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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16화 (116/303)

# 116

116화 - 분기점 (2)

“젠장! 효과가 없습니다! 투시경을 껴도 아무것도 안 보여요!”

“이런, 니미럴…….”

김도진 역시 작동하지 않는 투시경을 다시 집어넣으며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믿었던 투시경이 작동하지 않는다. 오로지 조명탄과 육안으로 이 어둠을 헤쳐 나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크에에엑!”

“키아아아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흉흉한 소리가 공동을 얕게 울렸다. 목울대에서 가래 굴리는 듯한 기이한 울음소리. 일부 용병들은 공동에 그들 말고도 다른 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조용히 해! 시발! 입 좀 닥쳐보라고! 저 소리 안 들려? 저 소리 안 들리냐고!”

“무슨 소리?”

소리를 들은 용병들은 낯선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자 했으나, 동요한 용병들의 음성에 섞여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키아아아아아아!”

“그어어어어!”

작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것이 점점 그들의 귓속으로 파고들어와, 이윽고 궁궐 내부의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래졌다.

“…….”

모두가 낯선 소리를 인지했는지 침묵만이 용병대 사이를 맴돌았다.

철컥-

용병들은 하나둘 덮개와 방아쇠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믿을 것은 오로지 총 한 자루가 전부였다.

‘던전이 활성화됐다더니. 그 여파인가…….’

용병이 말한 대로 눈을 깜박이며 어둠에 시야를 적응시키던 민성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감지하곤 그의 일행을 찾았다. 모르는 사람들이면 모를까, 그의 권유로 이곳까지 온 이들이었다.

‘젠장. 뭐가 보여야지.’

민성은 눈가를 찌푸린 채 사방을 주시했다. 조금씩 어둠에 적응되긴 했지만, 아직 사물들을 뚜렷하게 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크기만 달랐지 전부 검은 형상에 가까웠기에 누가 누군지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갔다. 중무장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다. 언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두두두두두-

“키에에에에에!”

땅 울리는 소리와 더불어 소리는 점차 그 형태를 뚜렷하게 갖추어 갔다. 발소리는 점점 궁궐을 향해 근접해왔다.

“젠장.”

민성은 입술을 세게 물어뜯으며 사방을 훑었다.

“이런, 시발. 조명탄 터트릴 준비해!”

심각성을 느낀 김도진은 뒤에 있던 대원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흑골들 중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란 플라스틱 막대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김도진은 시선을 전방으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 조명탄 터트릴 거니까, 터지는 순간 각자 위치 잡아! 은, 엄폐 확실히 하고! 알아 처먹었어? 괜히 앞에 있다가 총 맞고 뒈지지 말고!”

김도진은 욕설에 가까운 명령과 함께 거칠게 소리쳤다.

“지금! 조명탄 쏴!”

피유우우웅-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흑골 대원의 손에서 붉고 가느다란 빛이 솟아 올라갔다. 한순간 어둠은 가라앉고 붉은빛이 허공을 수놓았다.

“찾았다!”

그와 동시에 멍청해 보이는 괴조를 발견한 민성은 서둘러 그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일행과 합류한 뒤, 곧장 후방으로 이동하려 했던 민성의 계획은 시작부터 차질을 빚었다.

“일어나.”

이신이 크로스의 등에 고개를 파묻은 아루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몇 번이고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댔지만 아루는 요지부동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민성은 급히 이신을 바라봤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어둠, 일어나지 않는다.”

“어두워지고 계속 이 상태였다고요?”

이신은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빌어먹을.’

“일어나요!”

민성은 습관적으로 그의 눈가를 긁적이며 아루를 거칠게 흔들었다.

“싫어어어어!”

하지만 그녀는 날선 비명을 지르며 민성의 손을 내쳤다.

“아루가 잘못했어요. 제발…… 그만……. 그만…….”

“크록…….”

아루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여과 없이 일행들에게 전달됐다. 민성은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을 곧바로 이해했다.

