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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05화 (105/303)

# 105

105화 - 안전지대 (4)

‘설마 살기 때문에 내 위치가 노출된 건가?’

민성은 몰랐지만, 그간 거듭되는 살인으로 민성의 살기는 꽤나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간 그를 만났던 그 누구도 살기에 대해 언급해주지 않았었다. 스스로도 상대방의 살기에 눌린 적은 여럿 있었어도, 정작 그것을 갈무리하는 방법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건 꽤나 심각한 문제였다. 아무리 상대방이 반응하기 힘들 정도의 스피드를 가졌다 하더라도, 살기를 감지할 수 있는 상위의 능력자에게는 지금처럼 무용지물이라는 소리였다.

“나한테 오면 살기를 갈무리하는 법을 알려주려 했는데. 더불어 예의도.”

“좃 까세요, 아줌마.”

이맛살을 찌푸린 민성은 목소리를 낮게 깔며 여자를 쏘아봤다.

선택지는 대략 2가지였다. 어떻게든 여자의 방어를 파훼하고 이종범을 죽인다. 하지만 아까의 기습으로 여자는 이종범을 덩굴 내부에 숨겨버렸다. 저 덩굴을 뚫고 접근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았다. 어떻게 뚫는다 하더라도 그때까지 여자가 가만히 있지도 않을 터. 아무래도 두 번째 방법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되었다.

두 번째는…….

민성은 놈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한 번 들어 보인 뒤, 등을 돌렸다. 그리곤 저들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아쉽네. 요즘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니. 이젠 따라가지도 못하겠네.”

여자는 입술을 할짝이며 저 멀리 보이는 타워를 응시했다. 멀어지다 이내 사라져버린 녀석의 살기를 봐선 안전지대로 향한 것이 분명했다.

“충원을…… 지시해야겠습니다.”

덤불에서 내려온 부장은 옷을 털며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전멸한 부하들을 보고 있자니,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개중에는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수하도 있었다.

“봤잖니? 너희 같은 아이들이 몇이 모이건, 결국 저 아이 하나 못 이기는 걸?”

“…….”

여자는 나긋나긋한 말투와 함께 부장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렴. 계속 네 의견만 고집하다가 결국 이 사달이 난 것 아니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거푸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던 이종범이 마침내 손을 들었다.

“착한 아이네. 그럼 내일부터 혈교에서도 손꼽는 스킬을 몇 개 주도록 할게. 마력도 필요하겠구나. 내가 너를 최고로 만들어줄게. 약간의 부작용이 있겠지만 선생님을 믿으렴.”

여자는 끝말을 흘리며 안고 있던 부장을 놓아주었다.

“우와, 8억짜리 수배자랑 대등하게 싸우다니……. 아예 보이지도 않던데…….”

“저 여자도 대책부 소속인가? 근데 대책부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아니었어? 그 사이에 정책이 또 바뀌었나?”

여태껏 그들의 전투를 관전하던 사람들은 여자의 능력을 호평하면서도,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전부 죽여도 되니?”

잔혹한 미소를 머금은 여자는 양손에 단도를 쥐었다. 이종범은 천천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의 제안을 수락하긴 했지만, 아직까진 정보를 통제해야만 했다. 대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한 법이었다.

“마음대로…… 하십쇼.”

“좋아.”

어차피 허락이 없더라도 모습을 보인 이상, 전부 죽일 생각이었다. 종로에서야 보는 눈이 많아 일일이 찾아 죽여야 하는 수고를 했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폭살검.”

“이제 우리도 안전지대로 가보……. 크아아악!”

여자의 손에서 단도가 떠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우군이라 생각했던 여인의 공격에 당황한 사람들은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화약내가 나는 단검뿐이었다.

쾅-

“끄아아악!”

“도…… 도망쳐! 미쳤어! 미쳤다고! 도망쳐야 돼!”

일부 능력자들이 무기를 쥐었으나, 금세 폭발에 휘말려 시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혈령대? 목격자들은 전부 죽이렴. 다 죽이면 정리도 깔끔하게 해야 한단다. 알겠니?”

“예, 대주님!”

여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사람들 사이에 숨어 있던 그녀의 수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푸확-

‘총만 보급되면…… 언젠가 네년의 배에도 구멍을 내주마.’

부장은 학살의 장으로 변한 현장을 보며 부서져라 주먹을 쥐었다.

