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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13화 (113/303)

# 113

113화 - 또 다시 상점. (8)

“후우……. 누가 애새끼들을 데려왔어!”

김도진의 커다란 목청에 분주히 움직이던 용병들은 일순간 얼음이 되었다. 상황을 관전하던 미군들까지 몸을 흠칫할 정도의 크기였다.

‘설마 우리한테 한 소린가? 아니 것보다, 미친 노인네가 설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가?’

분명 이곳에 도착하면 만복 노인이 고용했다는 이들과 합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헌데 합류는커녕 내내 안쓰러움과 비웃음 섞인 눈빛만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애새끼 소리까지 듣게 되자 짜증이 치솟았다. 순간, 노인이 함정을 판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금 생각해봐도 그가 함정을 팠으면 팠지 노인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가설들이 떠올랐으나,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떡해요, 어떡해요!”

“크록…….”

아루는 긴장했는지 애먼 크로스의 목을 꽉 잡곤 민성을 독촉했다. 이신은 천천히 활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여차할 경우 바로 쏘려는 심산인 게 분명했다.

“…….”

민성은 그들 앞까지 다가온 김도진을 가만히 쏘아봤다. 미군을 제외하고 이곳에 모인 전원이 남자의 명령을 따랐다. 몰라도 남자가 이곳의 장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헌데 그의 내려앉은 표정을 보니 자칫 사단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대검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

김도진은 민성이 들고 있는 대검을 힐끗 바라보곤 그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 소속이니? 쯧쯧, 못된 아저씨들이 총도 지급하지 않았나 보구나. 많이 힘들었었겠구나.”

과거 그의 용병생활을 떠올린 김도진은 일그러지다 못해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싶었으나, 한 번 몸에 밴 버릇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

그 언밸런스한 모습에 민성은 그의 본심을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아저씨가 따끔하게 한 소리 해주마. 아무리 인원이 부족해도 젊은 사람들은 고용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건만…….”

암암리에 멋모르는 젊은이들을 돈으로 꼬셔 이용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었지만, 이렇게 직면하니 절로 화가 났다. 김도진은 눈을 크게 부라리곤 정렬해 있는 용병대들을 훑었다. 곱게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 새끼……. 무슨 속셈이지.’

갑자기 다가와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진중하고 상냥한 말투도 괴이한 표정에 묻혀 무색해졌다. 민성은 의심의 눈빛을 보내면서 입을 뗐다.

“괜찮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으신…….”

정중히 남자의 친절을 거절하려던 민성은, 남자의 후방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슬쩍 눈을 돌렸다.

“어머, 많이도 모였네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미친!’

익숙한 안면들이 정렬한 용병들을 훑으며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본 민성은 급히 몸을 돌려 일행의 손을 잡고 끌었다.

“얘들아! 겁내지 않아도 된 단다! 돌아와!”

등 뒤에서 김도진의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무슨 일…….”

“일단 와요.”

민성은 일행의 의문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가장 인접해 있던 용병 무리의 후미로 이동했다.

“얘들……! 레드 비트 이놈들……. 이젠 갈 때까지 가는구나!”

김도진은 어금니를 악물곤 민성들이 들어간 레드 비트들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준비는 끝난 건가요?”

하지만 옆에서 들려온 교태로운 목소리가 그의 걸음을 묶었다. 멈칫한 김도진은 세 남녀를 보며 기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출발 준비는 끝냈으니, 말씀하시면 됩니다.”

김도진은 와중에도 레드 비트 팀을 쏘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처리가 빠르시네요. 난 연륜 있는 남자가 멋있던데.”

“또 걸레 짓 한다.”

여인이 눈웃음치자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반동에 남자의 등에 매달린 대검이 살짝 흔들렸다.

“이 새끼가 또…….”

“둘 다 그만.”

백야의 한마디에 으르렁거리던 남녀는 침묵했다.

“가벼운 사항만 전달할 겁니다.”

소년은 김도진을 올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 소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한 김도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끝나시는 대로 바로 출발시키겠습니다. 주목!”

‘후……. 다행히 못 본 모양이네.’

민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김도진의 후미에 선 세 남녀를 노려봤다. 자각사에서 마찰이 있었던 혈교 놈들이었다. 이런 곳에서 다시 대면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김도진과 담소를 나누는 것을 보니, 아마도 저들이 김도진이 말했던 물주가 보낸 대표일 것이었다. 그때보다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긴 했지만 소란이 벌어지면 손해 입는 것은 그들이었다.

