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83화 - 쉬운 길은 없다. (1)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미친놈들도 많기 마련이다. 다들 긴장에 긴장을 더해라.”
그 외에도 이능력자 대책부의 요원들이 눈을 부라리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주시했다.
“빌어먹을. 언제 미친 능력자 놈들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진짜 오는 사람들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윗대가리들이나 다 골빈 새끼들뿐인가. 진짜 부장님이 제시하신 비전만 아니었으면 진작 때려치웠다.”
“결국 죽어나가는 건 밑 사람들뿐이지, 뭐. 안 그래도 능력자들 상대하다가 당한 사람이 한 둘이야? 게다가 어제만 해도 8조가 부장님이랑 같이 출동했다가 된통 당했다며. 그나마도 이번에 새로 유입된 사람들 덕에 겨우 물리쳤다더라.”
요원들은 사람들을 통제하며 작게 속닥거렸다.
“그래서 결국 부장님이 위쪽에다 총기사용의 합법화를 요구하셨다며. 그리고 무슨 안건도 같이 보냈다고 하셨는데, 그게 뭐랬더라……?”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대?”
“어떻게 되긴 당연히 빠꾸 먹었지! 우리나라 사람은 총을 쥐여 주면 그날로 인구수가 3분의 1은 줄어든다나, 뭐라나. 대신 테이저 건의 사용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 아! 거기 시민분! 그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더욱 비집고 몰려들자 요원들은 대화를 멈추고 급히 통제에 들어갔다.
‘이건 너무 많잖아.’
민성은 결국 붐비는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길 포기했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결국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며 종소리를 만끽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운 좋게 전망 좋은 3층에 자리 잡은 민성은 커피를 홀짝이며 24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잠시 담배나 태울 겸 카페에 구비된 흡연부스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청년 여럿이 모여 담배를 태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 나도 타워나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이 새끼 공무원 시험만 줄창 준비하더니 드디어 대가리가 돌았나.”
청년들은 낄낄대며 그들만의 대화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공무원은 시발……. 개나 주라 그래. 힘들게 공부해서 합격하면 뭐 해? 하아……. 나도 요즘 대세인 수배자 헌터나 되고 싶다. 가서 능력 하나 주워온 다음에 대책부에 가서 등록만 하면 되잖아. 그리고 네임드 수배자 한 명만 잡으면 인생역전!”
“등신새끼. 그러다 칼 맞고 죽으면 어쩔라고?”
담배연기만 빽빽 내뱉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쥐꼬리 같은 월급 받으면서 실 같은 인생 사느니, 크게 한탕 하는 게 개 이득이지. 야! 너네 영상 봤냐? 진짜 개 쩔더라.”
“무슨 영상?”
“한심한 새끼들. 요즘 핫한 영상 있잖냐. 누가 타워에서 있었던 전투를 찍어서 올린 거. 어떤 용잔지 몰라도 찍은 사람은 진짜 대박 쳤겠다. 올린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조회 수만 벌써 10억을 넘겼어.”
청년은 부럽다는 티를 역력하게 내며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틀었다. 청년들도 옹기종기 모여 영상을 감상했다.
‘뭐지?’
타워에서의 전투를 촬영했다니. 호기심이 동한 민성도 담배 한 대를 더 꺼내며 슬쩍 청년들의 뒤쪽으로 갔다. 소리를 높였는지 음성도 들려왔다.
[혀, 형씨. 이거 제대로 촬영되고 있는 거 맞지?]
[나라고 알겠어! 잘 들고 있어. 그리고 내가 지시하는 방향을 찍어! 잘만 찍으면 우리는 대박이라고!]
[알았어, 형씨.]
영상은 왠지 모를 힘 빠지는 목소리와 함께 시작됐다.
[크루차나!]
[죽여라!]
선혈이 낭자한 선박. 검은 덩어리들과 인간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놈들의 전력을 약화시킨다. 궁수들 조준! 쏴!]
청년의 지휘 하에 선박의 끝에 자리하고 있던 궁수들은 일사불란하게 화살을 쏟아냈다.
[쿠르아아악!]
선박으로 넘어오려는 검은 덩어리들에게 활 세례가 쏟아진다. 그러자 곧 상대의 선박에서도 대응사격이 날아왔다.
[궁수들 머리 숙이고! 방패 들어!]
퍼버벅-
궁수들 옆에 있던 방패병들이 명령에 맞춰 방패를 위로 치켜든다. 화살이 오가는 와중에도 능력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크르아아아아!]
갑자기 검은 덩어리들이 괴성을 지르며 선박으로 난입하자, 명령을 내리던 청년은 얇은 도로 가차 없이 적들을 베어 넘겼다. 그 외에도 다수의 능력자들이 분전하지만 인간진형이 밀리는 모습이었다.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선박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혀…… 형씨, 이쪽으로 오는데!]
[제기랄. 튀어! 튀어!]
갑자기 영상이 뒤집히더니 초점이 뱅글뱅글 돈다.
“뭐야, 이거.”
잘 보고 있던 영상이 검은 화면으로 변하자 청년들은 맥 빠진 표정을 지었다.
“기다려봐. 아직 안 끝났어.”
핸드폰을 들고 있던 청년의 말대로 검은 화면은 이윽고 광활한 평지를 보여줬다. 위에는 인간과 검은 덩어리들의 시체가 적나라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평원 위에선 검은 덩어리와 3명의 인간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카메라의 시점이 거리가 있는 탓에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한참 합을 겨루던 남자 중 한 명의 신체가 빠른 속도로 화면에 잡혔다.
