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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28화 (128/303)

# 128

128화 - 변혁의 시작 (2)

‘그나저나 어떻게 돌아간다……. 그 운전기사한테 전화하면 다시 오려나? 아냐, 망할 노인네가 통수까지 쳤는데 보내줄 리가 없지.’

그러나 민성의 관심사는 오로지 복귀에 쏠려 있었다. 사전에 용병들에게 언급해 놓겠다는 약속조차 깨버린 만복 노인이 차를 보낼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후…….’

이래저래 고민해봐도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거기! 얘들아! 멈춰!”

“아오! 뭡니까, 뭐!”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몸을 떨던 민성은 반쯤 이성을 잃어 크게 소리 질렀다.

“가는 길이 같으면 우리 차를 타고 가라고.”

“…….”

민성은 얼빠진 표정으로 김도진을 바라봤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지만, 민성의 얼굴엔 이내 화색이 돋았다. 당장 이 추위를 피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강원도의 추위를 너무 만만히 봤다.

“싫으면 할 수…….”

“갑시다! 같이 갑시다!”

민성은 택시 잡듯 손을 위아래로 흔들며 반색했다. 그에게 총질했던 일은 이미 뒷전이었다. 자존심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젠 신체에서 점점 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따라오렴.”

민성은 일행과 함께 김도진의 뒤를 따랐다.

부아아앙-

이윽고, 용병들과 민성 일행을 태운 여러 대의 수송트럭들이 검문소를 벗어났다. 민성은 멀어지는 미군들의 얼굴을 힐끗 보곤, 용병들에게 건네받은 모포로 몸 전체를 감쌌다. 용병들이 준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었건만, 그럼에도 한기는 몸에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

‘시발…….’

따듯한 차내를 생각했던 민성은 수송트럭 뒤편의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은 채,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그나저나 너희들, 용케도 살아 있었다?”

“그러게. 가장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용병들은 내려앉은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전환시키고자, 괜히 그들에게 말을 걸곤 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보기와 다르게 꽤나 실력자들이니까. 쟤들 둘, 아니 쟤랑 이상한 새 덕에 여럿 목숨 건졌어.”

“그런데 넌 얼굴을 못 봤던 것 같은데…… 어디 처박혀서 숨어 있었던 거 아냐?”

그들의 관심은 아루와 이신을 지나 민성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민성은 그들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으……. 추워 죽겠네.’

그저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얼른 목적지로 도착하길 소망할 뿐이었다.

“그래도 끝났네. 시발…….”

“나중에 만재 놈 집에 한번 들르자고. 그놈…… 얼마 안 있다가 자식 놈 생일이라고, 비싼 선물 해줄 수 있다고 좋아했었는데…….”

“그래야지……. 꼭 그래야지…….”

트럭의 덜컹거림 속에서도, 용병들은 대화를 나누며 전우들을 잃은 슬픔을 조금씩 삭여갔다. 그러던 와중,

콰르르르-

“뭐, 뭐야!”

난데없이 땅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어어어?”

차체가 좌우로 요동치자 용병들은 받침대나 의자를 꽉 쥐고 충격을 버텼다.

‘아오, 진짜.’

민성 역시 의자 사이의 틈에 손을 집어넣고 힘을 꽉 주었다. 잠시 후, 진동이 가라앉자 민성은 그제야 힘을 풀 수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돌아가는 길마저 순탄치 않을 줄은 몰랐다.

“근방에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데, 언제 여진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서둘러! 최대한 밟아!”

김도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송트럭은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질주했다.

*

서측 결계선 인근.

“케케케케케. 맛있겠다.”

티노는 눈앞의 기이하게 생긴 물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별 모양을 한 나무에서는, 지렁이 같은 벌레들이 대가리를 내민 채 꿈틀대고 있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기괴한 것들이 여기저기 존재했다. 과거부터, 오직 그의 눈에만 보이는 괴상한 물체였다. 인간도 버섯만 볼 뿐, 이것들은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입에 나무를 꿀떡 삼킨 티노는 짧은 팔로 옆구리 뼈를 두들기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먹을 게 많아서 좋다.”

잠시 인간과 노는 사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들은 천지에 꽤나 번식해 있었다.

‘티노야, 앞으로도 그런 것들이 생겨나면 전부 먹어 없애주렴.’

선생이 신신당부했던 만큼, 게을리 할 생각은 없었다.

“먹으면 배도 부르고! 선생과의 약속도 지키고!”

티노는 몇 번이고 괴이한 물체를 작은 입으로 집어삼켰다. 그 외에도 티노는 여기저기서 솟아나는 버섯들도 양껏 먹어치웠다. 어차피 그것들 역시 선생이 부탁했던 물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인간이 봤다면 안타까움에 한숨을 푹 내쉬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지금 곁에 없다. 티노는 다시 꼬리를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괴이한 물체들을 먹어치워 갔다.

“이 정도 하면 되겠지. 케케케케케. 이제 돌아가 볼까.”

티노는 불룩 튀어나온 뼈를 쓰다듬으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할 일을 했으니, 이제 돌아가 TV를 보며 빈둥거리고 싶었다. 그때,

쇄액-

그의 머리 위로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응?”

티노는 고개를 쳐들고 광활한 하늘을 응시했다. 길쭉하면서도 거대한 물체가 어디론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저기는……?”

쾅-

티노가 채 의문을 갖기도 전에, 저 멀리서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호기심이 돋은 티노는 곧장 몸을 날려, 소리가 난 장소로 날아갔다.

“오!”

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이동한 티노는 곧 놀람을 금치 못하며 뼈를 딱딱거렸다. 어쩐 일인지 결계선이 부서져 있다.

