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92화 - 내실을 다지다. (1)
35. 내실을 다지다.
*
민성은 기존에 이용했던 빌딩의 비상구의 문을 활용해 ‘비밀스러운 집’ 내부로 이동했다. 잡초가 우거진 텅 빈 땅과 허름한 움막이 그를 반겼다.
‘젠장. 움막부터 업그레이드해야지.’
자고로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이 살 만한 집이 필요하다. 그간 상황이 상황인지라 움막집을 계속 사용해왔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루비는 1,800개. 오늘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는 날이다.
드르렁-
움막 안으로 들어서자, 시바의 코고는 소리가 그를 반겼다.
“일어나요.”
비밀스러운 집의 내부목록을 보기 위해선, 시바의 협조는 필수였다. 민성은 팔을 올려 시바의 대가리를 툭툭 두드렸다.
“컥, 컥? 음?”
몇 차례 더 녀석의 뺨을 건드리자, 완전히 깼는지 동그랗게 뜬 눈이 그를 주시했다.
“오오오오오! 싱싱한 주인이 돌아왔다!”
시바는 콧수염을 실룩거리며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저놈의 주둥이만 조절한다면 나름 괜찮은 녀석인데.’
“네. 깨워서 죄송한데, 내부목록 좀 보여주세요.”
“싱싱한 주인의 부탁! 부탁! 내부목록 공개.”
시바가 커다란 창을 띄워주자, 민성은 목록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리곤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쓰러져가는 움막]
등급: ?
단계: 1/10
설명: 생활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공간이자 중추. 다른 장소의 단계를 높이기 위해선 ‘쓰러져가는 움막’ 단계의 변경이 선행되어야 한다.
업그레이드 여부: 가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코인: 100,000
띠링-
[쓰러져가는 움막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에는 100,000코인이 필요합니다.]
[보유하고 있는 코인이 부족합니다. 대체재화인 루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안내음성과 함께 100,000코인에 빗금이 쳐졌고, 그 옆에는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50루비가 적혀 있었다.
‘역시 루비가 최고지.’
어느 세월에 100,000코인을 모을까 싶었다. 민성은 손가락을 들어 승인버튼을 눌렀다.
[50루비를 사용합니다.]
[완성되기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엉?”
바로 업그레이드될 줄 알았건만, 움막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요구했다. 심지어,
휙-
그의 몸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업그레이드가 완료되기 전까지 쓰러져가는 움막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뭐 이런…….”
메시지를 확인한 민성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야외 취침을 하라는 소리였다.
“냥! 냥! 냥!”
게다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공구를 든 작은 고양이들이 민성의 곁을 스쳐갔다. 녀석들은 움막에 달라붙어 망치질을 시작했다.
‘후. 그렇다고 현실에서 잘 수도 없고. 어쩐다……. 아! 혹시?’
순간,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코인과 관련된 것들에 한해서는 만능에 가까운 루비였다. 코인의 대체재화로도 사용됐다면, 공사시간도 대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민성은 재빨리 공사현장으로 달려갔다.
[14,000코인으로 공사를 바로 완료하실 수 있습니다.]
[코인이 부족합니다. 루비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단축하시겠습니까?]
‘예스!’
움막에 손을 갖다 대자, 그가 원했던 메시지가 나왔다. 민성은 곧장 7루비를 사용해 건설시간을 단축했다. 그러자 노가다 하던 고양이들이 공구를 챙겨 자리를 떴다.
[축하드립니다. 쓰러져가는 움막이 작은 초가집으로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그리고 초라한 움막은 사라지고 근사한 초가집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움막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지붕을 덮은 짚들도, 8평 남짓한 크기도 전부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작은 초가집]
등급: ?
단계: 2/10
설명: 생활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공간이자 중추. 다른 장소의 단계를 높이기 위해선 ‘작은 초가집’ 단계의 변경이 선행되어야 한다.
업그레이드 여부: 가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코인: 150,000
‘진짜 뭘 하건 전부 코인이 드는구나.’
하나부터 열까지 코인이 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만약 일개 범부가 ‘비밀스러운 집’ 열쇠를 획득했더라면, 그는 분명 코인의 늪에 빠져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은 민성은 나무문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오오!”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거친 가죽바닥 대신 구들장이 들어왔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작은 호롱불이 내부를 은은하게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무적인 일은 다름 아닌 푸세식 변소의 등장이었다.
이제껏 텅 빈 농장에서 일을 보거나 한껏 모았다가 밖에서 해결했었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오오오! 싱싱한 주인! 집을 업그레이드했어! 대단해! 대단해!”
지금만큼은 시바의 격한 환영조차 감미로운 멜로디처럼 들려왔다.
‘가만있자. 1단계를 업그레이드해서 이 정돈데. 더 업그레이드를 하면…….’
어디까지 변화할지 궁금했다. 욕망이 동한 민성은 업그레이드 대란을 일으켰다.
[작은 초가집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에는 150,000코인이 필요합니다.]
[보유하고 있는 코인…….]
.
.
.
[축하드립니다. 번듯한 기와집이 그럴듯한 궁궐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그럴듯한 궁궐]
등급: ?
단계: 4/10
설명: 생활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공간이자 중추. 다른 장소의 단계를 높이기 위해선 ‘그럴듯한 궁궐’ 단계의 변경이 선행되어야 한다.
4단계 특수효과: 그럴듯한 궁궐에서 숙면 시, 피로도 100% 회복.
업그레이드 여부: 가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코인: 600,000
민성은 마침내 4단계에서 업그레이드를 멈췄다.
