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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94화 (9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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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 내실을 다지다. (3)

‘해충들은 싸그리 박멸해야 제 맛이지.’

“흠……. 아니면 특별히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 건가? 이쪽에서 가능한 것이라면 최대한 들어주도록 하겠네.”

회장은 대답을 피하며 역으로 보상의 질을 높였다. 어지간히도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었다.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새로운 신분이 필요합니다. 깨끗한 걸로.”

“알았네. 그게 전분가?”

그 정돈 어렵지 않다는 듯, 노인은 단번에 승낙했다.

“그리고 탐사에 관련된 정보를 주십쇼. 또한 만약을 대비해 저희 측 사람을 몇 명 데리고 가고 싶습니다.”

“정보를 주는 일이야 어렵지 않네만, 흠…….”

회장은 아무래도 정보유출을 염려하는 것 같았다. 그의 걱정은 납득이 갔지만 이쪽은 아쉬울 게 없었다.

“만약 힘드시다면 이 얘기는 없었던 걸로…….”

“알겠네. 뜻대로 하게.”

노인은 말을 자르며 화급히 민성의 제안을 수락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아, 그리고 회장님을 신뢰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신분을 착수금으로 받겠습니다. 더불어 5억도요.”

“아니, 이 사람아. 신분을 위조하는 게 무슨 얼라들 장난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가능한 줄 아나?”

노인은 앓는 소리를 내며 그의 요구가 부당함을 알렸다. 탐사까지 남은 기간은 단 4일. 민성의 요구는 얼핏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힘드시다면 할 수 없죠. 역시 다른 사람을 알아보시…….”

“끙……. 알았네, 알았어. 빠른 시일 내로 준비해서 다시 연락하겠네.”

뚝-

노인의 힘없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통화가 종료됐다.

‘뭐만 저질렀다 하면 휠체어 타고 매스컴에 나오는 족속들을 믿을 순 없지.’

미안한 감정이라곤 요만큼도 없었다. 민성은 스산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

다음 날. 새로 마련한 궁궐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던 민성은 대낮부터 걸려온 전화에 잠을 깼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만복 노인이었다. 적어도 며칠은 걸릴 줄 알았건만, 노인은 준비가 끝났다며 그를 호출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지.’

노인의 한탄은 연기임이 틀림없었다. 민성은 새로 들어온 최신식 화장실에서 샤워를 즐긴 뒤, 백화점에서 대강 사둔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싱싱한 주인! 다녀와라! 다녀와!”

움막에서 궁궐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어디서 났는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는 시바의 배웅을 받았다.

“네, 다녀올게요.”

민성은 희미한 웃음으로 답하며 궁궐을 나섰다. 그리곤 문을 이용해 다시 기존에 일하던 가게의 빌딩으로 이동했다. 빌딩을 나가며 윤민수 점장을 마주치긴 했지만 인피면구를 쓴 탓인지, 그는 민성을 알아보지 못했다. 왠지 모를 안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빌딩을 나온 민성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신사동의 가로수길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건가?’

아직 핸드폰이 잠잠한 걸 봐선, 상대방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민성은 시계를 흘낏 바라봤다. 약속시간인 1시가 되기까지는 15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노인의 코가 석 자인 만큼 바람 맞을 일은 없을 테지만, 아무래도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하필이면 이런 거지같은 곳에서 보자 해서.’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15분, 못 기다릴 시간도 아니었다. 다만 짜증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기랑 함께 오니까 너무 좋다. 길도 너무 예쁘고.”

“나도 너무 좋아.”

민성은 커플들이 득실거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주변을 살핀 민성은 아담한 개인 카페에 들어갔다.

삐리리리-

정확히 1시가 되자, 곧 핸드폰에서 요란한 벨소리가 울려왔다.

“강민성 님? 어디에 계십니까?”

전화를 받자, 고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성은 카페의 위치를 알려주고, 노인의 하수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자, 곧 정장을 차려입은 남자 하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이쪽입니다.”

본능적으로 그 남자가 노인이 보낸 사람인 걸 눈치챈 민성은 남자를 불러 세웠다.

“강민……성 님?”

“예.”

하지만 남자는 의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

“잘못된 일이라도 있습니까?”

“저, 죄송하지만 전달 받은 사진과 모습이 조금 다르신 것 같아서…….”

남자는 말꼬리를 흘리며 들고 있던 사진과 민성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아……. 잠시.”

민성은 화장실로 들어가 인피면구를 벗은 뒤, 마스크로 얼굴을 최대한 가린 채 밖으로 나왔다.

“다시 확인해보시죠.”

그리곤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슬쩍 마스크를 내려보였다.

“화…… 확실히 강민성 님이 맞으시군요.”

민성의 얼굴과 사진을 대조하는 남자의 손이 묘하게 떨려댔다. 민성은 몰랐지만 남자는 경악한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있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현상금 8억짜리의 살인마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라는 회장의 당부를 듣긴 했지만,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확인 다 하셨으면 이제 절 부르신 이유를 듣고 싶은데.”

“예? 아! 예, 예.”

멍하니 민성의 얼굴을 쳐다보던 남자는 그제야 서류가방에서 허겁지겁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흠…….”

