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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95화 (9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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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 내실을 다지다. (4)

“가만있자. 아루 씨랑 신 씨의 전화번호가……. 여보세요?”

메모장을 뒤적이던 민성은 이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

그 후, 문을 이용해 건대 쪽으로 자리를 옮긴 민성은 카페에 자리 잡고, 앞서 불렀던 두 사람을 기다렸다.

“어, 엄마. 나 이번에 계절학기 들어야 해서 못 내려갈 것 같아. 어? 괜찮아! 서울은 그나마 치안이 좋아서 걱정 안 해도 돼. 광주는 괜찮아? 안 그래도 뉴스에서 폭발사곤지 뭔지 터졌다고 해서 걱정되는데…….”

“여기에 미팅술집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도 실패하면 올해도 글러먹었다고 생각해라.”

방학기간임에도 카페 내부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학생들과 밤을 기다리는 남녀들로 묘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좋을 때다. 원래대로였다면 나도…….’

분명 저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었지만, 당연했던 일상이 지금은 왠지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다고 후회되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그저 묘한 감정이 올라올 뿐. 잠시 카페를 둘러보던 민성은 미동 없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나오려나.’

사실 그에 비하면 두 사람의 능력은 확연하게 부족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민성은 그들과 함께 탐사를 진행하기를 원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적어도 그와 이미 합을 맞춰봤던 이들이었다. 그 경험은 혹시 모를 전투에서 꽤 유용하게 작용해줄 것이다. 더군다나 생판 모르는 장소로 가는데 아군은 조금이라도 많은 편이 좋았다.

‘그나저나 정말 될 줄이야.’

건대에 도착하기 전, 민성은 만복 노인에게 받은 새로운 신분을 확인했다. 즉석 사진기에서 찍은 사진을 들고 근처 동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증 발급을 신청했었다. 혹시나 했던 그의 기우와 달리, 컴퓨터를 두들기던 직원은 일주일 뒤 찾으러오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일부러 자리에서 서성이며 직원의 눈치를 살폈었지만, 특별히 신고하려는 낌새는 발견할 수 없었다.

‘고간 킬러인지, 고환 킬러인지는 안녕이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살자.’

“다들 오랜만입니다.”

커피를 홀짝이던 민성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연인지, 이신과 아루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민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걸어 들어오는 일행을 맞이했다.

“…….”

“……누구냐?”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아차 싶었던 민성은 화장실로 들어가 다시 인피면구를 벗어야만 했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민성이 마스크를 슬쩍 내려 보이자, 그들은 그제야 민성의 얼굴을 알아보고 놀라움과 당혹감을 드러냈다.

“꺅!”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아루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탄성을 질러댔다. 단순한 착각이라 여기기엔, 아까의 낯선 남자와 입고 있는 옷이 같았다.

“뭐예요? 뭐예요? 아루한테도 알려줘요!”

“오랜만.”

아루의 호들갑과 달리, 눈을 동그랗게 뜬 이신은 변함없이 짧은 단어로 그의 뜻을 전해왔다.

“아루도 오랜만이에요. 근데 뭐예요?”

아루 역시 한결같이 부담스러운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민성은 연이 닿아 우연히 얻은 아이템이라고 해명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민성은 은근슬쩍 얼굴에 손을 뻗는 아루를 떼어내며, 재차 그들을 환영했다.

“어차피 코앞. 괜찮다.”

건국대 양궁과 소속으로 활동 중인 이신은 어차피 자취방이 코앞이라 했다.

“아루도 가까워요!”

아루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방을 바라보던,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 역시 이 부근에 산다고 했기에, 일부러 약속장소를 건대로 잡았었다.

“바쁘실 텐데도 다들 제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 네 옆, 제일 재밌다.”

이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받아온 커피를 조금씩 들이켰다.

“아루도요! 아참, 그리고 이신 씨! 이능력자 대책부에 등록은 하셨어요? 아루는 했거든요. 요즘 현상금 헌터들이 하도 기승을 부려서…….”

“했다.”

‘역시.’

아루는 몰라도 이신은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이신은 이미 공인이었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민성은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흥. 아루는 헌터들이 싫어요. 다들 돈에 눈이 멀었어요.”

“마찬가지.”

“아니, 아루가 능력자 등록하러 대책부에 가는데, 글쎄 대책부 앞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는 거예요! 아루는 뭔가 했었는데, 알고 보니까 헌터들이 아직 등록을 하지 않은 능력자들을 잡아 상금을 받으려고 그러는 거였어요!”

그들은 돌아가는 사회의 분위기를 오징어 삼아 열심히 씹어댔다. 그들의 얘기를 담담히 듣고 있던 민성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저도 정부가 능력자들을 대처하는 방법에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가리 쪽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요.”

민성은 그를 쫓던 이종범과 그의 곁을 따르던 여인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하지만 무책임한 힘. 너무 많다.”

이신의 의견은 나름 합당했다. 그간 크고 작은 이슈가 된 범죄는 대개 능력자의 소행이었다. 아무리 헌터와 대책부로 압박을 가해도, 범죄를 저지를 놈들은 결국 죄를 짓는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도 있겠지.’

단순히 대책부와 대립했단 이유로 지금까지도 범죄자라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분명 그와 같이 억울하게 수배범으로 몰린 경우도 있을 것이었다.

