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화 - 분기점 (3)
탕-탕-
격한 총성과 함께 총열에서 불길들이 뿜어져 나왔다. 총열을 빠져나간 탄환은 빠르게 회전하며 목표물을 향해 박혀들었다.
푸확-
“키에르륵!”
“카라악!”
하지만 놈들은 몸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도 움직임을 이어갔다.
“미친…….”
“이런 시발……. 시발!”
믿었던 총알이 효과가 없다. 아무리 맞춰도 숫자를 줄이긴커녕, 놈들과의 거리만 점점 좁혀져 들었다. 놈들은 중간지점을 넘어 점차 강녕전을 향해 접근해왔다. 그럴수록 용병들의 마음에 조금씩 조급한 감정이 들어찼다.
“이런 시부럴 새끼들.”
탄창을 갈아 끼운 김도진은 욕설을 뱉어내며 최선두에서 달려오는 놈의 대가리를 조준했다. 인간과 같은 구조라면 놈들의 명령체계는 인간과 똑같을 것이었다.
“아니면 좃 되는 건데…….”
약점이 없는 놈들이라면, 그들은 오늘 여기서 뼈를 묻어야만 했다. 김도진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방아쇠를 당겼다.
퍽-
명중이었다. 대가리를 관통당한 놈은 괴성조차 지르지 못하고 초록빛 체액을 쏟아내며 뒤로 고꾸라졌다. 놈은 몸을 잠시 움찔거리더니 이내 축 처졌다.
“좋았어!”
김도진은 그의 성과를 확인하곤 급히 고개를 틀었다.
“키아아아아!”
“뒤져! 제발 뒤져! 으아아아아아!”
“시발!”
놈들은 다리, 몸통에 총알을 허용하고도 몸을 움직인다. 다리가 박살나면 바닥을 기어서라도 접근해왔다. 용병들은 죽지 않는 적에 학을 떼며 미친 듯이 총질했다.
“당황하지 말고 전열을 유지해! 대가리를 노려! 대가리가 약점이다! 100m 이내로 접근했을 때, 수류탄도 던져버려!”
김도진의 빠른 판단은 전장에 즉각적으로 반영됐다. 새로운 정보를 하달 받은 용병들은 가늠쇠와 가늠자를 놈들의 대가리로 맞추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퍽-
여기저기서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놈들의 대가리에서 녹색 액체가 터져 나왔다.
“좋아!”
“이 시발 새끼들, 이제 전부 뒤졌다!”
용병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도 손가락을 분주히 놀렸다. 약점을 알게 된 이상 놈들은 그저 좋은 표적에 불과했다. 일자로 달려오는 놈들의 머리를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탕-탕-
총성이 하늘로 퍼질 때마다 그들에게 질주해오던 괴이한 것들의 신형은 바닥에 허물어져 내렸다.
“키아아아아!”
그럼에도 놈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검은 이를 딱딱거리며 용병들에게 달려들었다. 강녕전과 함홍문 사이의 궁궐 대로에는 점차 그것들의 사체로 가득 채워져 갔다.
“꺄아아아아악!”
“후…….”
강녕전 뒤쪽에 위치한 작은 뜰. 민성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아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쥐어뜯은 머리는 이미 산발이 돼 있었지만, 이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이 시발 새끼들이…….”
긴장이 가라앉자 눌려 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사태가 촉박했더라도 그들이 몸을 피할 시간은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용병 놈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총질을 가했다. 만약 그에게 ‘바르타고의 피부’가 없었다면 그와 일행은 분명 죽었을 것이었다.
‘이 새끼들을 어쩐다.’
아직 ‘바르타고의 피부’의 정확한 효능은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탄환을 막아준다는 정보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총이 통하지 않는 이상 용병 놈들을 몰살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민성은 조용히 등에 달아뒀던 대검을 빼들었다.
“크로!”
순간 민성의 몸에서 거친 살기가 뿜어져 나오자, 그의 옆에 붙어 있던 크로스는 경기를 일으키며 자리를 피했다.
“아직 필요. 상황, 모른다.”
민성의 심리를 눈치챈 이신은 그의 팔목을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
민성은 물끄러미 이신을 마주 바라봤다. 죽을 뻔한 상황을 겪고도 냉정함을 유지하는 이신의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웃는 모습은 처음인 것 같은데.’
민성은 그의 입에 걸려 있는 아주 미묘한 미소를 보자, 왠지 모르게 분노가 가라앉음을 느꼈다.
“걱정 마세요, 안 싸워요. 당장 필요한 놈들이랑 굳이 마찰을 벌일 필요는 없죠.”
“그럼, 다행.”
민성이 금세 냉정함을 되찾자, 이신은 그제야 잡고 있던 민성의 팔목을 놓았다.
“크록…….”
민성의 살기가 가라앉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크로스가 재빨리 아루의 앞으로 달려가 편히 기댈 수 있도록 몸을 내어줬다.
“그래도 충성심은 뛰어나구나.”
민성은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다짜고짜 가지를 휘두르고 자폭을 시도했던 그의 첫 펫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였다.
탕- 탕-
끝없이 울리는 총소리에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앞으로의 상황을 예상했다. 이신의 말대로 당장 용병들과 마찰을 빚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연신 들려오는 총소리가 그들의 필요성을 알리는 듯했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그대로 넘길 생각도 없었다.
“마무리. 죽여도 된다.”
이신은 일단 용병들과 함께 움직이다, 일이 마무리되면 죽이자는 의사를 비쳤다. 민성은 이신의 내려앉은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신씨는 멀찍이 떨어지셔야 해요. 혹시라도 총에 맞으실 수도 있으니까요.”
“저격.”
