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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29화 (129/303)

# 129

129화 - 변혁의 시작 (3)

“후……. 그래서……. 계속 얘기해봐요.”

한참 언성을 높이던 레이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하라는 듯 손짓했다.

“이번 일로 인해 서쪽 지구의 쓰레기들 대다수가 쓰레기장을 빠져나갈 것으로 보입니다…….죄송합니다.”

“그래요……. 이미 벌어진 일, 원인이야 그렇다 치고. 앞으로 벌어질 일과 그에 따른 대책은 세워놓고 오신 거겠죠?”

그녀의 냉랭한 음성에 자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일주일 뒤, 쓰레기들이 결계를 완전히 넘어갈 겁니다. 그로 인해 인간 세상에 많은 혼란과 변동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서쪽이면…… 아시아권이었나요?”

그녀의 물음에 자르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책은…….”

“됐어요. 이 건은 아무래도 저희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네요.”

레이첼은 그의 말을 자르며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은 그들 힘으로 해결할 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망할 지배자 놈이 빨리 돌아와야 하는데. 보호기간도 끝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당장이야 차원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지만, 언제 또 전투가 재개될지 모를 일이었다.

“망할 쓰레기들…….”

소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애먼 손톱을 까득 깨물었다. 쓰레기들이 바깥으로 나온들 전투에서 아무런 이점도 얻을 수 없었다. 이미 차원전투에 패배해 그들의 차원에 부속된 일종의 노예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니 놈들은 전쟁에 필요한 인원을 소집할 때도 열외 대상자가 된다. 아니, 그건 차라리 나았다. 문제는 이미 패배함으로써 인간에게 적개심을 갖고 있던 놈들이 인간 세상에 대거 등장한다는 게 문제였다. 차원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숫자의 인간이 갈려나갈지 모르는 상황에, 더욱 숫자가 줄어들 일이 생겨버렸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요. 지배자 놈이 돌아올 때까지는 그들에게 맡겨야죠.”

레이첼은 모든 걸 내려놓은 듯 허탈한 심정으로 말했다. 개똥도 필요할 땐 보이지 않는다고, 개똥만도 못한 지배자 놈이었다. 사실 돌아온다고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전 지배자가 물려줘야 할 것들을 전부 탕진하고 자리를 위임한 덕에, 현 지배자는 거의 쓰레기에 가까울 정도로 무능해진 상태였다.

‘그래도 놈이 돌아와야 무슨 대책이라도 마련해보지.’

괜스레 머리만 아파오는 것 같았다.

“관리인에게 알리라고 시킬까요?”

조심스러운 자르의 음성에, 레이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긴 하지만…… 인간들을 믿어보는 수밖에요.”

지배자가 회의를 끝내고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두세 달. 혹 회의가 길어지면 이마저도 더 길어질 수 있었다.

“일단 토토를 최대한 만들어내요. 다른 곳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최대한 쓰레기들을 제거해요.”

“예!”

“지금 가 봐요. 빨리!”

“예!”

레이첼이 손짓하자, 자르는 리나를 깨운 뒤 얼른 자리를 떴다.

“후…….”

그들이 떠나자, 레이첼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수확한 바나나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

끼익-

수송트럭은 서울의 외곽인 구파발역에 멈춰 섰다.

“도착했다, 얘들아.”

김도진은 꾸벅꾸벅 졸고 있던 민성 일행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음……. 예? 아, 감사합니다.”

민성은 반쯤 뜬 몽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춥기는 더럽게 추운데 잠은 또 왜 이리 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웠단다. 다시는 이쪽에 발붙일 생각일랑 하지도 말고. 알았지?”

김도진은 상냥하게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그들의 하차를 지켜봤다.

덜컹-

트럭의 끝머리에 앉아 있던 용병들이 수송트럭의 입구를 열어주었다. 민성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꾸벅여 보이곤, 반쯤 마비되어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로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으악!’

찌릿한 고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순간적으로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동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는지 연신 몸을 휘청거렸다.

“큭…….”

민성 일행이 파도에 쓸리는 해파리마냥 몸을 휘청대자, 용병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

부릉-

수송트럭의 무거운 차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잘 가라!”

“목숨 건 아르바이트 했는데, 수당 잘 챙겨 받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이라도 들었는지, 용병들은 나름대로 덕담 한마디씩을 던졌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렴! 알았지?”

김도진의 말을 끝으로 수송트럭들은 빠른 속도로 사거리를 우회전해 들어가, 시야를 벗어났다.

‘진짜로…… 끝났다.’

잠시간 트럭이 사라진 도로를 지그시 바라보던 민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정말 모든 일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춥다.”

“어디라도 잠깐 들어갈까요?”

민성은 역 인근의 불 켜진 카페를 가리켰다. 그 역시 당장 어디라도 들어가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싶었다.

일행의 동의를 얻은 민성은 그들과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아…….”

민성은 저도 모르게 낮은 감탄사를 흘렸다. 뜨듯한 훈풍이 몸 구석구석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잠시간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던 민성은 일행을 먼저 2층으로 올려 보낸 뒤, 그 역시 따듯한 아메리카노 3잔을 갖고 올라갔다.

