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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99화 (99/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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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 납치? (3)

“노력하시면 됩니다. 많이 하세요. 이상입니다.”

“……예? 어이고! 제가 귀가 길어서 그런지 잘못 들은 것 같군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노력 많이 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민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일그러진 관리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루비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그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내용이었다. 하물며 이런 공적인 공간에서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을 리 없었다.

“노오오오력이요?”

“네, 노력.”

‘루비가 없으면 노력이라도 많이 해야지.’

“이런 젠장……. 하나같이 정상이 없어! 얼른 들어가요!”

믿었던 민성마저 믿음을 배신하자, 엘프는 그의 등을 떠밀며 자리로 돌려보냈다.

“후……. 순위권에 있는 인간들이 이 모양이니 우리 차원도 글렀네, 글렀어.”

작게 중얼거린 엘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뗐다.

“어쨌건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공개석상에 부른 이유는, 그놈의 노오오오력에 걸맞은 시상식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갑자기 하기가 싫어지는군요. 후……. 그래도 시상은 해야겠죠.”

엘프는 그의 불만스러운 감정을 한껏 티 내며 손가락을 튕겨 스크린을 띄웠다.

“자, 주기 싫지만 일단 여기에 있는 10분께는 상당한 특권이 주어집니다. 뭐냐고요? 첫째로, 다음 시상식이 열리기 전까지 여러분은 타워의 상점을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코인이 있어야겠지만, 집을 팔든 땅을 팔든 알아서 마련하시고요.”

‘헐……. 대박!’

느닷없이 소환한 것치곤 꽤나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뱉는다. 민성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루비를 사용하려면 무조건 강제성이 짙은 소집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언제든 상점에 출입할 수 있다. 이건 상당한 메리트였다. 물론 코인이 없다면 무용지물에 가까운 특권이지만, 그에게는 엄청난 호재였다. 실제로 민성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심드렁한 모습을 보였다.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얼굴들을 하고 있군요. 싫으면…… 회수합니다? 큽…….”

엘프는 급하게 도리질하는 수훈자들을 보며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진작 그러셨어야죠. 자, 둘째론 안전지대 안에서 물건을 살 때, 10% 할인된 금액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뜬금없이 안전지대라고 하니, 지금 저 새끼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궁금하시죠? 안전지대란!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큽……. 거 농담이라니까, 정색 좀 그만들 하고요. 엉?”

엘프는 애먼 허공에다 삿대질하며 열을 올렸다.

‘안전지대?’

느닷없이 던지는 생뚱맞은 소리에 민성은 눈매를 찌푸렸다.

“저희 차원을 통제하시는 고귀한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있는 놈들에게만 아이템이 돌아가는 꼴들과, 차원을 위해 힘쓴 전사들을 박해하는 우매한 인간들을 보고 개탄을 금치 못하겠노라고.”

갑자기 근엄하게 돌변한 엘프는 허공을 처연히 바라보며 얘기를 지속했다. 민성은 정신병자 보듯 관리인을 쳐다봤다. 휙휙 바뀌는 성격은 도무지 종잡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결단을 내리셨으니! 그것은 바로! 현존하는 타워들 인근에 안전지대를 설립하시기로 결정하신 겁니다!”

“…….”

할 말을 잃은 수훈자들은 천장에 대고 부르짖듯 소리치는 관리인을 멍하니 바라봤다.

“몇몇 분은 얼추 눈치를 채신 모양인데, 표정들이 아주 그냥 물렁해진 과일마냥 썩으셨군요. 큽……. 하지만 고귀하신 분께서 직접 구매……. 아니, 계획하신 안전지대에는 많은 것들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민성은 관리인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을 추려보자면 대강 이러했다.

첫째, 안전지대에서는 폭력 및 살인행위를 제외한 그 어떤 일이라도 가능하다.

둘째, 재차 강조하지만 안전지대에서는 그 어떤 무기도, 폭력행위도 불가하니 행여나 싸울 생각은 말아라. 흔히 인간이 말하는 범법행위 자체도 안 된다.

셋째, 안전지대에는 오로지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들어갈 수 있다.

넷째, 앞으로 너희가 하는 걸 봐서 뭐라도 더 만들어주겠다. 그러니 더욱 분발해라.

‘능력자만이 이용가능하다는 점은 좋네. 그나저나 뭐든 가능하다면 결국 시장 같은 게 생겨날 가능성이 높겠어.’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돈이 오가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론 관리인이 말한 안전지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아무리 안전이 확보되더라도 땅이 좁으면 장사는커녕 사람 발 디딜 곳도 없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 예상이 맞는다면, 필요한 건 결국 현금일 텐데. 결국 현금 많은 놈이 유리한 것 아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지만 결론은 한 가지였다. 현금. 즉, 돈 많은 놈이 장땡이라는 소리였다. 민성은 슬쩍 고개를 돌려 수훈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과거부터 이제껏 독점하다시피 아이템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상당히 민감한 주제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속내를 그리 쉽게 보일 양반들은 아니지.’

민성은 눈을 돌려 검집을 툭툭 두드리는 검마와, 염주를 굴리는 혜정을 슬쩍 바라봤다.

“자, 대망의 세 번째는……. 없습니다. 큽…….”

하지만 수훈자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엘프를 쏘아봤다.

