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106화 (106/303)

# 106

106화 - 또 다시 상점. (1)

38. 또 다시 상점.

쾅-

민성이 들어가자, 문은 거짓말처럼 스스로 닫혀버렸다.

익숙하디 익숙한 백색의 공간. 이런 식으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뒤편에 있는 붉은 철문을 슬쩍 살피던 민성은 한쪽에서 들려오는 유쾌한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이제 10분밖에 남지 않으셨군요.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자, 다음 추첨번호는! 5423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공간 한 편에선 엘프가 마이크를 잡고 연신 입을 놀리고 있었다. 잠시 엘프의 행동을 구경하던 민성은 곧 눈앞에 보이는 검은 철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주저 없이 문을 열고 상점 안으로 들어섰다.

“‘정교한 단검 투척’이 2,000코인! 지금 사지 않으면 후회할 금액, 2,000코인에 팝니다!”

“‘고통스러운 함성’ 팔아요. 1,500코인이에요! 제발 좀 사주세요.”

랜덤 박스를 구매하려 줄을 서 있는 손님들, 길바닥에 좌판을 깔고 호객행위를 하는 손님들이 보였다. 언제 들어와도 한결같이 활기찬 곳이었다. 잠시 북적거리던 내부를 살피던 민성은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일단 가볍게 눈요기를 하고 싶었다.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빛 주위에는 손님들이 어수선하게들 서있었다.

“매직 애로우 강화 간다! 제발! 신이시여! 뽀지 받고 싶으면 빨리 기도해!”

손님들의 중심에는, 코가 긴 손님이 낡은 책 두 권을 붙잡고 신을 부르짖고 있었다.

‘저놈은 아직도 저 짓 중이야?’

놈이 파이어볼을 강화하다 터트린 기억은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물론 강화에 성공할 경우, 더 비싼 값을 받거나 자신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데 도움이 됐지만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래도 간접적이나마 자주 대면하는 걸 보면 한가락 하는 놈인 모양이었다.

“간다! 간다!

코가 긴 손님 옆에 있던 다른 종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부추겼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는 역시나 낡은 책 두 권이 들려 있었다. 만약 코가 긴 손님이 강화에 실패할 경우, 바로 제물 삼아 강화에 도전하려는 이들이었다.

저놈도 참 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민성은 혀를 차면서도 코가 긴 손님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 간다! 으아아아아아아!”

마침내 책들이 그의 손을 벗어나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곤 서로의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파지직-

사라진 빛 사이로 찢어진 종잇조각들이 너풀거리며 바닥에 흩날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젠장! 젠자아앙! 신은 죽었어!”

간절했던 음성은 이내 절규로 뒤바뀌었다. 절규가 시작되기 무섭게 다른 종족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붙었다!”

“나도! 오오오! 또 붙었어!”

2연타로 강화에 도전했던 손님도 강화에 성공했다며 자리에서 방방 날뛰었다.

“이번에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부자 되겠네요. 다음에 또 강화하실 때 불러주세요. 이건 약소하게나마…….”

“…….”

제물의 효과를 톡톡히 본 손님들은 줄을 서서 코가 긴 손님의 코를 붙잡고 갔다.

“저분 완전 S급 제물이네. 어떻게 터질 때마다 다 붙어? 나도 죽치고 있다가 저 손님 강화할 때 도전해봐야겠어.”

“혹시 저 코에 영험한 기운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수군거리던 손님들마저 줄에 합류하여 코를 붙잡고 갔다. 코가 긴 손님은 모든 것을 체념했는지, 손님들이 코를 잡건 말건 신경 쓰지도 않는 듯했다.

‘꽤 그럴 듯한데?’

실소를 흘리던 민성도 조용히 대열에 합류했다. 잠시간 기다리자 이윽고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민성도 앞선 손님들이 한 것처럼 그의 코를 붙잡았다.

띠링-

[난글러스 님에게 거래를 요청합니다.]

[난글러스 님이 거래요청을 수락하셨습니다.]

