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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18화 (118/303)

# 118

118화 - 분기점 (4)

“새끼들아! 마무리 지어!”

총성보다 커다란 김도진의 독려와 동시에 시체들의 머리를 향해 총알이 여럿 꽂혀 들어갔다.

“키아아!”

미친 듯 달려들던 마지막 좀비의 이마를 파고든 탄환은 그대로 뒤통수를 뚫고 허공으로 사라졌다.

퍽-

살점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순간적인 고요함이 공동을 휘감았다.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용병들은 여전히 총을 전방에 겨눈 채, 보이지 않는 표적을 찾았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떠한 이변도 벌어지지 않았다.

“상황종료. 수고했다, 새끼들아.”

상황을 조용히 주시하던 김도진은 그제야 피식 웃으며 잠시간의 침묵을 깨뜨렸다.

“와아아아아!”

비로소 용병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승자의 기쁨을 만끽했다. 하지만 아직 뜨겁다 못해 델 것 같은 총열은 그들의 식지 않은 열기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일부는 숨을 길게 몰아 내쉬며 쌓여있던 긴장을 털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조명탄 준비해!”

천장에 떠 있던 조명탄의 빛이 희미해지자 김도진은 재차 그의 대원에게 명령했다.

“예!”

대원이 다시 조명탄을 점화시키려던 찰나,

“저…… 저기 봐!”

용병들 중 하나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강녕전 위쪽을 가리켰다.

“저건…….”

“제법이구나.”

공동에 짙은 어둠을 흩뿌렸던 무사의 망령이 강녕전 위로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용병들은 본능적으로 식지 않은 총열의 끝을 망령 쪽으로 겨누었다. 하지만 아까의 예습효과인지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다.

“하지만 너희 역시 결국 저들과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되겠지.”

쇠 긁는 목소리가 용병들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망령은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훑어보곤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계속 나아가봐라. 그 선택의 끝이 영광의 길일지 파멸의 길일지, 내가 지켜보겠다. 큭큭큭.”

망령은 괴이한 웃음소리와 함께 검을 들어 공동의 천장에 냅다 집어던졌다.

“어…… 어둠이 가신다!”

천장에 꽂힌 검이 물을 빨아들이듯 퍼져있던 어둠을 삼켜갔다. 그리곤 망령은 낮은 웃음을 흘리며 천장에 박혀 있던 대검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공동에 낮은 불빛이 드리우자, 침묵하던 용병들은 하나둘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일거리를 잘못 받은 거 같은데.”

“시발. 가벼운 일은 개뿔. 어쩐지 돈 많이 준다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부는 받은 정보와 상이하게 다른 현장 일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소란 떨지 마! 조금 특이한 전쟁터일 뿐이다. 우리는 하던 대로 적의 대가리를 뚫고 살아남으면 된다!”

김도진은 크게 고함질러 술렁이던 분위기를 단숨에 휘어잡았다.

“전원 조정간부터 대기로 바꿔놔! 멀쩡한 새끼 뒤통수 터트리지 말고.”

철컥-

여기저기서 연발로 놔두었던 조정간을 대기로 바꿔놓는 소리가 들렸다. 김도진은 그런 그들을 흘낏 바라보더니 크게 외쳤다.

“놈들의 생존여부는 나와 흑골이 확인한다! 각 장들은 대원들 탄환 잔량 확인하고 있어!”

그리곤 휘하의 용병대를 이끌고 시신더미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전쟁터에서 죽은 척하고 있다가 동료들의 등에 비수를 꽂은 놈들이 몇이던가.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짬밥을 허투루 먹진 않았나 보네.’

민성은 확인 사살을 벌이는 김도진 무리를 주시했다. 그들은 K-2소총에 견착한 대검으로 쓰러져 있는 시체들의 머리를 찔러댔다. 몇백 구의 시체들이 대전에 누워 있었지만,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흑골은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고도 2인 1조로 인원을 나누어 경계와 수색을 병행했다.

“이상 없습니다!”

“대장! 이쪽도 전부 쑤셨습니다! 이 새끼들 아무래도 전생에 사람들이었나 본데요?”

흑골들 중 하나가 반쯤 터져나간 시체의 대가리를 자랑스레 흔들어 보였다.

“전생이 아니라 생전이겠지. 이런 돌대가리 새끼를 봤나.”

김도진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자, 흑골들은 낄낄대면서도 계속 그들의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푹-

“상황종료.”

