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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90화 (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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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 적당히 좀 합시다. (3)

촤악-

검마는 대답 대신 검을 뽑아들어 그의 주변에 둥근 원을 그렸다.

“일각 안에 날 원 밖으로 내보낸다면 자네의 승리, 만약 그렇지 못하고 시간이 경과할 경우에는 나의 승리. 어떤가? 참고로 나의 발끝이 조금이라도 원을 벗어나면 자네의 승리라네.”

검마의 모습은 호기롭다 못해 어딘가 오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

하지만 민성은 섣불리 그의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원의 크기와 검마의 공격반경을 가늠해보며 승리확률을 계산해보았다. 원의 크기는 검마의 운신 폭을 상당히 제한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을 틀 경우, 곧바로 민성의 승리가 결정될 정도로 작았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할 것 같은데.’

큰 페널티를 안은 적수를 상대로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고심하던 민성은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습니다. 근데 내기의 조건은 뭡니까?”

“만약 자네가 이길 경우, 내 힘이 닿는 선에서 어떤 부탁이건 하나를 들어주지. 반대로 자네가 패배했을 경우에는 우리 마교에 입교를 해주었으면 하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설령 패배한다 하더라도 마교 입교는 그에게 나쁜 선택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져줄 생각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 승리를 쟁취할 뿐이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의사를 표현했다.

“것보다 무기가 없는 것 같은데, 없다면 저쪽에 있는 무기들 중 하나를 사용하게. 명검들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쓸 만할 거라네.”

기존에 민성이 쓰던 도가 보이지 않자, 검마는 무기고를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아이템창.”

촤악-

검마의 호의를 거절한 민성은 아이템창에서 길고 검은 대검을 꺼내어, 검마를 향해 겨누었다.

“허허…….”

대검을 들자 한순간에 기세가 바뀐 민성의 모습에, 검마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실언을 했었군. 예전부터 자네를 높이 평가했었지만 그것조차 과소평가였다는 생각이 들어.”

본디 대검은 상당히 다루기 어려운 무기였다. 그 무게에 짓눌려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눈앞의 청년은 달랐다. 한손에 쥔 대검을 제 몸 놀리듯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거기다 대검의 묵직함 속에 감추어진 예리함은 그것이 예사 무기가 아님을 알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것은 그의 성장 속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라미들에게 쩔쩔매더니…….’

잠시 그의 첫 모습을 떠올린 검마는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자, 자네의 실력을 보여주게.”

둘의 격돌이 예상되자, 소소는 손목에 찬 시계를 살폈다. 일각이 지나면 바로 그들의 비무를 제지할 생각이었다.

“그럼 주저 않고 가겠습니다. 골렘의 굳건한 의지.”

신체를 강화시킨 민성이 검마를 향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눈 깜박할 새에 그의 앞까지 도달한 민성의 모습에 검마의 입꼬리가 슬며시 위로 올라갔다.

“하앗!”

민성은 위로 쳐든 대검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대검은 검마의 몸을 갈라버릴 것처럼 빠른 속도로 쇄도해 들어갔다.

챙-

“자네는 정말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검마는 크게 즐거워하며 검을 치켜세워 민성의 일격을 막아냈다. 묵직한 일격에서 전해져오는 검의 떨림에 그의 들뜬 기분이 더욱 고조되었다.

“흡!”

일격이 막히자, 민성은 즉시 대검을 살짝 뒤로 뺐다가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챙-

“허허. 재밌구나.”

일반인이라면 제대로 된 반응조차 못 하고 당했을 속도였음에도, 그 역시 검마의 검에 가로막혔다.

‘역시 이 정도론 안 되는 건가.’

빠른 속도로 연결되는 공격에도 검마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간 강자들과 손을 섞으며 커진 본능은 어서 전력을 다하라고 외쳐댔다. 확실히 그간 인자한 미소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검마의 실력은 그가 여태껏 상대해왔던 강자들과 차이가 없었다.

‘스킬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야.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내포된 행위란다. 상대방이 내 스킬을 알고 있다는 건 상당히 거북한 일이거든.’

가시넝쿨을 쓰던 여인이 한 말이었다. 비록 이종범을 따라다니는 것 같긴 했지만 그녀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확실히 그 뒤로 스킬 사용을 자제해왔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노인을 어중간한 마음으로 이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후…….”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긴 숨을 토해낸 민성은 살기를 품은 눈으로 검마를 노려봤다.

“호오…….”

또다시 달라진 분위기에 검마는 민성을 이채롭게 바라봤다. 그간 민성이 죽인 생명들이 응축된 살기가 그의 피부를 따끔하게 찔러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친네다! 죽여! 죽여!]

[마지막 가는 길은 우리가 도와주자! 죽여 버려!]

하얀 난장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검마의 몸에 달라붙었다.

“허, 이건…….”

그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스킬에, 검마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팔과 다리에 매달린 난장이들이 그의 움직임을 크게 둔화시키고 있었다.

“죽어라!”

악다구니를 지르며 대검을 휘두르는 민성의 얼굴은 마치 야차의 그것과 같았다.

챙-

“크흠!”

검마는 작은 탄식을 뱉으며 어깨로 파고들어오는 대검을 막아냈다.

“죽어! 죽어!”

민성은 쉴 틈 없이 검마를 몰아붙였다. 뭐가 됐건 원 밖으로 검마를 내보내면 그의 승리였다. 하지만 민성의 파상공세에도 검마의 발은 요지부동이었다.

‘젠장. 이대로 가면 내가 지겠어.’

