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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07화 (107/303)

# 107

107화 - 또 다시 상점. (2)

‘미친!’

스스슥-

팔에 내려앉은 씨앗의 부위부터 금속으로 된 풀 따위가 자라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위를 덮은 이끼처럼 그의 몸을 덮기 시작했다. 동시에 잘게 조각내는 것만 같은 고통이 피부 곳곳에서 몰려왔다.

“으으윽.”

민성은 이빨을 악물고 고통을 이겨내 보려 했지만, 작은 철 나무까지 자라자 고통은 극심하다 못해 배가 되는 것만 같았다.

퐁당-

거기다 체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온몸이 분출을 시작한 활화산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런……. 시바아알!”

생살을 찢어내고 내부를 불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민성은 괴성에 가까운 욕설을 토해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훈제당하는 오리가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으……. 커…….”

고통이 더욱 심해지자 이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민성은 그저 꺽꺽거리며 불규칙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차라리 누가 죽여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타워의 7층. 그를 도와줄 이가 있을 리 없었다.

“…….”

고통에 발작하던 민성은 이내 두 눈을 뒤집고 게거품을 물었다.

[바르타고의 피부를 익히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킬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단타르스의 수혈을 익히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킬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정신을 잃는 와중 외마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것을 끝으로 민성은 정신을 놔버렸다.

*

대설그룹이 운영하는 빌딩의 심층. 지하 깊숙한 곳이라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련된 공간. 거대한 공간과 달리 넓은 테이블 하나만이 조명 아래 놓여 있다. 언뜻 차갑게 느껴지는 분위기를 바이올린과 첼로 소리가 잔잔하게 어루만져준다.

“…….”

테이블에선 달그락거리는 집기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어둠 사이로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하얀 가면을 쓴 남자가 이중구조의 수레를 끌고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수레 위에는 그릇들이 여럿 올려져있고, 위에는 은빛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그러자 각 의자마다 시중을 들던 다른 가면들이 그릇을 받아와, 테이블에 정중히 내려놓곤 커버를 벗겨냈다.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8세 여아의 눈동자입니다. 소스는 눈동자에서 나온 즙과 67년산 데타인 와인을 졸여봤습니다. 취향껏 찍어 드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수레를 끌고 온 가면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보인 뒤,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어머, 예쁘기도 해라.”

“어쩜 플레이팅도 이리 깔끔하게 하는지…….”

“이곳 요리장 솜씨는 여전하군요!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내용물을 본 좌중들은 작은 감탄사를 늘어놓으며, 테이블의 중심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봤다.

“허허, 과분한 말씀들을 하십니다. 자, 얼른 드십시다.”

노인은 인자한 눈웃음을 보이며 좌중에게 손짓했다.

달그락-

노인이 나이프를 들자, 좌중들 역시 그를 따라 식기를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몸에 차오르는 것만 같은 이 젊음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군요.”

그러나 말과 달리 나이프로 안구를 써는 남자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쌓인 연륜과 깊은 주름살이 아니었다면 분명 좌중들에게 표정을 들키고 말았을 것이었다.

“허허, 정 회장님의 마음에 드셨다니 흐뭇합니다.”

그의 표정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노인은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웃음 지었다.

“하지만 그게 이 미식회의 전부는 아니에요, 정 회장님.”

날카로우면서도 미묘한 색기가 맴도는 목소리에, 정 회장은 고개를 우측으로 돌렸다.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과 달리, 아직 세월의 풍파를 맞지 않은 미모의 여인이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많이 잡아봐야 40대 언저리를 맴돌 것 같은 외모였다.

“박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 회장님은 아직 잘 모르실 수 있겠지만, 저희는 인간 그 이상의 개체로 올라갈 사람들이에요.”

뜬구름 잡는 소리에 정 회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 회장의 의문에 다른 좌중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식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정 회장의 의문은 그들 역시 겪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는 이미 인간으로서 올라갈 수 있는 최상위의 위치까지 올라왔어요.”

“뭐……. 어떻게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정 회장은 그녀의 말에 적당히 호응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실 그녀의 말은 다소 어폐가 있었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었고 이 집단은 그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는 자들의 모임이었다.

“흔히 먹이사슬, 생태계 피라미드. 저희는 엄연히 그 끝에 존재하는 자들이에요. 그렇다면 그 끝의 다음은? 어떤 세계가 존재할지, 궁금하지 않아요?”

“박 회장님…….”

“우리가 예수나 부처라 부르는 존재들. 우리라고 신적 존재들과 동등한 선에 서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설마 단순히 회장의 자리에 만족하고 계시는 건 아니겠죠?”

박 회장의 뜻을 눈치챈 정 회장은 잠시간 눈을 껌뻑이고는 다른 좌중들을 살폈다. 다들 말을 아끼고 있을 뿐, 그녀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짝짝-

어느새 그릇을 비운 노인이 박수치며 여인을 바라봤다.

“허허, 박 회장님께서 깔끔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박 회장님의 말씀처럼 저희의 식사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한 종족의 정점에 설 자들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지요.”