그러자 민성의 눈앞에 3개의 창이 떠올랐다. 창을 바라보던 민성은 곧 창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다. 하나는 그의 아이템창이었고, 나머지 두 개의 창에는 각각 민성과 난글러스의 얼굴이 창 상단에 박혀 있었다. 랜덤 상자를 구매할 때와는 또 다른 거래방식이었다.

‘여기다 올리면 되는 건가?

민성은 손가락을 들어 아이템창에서 작은 책 조각을 눌렀다. 그러자 책 조각은 자석에 달린 철가루마냥 그의 손가락을 따라 빨려나왔다. 민성은 책 조각을 그대로 그의 얼굴이 박힌 거래창에 올렸다.

[정말 ‘꼬리 흔들기 조각’을 올리시겠습니까?]

원래는 10코인 정도 주고 말려고 했지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코인이 없었다. 책 조각을 본 난글러스는 순간 코를 흠칫거렸으나, 이윽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조각의 내용을 확인하곤 실망한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어이없다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난글러스의 재물 운을 받고자 함이었으니, 복채가 부족한가 싶었다. 오히려 민성은 더 줄 잡템이 없는지 아이템창을 뒤적거렸다.

[난글러스 님이 거래를 완료하고자 합니다. 요청에 응하시겠습니까?]

민성이 ‘고양이 미소’ 조각을 만지작거리던 와중, 갑자기 난글러스의 창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거래 창 하단의 완료 버튼을 누른 모양이었다.

“거래하는 데 뭐 이리 오래 걸려? 나도 빌어야 되니까 빨리 하고 나와!”

뒤에선 낡은 책 두 권을 손에 쥔 손님들이 아우성쳤다.

‘앞으로도 하는 일 잘 되게 해주시고, 부디 상자에서 좋은 아이템이 나오게 해주세요.’

민성은 정성스럽게 기원을 올리며, 하단에 있는 거래완료 버튼을 눌렀다.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거래가 종료되자, 거래창들은 사라지고 코를 잡혀 있는 손님의 모습이 보였다. 코가 긴 손님은 이제 가라는 듯 손을 휙휙 내저었다.

‘이제 본 게임에 들어가 볼까.’

나름대로 행운을 올리는 의식도 치렀겠다, 이제 메인 스테이지로 이동할 차례였다. 피식 웃은 민성은 그의 코를 몇 번 더 주무른 뒤 자리를 벗어났다.

스르륵-

민성은 1층 한쪽에 마련된 원통을 타고 7층에 도착한 뒤, 원통에서 내렸다. 퀴퀴한 먼지 내음이 그의 코를 간질였다. 변함없이 공허하면서도 신비로운 공간이었다. 민성은 곧장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약발이 다하기 전에 뽑아야지.’

평소 미신 같은 건 믿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난글러스의 제물 운을 믿어보고 싶었다.

“음…….”

민성은 자판기를 보며 눈가를 긁적였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루비는 총 1,314개. 스킬, 칭호, 소모품, 펫, 무엇을 사건 그 이상을 살 수 있는 루비였다. 상점에 들르기 전 무엇을 살지 나름 고심하고 왔건만, 막상 자판기에 도달하니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소모품? 아니야…….’

여전히 가장 필요한 것은 마력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무작정 랜덤 루비 소모품 상자를 지르는 것은 옳지 못했다. ‘마나 브레이커’처럼 마력이 필요하지 않은 스킬이 나올 수도 있으니, 다른 상자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민성은 이윽고 자판기 구석에 박혀 있는 번호를 연달아 눌렀다.

덜컹-

민성이 선택한 것은 스킬 상자 3개, 펫 상자 2개, 그리고 소모품 상자 2개였다.

[축하드립니다. VIP포인트 5단계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아이템창이 45칸으로 확장됩니다. 펫 합성권이 지급됩니다.]

‘간만에 뜨네. 도대체 VIP포인트는 뭐고 또 기준은 뭔지…….’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이내 고개를 내젓고 지급된 펫 합성권을 살폈다.