‘아무래도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은데. 하지만, 어째서?’

과거, 그가 눈을 잃고 한동안 병원에서 겪어야만 했었던 증상과 비슷했다. 하지만 길게 생각할 시간도, 그녀를 배려할 여유도 없었다. 민성은 슬쩍 눈을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커다란 나무문을 바라봤다.

含弘門(함홍문).

쾅- 쾅-

“키아아아아아!”

그들이 처음 궁궐로 진입했던 문 밖에선 괴성과 함께 문이 박살나는 소리가 궁내를 울렸다.

“후……. 시발.”

조명탄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동안, 용병들은 바위나 조형물 뒤에 자리 잡았다. 그리곤 총구를 문 쪽으로 겨누고 명령을 기다렸다.

“사격 준비! 어떤 개새끼들인지 몰라도 대가리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버려! 하나당 100점씩 쳐준다!”

농담조에 가까운 김도진의 명령에 용병들은 히죽이며 커다란 나무문을 노려봤다.

“응?”

자리 잡은 용병들을 살피며 그들을 책려하던 김도진은 갑자기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얘들아, 뭐 해! 얼른 뒤로 물러나! 레드 비트 이 새끼들아! 식구 안 챙기냐!”

“저희 식구 아닙니다!”

강녕전 주변에 자리한 용병들과 미지의 존재들이 부수고 있는 함홍문 사이. 그 중심에는 미처 이동하지 못한 민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애들아!”

김도진은 안타까운 외침을 던지면서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곧 박살날 상황이었다. 안쓰럽지만 도와주기는 어려웠다.

‘나도 알아, 이놈아! 어차피 도와줄 생각도 없는 새끼가.’

민성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김도진을 노려보곤 고개를 돌렸다.

빠직-

“크아아아아!”

민성은 점차 균열 소리가 크게 울리는 나무문을 주시했다. 더 지체했다간 샌드위치 꼴이 날 것 같았다.

“야!”

“크록?”

민성은 크로스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잘 따라와라. 이신 씨도요.”

그리곤 크로스의 등에 매달려 있다시피 붙어 있는 아루를 강제로 떼어냈다.

“아루가 다 잘못했어요. 제발…… 제발, 그만해주세요. 꺄아아악!”

민성은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는 그녀의 다리와 어깨부분을 잡고 힘을 주었다. 그녀를 번쩍 안아든 민성은 그대로 후방을 향해 질주했다.

“꺄아아아아악! 싫어!”

“아, 좀!”

민성은 눈이 뒤집혀 그의 머리를 잡아 뜯는 아루의 손길을 피하며 전력질주 했다. 그 뒤를 크로스와 이신이 바짝 쫓았다.

쾅-

그와 동시에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나무문이 박살나는 소리가 궁궐 내부를 울렸다. 그리고 괴이한 생명체들이 뚫린 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민성은 전방으로 미친 듯이 질주하며 슬쩍 후방을 살폈다.

“키아아아아!”

“쿠억, 쿠억!”

조명탄의 붉은 빛에 비친 저것들을 생명체라 봐야 하나 싶었다. 누렇다 못해 새까만 이빨, 너덜거리는 살점. 그마저도 썩어 문드러져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놈들이 입고 있는 삼베옷은 세월과 시쳇물에 절어 검은 빛깔을 띠었다. 팔과 다리는 기형학적으로 뒤틀려 있건만, 일반 사람들의 속도에 버금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 놈들이 떼거리로 몰려왔다. 문 밖의 상황은 확인할 수 없었기에 저들의 숫자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저것들…… 설마?’

낯설지 않은 복장. 느닷없이 비춰졌던 영상 속의 인부들이 입었던 삼베옷과 꼭 닮았다.

“오……. 맙소사…….”

“저게 몇 명……. 아니 몇 마리야?”

용병들은 낮은 탄식을 뱉어내면서도, 본능적으로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놈들을 조준했다.