민성은 남자가 탁자에 올린 서류를 건네받았다. 그리곤 차근차근 내용을 살폈다. 안에는 유물탐사에 관련된 정보가 간략하게 담겨 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가진 정보가 그리 많지는 않아. 그 점 유의해서 읽어주게. 자네가 가게 될 곳은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광해군의 묘지라네. 위성으로 찍어놓은 지도를 첨부했으니 참고했으면 좋겠군.]

‘광해군?’

과거 폭군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왕이 아닌가. 그런 사람의 묘지에 가서 뭐 먹을 것이 있다고 탐사대까지 꾸리나 싶었다. 잡생각을 접은 민성은 이어서 서류를 읽어나갔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번 유물탐사는 단순한 탐사가 아니야.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만 명분을 두른 것이지. 양놈들 말로는 던전 탐사라고 하더군. 타워가 등장하니 더 이상 숨길 이유도 없던 모양이야.]

역시 단순히 유물을 찾아내는 탐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타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유추하고는 있지만, 세상만사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나? 내가 꾸린 탐사대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어. 그래서 자네가 함께 해준다니 그나마 안심이야. 내가 갖고 있는 정보는 대강 이 정도. 나머지는 자네가 직접 몸으로 뛰면서 얻어야 할 것 같다네.]

“…….”

결국 이 작자도 던전이라는 것 빼고는 특별히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은 아주 간단해. 그저 거기서 보고 들은 걸 내게 그대로 전해주기만 하면 돼. 혹여나 거기서 나오는 물건들은 탐사대 측이 알아서 분배할 테니, 그 부분은 신경 쓸 필요 없어. 하지만 혹시 불순한 기류가 느껴지거든 그 역시 내게 말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당일 날 차를 보낼 터이니 꼭 연락 받게.]

‘이중첩자 노릇을 하라는 건가.’

아무래도 노인은 자신이 꾸린 탐사대조차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끝으로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불상사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다른 탐사대와의 마찰은 최대한 피해줬으면 한다네. 특히 미국 측의 심기를 거슬러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자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어. 부디 무사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군. 그럼.]

서류를 다 읽어 내린 민성은 그것을 잽싸게 바닥에 던졌다. 남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쳐다봤으나, 민성은 그저 종이를 빤히 노려봤다.

화르륵-

잠시 후, 종이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정신 나간 노인네가 이럴 거면 지도는 왜 첨부해둔 거야.’

고개를 가로저은 민성은 애먼 남자를 노려봤다.

“생각보다 정보가 적은 것 같은데요?”

“그……. 그렇게 말씀하신들 저, 저 같은 나부랭이가 알 도리가……. 히익! 죄송……. 죄송합니다! 부디 목숨만은…….”

그 눈빛에 울상이 된 남자는 말을 더듬거리며 그의 중요부위를 가렸다.

“…….”

할 말을 잃은 민성은 눈빛으로 간절히 애원하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무래도 전에 봤던 영상의 여파가 꽤 큰 모양이었다.

“뭔가 오해를 하신 모양입니다.”

“하지만 소문에는 민성 님께서 죽인 사람들의 시체에서 그……. 고환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남자는 울먹거리며 연신 민성의 눈치를 살폈다.

‘진짜 어떤 새끼들이 그딴 걸 찍었는지 몰라도, 찾기만 하면…….’

“하아. 그건 됐고요, 회장이 준 건 그게 전부입니까?”

“아……. 아닙니다!”

남자는 군기가 바짝 든 신병처럼 외치며 다른 종이를 넘겼다. 안에는 강민구라는 낯선 이름과 함께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절차를 밟아놨으니 행정상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합니까? 그럼 제가 당장 사진 들고 동사무소에 가서 민증 발급해 달라고 하면, 해주는 겁니까?”

의구심이 든 민성은 재차 남자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예, 예! 아, 아마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아마도요?”

연이은 민성의 질문에 남자의 얼굴은 점점 새파랗게 질려갔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이 이런 일로 장난치실 분도 아니고, 그쵸?”

“예, 예, 예!”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아니거든 그땐…….’

설령 이상이 없더라 하더라도 시간의 차이일 뿐. 대설은 언젠가 손봐줘야 할 대상이었다. 말을 삼킨 민성은 싱긋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돈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 여기…….”

남자는 품에 꼭 안고 있던 007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가방을 받은 민성은 슬쩍 그것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5만 원권 다발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저……. 전달할 것은 전부 넘겼으니, 저는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남자는 어서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네, 고생하셨어요. 아, 잠깐만요.”

“더…… 더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민성의 제지에, 잽싸게 몸을 일으켜 자리를 벗어나려던 남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래도 고생했는데, 이거 하나 들고 가요.”

민성은 5만 원권 다발 하나를 꺼내 남자에게 주었다.

“가…… 감, 감사합니다.”

남자는 잽싸게 돈다발을 받곤 도망가듯 뛰쳐나갔다. 민성은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쳐다봤다. 남자의 반응을 보니, 범죄자 딱지를 떼더라도 본 얼굴로 살기는 글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발.”

작게 중얼거린 민성은 흡연실로 갔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담배 한 대를 태우며 언짢은 기분을 달랬다. 그 후, 민성은 화장실로 들어가 인피면구를 뒤집어쓰고 마스크까지 걸쳤다. 그리곤 돈 가방을 아이템창에 넣고 메모장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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