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115화 (115/303)

# 115

115화 - 분기점 (1)

38. 분기점

깡- 깡-

공동 곳곳에 걸린 횃불이 내부를 비췄다. 거친 삼베옷을 입은 수많은 인부들이 구슬땀 흘리며 공사에 매진하고 있다. 얼굴에는 피로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현장을 돌아다니며 공사를 독촉하는 감독관들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백년 천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을 궁궐을 건설해라! 뭣들 하는 거야! 손을 움직여! 손을 계속 움직이라고!”

감독관의 호령이 떨어지자, 인부들은 거칠어진 숨을 채 고를 시간도 없이 재차 작업에 몰두했다.

“나으리……. 제발 조금만 쉬는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러다 여럿 죽어나가겠습니다요.”

인부들 중 하나가 애절한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소용없었다.

“이게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어! 얼른 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오히려 그의 성질을 건드렸는지, 감독관은 눈을 부릅뜨고 채찍을 휘둘렀다.

“어이고!”

눈을 질끈 감은 인부는 곧 다가올 고통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눈을 뜨자, 하얀 도포를 입고 검은 갓을 쓴 젊은 사내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늠름한 풍채와 시원한 이목구비를 봐선 어디 사대부 집안의 자식쯤 돼 보였다. 뒤에는 호위무사로 보이는 남자 둘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쏘아봤다. 감독관 놈은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바닥에 바짝 부복하곤 몸을 덜덜 떨어댔다.

“세자저하!”

“응?”

감독관의 느닷없는 소리에 인부는 어리둥절하며 눈앞의 청년을 바라봤다. 살면서 볼 일이나 있을까 싶었던 존재가 목전에 있는 청년이라니. 꿈인가 싶었다.

“세자저하!”

하지만 인부는 본능적으로 급히 바닥에 머리를 처박곤 감독관이 했던 것처럼 부르짖었다.

“고개를 들라.”

묵직하고도 중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어딘가 부드럽고 온후한 느낌이 서려 있다.

“…….”

그럼에도 감독관과 인부는 바닥에 처박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자 청년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쪼그려 앉아 그들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리 싫더냐?”

“아…… 아니옵니다!”

그들이 고개를 들자 청년은 손수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감독관과 인부는 황송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너희들의 노고가 크구나.”

청년은 반쯤 올라간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화…… 황송하옵니다!”

“하지만!”

청년은 웃음기를 지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조선의 기틀은 곧 백성이다. 무엇보다 너희들의 안전이 중요하니, 일을 함에 있어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저하!”

인부와 감독관은 감격에 몸을 떨었다. 사람의 진가는 위기상황에서 알 수 있다고 했다. 무능한 지금의 왕과 달리 민초들과 전란을 함께 막아내고자 했던 세자, 이혼(李琿). 그런 그의 치하를 받다니. 가문의 영광이었다. 적자의 탄생 후로 세자의 자리에서 폐위된다는 소문이 돌던데, 전부 뜬소문인 모양이었다.

“쉿! 쉿! 그저 잠시 시찰하러 온 것뿐이니, 걱정 말고 일들을 보거라.”

청년은 그들의 어깨를 몸소 두드려주곤 호위무사들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어차피 전부 죽이실 생각 아니셨습니까?”

청년의 좌편에서 호위하던 무사는 조심스럽게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자 청년은 걸음을 멈추곤 싱긋 웃으며 무사를 빤히 쳐다봤다. 실수했다고 생각한 무사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 들어, 율. 틀린 말 한 것 아니잖아? 내 한마디로 저들의 사기를 돋우고 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싸게 먹힌 거지.”

“송구합니다.”

청년은 죄송스러워하는 무사의 어깨를 두들겨준 뒤, 계속 걸음을 옮겼다. 사실 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만의 궁궐이 완공되면 입막음을 위해 저들을 죽일 것이었다.

“아버지……. 의(㼁)가, 적자가 그리도 좋으셨습니까. 전 반드시 왕이 될 겁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 반드시 왕위에 오를 것이옵니다.”

그 시작은 그만의 궁궐인 필천궁(必天宮)의 완공이었다. 이혼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공동 좌측의 돌계단을 올랐다.

‘이건 도대체…….’

영상이 끝나자, 민성은 눈가를 긁적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이런 비사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묘지의 주인이 광해군인 만큼, 저하라 불리던 남자는 광해군이 분명했다. 대화내용을 봐선 임진왜란이 끝나고 영창대군이 세자자리를 위협하는 시기인 모양이었다. 민성은 학창시절 국사에 흥미를 보였던 스스로를 칭찬했다.

‘공사를 끝내고 인부들은 전부 죽여 버린 것 같고……. 것보다 애초에 왜 이런 공간을 만든 걸까? 그리고 넌 왜 나한테 이런 걸 보여준 거냐.’

민성은 영상을 제공한 그의 대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무슨 일?”

민성이 멍하니 있자 걱정됐는지, 이신은 그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민성은 작은 미소를 보이며 손사래 쳤다.

“함정은 없다! 흑골이 먼저 안으로 진입한다!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 및 사주경계 실시!”

오래된 유적지엔 도굴꾼을 방비하기 위한 함정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곳에 함정은 없는 모양이었다. 와중에 전방에서 김도진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기습여부는 생각조차 않는 것 같았다. 말본새를 보니 아무래도 강녕전(康寧殿)에 진입할 모양이었다.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도진. 보기보다 냉정한 사람일지도 몰랐다. 임무에 착수하고 나선 한없는 냉철함을 보인다. 수상해 보이는 것은 무조건 조사했고, 함정유무의 확인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소한 것 하나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거기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지대에서도 앞장서서 움직이는 행동력도 있는 것 같다.

