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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19화 (119/303)

# 119

119화 - 분기점 (5)

“…….”

하지만 용병들의 긴장감이 무색하게 주변에는 고요함만이 맴돌았다.

‘설마 안으로 들어오라고 열어놓은 건 아니겠지?’

민성은 고개를 쳐들고 열려 있는 문 안쪽을 살폈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함정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 무조건 함정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전진, 혹은 후퇴뿐. 하지만 그나마도 여의치 않았다. 민성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용병무리를 바라봤다. 저들의 결정에 따라 많은 것이 뒤바뀔 것이었다.

“어쩌실 겁니까?”

각 용병단의 장들은 김도진에게 의사를 물으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하지만 김도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 뿐 굳게 닫힌 입을 열지 않았다. 김도진은 힐끗 고개를 돌려 후방을 노려봤다. 물자 보급을 받으러 간 용병대들은 아직도 소식이 없다. 함흥에 차사를 보낸 이방원이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닝기리…….”

사실 이쯤 되면 이미 결론은 나와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시점이었다. 원인 모를 이유로 낙오, 혹은 전멸했다고 봐야 했다. 인생은 항상 생각한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냥 전진할 것을, 하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지만, 당시에는 보급을 받아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결정을…….”

그럼에도 용병들은 그의 의사를 물어본다. 아직 그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후…….”

김도진은 무거운 숨을 내쉬며 엄한 소총 덮개를 움켜잡았다. 명령에는 항상 그에 걸맞은 책임감이 따른다. 책임감에 짓눌리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훌륭한 리더를 가르는 자질이었다. 훌륭한 리더는 아니더라도 휘하 용병들의 목숨 값 정도는 책임지는 대장이고 싶었다. 냉철하고도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3팀은 이곳에서 대기 및 경계를 선다. 엑스 진, 롱 로프, 랜스 팀이 임무를 맡는다.”

김도진은 용병들을 훑어보며 계속 명령을 하달했다.

“나머지는 전원 안으로 진입, 이 거지 같은 임무를 끝내러 간다.”

물론 안으로 들어가 정체 모를 임무를 해결한다고 모든 일이 종결난다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사기를 돋우기 위해선 백색의 거짓말도 필요한 법.

“얼른 들어갑시다!”

“좃 같은 새끼들! 대가리에 총 맞고 싶으면 또 기어 나와 보라 그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김도진의 말투에 용병들은 거친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커다란 목청에 위치를 노출당할 수도 있었건만, 김도진은 작은 미소를 흘릴 뿐 그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체 모를 놈은 그들이 와 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 오라는 듯 활짝 열려 있는 문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시벌 새끼들한테 총질 한번 하고 깔끔하게 복귀하자! 너희도 마누라 궁둥이 두드리러 가야될 것 아냐! 없는 새끼들은 알아서 돈 주고 두들기든가 하고.”

김도진의 농에 용병들은 킬킬대면서도 전의를 불태웠다.

“나와 흑골들부터 진입한다. 그 뒤로 좌측의 레드 비트 팀부터 순차적으로 진입. 대기하는 3팀은 진입이 끝날 때까지 엄호 확실히 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총성으로 신호 보내겠습니다!”

김도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좋아, 진입한다!”

그리곤 그의 대원들과 함께 칠흑이 맴도는 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출발하는 것 같은데요?”

민성은 움직이기 시작한 용병들을 힐끔 쳐다봤다.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총기멜빵끈을 따라 소총들이 불규칙적으로 덜렁거렸다. 김도진이 먼저 안으로 진입하자, 그의 대원들이 재빨리 뒤따랐다. 그리곤 명령받은 대로 좌측의 용병대도 줄줄이 따라갔다.

“괜찮겠어요?”

민성은 아직 안색이 초췌해 보이는 아루를 바라봤다.

“아루는…… 괜찮아요…….”

하지만 트라우마의 여파가 컸는지, 그녀는 아직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물.”

이신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물통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고맙다는 표시로 힘없는 미소를 보이곤 물통을 받아들었다.

‘어쩐다…….’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물통을 비우는 아루를 바라봤다. 궁궐 내부 역시 어둠이 들어찬 공간일 수 있었다. 그럴 경우 재차 발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이미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린 상황. 조금이라도 안전한 공간에서 쉬게 하는 것이 좋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민성은 김도진이 지목한, 대기를 명받은 용병대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맡기는 것도 거북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노인네.’

만복 노인이 사전에 용병들에게 언질을 주겠다는 말만 지켰어도,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괜스레 만복 노인의 면상이 떠오르자 민성은 올라오는 짜증을 짓눌렀다.

“아루는…… 갈 수 있어요…….”

아루는 비틀거리면서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두고 가는 것보단 함께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시체무리도 밖에서 들이닥쳤던 걸 감안하면, 밖이라고 무조건 안전을 보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요. 같이 가요. 하지만 또 아까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혼절시킨 뒤, 크로스의 등에 묶은 채로 전진할 겁니다.’

민성은 애써 뒷말을 삼키곤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걱정 말아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녀는 얇은 입술을 위로 올려 보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들어가죠.”

잠시 침묵한 채 그녀를 바라보던 민성은 몸을 돌렸다. 일행이나 그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결국 이곳도 버섯이나 전투가 벌어지는 타워와 바를 바 없는 공간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충분히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서 사활을 건 전투를 치르며 얻은 수많은 경험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느낌이다.