3단계였던 번듯한 기와집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든 150,000코인과, 공사기간인 한 달을 지우기 위해 사용한 루비만 106루비였다. 거기다 300,000코인과 반년의 시간을 단축해 만든 그럴듯한 궁궐에 소모한 루비는 무려 283루비였다. 2단계의 초가집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사용한 비용까지 합산하니 총 486루비를 소모했다.
‘젠장. 신나서 너무 막 써버렸잖아! 이제 좀 아껴 써야겠어.’
이제 남은 루비는 1,314루비였다. 하지만 눈앞의 궁궐을 보고 있자니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5개의 방과 최신식 화장실 그리고 부엌까지 곁들여져 있는 내부를 봤을 때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민성은 그 외에도 농장과, 공터, 그리고 호수를 활성화하는 데 7루비를 들였다.
“흠.”
민성은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궁궐을 기준으로 전방에는 공터가, 뒤편에는 에메랄드빛을 띤 호수가 들어섰고, 우측에는 널따란 밭이 그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줬다. 하지만 아직 이것들의 활용도를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민성은 혹시나 활용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아이템창을 살폈다.
‘이건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눈매를 찌푸리던 민성은 이내 작은 씨앗 하나를 꺼내 들었다. 영겁나무 씨앗이라면 활성화된 농장에 심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텅 빈 농장]
등급: ?
단계: 1/10
설명: 비옥한 토양과 달리 심겨 있는 작물은 없다. 뭐라도 심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능력: 어떠한 작물이라도 심을 수 있다.
작물 숫자 제한: 0/1
업그레이드 여부: 가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코인: 100,000
민성은 씨앗을 꼭 쥐고 밭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손으로 작은 구멍을 판 뒤, 그 안에 씨앗을 넣고 흙으로 덮었다. 그러자 작물 숫자 제한횟수에 1이 들어차더니 메시지가 떠올랐다.
[영겁나무 씨앗이 적합한 장소에 만족해합니다. 성장을 시작합니다.]
‘좋았어.’
그의 판단이 옳았다. 씨앗을 심은 자리에서 작은 떡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민성은 스스로 이뤄낸 업적을 자축하며 떡잎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하지만,
[성장까지 남은 시간: 20년.]
“뭐?”
‘이런 미친 경우를 봤나!’
20년이라니. 아저씨가 돼서야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더군다나 1일 단축하는 데 1루비가 소모되니, 산술적으로 계산할 경우 7,300루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7,300루비를 모으려면 목숨을 건 버섯 탐방을 적어도 10차례는 넘게 해야 한다. 얼굴을 찌푸린 민성은 떡잎을 빤히 노려봤다. 과연 영겁나무가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물건일까 싶었다.
‘영겁나무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투자를 결정해야겠어.’
생각을 굳힌 민성은 몸을 일으켜 밭을 나왔다.
그리곤 멋들어지게 서 있는 궁궐로 이동했다.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고풍스러워 보이는 외관과 달리 정갈하고 현대적인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여러 개의 방들이 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통로 중간중간에 배치된 작은 화분에선 향긋한 허브 내음이 올라왔다. 민성은 그 외에도 내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집의 구도를 확인했다.
‘내 집…….’
거적때기 덮인 움막이 아니라 정말 집다운 집이었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만 반복하는 일상이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그의 집이었다. 막연하게 거액을 손에 넣었을 때와는 달리 벅찬 감동이 차올랐다.
“으어!”
민성은 부드러운 양털가죽으로 만든 소파에 몸을 뉘었다. 아늑하다. 이제야 뭔가 집다운 집 느낌이 났다.
“오오! 싱싱한 주인! 부자 주인! 집을 단번에 업그레이드했어! 오오오! 능력자 주인!”
민성이 고개를 쳐들자, 어디서 가져온 건지 작은 왕관을 쓴 시바가 보였다. 집을 업그레이드했음에도 녀석은 여전히 벽에 박혀 있었다.
“제가 좀 능력이 되긴 하죠.”
민성은 피식 웃으며 가벼이 대꾸해주었다. 그리곤 잠시간 소파에서 뒹굴며 양모의 부드러움을 한껏 만끽한 뒤에야, 소소에게서 받았던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작은 돌조각.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예사의 것이 아니었다.
‘이걸 사용하면 지력이 무려 9나 올라간단 말이지.’
랜덤 육체강화 환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능력상승폭이었다.
스텟창을 분석한 결과, 지력 1당 마력 20이 올랐다. 그러니 이것을 사용할 경우, 드디어 그가 염원하던 마력 400을 넘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민성은 왼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슬쩍 바라보며 돌조각을 어루만졌다.
[자누스의 돌조각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자누스의 돌조각을 사용합니다.]
파직-
그 용도를 다한 돌조각은 형체를 잃고 부스러기가 되었다. 먼지가 된 걸 봐서는 다시 사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와 동시에 민성은 맑고 서늘한 느낌의 바람이 몸 안을 휘젓는 느낌을 받았다.
[지력수치가 +9 상승합니다.]
‘드디어…….’
그간 부족한 지력 탓에 스킬도 마음대로 쓰지 못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당분간은 그런 걱정을 덜어도 될 것 같았다. 뿌듯한 미소를 지은 민성은 스텟창을 열어 그의 달라진 지력을 확인했다.
이름: 강민성
나이: 22세
HP:280 MP:440
스텟:
체력:14
근력:15
민첩:16(+25)
지능:8
지력:22
행운:5
넘었다. 드디어 MP가 400을 넘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다. 히죽이며 반지를 매만지던 민성은 천천히 입을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