“김 회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야말로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될 자들입니다!”

숨겨놨던 힘이라도 있던 것일까. 노구들은 열띤 목소리로 그의 의견에 호응했다.

‘미쳤어…….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언뜻 광기마저 느껴지는 현장에, 정 회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맞은편에서 열광하고 있는 이 회장을 노려봤다. 첫 단추를 잘못 꿰맸다. 그의 소개가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 세상의 온갖 진미에 익숙해져 질려갈 때쯤, 그의 친우가 찾아왔었다.

“미지의 영역에 발 디뎌볼 생각 없나? 싫다고? 한 번 맛보면 다신 헤어 나오기 힘들 정도의 진미가 가득한데도?”

늘그막에 무슨 식탐을 부리겠다고. 그때 없다고 했었어야 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잘 익은 스테이크로 둔갑한 인간의 옆구리 살을 먹고 뒤늦게 진실을 들은 후, 그는 온종일 구토를 해야만 했다. 심적 고통으로 앓아눕기까지 했다. 그 뒤로 당장 발을 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식인 행위에 참여한 모든 그룹의 단합.

그 한마디에 그는 굴복하고 말았다. 아무리 미래 그룹이 대기업이더라도 여럿 그룹이 힘을 합치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일생을 바쳐 세운 그의 자식이었다. 무너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이 역겨운 의식에 참여하며 벗어날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늙은 너구리들이라 그런지 쉽사리 틈을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이 개미지옥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수차례 마음을 다 잡은 정 회장은 자연스럽게 안구에 나이프를 갖다 대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김 회장님께서 기대하시던 던전 탐사대 출발일자가 벌써 내일입니다?”

“허허, 역시 정 회장님이십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어야 할 텐데요. 능력자들은 분명 우리를 한 차원 더 높은 고지로 이끌 묘약이 돼줄 겁니다.”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정 회장의 말을 이어받았다.

“분명 양놈들도 이 사실을 알고 그간 우리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게 분명해요!”

모임의 유일한 여성인 박 회장이 이를 갈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래도 김 회장님께서 엄선한 용병들이니, 부디 좋은 활약을 하고 오길 바라는 수밖에요. 아, 그리고 김 회장님. 부탁하셨던 일은 잘 마무리해놨습니다.”

간신 같은 얄팍한 미소를 머금은 이 회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 회장님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능력자들이라 하더라도 총 앞에선 맥을 추리긴 어려울 겁니다. 양놈들도 분명 총을 들고 오겠지만…….”

이 회장이 말꼬리를 흘리자, 노인은 슬쩍 시선을 돌려 여인에게 주었다.

“허허. 아, 그리고 박 회장님? 제가 꽤나 재밌는 소식을 접해서 그런데.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노인은 양손을 턱에 괴고 여인을 빤히 응시했다.

“네?”

“혹시 강민성이라는 청년. 아십니까?”

순간 여인의 몸이 작게 흠칫거렸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회복한 여인은 자연스럽게 노인의 말을 받아쳤다.

“이미 전부 아시고 질문하신 것 같은데,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이번 탐사에 그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노인의 답에도 여인은 고개를 살짝 까딱일 뿐, 묵묵부답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노인은 싱긋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제가 조사한 정보와 다른 점이 있을까 해서 질문 드렸습니다. 혹시 아드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거나…….”

“아니요! 김 회장님은 제가 가족의 정에 연연할 사람처럼 보이셨나요?”

신랄하다 못해 뾰족한 박 회장의 말투에 김 회장은 빙긋이 웃음 지었다.

“물론 아닙니다. 실례가 됐다면 사죄하겠습니다.”

노인은 입가의 미소를 유지하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늘어놓았다. 민성을 조사하면서 얻은 정보 덕분에, 절대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사에 관해선 질문하지 않는 게 이곳의 암묵적인 룰 중 하나 아니었나요? 아무리 김 회장님이라 하더라도 이건 상당히 불쾌하네요.”

하지만 여인은 쉽사리 화를 거둘 생각이 없는지 팔짱을 끼곤 노인을 쏘아봤다. 그러자 노인은 미소를 거두고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그녀의 말을 받아쳤다.

“친 혈육은 아니더라도 괜한 모성애가 저희 일에 방해가 될까 싶어 질문 드렸습니다.”

“……모성애요? 그런 일은 절대 없어요.”

여인은 입술을 까득 깨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부분은 박 회장님께서 잘 처신하리라 믿습니다.”

여인의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다시 노인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여인은 언짢은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달그락-

어느덧 그릇을 거둬가고, 식후 음료가 그들 앞에 놓였다. 하지만 불편한 분위기가 장내를 감돌자 누구 하나 잔을 들지 않았다.

“허허, 아직 박 회장님께서 마음에 담아둔 부분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노인은 불편한 기류의 근원지인 여인에게 푸근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잠시간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여인이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제가 놈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세요? 근데 하필 김 회장님의 밑에 있다고 하시니……. 후……. 제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허허, 그게 문제셨습니까?”

노인은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껄껄거리더니, 이내 웃음을 뚝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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