‘하긴. 그러니까 이 많은 용병들을 통솔하고 있는 거겠지.’

김도진이 그의 용병대와 강녕전 안으로 진입하자, 용병들은 그가 명령했던 대로 주변에 총열을 겨누며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리고 경계를 서지 않는 용병들은 자리에 주저앉아 짧은 휴식시간을 만끽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아루는 얼른 끝내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민성들도 용병들처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 때 쉬어놓는 게 좋았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민성이 혀를 차며 작게 중얼거리자, 일행들은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분명 저희보다 미국 쪽이 먼저 이곳에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그 어떤 흔적도 보질 못했거든요.”

만복 노인이 고용한 용병들의 숫자도 상당한데, 하물며 미국이 들여보낸 병력은 몇이나 되겠는가? 거기다 불을 다루던 소녀 같은 능력자들도 대거 투입했을 수도 있었다. 영상에 너무 생각을 빼앗긴 탓에 정작 했어야 할 의심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설마 미군 새끼들…… 전멸이라도 당한 거 아냐?’

가능성이 전무한 가설은 아니었다. 만약 미군이 누군가에게 전멸 당했고, 전멸시킨 놈들이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면……. 한 번 시작된 의심은 그 끝을 모르고 한없이 뻗어나갔다. 민성은 순간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이런, 시발…….”

“왜 그래요?”

민성이 대검을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아루는 궁금하다는 듯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민성은 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심적 여유가 없는 게 그 이유였다.

‘그 새끼는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민성은 그저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를 갈아댔다. 김도진 같은 베테랑이 그가 떠올린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계속 진입을 강행했다는 건, 두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책임감이 강해 맡은 임무는 무조건 완수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가 모르는 정보를 쥐고 그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거나…….

띠링-

[누군가가 왕의 비보를 건드렸습니다. 던전 필천궁(必天宮)이 활성화됩니다.]

[제1 던전이 운용되고 있습니다. 제2 던전의 형태로 재구축됩니다.]

“무, 무슨 일이야!”

“적인가? 어디야!”

민성은 당황한 듯 총부리를 엄한 허공에 겨누는 용병들을 바라봤다. 이번 메시지는 아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은 모양이었다.

“잘못 들었나……?”

“저, 저기 좀 봐!”

한 용병이 화급한 목소리와 함께 강녕전을 가리켰다. 강녕전의 지붕 위에 뿌연 안개가 모이더니, 점차 사람의 형상을 이뤄가고 있었다.

꿀꺽-

처음 접하는 기이한 광경에 용병들은 말도 잊은 채, 기현상을 멍하니 바라봤다. 탐사대의 통제관 역할을 하던 김도진과 흑골들은 아직 강녕전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한 각 용병대의 장들은 대원들을 향해 득달같이 명령했다.

“이 병신 새끼들아! 얼 타지 말고 쏴!”

고함에 퍼뜩 정신 차린 용병들은 K-2의 총열을 지붕 위로 조준했다.

“쏴!”

탕- 탕-

수많은 총열 끝에서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우레 치는 것 같은 소리에 아루는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시발…….’

민성 역시 작은 이명이 들릴 정도로 빗발치는 총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다가올 결과가 중요했기에 지붕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만약 총이 먹히지 않는다면…….’

모르긴 해도 꽤나 험난한 길이 될 것 같았다.

“사…… 사격 중지.”

중지 명령이 떨어지자 용병들은 연발에 놓았던 조정간을 고정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용병들의 화력이 무색하게, 형상은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갑주를 찬 무사의 형태를 갖추었다. 총이 통하지 않는다.

“니기미……. 이거, 좃 된 거 같은데…….”

불길한 기운이 용병들의 내면을 엄습해왔다. 용병들은 식지 않은 총열의 열기도 잊은 채 눈앞의 광경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마침내 형상이 완전히 뚜렷해지자, 무사는 침입자들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누가 감히 왕의 안식처에 들어왔느냐!”

“큭.”

천지를 울리는 것 같은 무사의 호통에 모두들 귀를 막았다.

“이건 또……. 젠장, 쏴!”

와중에 강녕전에서 나온 김도진과 흑골들이 한차례 사격을 개시했으나,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불경한 놈들! 침입자에게는 오로지 죽음뿐이다!”

오히려 그의 화를 돋웠는지 무사는 반투명한 장검을 빼들고 그대로 강녕전의 지붕을 찍었다.

“뭐, 뭐야!”

“조심해!”

그러자 공동에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어둠이 찾아왔다.

띠링-

[제2 던전의 재구축이 완료되었습니다. 전투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메시지가 그들의 귓가를 울렸다. 그러나 용병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혼잡한 분위기를 가다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이런 시부랄! 안 보여! 조명탄 가지고 있는 놈, 없어?”

“당황하지 마! 조명탄은 아껴둬! 눈을 반복적으로 감았다가 떠! 어둠에 시야를 최대한 동화시켜야 돼! 야간투시경 있는 놈들은 지금 바로 착용해!”

김도진이 명령하자, 용병들은 허리춤에 달고 있던 주머니에서 투시경을 꺼내 착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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