“고마워요.”

“감사.”

그들 앞에 잔을 내려놓은 민성은 피식 웃으며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민성들은 잠시간 소파에 몸을 기대고 온풍을 한껏 만끽했다. 어느 정도 몸이 녹아 따스해지자, 민성은 일행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모든 걸 떠나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네?”

“…….”

민성이 테이블에 처박듯 고개를 숙이자, 일행들은 일순간 당황하여 그를 바라봤다.

“자칫 이번 일로 전멸당할 수도 있었어요. 위험한 일에 빠뜨려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전에 경고를 했다 하더라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루는…… 괜찮아요. 애초에 내내 짐만 됐는걸요.”

아루 역시 민성을 따라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신선한 경험. 좋은 결과. 괜찮다.”

이신은 결과가 좋으니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아쉬운 점. 그곳은 아이템이 없었다.”

오히려 이신은 망자들이 아이템을 떨어뜨리지 않은 점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자각사의 인스턴트 던전과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민성은 올라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설령 망자 놈들이 아이템을 뱉어냈다 하더라도, 담을 아이템 창이 1칸일 터. 아이템을 담기엔 턱없이 부족한 공간이었다.

‘보기보다 욕심이 많네. 아, 설마 그래서 가방을……?’

민성은 이신의 옆에 놓인 가방을 슬쩍 바라보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어쨌든 다들 살아남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민성은 일행의 눈을 한 번씩 마주치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들과 함께 움직이고 싶어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민성은 그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실 이번 일로 그들이 이탈한다고 한들 막을 명분도 없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목숨이 여럿이라도 살아남기 어려울 상황이었었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돈으로 그들을 고용한 것에 가까웠다. 냉정하게 봤을 때, 다음에도 이들과 함께 움직인다고 보장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는다고 하면 그땐…….’

믿을 수 있는 동료를 얻는 일은 커다란 복이다. 쉽사리 사람을 믿지 않는 성격 탓에, 안 그래도 협소한 인맥을 가진 그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비쳐준다면, 그들에게 더 큰 믿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민성은 커피를 홀짝이며 그들의 결정을 기다렸다.

“아루도 잘 부탁드려요.”

“잘 부탁.”

민성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지우며 그들을 마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분께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산은…….”

민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일행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은 두당 10억. 원래대로라면 임무를 완료한 보상으로 만복 노인이 지급해야 할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비보를 노인에게 넘겨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렸다.

‘사전에 언급은 개뿔. 어떻게 얻은 물건인데, 통수 친 새끼한테 넘길 수는 없지.’

망할 노인네가 용병들에게 그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은 일은, 지금도 의문이었다. 물론 용병에게 언급했던들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망할 노인네의 행동이 괘씸했다.

“아루는…… 안 받아도 돼요.”

민성이 말꼬리를 흘리자, 아루는 슬쩍 팔을 들고 소침하게 말했다.

“……예?”

보상금 10억. 일반 서민이라면 감히 만져보기도 어려운 돈이었다. 헌데 그런 커다란 액수를 거절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게 마저 느껴졌다.

‘분명 출발 전에는 보상금으로 명품 백을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느닷없는 그녀의 발언에 당황한 민성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괜찮다.”

“…….”

심지어 이신마저 아루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으며 보상을 거부했다. 그리곤 무덤덤한 표정으로 후후 불며 커피를 들이킨다. 민성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뭐지? 오히려 당연히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면 설마 내가 보상을 지불하는 데 부담을 느낀다고 생각한 건가?’

본의 아니게 주춤한 그의 모습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성은 재차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의 의중을 물었다.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던 아루가 쭈뼛대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루는 이번에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아루는 받을 자격이 없어요.”

“마찬가지.”

아루가 물꼬를 트자, 이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아…….”

그제야 납득이 간 민성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저는 이번 일에 한해서 여러분을 고용했고, 활약 여부를 떠나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 일에 임해주셨어요. 그러니 저 또한 약속을 이행할 의무가 있죠. 애초에 그게 계약조건이었잖아요?”

돈 떼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 만복 노인에게 비보를 넘길 생각이 없는 만큼, 그의 돈으로 지불해야 하는 점은 있었다.

‘합계 20억인가.’

어마어마한 액수였지만 ‘비밀스러운 집’에 잠들어 있는 50억 가량의 현찰 때문인지, 그리 큰 부담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지속적인 거래는 상호간의 믿음이 유지돼야 가능해요. 다음에도 또 여러분을 고용할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돈 때문에 신뢰가 깨지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민성의 진심 어린 말투에 분위기는 일순간 숙연해졌다.

“아니면 다음부턴 열정 페이로 뛰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물론 저는 좋지만…….”

민성이 피식 웃으며 농담조로 말하자,

“받도록 하겠다.”

이신은 잽싸게 그의 의사를 철회했다. 그리곤 커피 잔을 들어 홀짝이며, 입가에 드리운 아주 희미한 미소마저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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