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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97화 (9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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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 납치? (1)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인간? 내가 내 첫 하수인을 버리고 갈 것 같나! 아니면 인간, 혹시……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른 주인을 찾은 건가! 그런 건가!”

티노는 길길이 날뛰며 꼬리를 들어 민성의 머리를 두들겨댔다.

“아니, 아니요! 그게 아니고! 아니 좀!”

“으어어어어어억!”

민성은 티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녀석의 몸을 붙잡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티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민성이 공기와 씨름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거 완전 미친놈 아니야? 경비병은 뭐 하는 거야? 저러다가 애먼 사람이 다치면 어쩌려고 제지를 안 해?”

“그러니까……. 어?”

게이트에서 나온 한 무리는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중 한 남자가 민성의 얼굴을 보곤 급히 그의 일행의 입을 막았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너 설마 저 미친놈 때문에 그래?”

“쉿, 들을라. 입 조심해. 너 영상 못 봤어? 저놈, 요즘 정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는 강민성이라고. 고환 나가기 싫으면 입 간수 잘해.”

“뭐?”

멋모르고 민성의 주변을 걷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접하곤 재빨리 민성의 곁에서 떨어졌다.

“젠장……. 저번 일도 그렇고 저런 범죄자 새끼가 게이트 앞에서 서성거리는데, 자각사는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남자는 모기 날갯짓에 가까운 소리로 중얼거리며 민성을 노려봤다. 심지어 민성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게이트 앞은 교통사고가 난 도로마냥 정체된 상태였다.

“이렇게 정보에 둔감해서야. 아는 사람만 아는 소문인데. 자각사의 은인이라는 소리가 있어. 혜정 스님의 손녀딸을 고친 명의라고 하더라. 그래서 무사들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있는 거 아냐.”

남자의 말대로 보다 못한 몇몇 무사들이 민성에게 접근하려 했으나, 수라의 제지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다.

“쯧. 쥐뿔도 없는 놈은 서러워서 물건이나 제대로 팔 수 있겠나.”

“어! 움직인다!”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던 민성이 마침내 몸을 움직였다.

“크흠. 앞으로 더욱더 분발해라, 인간!”

“예, 예.”

민성은 결국 ‘한 번 티노 님의 하수인은 영원한 티노 님의 하수인입니다’를 외치고 나서야 티노의 분노를 풀 수 있었다. 물론 티노의 오해로 벌어진 일이었지만 구태여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녀석과의 재결합이 더 기뻤기 때문이었다.

“영광으로 생각해라, 인간.”

‘녀석…….’

피식 웃은 민성은 티노가 내민 작은 앞발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악수는 또 어디서 배웠나 싶었다.

‘이제 돌아가 볼…….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망할 범죄자 새끼.”

시선을 돌리니 곱지 않는 눈빛들이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대개 불안함을 띠고 있었지만, 일부의 눈 속에는 짙은 살기가 맴돌았다. 영문을 모르는 민성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어휴, 눈빛 좀 봐. 정말 사람 하나 잡게 생겼네. 이래서 사람은 관상이 중요한 거야.”

흉흉한 수군거림이 귀를 간질였다. 그제야 대강 사태를 파악한 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범죄자라는 타이틀이 지금 이 상황을 만든 게 분명했다.

“큭.”

진실도 모르는 것들이 그저 언론에 휩쓸려 지레 겁먹고 경계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이템창.”

어차피 다른 신분도 있겠다, 기왕 이렇게 된 것 그들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마음먹었다. 민성은 검은빛이 감도는 대검을 꺼내 어깨에 걸치듯 올려놨다. 그리곤 유독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이트 앞으로 걸어갔다.

움찔-

“여, 옆으로 가!”

민성이 다가오자 당황한 사람들은 서둘러 옆 사람을 밀치며 길을 터주었다. 그 모습은 흡사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그것과 같았다. 민성은 게이트 입구까지 생겨난 작은 길을 바라봤다. 우민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곤 유독 중얼거리는 소리를 크게 낸 한 남자의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갔다.

“흥, 빌어먹을 새……. 어어?”

분명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건만, 언제 눈앞까지 다가왔는지도 몰랐다. 남자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할 말이 있으면 앞에서 말해. 그렇게 숨어서 지랄하지 말고, 다 들리니까.”

냉혹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에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성은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벅-

묘한 정적 사이로 들리는 것은 오직 민성의 발소리뿐이었다.

‘악명도 쓸모가 있네.’

개똥도 쓸 곳이 있다고, 이럴 때는 악명도 제법 도움이 되는 듯했다. 물론 악명이 작금의 상황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말이다. 민성은 인파 사이를 당당히 걸으며 오만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게이트를 나갈 때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푸하.”

누군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말이 터져 나왔다.

“와……. 움직임 봤냐? 난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그게 사람의 움직임이야? 분명 비슷한 시기에 타워로 갔다고 들었는데.”

짧지만 강렬했던 민성의 행보는 그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틀어박혔다.

“인간. 배짱도 좋다.”

게이트를 나오자, 민성의 어깨에 걸터앉아 있던 티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수많은 인간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 티노는 민성이 자칫 삼엄하다 못해 냉랭한 분위기에 먹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성이 혼란에 빠질 경우를 대비해 꼬리를 쳐들고 뺨을 후려갈길 준비를 했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민성은 오히려 수많은 인간들을 압도하고 잘도 빠져나왔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멍청한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어딘가 달라진 것만 같았다.

“아니에요. 지들이 지레 짐작하고 겁먹은 것뿐이죠.”

민성은 희미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흠……. 그런 건가?”

티노는 잘 모르겠다는 듯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보다 간만에 만났는데,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요?”

아직 태어났는지도 모를 여자 친구와 함께 가려 했던 데이트코스를 양보할 의향이 있었다.