수백여 구에 달하는 시체의 머리에 대검을 틀어박고 나서야, 김도진은 확인 사살 절차가 끝났음을 알렸다.

“어이고, 허리야. 벌써 맥주가 당기네.”

“대장! 복귀하면 바로 한잔하십니까?”

“잠깐! 새끼들이 빠져가지고. 끼고 있는 장갑들 무조건 버려!”

대원 중 하나가 고기조각이 묻은 장갑으로 얼굴을 만지려 하자, 김도진은 버럭 소리 질렀다.

“예?”

“좀비 영화 안 봤어? 엉? 혹시라도 감염되면 훅 가는 거야, 새끼들아!”

과거 타액으로 인간들을 감염시키는 좀비영화를 뒤늦게나마 떠올린 것이 고함을 지른 이유였다. 우스갯소리라 치부하자니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만에 하나의 상황도 짚어보고 가야했다. 김도진은 시체 밭을 나와 전투화에 묻은 시체 찌꺼기를 털어낸 뒤, 끼고 있던 가죽장갑을 조심스레 벗어 바닥에 던졌다.

“어차피 바이러스는 호흡기관으로 들어가면 끝 아니야? 감염됐으면 진작 됐을 텐데…….”

“몰라. 나라고 알겠냐? 대장이 그렇다고 하면 따라야지, 뭐. 괜히 거슬러서 대장 심기 건들지 말자고.”

작게 읊조리던 흑골 대원들은 서로를 흘낏 보곤 명령대로 장갑을 벗어 바닥에 버렸다.

“좋아! 아깝다고 혹시나 뒷주머니에 쑤셔 넣는 놈이 있으면, 알지?”

대장의 얼굴에 걸린 서슬 퍼런 미소를 본 대원들은 잽싸게 장갑들을 벗어던졌다. 김도진은 그 광경을 만족스럽게 쳐다보곤 고개를 돌려 분주히 장비를 살피는 용병들을 향해 외쳤다.

“각 장들! 완료된 곳부터 보고해!”

“빅 팜 용병대 보고. 총원 32명. 보유 탄환 각…….”

각 장들의 보고를 듣던 김도진의 이맛살이 점점 구겨져 들어갔다.

“닝기리……. 이 미친놈들아! 그러니까 적당히 싸질렀어야지!”

보고를 토대로 대략적인 평균을 냈을 때, 한 명당 보유하고 있는 탄창은 3개. 탄창 하나 당 30발의 탄환이 들어가니 90발의 탄환밖에 남지 않은 셈이었다.

‘다 떨어지면 꽤 볼만하겠네.’

민성은 용병들의 현 상황을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망령과 좀비 놈들을 상대로 탄환을 꽤나 소모한 모양이었다. 탄환이 떨어진 시점에서 아까와 같은 시체의 물결이라도 맞이했다간, 전멸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잠시 빠졌다가 물자를 보급 받고 다시 내려오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각 용병대의 장들이 의견을 여럿 내놓았다. 대다수의 의견은 물자를 내려달라고 요청하거나, 잠시 후퇴해서 물자를 추가 보급 받고 다시 탐사를 진행하자는 게 지배적이었다.

“이미 무전을 쳐봤다.”

김도진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역시. 행동이 빠르…….”

“하지만 야간투시경도 그러더니, 이곳에서 전자기기는 사용이 불가한 모양이다. 먹통이다.”

“그럼…….”

장들은 굳게 닫힌 김도진의 입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결정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팀만 올려 보내 추가 보급을 받아온다.”

김도진은 각 장들의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음……. 구르카 팀이랑 레드 라이플 팀. 두 팀이 갔으면 하는데.”

그러자 언급된 두 팀의 장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금방 갔다 오겠습니다. 일어나! 추가 보급 받으러 간다!”

“구르카! 전원 기상!”

“젠장. 좀 쉬나 했더니.”

총구멍에 이물질이 꼈나 확인하던 용병들 중 일부는 구시렁대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 이동했다. 삼분지 일에 달하는 80명가량의 용병이 빠져나가자 남아 있던 용병들은 총기를 스윕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등,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며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민성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뜰에 두고 왔던 아루를 데리고 강녕전 앞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가셔서 그런지 다행히 그녀는 맨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아루는 연신 고개를 푹 숙이며 민성과 이신에게 사과했다. 용병들의 행동도 문제였으나 엄연히 그녀에게도 책임은 있었다. 애초에 갑작스럽게 발작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괜찮아요.”

