로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확실히 맛집이긴 한가 보네.’
숫자를 봐선 못해도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줄. 민성은 줄 끝으로 이동한 뒤, 줄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잠시간 기다리자,
“다음 분 들어오세요.”
마침내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점원이 안내한 테이블에 자리 잡은 민성은 곧장 메뉴판 맨 위에 자리한 메뉴를 주문했다.
“마카이 규카츠 하나 주세요.”
‘자고로 음식을 선택할 땐 그 집의 이름이 적힌 음식을 골라야지.’
그 집만의 특색을 가진 음식을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는 법이었다. 다시 잠시간을 기다리자,
“주문하신 마카이 규카츠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점원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규카츠가 담긴 쟁반을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호오…….’
민성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같이 딸려 나온 밑반찬은 저만치 밀쳐놨다. 그리곤 쟁반을 주시했다. 언뜻 황금빛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얇고 노란 튀김옷에선 고소한 향기가 올라왔다. 민성은 포크를 들어 규카츠 한 조각을 옆으로 돌려봤다. 소고기가 베이스인 음식이라 그런지, 핏기가 맴도는 속살은 언뜻 붉은 루비라 칭해도 믿을 정도로 선명한 선홍색이었다.
‘두께도 훌륭하네.’
얼추 성인 검지 반 마디 높이에, 중지 정도의 길이. 크기도 만족스러웠다. 민성은 포크를 들어 규카츠 한 조각을 푹 찍었다. 스펀지 같은 탄력이 포크 끝에서 느껴졌다.
‘이 맛은…….’
규카츠를 단숨에 입안에 넣자, 민성은 눈을 번쩍 치켜떴다. 처음은 얇은 튀김옷의 바삭한 식감과 함께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소함이 혀끝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푸확-
그의 이빨이 고기에 파고들자, 육즙의 향연이 그 뒤를 치고 온다. 고기 안에 갇혀 있던 육즙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그의 입안을 적셔갔다.
‘고소함의 이 연타인가…….’
육즙은 곧 튀김옷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극상의 고소함을 연출해냈다. 고기 자체의 품질이 훌륭한 건 둘째 문제였다. 오히려 고기까지 고소했다면 다소 느끼할 수도 있을 법한 맛을, 고기에 밴 짭조름한 밑간이 그것을 방지해주었다. 오히려 단조로움은 방지하고 고소한 풍미는 극대화한다.
‘와……. 완벽해.’
꿀꺽-
입안을 맴돌던 여운이 가시자, 민성은 감았던 눈을 지그시 떴다. 황홀한 맛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블로그 추천 맛집은 함정도 많았지만, 이번 것은 대박이었다. 민성은 재차 포크로 규카츠 한 조각을 찍으며, 다른 손으론 함께 나온 소스를 밑반찬 옆으로 보냈다.
‘이 아름다운 맛에 불순물을 첨가하는 건 죄악이지, 암.’
정말 맛있는 고기는 소스에 찍지 않는다. 민성의 지론이었다. 민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릇에 나열된 규카츠들을 바라봤다. 아직 천국을 만끽할 표는 많았다.
꺼억-
‘다른 가게들도 이런 건 좀 배워야 할 텐데.’
돈만 탐할 뿐, 음식이라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의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이 얼마나 많은가. 잠시 후, 깔끔하게 그릇을 비워낸 민성은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냈으니, 이제 항상 부족하기 그지없는 루비의 곳간을 새로이 채우러 갈 시간이었다.
*
‘이런 빌어먹을…….’
한참 발품을 팔던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그가 원하는 버섯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이용해도 되지만 시야가 좁아진다는 단점이 있기에 타지 않았다. 고층 빌딩에도 올라가봤다. 원래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쯤이야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지금 상황이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후…….”
동대문 인근까지 걸어온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근데 저놈들은 뭐지?’
대로변을 걸으며 버섯을 탐색하는 와중, 민성은 얼굴을 찌푸린 채 슬쩍 고개를 돌렸다. 명동에서 시작된 행군을 쫓아오는 낯선 무리들. 민성이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 멈춰 자연스럽게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그저 가는 길이 같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명동을 한 바퀴 빙 돌고, 동대문까지 걸어가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설마 추적인가? 누구지? 혈교? 미국? 아니면 빌어먹을 장기털이범 새끼들? 아니, 것보다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데? 왜 추적하는 거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민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민성은 확인차, 느닷없이 속도를 올려 대로변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후방을 확인했다.