‘이 노인네 새끼가…….’

민성은 만복 노인의 면상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인육과 관련된 것도 모자라 혈교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모양이었다. 혈교에게 딱히 원한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들의 행사를 방해한 것도 그렇고,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은 이상 적으로 간주해야 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루가 작게 소곤거렸으나, 답하지 않았다.

‘어쩐다…….’

여러모로 수상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굳이 탐사에 참여해야 하나 싶었다. 어차피 노인은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것뿐 언젠간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거기다 혈교 놈들과의 동행이라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들어가는 꼴이었다. 미국도 그렇고, 노인과 혈교 놈들마저 탐사에 관심을 보인다.

‘분명 안에는 놈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건데…….’

판단이 든 이상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결론은 두 가지였다. 탐사를 포기하고 돌아간다. 뭔지는 모르지만 저들이 노리는 것을 그도 노린다.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이내 대검을 잡고 옅은 미소를 흘렸다.

‘빌어먹을 새끼들이 잘되는 꼴은 못 보지.’

“마음 단단히 잡고 가요.”

이 정도 인원을 동원할 정도의 일인 만큼 고된 여정이 예상됐다. 그렇다고 발 뺄 생각은 없었다.

“너흰 뭐냐?”

레드 비트들은 갑작스럽게 대열의 후미에 끼어든 민성들을 황당하게 쳐다봤다.

“주목해, 이것들아!”

하지만 김도진의 호령이 이어진 탓에 민성들을 쫓아낼 수 없었다. 마침내 모든 용병들의 시선이 몰리자 김도진은 몸을 한 발짝 뒤로 물렸다. 그리고 그 자리를 여인이 대신했다.

“안녕하세요, 용병분들. 이렇게 탐사를 위해 모여주신 여러분께, 김 회장님을 대신해 감사드려요. 어머! 저쪽에 계신 분 근육이 참 우람하시…….”

순간, 본분을 망각한 여인은 민망했는지 요사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기 지루하셨죠? 그래서 가벼운 사항만 전달한 뒤, 곧장 출발할 거예요.”

여인이 말한 사항은 대략 이러했다. 앞서 제공한 정보처럼 그리 어렵지 않은 임무다. 혹시 지급된 금액이 많아 의심하는 이가 있을 수 있지만, 들어가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그래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소총의 조정간은 고정해두어라. 묘지 내부에 들어가게 되면, 작게는 각 용병대장의 명을 따르고 크게는 김도진의 명령을 따르라. 요약하자면 물주의 대리인이라고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용병들에게 최대한의 자율권을 부여하겠다는 소리였다.

“휴…….”

그러자 용병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반가운 기색을 내비쳤다. 고용인들이 보낸 어쭙잖은 놈들의 명을 따르다 골로 간 숫자가 몇이던가. 헌데 이리 사전에 자율권을 양보해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흠…….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은데.’

민성은 습관적으로 왼쪽 눈가를 긁어내리다 고통에 손을 멈칫했다. 정석에 가까운, 특별할 것 없는 오더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은 왠지 모르게 개운치 않았다. 용병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저들의 말투가 원인일지도 몰랐다.

‘아무리 엄청난 능력자라 하더라도 총은 무시하지 못할 텐데. 아니면, 설마…….’

순간, 한 가지 가설이 민성의 뇌리에 꽂혔다. 만약 타워에서 있었던 전투처럼, 안에서도 현대문물의 이용에 제약을 받는다면? 너무 앞서갔다고 생각한 민성은 피식 웃으며 그의 가설을 곱게 접어 넣었다. 그리곤 전방에서 바쁘게 입을 놀리는 여인을 주시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님께서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면, 한 명당 두 장씩 더 드린다고 하셨어요.”

“와아아아아!”

2천만 원의 목돈이 추가로 들어온다는 말에, 용병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메고 있던 소총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피 튀기는 전쟁만 하겠나 싶었다.

“그럼 이제 저희도 출발할게요!”

여인은 기세를 몰아 힘차게 외쳤다.

‘흠…….’

오로지 김도진만이 구레나룻을 매만지며 작금의 상황을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뭐 해요? 얼른 호응해주셔야 움직이죠.”

독촉에 가까운 여인의 속삭임에 김도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자!”

김도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용병들은 묘지 쪽으로 질서정연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거 완전히 제대로 된 건수를 물었는데?”

