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109화 (109/303)

# 109

109화 - 또 다시 상점. (4)

“설마 지금 백야 님의 예지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배은망덕도 모자라 완전 호로잡년이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늘 있는 도발이었다. 여인은 올라오는 화를 꾹 누르며 답했다.

“백야 님의 예지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지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너도 잘 알잖아. 오랜 염원을 풀 수 있는 단서이자 계기의 시초가 될 곳이야.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고. 확실히 해두고 가는 게 좋다는 거지. 저번 일도 그렇고…….”

여인은 사전 계획과 틀어졌던 자각사의 일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분명 백야 님의 예지를 바탕으로 철두철미하게 움직였었다. 그리고 그들의 계획이 수확 철을 맞으려던 찰나, 웬 놈팡이가 계획에 초를 쳐버렸다. 자각사만 끌어들였다면 한국에서 움직이는 게 좀 더 수월했을 텐데. 오히려 놈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꼴이 돼버렸다. 그 덕에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자각사의 병력 덕에 행동폭이 좁아져버렸다.

“하지만 그놈을 제외하면 백야 님의 예지는 빗나가지 않았어.”

“그래, 근데 그놈 때문에 일이 틀어진 게 문제지. 이미 조사도 끝냈어. 얼마 전까지 일반인, 일반인이었다고! 근데 그런 놈이 소생단?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 읍.”

“알았으니까 조용히 말해.”

순간 여인의 목소리가 상승곡선을 그리려 하자, 남자는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놔, 새끼야. 내가 이번 작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아? 너 같은 돌대가리는 검만 휘두르면 되니까 모르겠지. 후…….”

여인은 남자의 손을 쳐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올라오는 깊은 숨을 내뱉었다.

“다음번에는 내가 확실히 죽이도록 하지. 검마 놈의 손자 덕에 재밌는 놈을 알게 됐어. 대검 쓰는 놈들은 거의 없으니까.”

민성을 떠올린 남자는 호승심을 보이며 애검의 끝머리를 쓰다듬었다. 대검 사용자치곤 상당히 왜소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놈은 대검을 사용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했을 게 분명했다. 그 노력과 시간들이 그의 대검에 꺾여 나갈 생각을 하니 피가 들끓어 오름을 느꼈다.

“이 등신아! 죽이긴 뭘 죽여! 노인 밑으로 들어간 것 같으니까 일단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고 했지!”

하지만 여인은 곧바로 남자를 타박했다. 말해줘도 까먹는 남자의 머리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뭔 상관이야. 우리가 언제부터 우매한 놈들의 눈치를 봤다고.”

“백야 님이 계획하신 일이야. 초칠 생각이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여인은 남자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살기를 뿜어내며 으르렁거렸다.

“성내지 마. 주름 생기니까.”

오히려 여인의 성질을 부추긴 남자는 돌아오는 낮은 욕설을 무시하곤 고개를 돌렸다.

“내일. 드디어 내일이면…….”

그리곤 김 회장과 담론을 나누는 소년을 지그시 바라봤다.

‘백야 님은 어째서 저런 놈에게 흥미를 보이시는 건지.’

“뭐, 알아서 하시겠지.”

남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머리 쓰는 일은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외마디 비명소리와 죽음이 맴도는 전장뿐이었다. 그리고 내일. 진정한 낙원을 지으러 갈 것이었다.

“이 새끼야! 내 말 듣고 있어? 어!”

생각을 끝내자 옆에서 나지막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음……?”

하지만 그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소년이 잠시 대화가 끊긴 틈을 이용해, 손가락으로 잔을 가리킨 뒤, 마시라는 몸짓을 보였다. 남자는 잠시 그의 빈 잔을 바라본 뒤, 아직 내용물이 가득한 여인의 잔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 마셔.”

그리곤 다짜고짜 여인의 잔을 빼앗아 내용물을 그녀의 입안에 들이부었다.

“갑……. 우르으컥!”

다소 저항이 있었지만 소년이 내린 임무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다.

“이……. 시발 새끼가!”

“혈교를 위하여.”

그리곤 헛구역질하는 여인을 보며 잔을 들어 보였다.

*

정적만이 감도는 타워의 7층. 죽은 듯 누워 있던 민성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

마침내 의식을 차린 민성은 낮은 신음을 뱉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몸 마디마디가 욱신거리는 것만 같았다. 수백, 수천 번이고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시간. 정말이지 지옥 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적어도 이런 건 설명난에 써줘야 할 것 아냐.’

물론 매도 한 번에 맞는 게 낫다고는 하지만, 다시는 체감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민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몸을 완전히 일으킨 뒤, 신체에 변화가 있나 살폈다. 외관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Passive 목록에 들어가 있는 두 개의 새로운 스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성은 이어서 스텟창을 살폈다.

“큭…….”

5배에 가깝게 뻥튀기 된 지력 덕에, 입을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단타르스의 피’의 효과로 지력은 63이 되었다. 덕분에 마력 수치도 1,260으로 뛰어올랐다. 더 이상 마력 부족으로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광물의 사랑……. 광물의 사랑…….’

민성은 ‘바르타고의 피부’의 설명과 효과를 수차례 반복해서 읽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내포된 광물의 사랑은 아무리 고민해봐도 그 능력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전투용은 아닌 것 같으니까 급할 것 없겠지.’

한참을 고민한 민성은 결국 혀를 차며 스킬창을 닫았다. 그리곤 혼절한 덕에 개봉하지 못했던 펫 상자를 먼저 열었다.

