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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23화 (123/303)

# 123

123화 - 분기점 (9)

“저놈은……?”

“…….”

양측에서 그를 노려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민성은 얼굴에 철판 깔고 그들을 여유롭게 응시했다.

“설마…….”

혈교 측의 여인은 민성이 들고 있는 대검과 얼굴을 반복해서 쳐다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의 행사를 방해했던 놈과 똑 닮은 대검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그놈과는 얼굴이 달랐다.

“얼굴이 다르잖아, 우연이겠지. 아니면 내가 확인해보고 와도 되고.”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남자가 대검을 꺼내들려 하자, 여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말렸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돌려 광해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직 움직임은 없었지만 언제 공격을 시작할지 몰랐다.

“우리가 상대한 게 분신이었다고?”

여인은 작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갖은 고생 하며 기껏 잡은 놈이 분신이라는 사실에, 눌러놨던 화가 재차 치솟는 것 같았다. 거기다 분신의 위력을 생각한다면 본체가 가지고 있을 힘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그냥 내버려두자고?”

“잡놈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는 백야 님의 안전을 지키고 목표만 달성하면 돼.”

어차피 전투에 휩쓸려 금방 목숨을 잃을 피라미일 게 뻔했다. 광해군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도 모자랄 판에, 구태여 전력을 분산시킬 필요는 없었다. 진중한 여인의 말투에 남자는 입술을 달싹이더니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카일…….”

붉은 머리의 소녀는 고통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의 이름을 조심스레 불렀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여전히 그의 몸에선 식은땀이 쏟아져 나왔지만, 남자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그의 비원이자 목표를 완수할 수 있다면 이런 고통 따위는 백번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문제는…….”

카일은 느긋하게 보스를 바라보는 남자를 노려봤다. 보스의 위력에 놀라 혈교와 암묵적인 합의까지 봤건만, 어딘가 낯설지 않은 이방인은 그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혈교 무리와 보상을 두고 전투 혹은 배분의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게 뻔했다. 헌데 와중에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었다.

“큭…….”

카일은 괜스레 복부에서 몰려오는 욱신거림에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전부 끝이야.”

허나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을 보곤 재빨리 웃음 지어 보였다. 과실을 수확하기까지, 이제 한 걸음만 내딛으면 됐다.

“키아아아!”

“끄아아아악!”

후방에선 연신 용병들의 절규 소리가 울려댔지만 일말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그들 역시 앞의 던전에서 모든 병력들을 잃은 터, 변수와 경쟁자는 적을수록 좋았다. 카일은 그들의 우측에 자리한 민성을 주의 깊게 쳐다봤다. 낡고 검은 대검에 괜스레 눈길이 갔다. 근래 들어 유독 대검을 사용하는 놈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요즘 대검이 대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카일은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다.

‘행색을 봐선 용병이 분명한데……. 어차피 한순간의 치기에 빠져 영웅놀이 하는 놈이겠지.’

신경 쓸 필요 없는 버러지. 그렇게 민성에 대해 결론내린 카일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혈교와 곤룡포를 입고 그들을 응시하는 광해군. 당장 그가 신경 써야 할 이들이었다.

‘어떻게든 확보한다.’

카일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더욱 세게 움켜잡았다.

‘후…….’

그들이 관심을 거두자, 민성은 그제야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대검으로 인해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그를 몰라보는 듯했다. 혈교 놈들이야 자각사의 일로 이미 관계가 틀어졌고, 미국 역시 친구의 일로 마냥 곱게 보이지 않았다. 헌데 놈들이 동맹을 맺은 듯한 행동을 보이니, 순간 최악의 가정을 떠올리고 부담을 느꼈다.

‘다구리엔 장사가 없으니까.’

민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슬쩍 후방을 바라봤다. 광해군의 능력으로 인해 움직임을 제한당한 용병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그의 일행을 찾아낼 수 있었다.

퍽-

“크로오오!”

제자리에서 반복적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이신과, 주인을 등에 업고 괴음을 지르며 망자들의 접근을 막아내는 크로스가 보였다. 언뜻 보기엔 용병들보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어 보였으나, 다른 용병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발 역시 얼음 속에 묶여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 짓는다.’

순간, 일행들을 도와야 하나 고민했으나 민성은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곤 대검 자루를 굳게 붙잡았다. 사선을 넘고 고생했으니 그 역시 응당 비보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했다.

“움직인다!”

민성이 생각을 정리하기 무섭게,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전을 울렸다.

‘시작됐나.’

민성은 옥좌에서 일어나 있던 광해군을 노려봤다. 그의 호의는 고마웠으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하물며 원수 같은 것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무지는 곧 죄악. 과인의 대전에 침입한 죄는 죽음으로 갚도록 하여라.”

마침내 광해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순간, 민성을 안쓰럽게 바라본 광해군은 미련을 떨친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침입자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곤 지팡이를 들어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와 동시에 내전의 바닥 여기저기에서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콰직-

“키아아아!”

균열 속에선 기괴한 괴성과 함께 부식된 머리와 팔들이 올라왔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은 필요 없어! 보스만 노려!”

“이번엔 분신이 아닐 거야! 저놈만 죽이면 돼!”

망자들이 채 튀어나오기도 전에, 민성의 양측에 있던 이들은 곧장 광해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혈교 측에선 대검을 든 사내가, 미국 측은 남은 둘 모두가 보스의 목을 노렸다.

“내가 먼저야! 파이어 번!”

소녀는 흥에 겨운 듯 소리치며 가장 먼저 광해군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맴돌던 불꽃은 뱀처럼 길게 늘어지더니 광해군의 몸을 속박하듯 옭아맸다.

