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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104화 (104/303)

# 104

104화 - 안전지대 (3)

“얼른 갈 길 가라.”

“하지만…… 저기…….”

“저기고 나발이고 제발 가! 제발!”

민성의 고압적인 어조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들과 함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소녀는 무엇이 그리 아쉬운지 재차 고개를 돌려 민성을 바라봤다. 하지만 민성은 야속하게도 그 말을 끝으로 그녀를 봐주지 않았다.

‘후…….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네.’

“안정거리를 유지해라. 보기보다 민첩한 놈이다. 유사시에는 테이저 건을 사용해도 좋다.”

“예!”

민성이 짐 덩이들을 치워내는 사이, 요원들은 재빨리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젠장……. 진작 좀 가라니까.’

민성은 슬쩍 눈을 돌려 소녀와 그녀의 일행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곤 그들을 마지막으로 요원들은 민성의 주위를 완전히 포위했다. 하지만 전처럼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거리를 둔 채 무언가를 겨누고 있었다. 거리가 있는 탓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언뜻 보기엔 총의 외관과 상당히 흡사해 보였다.

‘뭐지? 미친놈들……. 설마 총인가?’

만약 그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그는 항상 염려했었던 최악의 상황에 몰린 것과 다름이 없었다.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피니 총 같기도 했다. 미친놈들이 결국 최악의 수를 꺼내든 것 같았다.

‘아냐. 아무리 미친놈들이더라도 이런 곳에서 쏠 수 있을 리 없지.’

민성은 낮게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설령 총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사람이 붐비는 장소에서 쉽사리 사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거기다 역으로 생각할 경우, 오히려 그간 그가 훈련했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게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학습효과가 부족한가 봐? 아니면 그 빌어먹을 선생 년의 교육시간이 짧았나? 그년도 선생 자격이 없네.”

민성은 피식 웃으며 정면에 위치한 이종범을 도발했다. 부하라는 단어에 순간 이종범의 얼굴이 작게 일그러져들었다. 하지만 아주 미묘한 변화였기에 누구도 보지 못했다.

“뭐라고 지껄이건 상관없다. 어차피 범죄자의 허튼소리에 불과하니까.”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뭘 상관없긴 상관이 없어, 이 시발놈아. 되도 않는 누명 씌워서 도망자 신세 만든 새끼가 누군데. 아, 혹시 붕어새끼세요?”

민성은 한껏 입꼬리를 올리곤 부장을 비웃었다. 하지만 몸은 언제든 놈을 향해 달려들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쓰레기가 궁지에 몰리니 별 헛소리를 다하는……. 조준!”

민성이 몸을 살짝 구부리자, 이종범은 별안간 손을 위로 올렸다.

착-

그와 동시에 요원들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라.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거리를 내주지 마라. 위험한 놈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경우 바로 발포해.”

“예!”

그의 민감한 반응에 민성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큭, 어지간히도 쫄았나 보네. 그래서? 쏘려고? 내가 피하면 꽤나 재밌어지겠네.”

민성이 한껏 이죽거렸지만, 부장은 무표정하게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그러자 민성도 서서히 웃음을 죽여 갔다. 분명 저번 전투로 근접전은 어렵다는 걸 깨달았을 터. 하지만 단순히 포위만 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시간 끈다고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설마 그 선생놀이 하던 여자를 기다리는 건가?’

“쏴라!”

민성이 생각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종범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파직-

그와 동시에 요원들의 총구에서 기다란 와이어가 민성을 향해 빠르게 뿜어져 나왔다. 줄 끝에는 고압전류가 흐르는 탄창이 달려 있었다.

‘총알이 아니야?’

분명 총이라고 생각했건만. 예상에서 한끝 빗나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가 됐건 일단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젠장. 다른 스킬들로는 피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후……. 쓰기 싫었는데.’

“속도를 높여라.”

민성이 작게 중얼거리자 순간, 그의 눈에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이 뚜렷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지된 것만 같은 공간. 전류가 흐르는 와이어가 해파리처럼 흐물거리며 느리게 날아왔다.

‘좋아.’

피식 웃은 민성은 대검을 들고 지체 없이 몸을 움직였다.

퍽-

전류가 흐르는 탄창들이 애꿎은 땅에 처박혔다.

“어? 놈이 없어졌다!”

한순간에 목표물을 잃은 요원들은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민성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어어어어!”

그리곤 몇몇 탄창은 이 광경을 구경하던 시민들의 몸에 박혀들었다. 고압전류가 몸 안을 휘돌자 사람들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며 몸을 벌벌 떨었다.

“부…… 부장님!”

“놈을 잡는 게 최우선이다. 나중에 나라 차원에서 보상을 해주면 그만이다. 당장 죽지 않으니까 놔두고 놈을 찾아라.”

이종범은 당황한 요원들의 감정을 수습하며 고개를 사방으로 돌렸다. 허나 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어디냐……. 어디로 사라진…….”

평소의 냉철한 모습과 달리, 부장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테이저 건을 재장전했다. 놈이 조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내면 즉시 발포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부하의 비명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보이는 것이라곤 크게 벌어진 살 틈 사이로 붉은 선혈을 뿜어내는 부하의 모습뿐. 놈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크헉!”

“커헉!”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왔건만, 이렇게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무력감보단 모멸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부장의 눈이 점차 시뻘게져갔다.

“사…… 살려줘!”

“으아아아! 죽기 싫어!”