띠링-

[펫, 화염을 머금은 우드 플랜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펫, 완전히 미친 머드 가고일을 획득하셨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펫 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상자를 개봉함과 동시에 여러 가지 안내음이 귓가를 울렸다. 민성은 스킬창 열듯 자연스럽게 펫 창을 열었다. 안에는 괴이하게 생긴 것들과 함께 정보가 나열돼 있었다.

[화염을 머금은 우드 플랜트]

등급: ★★★★

설명: 용암지대에서 서식하는 나무괴물. 불을 상당히 좋아한다.

친밀도: 0

보유능력: 불타는 외피, 이글거리는 눈빛

HP:500 MP:120

스텟:

체력:25

근력:21

민첩:10

지능:8

지력:6

행운:7

[완전히 미친 머드 가고일]

등급: ★★★★

설명: 일족의 전멸로 정신을 놓은 가고일. 아무 생각이 없다.

친밀도: 0

보유능력: 비행, 광폭화, 자폭, 울부짖기

HP:280 MP:100

스텟:

체력:14

근력:9

민첩:19

지능:1

지력:5

행운:1

펫의 등급을 확인한 민성은 연속해서 나온 4성 펫을 보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기절해 있던 사이 난글러스의 버프가 끝난 모양이었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펫 상자를 먼저 여는 거였는데.’

펫 상자를 먼저 열어 높은 등급의 펫을 확보하고, 그 다음에 스킬 상자를 열었어야 했다. 물론 결과론이었지만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민성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다음번에는 좀 더 오랫동안 코를 잡고 있어야겠노라고 마음먹었다.

“화염을 머금은 우드 플랜트, 완전히 미친 머드 가고일 소환.”

민성은 사전에 아루에게 들었던 대로 펫을 소환했다. 만약 물어보지 않았다면 또 소환방법을 찾는다고 시간을 소진했을 게 뻔했다. 민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그어어어어!”

“키에에에에에에에!”

가지마다 작은 불덩이가 달려 있는 괴목과, 흰자를 번뜩이며 괴성을 지르는 황색의 박쥐 같은 것이 나타났다. 놈들은 의미모를 긴 울음을 뱉어내더니 그를 노려봤다.

“뭘 봐, 이것들아. 고개 돌려!”

민성 역시 눈을 부릅뜨고 몸통에 달려 있는 우드 플랜트의 눈을 쏘아봤다. 하지만 놈들은 통제에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했다.

‘원래 더럽게 생긴 놈들이 전투본능도 뛰어나다고 하지만……. 그래도 설마 주인에게…….’

띠링-

[친밀도가 낮습니다. 화염을 머금은 우드 플랜트가 명령을 거부합니다.]

[친밀도가 낮습니다. 완전히 미친 머드 가고일이 명령을 거부합니다.]

“그어어어어!”

“키에에에에에!”

“이 새끼들이!”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는다고 했던가. 놈들은 명령을 거부하곤 오히려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어어!”

우드 플랜트는 불타는 가지를 내리꽂았고,

“크에에에!”

하늘로 치솟아 흰자를 번뜩이며 발광하던 가고일 놈은 그대로 그를 향해 쇄도해왔다.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진흙색인 놈의 몸은 잔 균열이 가득 생겨나 있었다.

[완전히 미친 머드 가고일이 자폭을 시전합니다.]

‘빌어먹을 새끼……. 이름값 하네.’

말라붙은 진흙처럼 떨어져 나간 놈의 피부 덕에 속살을 볼 수 있었다. 안에는 인형 뽑기 기계 안의 인형들처럼 주먹 크기의 쇠구슬들이 수두룩했다. 아마도 자폭할 경우 폭발의 탄력을 받은 쇠구슬들로 적과 동귀어진 하는 방식이 분명했다. 친밀도 시스템 역시 아루에게 들었던지라,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긍정적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친밀도 시스템. 꽤나 귀찮은 것임은 틀림없었다.

“화염을 머금은 우드 플랜트, 완전히 미친 머드 가고일 역 소환.”

짙은 한숨을 내쉰 민성은 몸을 뒤로 물리며 중얼거렸다.

“그억?”

“키에에에!”

그러자 그를 향해 달려들던 펫들의 형체는 씻은 듯 사라져버렸다.

‘저게 어딜 봐서 펫이야. 차라리 검은 돼지들이 더 귀엽지.’

민성은 그와 설전을 벌였던 검은 덩어리들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그와 동시에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 상점에 방문했을 때,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펫을 자랑하던 사실이 떠올랐다. 헌데 그들의 펫은 지금처럼 공격적이지 않았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아니면 아루 씨가 언급하지 않았던 게 있었나? 후……. 모르겠다.’

민성은 생각을 정리함과 동시에 아이템 창에서 축구공만 한 캡슐을 꺼내들었다.

[펫 합성권]

등급: ★~★★★★★★

설명: 갖고 계신 펫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잘 선택하셨습니다. 펫 합성권은 분명 당신이 만족할 만한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효과: 같은 등급의 펫 2마리를 넣으면 동급의 펫 혹은 더 높은 등급의 펫 1마리를 랜덤으로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합성권에 넣은 펫보다 낮은 등급의 펫은 출현하지 않습니다).

횟수제한: 1/1

[펫 합성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주인에게 무기를 들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민성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합성재료로 사용하실 펫을 선택해주십시오. 현재 합성에 사용 가능한 펫 두 마리가 펫창에 존재합니다.]

그러자 안내음과 함께 펫창이 민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목록에는 낮은 친밀도를 이유로 그에게 반항했던 두 마리 펫이 있었다. 민성은 주저 없이 그 두 마리를 선택했다.

그러자 들고 있던 캡슐이 스스로 돌아가더니 딸칵 열렸다. 그와 동시에 민성의 몸에서 작은 빛 알갱이 두 개가 빠져나가 캡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