“레이나! 잠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움직이고자 했던 카일이 뒤늦게 그녀를 제지하려 했으나, 그녀의 속도가 더 빨랐다.

“죽어! 파이어 소드!”

소녀는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곧바로 불의 검을 생성시켜, 광해군의 가슴 부근에 내리꽂았다.

챙-

“같잖구나.”

광해군은 물기 털듯 손을 흔들어 가볍게 불의 속박을 끊어내곤 지팡이를 들어 그녀의 일격을 막아냈다.

“이런 잔재주로 과인의 몸에 손끝 하나 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펑-

광해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팡이 끝에 달린 보석이 번뜩이더니 커다란 파공음이 울렸다. 시야에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덩어리가 소녀를 노리고 쏘아져갔다.

“아이스 월.”

콰득-

뒤늦게 그녀를 쫓던 카일이 입술을 달싹거리자, 소녀와 광해군 사이로 커다란 빙벽이 생겨났다. 그러나 무형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는지, 빙벽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파이어……꺄아아악!”

그리곤 노렸던 목표물의 복부에 그대로 꽂혀들었다.

“레이나!”

카일이 놀란 듯 소리치며 날아오는 그녀의 왜소한 몸을 받아들었다.

“쿨럭……쿨럭!”

카일의 품에 안긴 소녀는 연신 기침하며 죽은피를 게워냈다.

“이 바보야! 내가 멋대로 달려들지 말라고 했잖아!”

이곳에 오기 전, 분신에게 그리 호되게 당해놓고도 겁 없이 달려드는 그녀의 행태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 힘으로……. 이그니트의 강림.”

힘겹게 한마디, 한마디 내뱉던 그녀는 끝말을 뱉음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누가 또 내 딸을 괴롭혔어! 엉?”

그러나 소녀는 이내 눈을 부릅뜬 채 두리번거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붉은 머리는 새하얀 눈처럼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아……. 이 바보가 진짜…….”

카일은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무모한 돌진을 시도했던 레이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분신을 상대함으로써 본연의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 그래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수, 이프리트를 소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뭐야! 아까 죽인 놈이랑 똑같은 놈이잖아? 카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프리트는 전방에 오연하게 서 있는 남자를 노려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저게 본체래요.”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한 카일은 뭔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뭐?”

소녀는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카일을 바라봤다.

“레이나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얼굴 망가뜨릴 일 있어요?”

“이 자식이 또…….”

챙-

발끈한 이프리트가 반박하려는 찰나, 청량한 쇠붙이 마찰음 소리가 울려왔다. 둘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혈교 측의 남자가 연신 대검을 휘두르며 광해군의 목숨줄을 노렸다.

“무엄한 놈들이 많구나.”

하지만 대검은 지팡이에 막혀 붉은 곤룡포의 소매에도 닿지 못했다. 오히려 광해군의 지팡이에서 빛이 흘러나오자, 남자는 내리찍던 대검을 회수하며 급히 뒤로 물러섰다.

쾅-

곧, 그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빙산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저거 네 스킬 아니냐?”

“…….”

이프리트의 질문에, 할 말을 잃은 카일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주력 스킬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가 사용하던 스킬과 똑 닮은 능력이었다.

“설마, 저것도…….”

카일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용병무리의 얼어붙은 발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확신할 증거는 없었지만, 그가 사용하는 스킬과 상당히 흡사한 능력인 듯했다.

“멍청한 새끼들!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

와중에 낮고 다급한 목소리가 그들을 불렀다. 혈교 측의 이름 모를 여인이 손짓하며 그들을 독촉했다. 마치 그들의 일행이 전투중인데 왜 가만히 있냐는 듯 힐난하는 어조였다.

“저년은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불만 있으면 지가 싸울 것이지. 겁에 질려 애송이 옆에 매달려 있는 꼬락서니란, 에잉.”

이프리트는 불만스럽게 혀를 차면서도 불의 검을 생성해 손에 쥐었다. 그리곤 중얼거리듯 말하며 계속 불만을 표출했다.

“우리 레이나를 봐! 얼마나 용감하면서도 대견해! 어떤 적이건 일단 싸우고 보잖아. 전사에게는 그런 용맹함이 필요하다고!”

“이프리트…….”

애당초 누구 때문에 레이나가 저렇게 변했는지, 그의 당당함에 카일은 재차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 불러, 망할 것아! 네가 서포팅만 잘해줬어도 내가 나올 일도 없었잖아! 엉?”

하지만 이프리트는 오히려 그를 타박하며 무능함을 탓했다.

“……저희도 가죠.”

소녀의 으르렁거림을 무시한 카일은 검을 빼들고 격전지로 달려갔다.

“쯧쯧. 못난 놈.”

그의 등을 보며 혀를 차던 이프리트도 그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용기가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구나.”

“이 새끼가!”

챙-

“음…….”

튕기듯 몸을 날려 재빨리 격전지에 접근한 카일은 낮은 신음을 뱉어냈다.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한 것 같았다. 언뜻 남자가 육중한 대검을 휘두르며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왕의 지팡이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비보를 얻으려면 일단 눈앞의 왕을 처리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협력이 필수였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분신이 아닌 본체였다. 아직까지는 비등해 보여도 언제 우위가 뒤집어질지 몰랐다.

“얼른 도와야겠어.”

카일은 낮게 중얼거리며 뒤따라오는 소녀를 바라봤다. 창백해 보이는 그녀의 피부가 괜스레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더 이상 무모한 짓은 하게 놔둘 수 없었다.

“이프리트! 아까와는 또 다를 수 있으니까 제가 먼저…….”

“그런 건 없다! 일단 부딪혀 봐야 아는 거지!”

그러나 이프리트는 그의 말을 가볍게 묵살하곤, 속도를 올려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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