“아루가 듣기론, 그나마 이번에 바뀐 정책도 정치가들 몇몇이 타워에 끌려가서 바뀌었다는 말이 있어요. 흥, 역시 지들도 직접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니까요!”

흥분한 아루는 책상을 탁탁 내려치며 계속 말했다.

“게다가 민성 씨가 나왔던 영상이 퍼지니까, 사람들 인식도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영상이라는 말에 얼굴을 찌푸린 민성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고간을 가리던 남자를 떠올렸다.

“민성 씨가 대활약했던 전투영상 말이에요! 누가 찍었었나 봐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능력자들을 나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거든요.”

“아……. 괜찮아요. 저도 봤어요.”

민성은 고개를 저으며 신이 나 핸드폰을 보여주려는 아루를 제지했다.

“근데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여태껏 타워 내부와 관련된 별다른 정보가 없었잖아요.”

“하지만 영상을 보고 나선, 아무래도 자신들도 언제든 전투에 끌려갈 수 있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모양이군요.”

아루는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흔들었다.

‘하여튼 지들 눈으로 직접 봐야 믿지. 한심하긴.’

본디 인간이라는 족속은 누군가를 쉽사리 믿지 않는다. 직접 그 상황을 직면하거나, 눈으로 그 상황을 간접체험하기 전까지는.

“아루가 생각하기에는 이제 능력자들의 처우가 점점 좋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아루는 급선회한 능력자 우대정책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초창기. 더 두고 봐야 한다.”

이신의 말에 모두가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한 걸음 떨어져 냉철하게 상황을 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나저나 아루는 무슨 일로 부른 거예요?”

아루는 민성을 빤히 쳐다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니까…….”

민성은 만복 노인과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던전 탐사요? 타워 말고도 그런 곳이 있었단 말이에요?”

“노인이 한 말. 미덥지 않다.”

민성은 각기 다른 반응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저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에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모르죠. 그래서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여러분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입니다.”

“아루는 궁금한 게 있어요!”

“네, 물어보세요. 참고로 여러분이 함께 하실 경우 착수금 5억, 마무리 15억은 3등분할 겁니다.”

새로이 받은 신분을 제외하곤 모든 정보를 공개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50억에 6억……. 건물주 아루…….”

작게 중얼거리던 아루의 눈이 몽롱해졌다.

“아루씨. 궁금하시다는 게?”

“아니에요! 아루는 꼭 가고 싶어요!”

‘좋아. 한 명은 됐고.’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신을 바라봤다.

“다른 쪽. 몇이나 오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노인이 준 정보에 따르면 탐사에 참여한 곳은 미국과 대설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모르죠. 그 외에도 더 있을지.”

민성의 말에 이신은 재차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쯧, 너구리같은 노인네.’

증거물을 보여주는 방법이 신뢰를 사는 지름길이었다. 타버린 종이가 못내 아쉽게 느껴졌다. 민성은 그저 커피를 마시며 이신의 선택을 기다렸다. 커피 잔이 바닥을 보일 때쯤, 이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겠다.”

이신은 옆에 놓인 그의 활을 쓰다듬으며 민성을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10분 드릴게요. 그 안에 생각이 바뀌시면 말씀해주세요. 재차 말씀드리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저도 자신할 수 없어요. 막말로 목숨을 위협받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신 뒤에 결정하셨으면 해요.”

할 말을 끝낸 민성은 잔에 남은 커피를 마저 비우고는, 10분의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틱-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와 동시에 민성이 입을 열었다.

“10분이 지났군요.”

민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앞의 두 사람을 바라봤다. 누구 하나 의견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제 환불하신다고 떼써도 소용없어요.”

민성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그들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광해군 묘지. 언제?”

“출발은 3일 뒤예요. 그러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그전에 미리미리 준비해두세요.”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었다. 그 후, 던전 탐사 토의를 끝낸 민성들은 갖고 있던 정보들을 공유하며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

한동안 열띤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삼 일 뒤를 기약하며 카페를 나왔다. 민성은 멀어져가는 그들의 등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윽고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민성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나름 유익한 자리였다. 그들의 도움을 약조 받았을 뿐더러, 몰랐던 정보도 여럿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민성은 내내 듣기만 했을 뿐, 그가 알고 있던 어떠한 정보도 풀지 않았다. 분명 그들의 도움을 원했지만, 완전히 신뢰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미지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맺은 동맹에 불과했다.

‘입은 무거울수록 좋고, 사람은 적당히 믿을수록 좋으니까.’

완전한 신뢰는 언젠가 차가운 비수가 되어 심장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민성에게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유달리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의 인조안구를 세차게 때렸다.

‘어머니…….’

유달리 차가운 세 글자였다. 시리도록 차갑게 웃은 민성은 메모장을 뒤적인 뒤,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예, 강민성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번에 부탁드렸던 일의 진척이 궁금해서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예? 아, 예. 아닙니다. 제가 직접 받으러 가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통화를 종료한 민성은 이동할 문을 찾은 뒤, 지체 없이 열쇠를 꽂아 넣었다. 문을 이용해 종로에 도착한 민성은 곧장 자각사로 이동했다. 대숲길을 지나 게이트를 타자 숨겨져 있던 자각사의 본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번 일로 느낀 게 많았던 모양이네.’

민성은 게이트 주변을 엄중하게 감시하는 무사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저번과 달리 그 숫자는 몇 배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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