민성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물론 총에 맞아 전멸할 뻔한 상황을 좌시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를 탓할 생각도 없었다. 허물은 감싸주고 기쁨은 함께하는 것이 동료라 생각했다.

‘허물 값은 용병들에게 물리면 되지, 뭐.’

“대신, 나중에 이유를 듣고 싶네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여러 번 전투를 거친 동료잖아요.”

남 일 같지 않은 트라우마. 민성은 그녀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궁금했다. 잠시간 고심하던 아루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눈에 고인 눈물 탓인지, 그녀는 살짝 빨개진 얼굴을 홱 돌렸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은데. 이것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민성은 슬쩍 고갤 돌려 후방을 바라봤다. 보급 받으러 간 용병대들은 시간이 흘러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김도진은 한 팀을 추가로 보냈지만, 그들마저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탈출이 불가능한 곳인가?’

민성은 멀리, 무너져 내린 나무문을 가만히 노려봤다. 생각해보면 저곳을 통해 시체들이 들어왔었다. 만약 밖에 놈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면, 용병들이 귀환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하지만 민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전투가 있었다면 총소리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혹은 이곳을 벗어나려 하면 불이익이 주어진다든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가설을 펼쳐봤으나 딱히 이렇다 할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일어나! 출발한다!”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잠시간 각 장들과 의견을 나누던 김도진은 짙은 한숨을 내쉬더니 명령을 내렸다.

“진짜 뭔 일이라도 벌어진 것 아냐?”

“미군 새끼들이 뒤통수 친 걸 수도 있어. 시발……. 진짜 좃 된 것 같은데.”

용병들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불안감은 은연중에 용병들의 마음속에 퍼져나갔다. 삽시간에 전력이 반 토막 나버렸다. 부족한 물자도 불안감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

“일단 계속 전진한다! 적의 습격이 있을 수 있으니, 이후 의사소통은 전달 방식을 취한다.”

김도진의 낮은 말투에서 더 이상 여유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용병들 역시 입을 꾹 다물곤 앞장선 흑골들을 따라 이동했다.

저벅-

강녕전을 지나 잘 닦인 길을 얼마간 걷자 정갈하게 꾸며진 작은 정원이 나타났다. 정원은 최근 누군가가 손질했다고 여길 정도로 깔끔했다. 그리고 정원 앞에는 아까의 강녕전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궁궐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긴 도대체…….’

민성은 궁궐 앞에 놓인 정교하게 조각된 해치 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때 하나 없이 깨끗했다. 불가사의한 곳.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호롱불들이 닿는 곳 외에는 여전히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다. 그나마 그 어둠이 다시금 이곳이 땅 속에 박혀 있는 곳이라는 걸 상기시켜 줬다.

“여기가 끝인 것 같아요.”

민성은 아루의 조심스러운 음성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뒤로 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어둠에 휘감겨 보이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았다.

“조명탄 쏴봐.”

김도진은 궁궐의 후방을 살피고자 했다. 의심요소는 조금이라도 제거해야 했다.

피유우웅-

붉은 조명탄이 높다란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하지만 아까와 달리 조명탄으로도 어둠을 지워낼 수 없었다.

“여긴 대체 어떻게 돼먹은 곳이야!”

“남의 묘지에 함부로 들어와서 그래. 우린 저주에 걸린 게 틀림없어.”

아무리 수차례의 전투를 거친 용병들이라 해도 보이지 않는 적은 두려운 법이었다. 불안감은 점점 증폭되어만 갔다.

“고용주 머리통에 한 발 갈겨주고 싶군.”

용병들의 중얼거림을 들은 김도진은 작게 중얼거리며 그의 대원 하나를 불렀다.

“이번에도 우리가 먼저 들어갈 거니까 각 장들한테 대기 및 경계 확실히 서라 그래.”

“예.”

모든 장들에게 전달사항이 하달된 것을 확인한 뒤, 김도진은 흑골들과 함께 눈앞의 궁궐로 진입하려 했다. 그때,

끼이이이익-

갑자기 거대한 나무문이 비틀린 소리를 내며 양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전원 조준!”

철컥-

김도진의 음성이 끝나기 무섭게, 용병들은 어깨에 개머리판을 견착하고 덮개를 꽉 움켜잡았다. 그리곤 마른침을 삼키며 다가올 무언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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