“감옥이 부서졌다!”

“나가자! 나가!”

짙은 연기 사이로 쓰레기장의 주민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얼른 돌아가야겠어.”

대형사태였다. 자칫 인간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티노는 급히 하늘로 몸을 날렸다.

*

63빌딩 꼭대기.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금발머리의 소녀가 커다란 정원에서 잘 익은 열대과일을 수확하고 있다.

“바나나를 먹으면 나한테 바나나.”

소녀는 기분이 좋았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바쁘게 놀렸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바구니는 금세 과일들로 한가득 찼다. 더는 바구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과일이 들어차자, 소녀는 천천히 정원을 빠져나왔다.

“망할 놈이 없으니까 너무 좋네, 좋아.”

소녀가 흥얼거리며 작게 몸을 들썩일 때마다, 그녀의 금발머리가 춤추듯 찰랑거렸다.

“오늘은 바나나 소스를 베이스로 한 달짝지근한 스테이크를 해먹어볼…….”

하지만 소녀의 평온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슉-

“지배자님! 지배자님!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이에요, 리나?”

레이첼은 평온했던 공간을 침입한 익숙한 얼굴을 지그시 노려봤다.

“레이첼! 지배자님은 어디 계세요?”

무엇이 그리도 급했는지, 리나는 떨리는 동공으로 연신 내부를 살폈다.

“무슨 일이에요?”

평온함을 방해한 대가로 새초롬하게 쏘아붙이려던 레이첼은, 그녀의 뺨에 묻은 핏자국을 보곤 생각을 선회했다.

“서쪽……. 서쪽 경계선이…….”

리나는 채 말을 잊지 못하고 몸을 벌벌 떨어댔다.

“진정해요, 리나. 서쪽 경계선이 왜요? 그곳은 저번에 그 얼간이, 아니 지배자님께서 손보셨잖아요?”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레이첼은 그녀를 어르듯 상냥한 어투로 말했다.

“그게……. 그게……. 지배자님은 어디에……? 지배자님께 보고를…….”

그럼에도 리나는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러자, 레이첼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작게 속삭였다.

“리나, 차분하게 호흡을 가라앉혀요. 지배자님은 얼마 전에 연례회의에 참석하러 가셨잖아요.”

“그랬죠……. 그랬죠……. 제가 정신머리가……. 꼭 말씀드려야 하는데…….”

리나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혼절하여, 레이첼의 품에 쓰러지듯 무너져 내렸다.

“쯧. 기절하는 건 좋은데, 왜 왔는지는 알려주고 기절해야 할 것 아냐.”

레이첼은 구시렁거리면서도 리나를 번쩍 들어 소파에 눕혔다.

슉-

“리나!”

리나를 소파에 눕히기 무섭게 중년 남성이 허공에서 나타나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자르, 오늘 무슨 날이에요?”

평소 냉철함을 유지하던 자르마저 화급해 보이는 표정을 짓자, 레이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를 맞았다. 쓰레기장을 관리하던 관리인 중 두 명이 이리도 다급하게 움직일 정도면, 필시 무슨 사단이 난 게 분명했다.

“리나!”

허나 자르는 레이첼의 인사도 무시하곤, 소파에 누워 있는 여인을 죽일 듯 노려봤다.

“지금 무슨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면서도 잠을 자?”

“혼절했어요.”

레이첼은 얼굴이 새빨개져 소파로 다가서는 자르의 앞을 막아섰다.

“레이첼……. 비켜주세요. 지금 쓰레기장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요?”

“리나가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레이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설명을 요구했다.

“후…….”

자르는 답답했는지 무게가 느껴지는 한숨만을 잇따라 내뱉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쓰레기장의 서쪽 결계선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

레이첼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르를 빤히 바라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가 세운 결계선인데, 절대로 무너져 내려선 안 될 일이었다. 거기다 결계선이 무너져 내리면…….

“농담이죠?”

레이첼은 피식 웃으며 손사래 쳤다. 농담이라도 너무 과한 농담이었다.

“사실……입니다.”

자르의 죽을 것같이 내려앉은 표정은, 그의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알렸다.

“맙소사……. 왜요? 왜?”

멍하니 자르의 얼굴을 바라보던 레이첼마저 냉정함을 잃고 그를 독촉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듣고 냉철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는 몇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빨리 말해요.”

레이첼의 한기마저 느껴지는 말투에, 자르는 속 편히 누워 있는 리나를 힐끗 노려봤다. 지배자께서 공석이실 경우 대리자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레이첼이었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여도 엄연히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건만, 그녀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자르는 레이첼의 눈을 조심스레 마주치며 천천히 입을 땠다.

“저도 정확한 원인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외부에서 이유 모를 거대한 충격이 가해졌고, 그로 인해 결계선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밖에는……. 죄송합니다.”

“…….”

과한 충격을 받았는지 레이첼은 말을 잃고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자르는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보고를 이어갔다.

“그래도 서쪽 결계선 전체가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외곽의 결계선만…….”

쓰레기장을 지탱하는 결계선은, 크게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쓰레기장의 외곽을 둥글게 빙 두르는 거대한 결계선과, 내부를 각기 동서남북으로 나누어놓은 십자선 결계선이었다. 그 중 결계선이 파괴된 부분은 서쪽 지구 외곽부분이었다.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발생했겠죠, 예? 후……. 그래요. 원인은 몰랐다 치고, 외곽의 결계선만 무너졌다고요?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 예?”

물이 반만 엎어졌다고 물이 엎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언성이 천장을 뚫을 듯 높아지자, 자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녀가 고정하기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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