“구경은 충분히 했다, 인간. TV나 보러 가자.”

여전한 녀석의 모습에 민성은 작게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멈춰라.”

그리곤 대숲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대검을 도로 넣으려던 민성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뭡니까?”

전방에는 갖가지 무기를 든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굳은 얼굴로 무기를 꽉 쥔 꼬락서니들을 보니, 아무래도 좋은 의도로 부른 것 같지는 않았다.

“범죄자 새끼를 그냥 보내줄 수는 없지. 그래서 우리 같은 헌터들이 존재하는 거고. 자각사의 비호를 받는다고 꽤나 기고만장한 모양인데 그것도 여기까지다.”

남자는 검을 빼들어 그의 심장 쪽을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파티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를 받쳤다.

‘뭐지.’

민성은 대표로 나선 남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여태껏 상대해왔던, 강자가 내뿜는 그 특유의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방심은 금물이었지만, 결론은 결국 현상금을 노리는 피라미라는 소리였다. 피식 웃은 민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 같은 헌터들이 존재하는 거고. 어휴, 븅신들. 그럼 진작 나서지 그랬어.”

민성은 남자의 말투를 흉내 내며 그를 한껏 비꼬았다.

“뭐?”

“자각사의 비호? 범죄자? 개소리하네. 그냥 쫄려가지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 돈이 아쉬워서 이러는 거잖아. 왜? 내 말이 틀려?”

민성은 한껏 빈정대며 벌게지는 남자의 얼굴을 감상했다.

“이 범죄자 새끼가…….”

“지능 수치가 달리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데, 여기도 엄연히 자각사의 구역이야, 병신아.”

민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게이트를 지키던 무사들 일부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꼴에 리더라고 한 자리 걸치고 있는 모양인데. 뒤에 있는 새끼들도 고생하네. 아, 아닌가? 저런 병신을 대장이랍시고 따라다니는 걸 보니, 너희 수준도 참 알 만하다.”

“으으……. 이놈!”

계속되는 빈정거림을 이기지 못한 남자가 잔뜩 흥분하여 민성에게 달려들었다.

“슬래시!”

남자의 검이 강렬하게 쇄도해 들어왔다. 하지만 민성은 슬쩍 몸을 돌려 공격을 피해냈다.

“이놈! 이놈!”

‘너무 느려.’

민성은 남자의 연이은 공격을 피해내며 혀를 찼다. 예전의 그였어도 여유롭게 피해냈을 공격이었지만, 수련을 끝낸 지금의 그에게는 그저 어린아이가 흔드는 장난감 칼처럼 느껴졌다. 검의 궤적까지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적당히 해라.”

민성은 머리로 날아오는 검을 피해내며, 대검을 들어 검면으로 남자의 몸통을 가차 없이 후려쳤다.

“커헉!”

복부에 민성의 일격을 허용한 남자는 땅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죽은피를 게워내는 걸 봐선, 분명 내장 몇 군데는 상했을 것이다.

“대장!”

수하들이 황급히 다가가려 했지만, 그들은 곧 급하게 달리기를 멈췄다. 대검을 어깨에 들쳐 멘 민성이 남자에게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쿨럭! 으으……. 사……. 살려만…… 주십쇼.”

남자는 피를 게워내는 와중에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민성을 올려다봤다.

“흠.”

하지만 정작 민성의 관심사는 남자가 아닌 다른 것에 있었다. 민성은 남자가 떨어뜨린 검을 집어 들곤 내용을 살폈다.

[부식된 장검 +1]

등급: ★

공격력: 19~28(+0)

특수능력: 무

혹시나 했지만 역시 별 볼 일 없는 아이템이었다. 민성은 그의 옆에 검을 툭 던지곤 쪼그려 앉아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자……잘못…….”

“대장놀이 하는 건 좋은데, 그것도 상대방을 보면서 해야지. 주제를 모르면 깝치지 말고 조용히 살아. 그게 장수하는 길이니까.”

마디마디마다 전해져오는 서늘함에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민성은 남자의 어깨를 몇 번 두들겨준 뒤, 몸을 일으켰다.

흠칫-

민성이 시선을 돌리자, 공포에 휩싸인 눈길들이 그를 불안하게 응시했다. 민성은 제자리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잠시 쳐다보곤 등을 돌렸다. 민성이 멀어지자, 수하들은 그제야 남자의 곁에 다가갈 수 있었다.

“대책부 놈들……. 8억도 부족한 것 같은데…….”

일방적인 폭력에 가까웠던 전투를 지켜본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사라지는 민성의 등을 바라봤다.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 인간.”

얼추 전투가 끝난 것 같자, 잠시 떨어져 있던 티노는 다시 민성의 어깨에 걸터앉았다.

“그런가요?”

저 멀리 현실의 자각사가 보이자, 민성은 피식 웃으며 대검을 아이템창에 넣었다. 실제로 버섯과 타워에서의 사투, 험난한 현실은 그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놨다. 첫 버섯에서 헤매고 쉽게 좌절하던 옛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예전의 멍청한 모습보단 지금이 훨씬 낫다, 인간.”

“그쵸?”

그 역시 착하고 어딘가 어수룩했던 과거보단 실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현재가 낫다고 생각했다. 민성은 티노와 가벼운 잡담을 나누며 자각사를 빠져나갔다.

37. 납치?

*

민성이 자각사를 나오는 그 시각. 세계의 이목은 TV의 어느 한 채널에 고정되어 있었다. 브라운관 속에는 남자건 여자건 한 번쯤 고개를 돌리게 만들 법한 외모를 가진 엘프가 선명한 웃음을 짓고 있다. 어디서 촬영하는지 엘프의 뒷배경은 도화지처럼 새하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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