쾅-

이미 현장에서 한참 벗어난 민성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에 뒤를 힐끗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 분명 폭발하는 단검을 사용했던 기억이 있었다.

‘뭐지? 나 말고도 적이 있었나? 아니면…… 설마? 아냐, 그랬으면 종로에서도 증거인멸을 시도했었겠지.’

순간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민성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전쟁이라도 났나?”

“설마 지금 같은 상황에 전쟁이 나겠어? 자기 나라 살피기도 바쁠 텐데.”

안전지대로 이동하던 사람들도 불현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곧 폭음이 멈추자 사람들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보라고. 좋은 능력을 가진 놈들끼리 한바탕 벌였나 보지.”

“그런가……? 어이쿠 뭐…… 뭐지?”

민성은 불안해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으며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띠링-

[지배자의 안전지대에 들어오셨습니다.]

[PVP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타워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남아 있었지만, 드디어 안전지대로 들어온 모양이다. 민성은 연이어 떠오르는 메시지를 살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타워로 접근하며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고 나왔던 그 모습 그대로일 뿐, 특별히 바뀐 점은 없는 것 같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은 안전지대를 살피거나, 잠시 자리에 주저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몇 가지 확인만 하고 들어가자.’

어차피 안전지대는 부차원적인 것일 뿐, 그의 주 목적은 어디까지나 상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타워를 이용해야 했기에 안전지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필요했다.

“우와,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생겼어!”

“이제 앞으로 이곳에서 장사도 할 수 있겠는데?”

민성은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의 등 뒤로 다가갔다.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손을 들어 있는 힘껏 남자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띠링-

[안전지대에선 어떠한 공격행위도 불가합니다.]

하지만 민성의 손은 보이지 않는 방벽에 가로막혔다. 마치 골렘과의 유쾌한 술래잡기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뭐, 뭐야!”

남자에게도 메시지가 떴는지, 즉각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이 새끼가……. 어?”

삿대질을 하려던 남자는 이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예, 저 아시죠?”

민성은 싱긋 웃으며 대검을 검면이 보이게 든 뒤, 살짝 휘둘렀다.

“으아아아아!”

눈앞에 대검이 날아오자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팔을 들어올렸다.

[안전지대에선 어떠한 공격행위도 불가합니다.]

‘역시나 안 되는 건가?’

대검도 방벽에 가로막히자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검을 회수했다. 아무래도 공격이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한 모양이었다.

“이…… 이 새끼!”

민성이 해를 입힐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남자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욕설을 뱉으며 삿대질을 해댔다.

“이 새끼요? 안전지대에서 나갈 때까지 쫓아갑니다?”

민성의 장난스러운 협박에 남자의 얼굴이 다시금 하얗게 물들어갔다.

“농담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민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남자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그리곤 타워를 중심축으로 삼고 부지런히 안전지대를 돌아다녔다.

“후…….”

얼추 안전지대의 탐색을 끝낸 민성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람을 타다’는 이미 시간이 지났기에 그 효과가 종료된 상황이었었다. 덕분에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약간의 문제를 겪긴 했었지만, 그놈의 높은 악명 덕에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얻은 정보라곤 공격을 할 수 없다는 게 끝인가.’

결국 사전에 관리인이 언급했던 말 그대로였다. 상호간에 전투가 불가능할 뿐,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전무했다. 그래도 지배자가 직접 관여한 만큼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건만, 괜스레 아쉬움만 깊어졌다.

‘그래도 행동반경이 넓어진 게 어디냐. 상점이나 가자.’

어차피 주 목적은 타워. 타워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하나로 만족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민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때,

“아, 아. 잘 들리십니까? 반갑습니다. 관리인입니다. 안전지대에 오신 전사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민성은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타워의 단면에선 익숙한 엘프의 모습이 스크린의 영상처럼 펼쳐져 있었다. 엘프는 마이크 테스트하듯 몇 번 헛기침하곤 말을 이었다.

“꽤나 많은 분들께서 안전지대를 찾아주셨군요. 일단 많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갑자기 여러분 앞에 나타난 이유는, 전에 루…… 다른 관리인께서 빼먹으신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투를 보니 이번에는 임시로 관리인의 탈을 썼던 루크가 아닌 진짜 관리인인 모양이었다.

“이미 몇몇 분들은 노점 설치에 실패해서 아시겠지만, 여러분들이 지금 밟고 계시는 안전지대는 엄연히 지배자님의 영역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지배자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전지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관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성은 아이템창에서 1성짜리 잡템인 ‘꼬리 흔들기’ 조각을 꺼냈다. 그리곤 그것을 바닥에 놓으려 했다.