“이번에는 농담이 아니고 진짜예요! 특전은 여기서 끝이에요! 아니, 그럴 거면 왜 굳이 여기로 불렀냐고요? 제가 심심해서 큽…….”

“…….”

“세 번째 특전은 없지만! 아직 한 가지 특전은 남아 있습니다! 같은 소리 같지만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이런 미친놈을 봤나.’

결국 그게 그 소리 아닌가. 민성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엘프를 노려봤다. 전투가 없어도 타워에 입장할 수 있게 해준 일은 분명 감사했지만, 더 이상 이런 어린아이의 장난에 장단을 맞추고 싶지 않았다.

“눈빛들이 아주 초롱초롱하군요. 좋습니다, 큽…….”

엘프는 죽일 듯 그를 바라보는 수훈자들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특전은 바로! 위대하고도 고귀하신 저의 상관님과의 유쾌한 식사자리입니다!”

엘프의 말이 끝나는 순간, 수훈자들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상관?’

호기심이 동한 민성은 관리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관리인의 상관이라면 분명 그보다 높은 인물일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의 새로운 이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내 심드렁하던 분들이 이제야 관심을 좀 가진 것 같군요. 좋습니까? 엉? 좋아요?”

끄덕-

“…….”

고갯짓하는 수훈자들을 멍하니 보던 관리인은 곧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흥. 어쨌건 지금 저의 상관님과의 식사자리가 준비되어있으니, 곧바로 이동시켜드릴 겁니다. 단, 1등만.”

일순간, 모든 수훈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관리인을 노려봤다.

“큽……. 전 전부라고는 안 했습니다? 어이구 속이 다 시원하네.”

당황한 수훈자들은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수훈자들의 얼빠진 표정이 어지간히도 재밌었는지, 엘프는 깔깔거리며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엘프는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줄 알고 의자에 장난 좀 쳐놨죠. 큽……. 원래 세상은 1등을 위해 굴러가는 거예요. 불만 있으면 네가 관리인 하시든가. 아니면 다음 전투에서 총 공헌도 1위를 하시든가. 근데 언제 벌어지려나? 큽……. 자, 이제 공헌도 정산식은 전부 끝났으니,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드리도록 하지요.”

“야, 이 개새…….”

엘프가 손가락을 튕기자, 수훈자들은 그제야 욕지거리를 뱉으며 몸을 벌떡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까지였다. 몸을 채 다 일으키기도 전에, 수훈자들은 마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후……. 확실히 꺼졌지?”

잠시 허공에 손을 흔들던 관리인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 시발. 이 짓도 힘들어서 못 해먹겠네. 그러니까 인원 좀 추가하자고 그렇게 말을 해도! 들어 처먹어야 말이지! 아오!”

‘정신병자가 관리인이라니. 지구도 참 답이 없구나.’

유일하게 자리에 남아 있던 민성은 헛웃음을 흘리며 엘프의 만행을 가만히 쳐다봤다. 아까의 장난기는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니, 자르도 있는데 왜 날 시키냐고! 이렇게 부려먹을 거면 게임제작을 자르한테 시키든가! 생각할수록 열 받네. 으아아아아!”

관리인은 의미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며 한참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곤 이윽고 안정을 찾았는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엘프의 모습은 오간데 없어지고, 낯선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 밴 반들거리는 기름기와 후줄근한 모습을 한 청년은 어딘가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민성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확실히 이전과 다른 관리인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를 신경 쓰이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게임 제작이라…….’

일반인이 한 말이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지구의 관리인이나 되는 존재가 게임 제작이라니. 민성은 순간, 버섯과 관리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나 싶었다. 분명 버섯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게임과 관련된 메시지가 언급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섣불리 버섯과 연관 짓기에는 아직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았다.

“뭘 봐. 엉?”

본 모습으로 돌아온 루크는 아직 성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씩씩거리며 민성을 노려봤다. 그간 연이어 터지는 버그 탓에, 루크는 철야에 철야를 거듭해야만 했다. 토토가 정상으로 가동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지배자의 질책과 63빌딩 낙하체험일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버그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의 심신은 점점 더 피폐해져만 갔다. 하지만 루크는 정작 버그를 만들어내는 당사자가 눈앞에 있음을 알지 못했다.

‘이 새끼가……. 왜 나한테 성질이야.’

“후……. 진짜, 더러워서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뭐 해? 일어나. 얼른 가자고.”

루크는 저 혼자 중얼거리더니, 애먼 민성을 독촉했다. 하지만 민성은 그저 의자에 앉아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아, 맞다.”

루크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제야 민성은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아. 아. 근데 왜 저한테 성질입니까?”

민성은 목소리가 나오는지 확인하곤 루크를 노려봤다.

“뭐?”

“저는 엄연히 공헌도 1위를 차지하며 저희 차원에 이바지한 인간입니다. 아무리 그쪽이 관리자라 하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말 좀 곱게 쓰시죠.”

민성의 차가운 말투에 루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미친놈마냥 웃음을 터트렸다.

“큽……. 이제는 인간한테까지 멸시받고, 하……. 환장하겠네. 너, 무슨 배짱이냐?”

아무리 지금의 그가 게임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폐인 개발자라 하더라도, 엄연히 지배자의 직속 수하였다. 한낱 인간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위치가 아니었다. 루크가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살기가 가득 묻어나와, 민성의 몸을 옥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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