[펫 합성권]

등급: ?

설명: 지금 갖고 계신 펫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합성이 답입니다!

효과: 같은 등급의 펫을 합성할 수 있다. 동급의 펫 두 마리를 합성 시, 동급의 펫이나 한 등급 높은 랜덤한 펫이 출현한다.

민성은 작은 주머니 같이 생긴 합성권을 이채롭게 쳐다봤다. 분명 타워에서는 따로 판매하지 않는 물품이었다.

‘펫 상자 사기를 잘했네. 일단 스킬 먼저 열어볼까.’

민성은 쏟아져 나온 박스들을 집어 들어 은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먼저 스킬 상자를 조심스럽게 올려놨다.

펑-

[‘마나 브레이커’를 획득하셨습니다.]

[마나 브레이커]

등급: ★★★★

설명: 상대방의 마나를 남김없이 태운다.

효과: 타격 시마다 상대의 현재 마나의 6%를 태우고 그만큼 피해를 입힌다.

[‘바르타고의 피부’를 획득하셨습니다.]

[바르타고의 피부]

등급: ★★★★★★

설명: 대지 그 자체였다는 다이라스는 누구보다 강인한 방어력과 생명력을 기반으로 많은 생명체들을 품에 끌어안았다고 한다. 그의 품에 살았던 생명체들은 그를 경외하며 감히 누구도 그에게 칼을 들지 않았다. 모든 대지를 주관하고 통찰하며, 유독 금속을 좋아하고 아꼈던 대지의 정령왕 바르타고의 피부.

효과: 광물들의 사랑을 받는다.

[‘단타르스의 수혈’을 획득하셨습니다.]

[단타르스의 수혈]

등급: ★★★★★★

설명: 과거 한 차원을 불태웠다는 전설의 용, 단타르스의 피가 체내에 축적된다. 마나 덩어리에 가까운 그의 피는 그대의 피를 새로이 변환시킬 것이다.

효과: 지력 수치가 +50 증가한다.

“큭…….”

민성은 상자에서 나온 책들을 멍하니 살피며 웃음을 실실 흘렸다. 기대가 적어야 실망도 적은 법이라고, 보나마나 4성이나 조각, 그나마 조금 운이 좋다면 5성 스킬이 나올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기대조차 않았던 6성 등급의 스킬이 그것도 무려 두 개나 뜨니, 웃음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거기다 스킬의 효과들조차 하나하나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난글러스 이 자식…….’

평소에 나오던 걸 생각하면 난글러스의 코가 무언가 큰 작용을 해준 것만 같았다. 녀석의 코는 복코가 분명했다.

‘그나저나 광물들의 사랑을 받는다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애초에 무생물인 광물에 생명이 있었나 싶었다. 애매모호한 설명에 민성은 눈가를 긁적였다. 이건 약간의 실험이 필요할 것 같았다. 민성은 그래도 무려 6성짜리 스킬인 만큼 밥값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은 ‘바르타고의 피부’보다는 ‘단타르스의 수혈’이 훨씬 더 값어치 있어 보였다. 그토록 열망하던 지력을 무려 50이나 올려주는 환상의 스킬. 이것만 있으면 더 이상 마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상상만 해도 전신에서 짜릿함이 몰려왔다.

[스킬을 배우시겠습니까?]

“당연하지.”

민성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미치지 않은 이상, 이 귀한 스킬들을 쟁여놓을 생각은 없었다.

[바르타고의 피부가 이식됩니다.]

[단타르스의 피와 융화를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민성이 들고 있던 책들이 사라지고, 찬란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작은 씨앗 하나와 음험한 기운을 뿜어내는 피 한 방울이 허공에 떠올랐다.

“어?”

그리곤 민성이 채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몸으로 쏜살같이 파고들었다. 씨앗은 피부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핏방울은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와 전신을 맴돌았다. 민성은 가만히 눈을 껌뻑이며 변화를 주시했다. 괴롭다거나 고통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다만, 살짝 간지럽다고만 느껴지던 피부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