‘얼씨구.’
“쫓아!”
그러자 담배를 피우던 무리들이 반쯤 남은 꽁초를 던지며 급하게 그의 뒤를 쫓았다. 그 모습을 본 민성은 피식 웃으며 혀를 찼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미행. 누가 시킨 건지 몰라도, 이 모습을 봤다면 꽤나 분통 터질 것이었다.
‘옛날이었으면…….’
두려움을 집어먹고 도망쳤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이템 창.”
허공에서 대검을 빼든 민성은 뒤돌아, 그대로 놈들을 향해 질주했다.
“뭐, 뭐야!”
“으아아!”
민성이 쇄도하듯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오자, 당황한 남자들은 역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민성이 마음먹고 달려오는 속도를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딜 가려고!”
퍽-
민성은 대검을 쳐들고 가장 근접해 있던 남자의 등을 검면으로 북어 패듯 후려쳤다.
“으악!”
충격 탓인지,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도로변에 엎어졌다. 그 틈을 타,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놈들은 멀찍이 도망쳤다.
‘뭐, 한 놈만 있어도 정보 얻기에는 충분하겠지.’
민성은 멀어져가는 놈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눈앞의 남자를 내려다봤다.
“죄, 죄송합니다.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쇼. 집에 곰 같은 마누라와 여우 같은 자식들이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남자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싼 채,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누가 시켰습니까?”
훌쩍-
민성은 차가운 말투로 남자를 추궁했다. 하지만 남자는 울먹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하아…….”
잠시 눈가를 긁적인 민성은 일부러 대검을 들어 땅에 내리 꽂았다.
콰직-
“히익!”
대검이 남자의 다리 사이를 지나 도보의 타일 속에 틀어박히자,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저는 그저 운송 업무를 맡은 잡부일 뿐입니다!”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모아 싹싹 빌자, 민성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라? 이 남자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은 얼굴. 누군가 했더니, 그를 광해군의 묘지까지 태워다준 운전기사였다.
“누군가 했더니……. 하……. 김 회장님이 시키신 겁니까?”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흘리며 그를 내려다봤다. 머릿속으로 상황이 대강 그려졌다. 이 시점에서 미행을 붙인 이유는 오로지 하나뿐이다. 그의 말을 믿지 못한 노인이 비보의 유무 여부를 확인하고자, 사람을 심어놓은 게 틀림없었다.
‘이 의심 많은 노인네가 결국엔 일을 치르는구나.’
노인의 행동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노인이었어도 쉽사리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미행하도록 놔둘 생각은 없었다.
‘이해한다고 해서 봐줘야 한다는 법은 없지. 그나저나…….’
민성은 무릎 꿇고 싹싹 손을 비비는 남자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노인과 전화를 마무리한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 남자는 어떻게 내 위치를 알고 곧장 추적해올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난 인피면구까지 착용 중인데?’
잠시 고민하던 민성은 이내 나름의 해답을 도출해내곤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고 따라온 겁니까?”
“예?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남자는 자꾸 말을 더듬어댔다.
“불쌍한 척해도 안 봐줘요. 어떻게 알고 따라온 겁니까? 다음 질문에도 답하지 않으면 그땐, 이게 그쪽 다리에 박히는 걸 보게 될 거예요.”
민성은 스산한 말투와 함께 도보에 박혀 있던 대검을 천천히 빼들었다.
“저……. 그게……. 제발…….”
남자의 애원에도 검신은 점차 제 모습을 드러냈다.
툭-
“어? 다 뽑혔네요?”
“아…….”
남자는 검은 대검과 민성의 얼굴에 걸린 섬뜩한 미소를 번갈아 쳐다보며 새하얗게 질려갔다.
“아……. 아아…….”
“다리 한쪽 날아가면 뭐든 다 얘기하고 싶어질 거예요.”
은연 중 약속된 시간이 흐르자, 민성은 지체 없이 대검을 들어 남자의 다리에 내리꽂았다.
“말하겠습니다! 말하겠습니다! 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