“흐아아압!”

생각을 바꾼 민성이 이번에는 검마의 다리를 노리고 대검을 낮게 휘둘렀다. 대검의 폭이 넓은 탓에 검마는 어쩔 수 없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허공에 떠 있는 검마의 몸은 원을 벗어나지 않았다.

‘좋았어!’

그러나 그것은 민성이 원한 바였다. 검마의 몸을 띄움으로써 그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죽어어어어!”

검마의 발이 바닥에 닿기 전에 그를 원 밖으로 내보낸다. 민성은 미친 듯이 대검을 휘둘러댔다.

챙- 챙-

불리한 와중에도 검마는 민성의 공격을 차근차근 막아냈다.

치익-

“응? 큭……. 이건?”

하지만 민성의 칼끝이 검마의 어깨선을 스치자, 마나 타는 소리와 함께 통렬한 고통이 검마를 자극했다. 미약하게나마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들었다.

‘스킬을 쓰지 않을 때, 어떻게든 승부를 본다.’

기회를 잡은 민성은 기세를 몰아 검마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할아버지!”

“이대로는 안 되겠군. 검기폭살.”

소소가 검마를 불렀지만, 전투에 열중한 검마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검마의 검에서 거대한 강기 여러 개가 민성을 노리고 날아갔다. 근접해 있던 상황에서 검기가 날아오자, 회피는 늦었다고 판단한 민성은 재빨리 수세를 취했다. 검면을 정면으로 세워 날아오는 강기들을 막아냈다.

팅- 팅- 팅-

“큭!”

강기가 부딪힐 때마다 강한 충격이 민성의 몸에 그대로 전달됐다.

“후……. 스킬 쓸 생각은 없었건만.”

긴 세월 동안 꽤나 많은 강자들을 상대해왔던 그였지만, 마나를 태우는 스킬이라니 듣도 보도 못 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스킬을 사용해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검마는 강기다발을 막아내는 민성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헉, 헉.”

강기다발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낸 민성은 그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숨을 몰아쉬며 대검을 쥐었다.

“허어. 그걸 막아내고도 멀쩡한 모습이라니.”

생각보다 양호해 보이는 민성의 모습에 검마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몰랐겠지만, 굳건한 골렘의 의지가 민성의 충격을 상당부분 완화해주었다.

“정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군. 게다가 자네……. 보유한 스킬이 상당한 것 같은데.”

타워가 등장하고 한 달도 안 된 기간 동안 일반인이 이만큼 성장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스킬의 양은 둘째 치고, 그 효과가 예사롭지 않았다.

“난장이들이 달라붙었을 때는 전력을 다하게 만들더니, 마나가 탈 때는…….”

“…….”

‘젠장. 젠장.’

민성은 그저 숨을 몰아쉬며 검마를 노려볼 뿐이었다. 전력을 다해도 그를 원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없었다.

“답해주지 않을 생각…….”

“할아버지!”

비명에 가까운 일갈에 민성과 검마는 눈길을 돌렸다. 소소가 씩씩거리며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검마는 소소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아래로 꺾었다.

“응?”

‘도대체 언제.’

당황한 검마는 멍하니 그의 발을 내려다봤다. 아주 살짝이지만 그의 발끝이 원을 벗어나 있었다.

“허허…….”

검마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민성을 바라봤다.

“제가…… 이긴 것 같군요.”

뒤늦게 검마의 발을 본 민성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검마가 전력을 다한 것 같진 않지만, 어찌 됐건 승부에서 이긴 건 그였다.

“자네가 이겼군.”

검마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검을 검집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리에 불과했다.

민성은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르며 감사를 표했다. 분명 그의 승리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반쪽짜리 승리에 불과했다. 검마 스스로가 움직임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가 사용한 스킬은 꼴랑 1개였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어딘가 그를 시험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허허. 자네의 능력이 특출한 것을, 배려라니…….”

검마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의 모습에선 어딘가 여유로움이 풍겨 나왔다.

“약속대로 마나를 늘릴 수 있는 아이템을 주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민성은 허리를 숙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의 장로와 일개 야인의 신분 차이는,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혹시나 검마가 그와의 약속을 뒤엎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

느닷없는 질문에 민성은 검집을 톡톡 두드리는 검마를 불안하게 쳐다봤다.

“자네가 사용한 스킬들. 그 위력을 얼추 가늠해봤을 때, 대략 3~4성 스킬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아, 마나를 태우는 스킬은 제외하고 말이야.”

검마는 과거 그가 걸어왔던 행적을 기반으로 민성이 보유하고 있는 스킬의 등급을 유추해냈다.

“…….”

민성이 침묵하자, 검마는 검집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타워가 출몰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점에서, 그런 등급의 스킬을 획득한 것은 분명 신기한 일이지만 전례가 없던 건 아니야.”

“그러면 어떤 게 궁금하시다는 말씀이십니까?”

오른쪽 눈을 찌푸린 민성은 검마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자네는 분명 마나와 관련된 아이템을 원했지. 혹시 자네…… 보유하고 있는 스킬이 더 있는 것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뜨끔한 속내를 애써 감춘 민성은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근 영입대상들을 보면, 보통 백이면 백, 전부 급이 높은 스킬이나 아이템을 요구했지. 물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선택이지만 말이야. 아무리 월등한 능력을 가진 스킬이 있더라도 마나의 양이 부족하다면 사용할 수 없으니까.”

검마의 말은 정확했다. 민성이 마나와 관련된 아이템을 원했던 이유도, 대검이나 반지에 내장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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