“젠장. 만지면 안 됐었는데…….”

김도진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강녕전 안에는 옥좌에 앉아 있는 임금과 그를 알현하는 신하들의 모형이 가득했었다. 조선판 병마용갱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함정 여부만 확인하고 빠졌어야 했건만, 그놈의 호기심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키아아아아!”

후회는 살아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권리다.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때마침 2분의 수명시간이 다한 조명탄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밝았던 궁궐에 다시 어둠이 찾아오려 했다.

“키에에에에!”

놈들은 빠른 속도로 접근해왔다. 미적거렸다간 사거리의 이점을 잃게 된다.

“2차 조명탄 올린다! 맞춰서 전원 발포해! 조명탄 쏴!”

김도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붉은 조명탄이 하늘로 재차 쏘아졌다.

“뒤져라! 이 시발 새끼들!”

사전에 조정간을 연발로 맞춰놓은 용병들은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아직 민성들이 경계선을 통과하지 못했건만 총열에선 무자비하게 총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야, 이 개새끼들아!’

설마 곧장 총질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민성은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그의 안일함을 탓했다.

“바람을 타…….”

민성은 화급하게 스킬을 시전하려 했으나, 빗발치는 총알들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냉혹하게 날아왔다. 피하기엔 늦었다. 이대로 총알에 몸이 꿰뚫릴 일만 남았다.

‘죽는 건가? 이렇게?’

정면에서 마치 ‘바람을 타다’를 사용한 것처럼 총알의 궤적이 보일 정도로 느리게 날아왔다. 그 순간,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재생됐다.

‘이게…… 주마등?’

어머니의 뱃속에서 느껴지는 심장고동 소리. 환한 미소와 함께 작디작은 그를 안아드는 미모의 여인. 나무 관 앞에서 고사리 같은 그의 손을 잡고 말없이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 회장직이라는 과중한 업무를 소화하시는 와중에도,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주신 아버지. 그가 성년이 됨과 동시에 새로운 여인의 손을 잡고 집을 방문한 아버지. 그리고…… 필름은 거기서 끊겼다. 정확힌 민성이 저도 모르게 끊어버렸다는 게 맞았다.

쇄애액-

그와 동시에 멈춰 있는 것 같던 총알은 순식간에 그의 가슴팍으로 날아왔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억!”

민성이 두 눈을 부릅떴다.

띠링-

[바르타고의 피부가 광물에 담긴 적의를 감지했습니다.]

[광물들이 바르타고의 피부를 가진 그대에게 굴복합니다.]

“…….”

“크어어어억!”

쇄도해오던 탄환들이 갑자기 궤적을 틀었다. 다가올 고통을 기다리던 민성은 갑자기 펼쳐진 이변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를 피해 궤도를 튼 탄환들은 그들의 뒤를 쫓아오는 그것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얼떨떨했다. 떨리는 손길이 그가 살아 있음을 알렸다. 하지만 생존의 기쁨을 만끽할 시간은 없었다.

“제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와요! 후……. 시바아아알!”

뭐가 어찌 됐건 그는 탄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뒤편에 있는 이신과 크로스는 달랐다. 민성은 고함치듯 외치며 경계선을 돌파했다.

“어? 안 죽었네? 꽤나 운이 좋은 놈들이었네.”

민성들이 무사히 격전지를 벗어나자, 용병들은 신기하다는 듯 민성들을 바라봤다. 특히 고함을 지르며 나아가는 민성에게 더 시선이 쏠렸다. 아무리 능력자고 나발이고 인간인 이상 탄환에 맞으면 결국 죽는다. 하지만 녀석들은 탄환의 포화를 뚫고 살아남았다. 어지간히도 운이 좋은 녀석들이었다.

“전장의 신의 사랑이라도 받나 보지. 닥치고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

“키아아아!”

용병들은 호기심을 거두고 민성들의 뒤를 따라 맹렬히 달려오는 것들을 재차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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