‘그놈들을 상대하느니 좀비 놈들을 상대하는 게 낫지.’

운이 좋은 건지, 아직 혈교 무리나 미국 측이 보이지 않는 것도 계속 신경 쓰였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들.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마찰을 피하는 편이 좋았다. 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일행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진입하던 용병들 뒤편에 끼어, 궁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문 안으로 진입하자 짙은 어둠이 그들을 휘감았다.

쾅-

그와 동시에 커다란 나무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유일한 출구를 봉쇄했다.

“뭐…… 뭐야!”

“이런, 시부랄! 계속 지랄이네.”

당황한 용병들은 낮게 소곤거리며 몇 차례 문을 밀어봤지만, 문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총질 몇 번이면 문 부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지만, 정적과 어둠 속에서의 커다란 총성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다.

“문이 닫혔다고 전달해.”

민성이 끼어 있던 용병대의 장이 앞 용병에게 길이 막혔음을 알렸다. 그러자 잠시 후,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니 앞사람을 잘 따라오시랍니다.”

선두에서 전달된 김도진의 명령은 금세 후방으로 전파됐다.

“쯧, 그렇게 말씀하신들…….”

“손전등도 안 켜지는데 환장하겠네.”

무전기, 야간투시경, 손전등.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없었다.

“흡…….”

민성은 옆에서 들려오는 숨 참는 소리에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모습은 뚜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아루의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어떻게든 트라우마에 저항하려는 노력임이 분명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하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빨리 나가야겠어. 언제까지고…….’

타닥-

그때, 낯선 발소리가 민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마를 찌푸린 민성은 대검을 움켜잡곤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타다닥-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소리였다.

‘왼쪽인가?’

민성은 고개를 좌측으로 틀어 어둠을 노려봤다. 어둠 속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경계해서 나쁠 건 없었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시발…… 들었어.”

“이거 조명탄 쏴봐야 하는 것 아냐?”

용병들의 소곤거림과 총이 덜거럭거리는 소리를 봐선, 아무래도 그만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타다다다다다다닥-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작은 발소리는 이내 사방에서 퍼지듯 들려왔다.

“조명탄 쏴!”

선두에서 김도진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려왔다.

피유우웅-

위로 치솟던 붉은 조명탄이 천장에 처박혀들자, 순식간에 짙은 어둠이 가시고 조명탄 빛을 받아 붉어진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장만 한 거대한 내부. 일정 간격마다 세워져 궁궐을 지탱하는 길쭉한 기둥들이 보였다. 그리고,

“키아아아아!”

양옆 기둥들 뒤편에서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의 좀비 떼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삼베옷을 입은 좀비와 함께 칼자루를 쥔 망자들이 상당수 섞여 있었다.

“이런, 젠장맞을! 어떻게 돼먹은 곳이야!”

“쏴! 쏘라고!”

“크아아아아아!”

망자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자, 용병들 역시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총열에서 불길을 뿜으며 총알을 쏟아냈다.

퍽-

커다란 총성과 함께 살 터지는 소리가 내부를 울렸다.

“이런 니기미…….”

“머리! 머리를 노려! 약점이 머리니까 머리를 노리라고, 병신 새끼들아!”

몸을 관통당한 망자들은 잠시간 바닥에 누워 있을 뿐, 이내 다시 구멍 난 몸을 일으키곤 용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이 없는 놈들이라 그런지 주저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용병들은 악다구니를 지르며 접근하는 망자들을 막아내고자 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정밀사격은 불가능했다. 햄버거 속의 패티마냥 놈들에게 포위된 상태였다. 전투를 준비할 시간도, 거리의 이점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용병들은 그저 눈앞의 상황을 막아내기에 바빴다.

달캉-

금세 서른 발을 쏟아낸 용병들은 잽싸게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러나 빠른 손놀림과 달리 마음은 점차 무거워져만 갔다. 탄창이 다 떨어질 경우 육탄전을 벌여야 했다. 숫자에서부터 차이가 나는데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뒈져라! 이 시발 새끼들아!”

용병들은 악다구니를 지르며 연신 방아쇠를 눌러댔다. 하지만 대개의 탄환은 놈들의 머리가 아닌 몸통에 꽂혀 들어갔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한 상황.

탕-탕-

내용물이 빠져나간 탄피들이 바닥을 굴렀다.

“키아아아아!”

몇 놈이 탄환에 맞아 자빠지면, 그 위로 수십 마리의 망자들이 교두보 넘듯 동료를 밟고 그들에게 달려왔다. 심지어 짓밟힌 놈들마저 다시 일어나 그들을 노렸다. 조명탄 빛에 반사되어 불그스름해진 이빨이 더욱 기괴하게 느껴졌다.

달캉-

두 번째 탄창이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졌다. 남은 탄창은 하나뿐. 심지어 이미 마지막 탄창까지 소모한 용병들도 다수 존재했다.

“시바아아알!”

“뒈져, 이 개새끼들아!”

용병들은 서둘러 탄창을 소총에 결합하곤 재차 적들을 향해 탄환을 갈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약간의 시간 벌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러나! 물러나! 퇴로 확보해!”

김도진의 다급한 명령이 떨어지자, 용병들은 조금씩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아아아!”

포화가 잦아들자, 기회라는 듯 망자들은 용병들을 향해 붉은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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