사기를 잃은 부하들은 겁에 질려 하나둘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부장은 급속도로 무너져 내리는 포위망을 보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냐! 어디냐!’

그리곤 미친 듯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놈을 찾아 헤맸다.

쉭-

그때,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옅은 잔상이 그의 앞을 스쳐지나갔다. 이종범은 본능적으로 잔상을 향해 테이저 건을 쏘았다.

퍽-

하지만 목표를 잃은 탄두는 애먼 땅을 지졌다.

부장은 픽 웃으며 테이저 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미 부하들 중 태반이 죽어나갔다. 놈들은 나날이 강해져만 간다. 헌데 그는 현 상태를 답보하고 있을 뿐이었다.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능력자들을 상대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무력할 수가 있나. 이렇게 한심할 노릇이 있나.

“강민서어어어어엉!”

‘그렇게 외치지 않아도 곧 죽여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맛있는 건 가장 나중에 먹으라 했다. 그 맛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었다. 당장에 놈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민성은 살기를 머금은 미소를 흘리며 대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어……. 어머……니!”

그의 앞에 있던 요원이 갈라진 목을 붙잡고 바닥에 널브러졌다. 누군가의 가족, 혹은 누군가의 친구일 수도 있는 존재.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종범의 수하들이었다. 애초에 저런 전기 총을 들고 왔다는 것부터 그를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다는 것으로 들렸다. 한순간의 인정으로 살려주면 결국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게 뻔했다.

‘사람한테 개 목걸이를 채우려는 집단이 정상적인 집단이야? 또 모르지. 어디서 인체실험이라도 하고 있을지.’

당장이야 혼란한 사회에서 경찰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었지만, 결국 정의라는 가면을 덮어쓴 가식덩어리 집단이었다.

“젠장……. 시발! 나와! 나오라고! 어디야!”

“안녕?”

민성은 요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며 그의 복부에 칼을 쑤셔 박았다. 그리곤 다시 몸을 날려 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딨어…….”

민성이 다시 자취를 감추자, 요원들은 서둘러 눈을 좌우로 돌리며 그의 자취를 쫓았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비명만이 지옥의 재시작을 알렸다.

“후…….”

수련장에서의 시간이 없었다면 폭발적으로 증가한 속도에 먹혔을지도 몰랐다. 한동안 학살을 자행하던 민성은 차오르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곤 대검을 지면 쪽으로 크게 휘둘렀다.

철퍽-

대검에 엉겨 있던 고깃덩이들과 선홍빛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대검은 그제야 제 날카로움을 되찾은 듯 짙은 검은빛을 뽐냈다. 민성은 다시 대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곤 고개를 돌렸다.

모든 희망을 빼앗은 탓일까. 부하를 모두 잃은 부장은 홀로 고독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안쓰러움이나 동정심같이 사치스러운 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그가 가장 원했던 그림이었다. 이제 그 그림을 찢어발길 일만 남았다.

‘마무리 짓자.’

민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며 발을 뗐다. 반걸음. 발과 바닥이 떨어지는 순간, 엄청난 추진력이 몸에 붙는다. 이종범의 앞에 도착한 순간, 민성은 발바닥에 힘을 실어 바닥에 발을 갖다 댔다. 그와 동시에 그 동력을 이용해 대검을 휘둘렀다. 목표는 놈의 목이었다. 대검은 순식간에 부장의 목 언저리로 쇄도해 들어갔다. 지독한 악연에 마침표를 찍을 시간이었다.

“가시나무 숲.”

챙-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대검의 궤도를 바꿔 놨다. 그리곤 단검에서 굵은 가시들이 솟아올라, 일대를 뒤엎기 시작했다. 가시들이 접근하려 하자, 민성은 한 걸음 몸을 뒤로 물렸다.

‘이런 시발년이.’

스킬을 토대로 방해자를 유추해낸 민성은 이를 갈며 전방을 노려봤다. 거대한 가시덤불 위에는 요염한 자태를 뽐내는 여자와, 덩굴에 묶여 있는 이종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늦으신 것 아닙니까.”

“어머, 어쩔 수 없었단다. 난 너와 계약한 거지, 다른 하등한 아이들과 계약한 건 아니잖니? 애초에 너희가 마무리 지어야 했을 일이었는데 감사하다고 해야지.”

여자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이종범을 다그쳤다.

“감사……합니다.”

“착한 아이네. 그나저나 저 아이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강해진 것 같네? 성장기라 그런가?”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웃으며 단검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챙-

놈들의 머리 위로 도약했던 민성은 속도를 이용해 몰려드는 덩굴을 발판 삼아 바닥에 착지했다.

‘아까도 그렇고, 어떻게 아는 거지?’

또다시 공격이 가로막히자, 민성은 대검을 가다듬으며 시종일관 여유로워 보이는 여자를 노려봤다.

“흉포한 살기는 마음에 들지만 여전히 예의가 없네. 역시 그때 잡아서 가벼운 훈육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아쉽네.”

“…….”

여자의 말에 덩굴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엿보던 민성이 움직임을 멈췄다. 위치가 노출된 이상 체력을 뺄 필요가 없었다.

“살기를 통제할 줄 알아야 진정한 남자로 거듭나는 거란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누나의 품으로 오렴.”

여자는 교태로운 미소를 흘리며 민성에게 손짓했다. 사실 그녀가 민성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가 흘리던 살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지만, 누군가를 죽이고자 마음먹었을 때 드러나는 것이 살기였다. 보통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능력자라면 살기를 갈무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분명 살기가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위치를 노출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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