이신은 알았다는 듯 그의 활을 흔들어 보였다. 민성은 이신과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한 뒤,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다.
‘문제는……. 그래, 아루 씨는 녀석한테 맡기고, 후…… 애초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우군 및 전력증강을 위해 탐사참여를 제안했건만, 이리 갑작스럽게 그녀가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민성은 어느새 크로스의 등에 얼굴을 파묻어버린 아루를 바라봤다.
“후…….”
저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트라우마를 제공하는 원인을 소멸시키거나 트라우마 자체를 없애거나, 둘 중 한 가지 방법은 필요했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원인도 모르거니와 해결한다고 당장 그녀가 원상태로 돌아간다고 보장할 수도 없었다.
민성은 저도 모르게 왼쪽 눈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당장 그만 하더라도 눈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정신을 다잡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물론 지금이야 지배자의 은총 덕에 눈을 회복하고, 더 이상 악몽도 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한동안은 저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우리라는 판단이 섰다. 전력 외로 취급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녀가 스스로 악몽에서 깨어나지 않는 이상은. 잠시 아루를 내려다보던 민성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후……. 시발.”
민성은 낮게 중얼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따라와 준, 이제는 동료라 봐도 좋을 그녀를 바닥에 두고 가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탕- 탕-
끊임없이 들려오는 총성이 그의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혹여나 겁을 집어먹고 전열에서 이탈하는 용병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용병이 도망하는 와중에 쓰러져 있는 아루를 발견한다면 흑심을 품고 그녀를 건드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로스, 믿어라. 이게 맞다. 괜찮을 거다. 금방 오면 된다.”
민성이 쉽사리 결정 내리지 못하자, 이신은 날개로 아루를 감싸 안고 꼼짝 않는 크로스를 가리켰다.
“…….”
민성은 두 마디 이상 말하지 않던 이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곧 그의 의도를 눈치채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안한 그의 마음을 다독이고자 하는 이신 나름의 배려가 분명했다. 갑갑했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네 주인님 잘 챙겨드리고 있어. 금방 돌아올 테니까.”
“크록!”
민성은 낮게 우는 괴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이신과 함께 총성이 울리는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신의 뜻대로 놈들과 마찰 빚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사태가 돌아가는 꼴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전장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야지. 당장은 총이 효과가 있더라도 무한한 것은 아니니까.’
탄환이 다 떨어진 총은 쇳덩이에 불과했다. 개인적으론 부디 용병들의 탄환이 떨어지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길 바랐다. 물론 양패구상도 환영이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민성은 한창 격전이 벌어지는 전방을 노려보며 작게 으르렁댔다.
“키아아아아아!”
“쏴! 쉬지 말고 계속 쏴!”
용병들은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시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새끼.’
민성은 특히 사격명령을 내렸던 김도진을 노려봤다. 나이가 어리다며 안쓰러워 할 때는 언제고, 사태가 급박해지니 그들이 피신하는 와중에도 사격을 명한 놈이었다. 가슴팍으로 날아오던 총알을 떠올리자 절로 치가 떨렸다. 하지만 민성은 애써 들끓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함과 더불어 용병들의 전멸. 아무런 정보가 없는 장소다. 와중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너져 내려버리면, 그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게 된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저쪽으로 가요.”
민성은 이신과 함께 격전지를 잘 관찰할 수 있는 강녕전 좌측에 위치한 작은 건물로 다가갔다. 강녕전 앞의 구조물들을 엄폐물 삼은 용병부대가 대다수 포진하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좌측에는 용병들의 숫자가 적었다.
“크아아아!”
거기다 시체 놈들은 생각이 없는 건지, 본능에 충실한 건지 괴성을 지르며 강녕전 중심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얼마나 잘 싸우는지 구경이나 해볼까.’
전투에 열중하는 용병들의 뒤를 지나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민성은 이신과 함께 좌측에 자리 잡은 뒤, 용병들의 전투를 느긋이 관전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들 쪽으로 달려오는 시체무리가 있는지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피유우웅-
수명이 다한 조명탄을 대체할 새로운 조명탄이 다시 허공으로 치솟았다. 붉은빛을 수놓는 공동 천장은 밖에서 보았던 노을같이 밝지만 쓸쓸해 보였다.
탕-탕-
여전히 매캐한 탄약 냄새와 격한 총성이 공동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총성은 조금씩이나마 점차 잦아들었다.
“키아아아아!”
“뒤져라, 이 시발 것들아!”
‘이런 멍청한 놈들아! 무식하게 달려들지만 말고 무리를 나눠서 사방에서 몰아쳐야지. 인해전술, 새끼들아! 숫자가 많으면 뭐 해, 활용을 못하는데.’
민성은 스포츠 관람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전투를 관람했다. 팝콘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가 응원하는 팀이 밀리자 뒷목을 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퍽-
조명탄에 위치를 노출당한 녀석들은 현대문물 앞에서 힘조차 써보지 못했다. 용병들은 빠르게 표적을 조준하고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탄환에 가격당한 놈들의 머리에선 역한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키아아……!”
놈들은 뒤틀린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접근해보려 했으나, 강녕전 주변의 건물과 나무 따위에 엄폐한 용병들의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쓰러지는 숫자가 문에서 나오는 놈들의 숫자보다 빨랐다. 현대인이 신석기 시대의 원주민을 상대하는 꼴이었다.
‘확실히 총만 한 무기가 없네.’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새삼 총의 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끝났다.”
이신의 단조로운 한마디에 민성은 동의하듯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문 밖에서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의 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그것들은 더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남은 놈들이라곤 대전에 남아 있는 수십 마리의 좀비 놈들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용병들의 포화 속에 금세 사라질 숫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