“큭, 돈 많은 물주님이 돈 쓸 곳이 없으신가 보지. 데스크에서 선착순 마감이라 해서, 대장이 신청했다고 했을 땐 드디어 대장이 돌아버린 줄 알았었는데. 이렇게 꿀 작업일 줄 누가 알았겠어? 신청 안 한 것들은 지금 쯤 배알 꼴려서 죽고 싶을걸?”

용병들은 킬킬거리며 다른 용병대의 아둔함을 비웃었다.

‘어이고, 등신들아.’

일행들과 함께 용병단에서 슬쩍 떨어져 나온 민성은 한심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건만, 2천만 원에 눈이 돌아가 좋다고 소리 지르는 꼴들이 참 가관이었다.

‘그나저나 이대로 들어가면 안 되겠어.’

혹시라도 혈교 놈들과 얼굴을 마주쳤다간 낭패를 볼게 뻔했다. 민성은 아이템 창을 열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저희는 안 가는 건가요?”

아루는 멀어져가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작 가자고 했던 당사자가 가만히 있는다. 뒤에선 이동하는 용병들을 따라 미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체했다간 미군들과 괜한 마찰을 빚을지도 몰랐다.

“돌아간다, 전진한다. 서둘러 선택.”

민성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한 이신은, 민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당연히 가야죠! 잠시만요……. 후, 여기 있었네.”

민성은 그라운드 마켓에서 샀던 마스크들 중 하나를 꺼내들며 당당히 말했다.

“얼른 가요.”

그리곤 걸음을 옮기며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저번의 얼굴이랑은…… 또 다른 얼굴이네요?”

아루는 호기심을 보이며 민성이 인피면구를 착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흔하디흔한 중년 남자의 얼굴. 과거 카페에서 썼던 얼굴과는 또 다른 얼굴이었다. 어디서 자꾸 저런 물건들을 구하는지, 신기한 남자였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아루는 슬쩍 사방을 살피며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이가 있는지 살폈다. 이유가 있으니 다른 얼굴을 착용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용병과 미군들, 모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기에 이 장면을 보긴 어려울 것 같았다.

“돈이 참 좋더라구요. 어때요? 자연스럽나요?”

아루는 그의 턱을 살짝 잡아 당겨보곤 고갤 끄덕였다. 민성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아쉬움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젠장……. 설마 이런 데서 쓰게 될 줄은 몰랐네.’

새로운 신분을 확보한 마스크를 제외하고 남아 있던 마스크는 2개. 물론 비상시, 즉 이럴 때를 대비해 구매한 것이긴 했지만 괜한 짜증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라도 놈들과 마찰이 벌어질 경우, 거액에 구매한 얼굴은 1회용 장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깊은 한숨을 내쉰 민성은 양 뺨을 툭툭 두드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쉽긴 했지만 버리는 카드로 삼기로 맘먹은 이상 미련 두지 않기로 했다. 그리곤 일행들과 함께 멀어져가는 용병들의 꽁무니를 쫓았다.

*

용병들의 뒤를 따라, 민성들이 도착한 곳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헤쳐진 작은 묘지 앞이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작은 봉분들은 오간데 없었고, 보이는 것이라곤 지하로 들어가는 땅굴뿐이었다. 두 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조심해서 들어가! 전부 생매장 당하고 싶으면 안에서 한 발 갈겨봐도 되고!”

용병들은 김도진의 거친 농에 낄낄거리면서도 그와 세 남녀의 지시를 따랐다. 들어가기 알맞게 2열종대로 줄 선 뒤, 차근히 안으로 진입했다. 민성들도 일행들과 함께 용병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내부로 들어갔다.

“애들아! 절대 무리는 하지 말렴!”

앞서 들어간 세 남녀와 달리 입구에서 용병들을 독려하던 김도진은 유독 앳돼 보이는 이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근데 한 명이 부족한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갔나?”

고개를 갸웃거린 김도진은 걱정되는 마음에 대검을 들고 있던 청년을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참,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아저씨네.’

무사히 내부로 진입한 민성은 혀를 내둘렀다. 일순간 용병들의 시선이 일행들에게 쏠렸을 땐 전부 글렀나 싶었다. 만약 일행들이 진입하지 못할 경우에는 혼자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다. 민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일행들에게 괜찮으냐는 고갯짓을 보였다. 괜찮다는 신호를 확인한 뒤 다시 전방을 주시했다. 사실 바닥이 금방 밑으로 경사지기 시작했기에 더 이상 일행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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