띠링-

[개인 소유지가 아닙니다. 상점을 등록할 수 없습니다.]

[개인 소유지가 아닙니다. 물건을 놓을 수 없습니다.]

“…….”

민성이 조용히 조각을 집어넣는 사이, 엘프는 말을 이어갔다.

“그럼,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겁니다. 땅을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죠. 혹자는 돈으로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주셨는데, 아닙니다. 모두가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방식인, 추첨방식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응?’

추첨방식이라 함은 흔히 현실에 있는 복권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고 모든 전사분들에게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다. 추첨 대상자는 지금 안전지대에 들어와 계신 7,258명의 전사분들을 대상으로 한정합니다.”

딱-

잠시 말을 멈춘 스크린 엘프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보였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종이가 한 장씩 갔을 겁니다. 안에는 1부터 7258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습니다. 제가 호명하는 숫자를 갖고 계신 전사분께 일정량의 땅이 돌아갈 겁니다.”

“…….”

민성은 그의 손을 멀뚱히 쳐다봤다. 뭔가 착오가 있는지 손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 그리고 총 공적치 정산에 참여하셨던 10분은 따로 추첨을 하지 않아도 일정량의 땅이 지급되오니, 이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건 좀 미리 말해라.’

“참고로 다음 추첨기간은……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음 전투가 종료돼야 재추첨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외에도 엘프는 안전지대 내부에선, 생각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땅 앞으로 즉시 이동가능하다는 말을 남겼다.

“중요사항은 전부 전달해드렸으니, 그럼! 추첨을 시작합니다!”

엘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제발! 내 집 마련의 꿈을 여기에서라도!”

“정신 차려. 다음 전쟁 전까지라잖아. 전세랑 다를 게 뭐야.”

“그게 어디야! 집 없는 사람의 설움을 알아? 어? 제발 631번! 631번을 불러!”

민성은 종이를 붙잡고 발광하는 사람들을 한심스럽게 쳐다보곤 걸음을 옮겼다. 간간히 누군가의 번호가 불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흠, 내 땅이라……. 비밀스러운 집만으로도 충분한데. 뭐, 공짜니까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

냉정하게 따져보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왕 받은 것 구경이나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슉-

‘어?’

분명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건만, 바로 정면에 커다란 타워가 보이자 당황한 민성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단순히 땅을 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만으로 이동될 줄은 몰랐다.

‘여기가 내 땅인가?’

민성은 타워에서 조금 떨어진 우측 평지를 자세히 살폈다. 10평 남짓한 크기의 땅에서 초록빛깔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민성이 그 안으로 들어가자,

[지배자가 대여한 안전지대]

임시 소유자: 강민성

등급: ?

설명: 지배자가 임시로 내준 터전.

제한 기간: 다음 전투가 종료될 때까지.

특이사항: 임시 소유자는 터전 안에서 전투를 제외한 어떠한 행위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간단하면서도 애매한 설명이 나타났다.

‘뭐 어쩌라는 거야.’

설명만 가지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실험을 토대로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았다.

“내 땅!”

민성이 눈가를 긁적이는 사이, 허공에서 사람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가 내 땅이구나…….”

“그래도 죽기 전에 땅 한 뙈기는 마련했구나.”

한이라도 맺혔는지, 자기 땅을 찾아간 사람들은 울먹이거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땅을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민성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저들도 땅에 관련된 정보가 필요할 거고. 땅에 상당히 집착하는 만큼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겠지? 일단 상점에 들렀다가 나와서 물어보자.’

적당한 칭찬과 함께 슬쩍슬쩍 질문을 던지면 분명 알려줄 것이었다. 설령 알려주지 않는다 해도, 그저 약간의 수고를 하면 될 뿐이었다. 땅에서 나온 민성은 타워 앞으로 다가갔다.

띠링-

[총 공헌도 1위 강민성 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타워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네.”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친절하게 메시지가 나오니 다행일 따름이었다.

덜컥-

그러자 타워의 양쪽 문이 안으로 젖혀지고 따스한 빛이 그 자리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뭐, 뭐야! 타워가 열렸어!”

“방송에서 나왔던 공헌도 정산자들 중 하나인가 봐?”

“대박…… 누구야?”

뒤에서 요란스러운 음성이 들려왔지만, 가만히 빛을 응시하던 민성은 주저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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