쾅-
화면에 잡힌 것은 성벽에 처박혀 피를 쏟아내는 이국의 남성이었다.
[뭐해! 빨리 돌려! 저건 돈이 안 돼!]
잠시 남성을 잡던 화면은 다시 치열한 전투현장으로 돌아갔다. 빨간 갑주로 중무장한 남자와 그를 보조하는 이국인이 맹렬하게 칼을 휘둘렀지만, 검은 덩어리들은 그들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냈다.
“야, 잘 안 보이긴 하는데, 어디서 많이 뵌 얼굴 같다.”
영상을 보던 청년 중 하나가 머리를 긁적였다.
“안 그래도 네티즌들이 궁금해서 신상조사 했다는데, 진짜 이순신 장군이라는 말이 있더라.”
“헐……. 그게 말이 돼?”
“일단 닥치고 봐.”
청년들은 다시 핸드폰에 집중했다.
땅이 헤집어지고 칼끝이 서로의 목숨을 노렸다. 하지만 영상이 진행될수록 점점 합공을 펼치던 인간들이 밀리는 추세였다. 그때, 남자 두 명이 화면 끝머리에 잡혔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전투현장으로 달려가더니, 다짜고짜 검은 덩어리를 공격했다.
“완전 쩌리들이잖아. 딱 봐도 병사 1, 2 같은데. 어? 잠깐, 저거, 저 괴물새끼 괴로워하는 거 아냐?”
“아, 좀. 이제 곧 클라이맥스라고.”
덩어리는 화가 났는지 장검을 휘두르며 남자를 압박해 들어갔다. 검은 반 곱슬머리의 남자의 손에서 희멀건 유령들이 쏟아져 나와, 검은 덩어리의 몸에 달라붙었다. 그러자 덩어리의 움직임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때 남자가 덩어리의 사이로 들어가 도로 고간을 긁어내린다.
“끄아아아아아악!”
얼마나 큰 비명이었는지, 핸드폰에서 절망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 시발. 저 새끼 아무리 목숨이 걸렸다고 해도, 저건 좀…….”
잔혹한 일격에 인상을 구긴 청년들은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붉은 갑주를 입은 남자와 검은 반 곱슬머리의 남자가 잠시 붙어 있더니, 이내 전투태세를 갖췄다. 갑주를 입은 남자는 활을 꺼내 5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았다. 그러자 검은 덩어리와 맞붙던 남자와 덩어리의 주변에서 사슬이 나오더니 그들을 같이 포박했다. 그리고 도를 든 남자가 가차 없이 사슬사이로 도를 쑤셔 박는다. 덩어리가 쓰러지는 것으로 영상은 마무리 됐다.
“와……. 대박이다. 이거 CG 아니냐? 10분짜리 CG치곤 잘 만든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생존자들이 후기를 올렸나 봐. 진짜라고.”
“근데 저 남자는 누구냐. 다구리 쳐도 쩔쩔매던 놈을 그냥 때려잡네.”
청년들은 희희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네티즌들이 영상 확대하고 신상 털었다는데, 듣기론 지금 이놈이 수배범 2위래. 별명도 지어줬다더라. 뭐라 했더라? 고간킬러?”
“와……. 병신 같긴 한데 솔직히 졸라 멋있다. 나도 한 번쯤은 좋든 나쁘든 이름 좀 날려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타워가 핫하다는 거 아니냐. 저놈도 처음엔 평범한 양민이었대. 얼마 전까지 강남에서 알바…….”
‘고간……킬러……?’
한숨을 내쉰 민성은 재떨이에 담배를 던지곤 흡연실을 빠져나왔다. 설마 저번 전투영상이 사회에 퍼졌으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수배범이 된 것도 억울한데, 오명이 하나 더 는 것 같다. 씁쓸한 미소를 흘린 민성은 멍하니 창문을 내다봤다. 어느새 24시가 된 모양이었다.
“10! 9! 8!”
제야의 종과는 거리가 있음에도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팅 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3! 2! 1! 와아아아아!”
뎅- 뎅- 뎅-
마침내 새로운 해 2023년이 다가왔다.
슉-
그와 동시에 빽빽한 콩나물 대가리들 중 일부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
“어?”
민성은 저도 모르게 오른눈을 크게 떴다. 활기찬 새해임에도 별개로 타워의 소집은 여지없이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타워로 소집될 때는 저런 식으로 가는 거였구나.’
벌써 두 번이나 갔다 왔지만, 정작 어떤 방식으로 끌려가는지는 잘 몰랐었다. 살짝 안쓰럽긴 했지만 천재지변과 같은 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행복이 맴돌던 현장이 갑자기 어수선해지는 것 같았다. 사실 그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하는 이가 지옥으로 끌려갔음을.
‘어……?’
고개를 돌리려던 민성은 다시 눈을 부릅뜨고 창밖을 노려봤다. 맞은편 건물의 옥상에 푸른빛이 감도는 버섯이 수줍게 자라 있었다. 민성은 피식 웃으며 카페를 나왔다. 안 그래도 이제 버섯을 찾아다니려 했는데, 눈앞에 떡하니 등장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직 부족해.’
옛날에 비하면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부족했다. 자각사의 땡중과 습격자들, 마교의 지부장, 이종범의 곁에 붙어 있던 여자, 그라운드 마켓의 낯선 존재들. 누구 하나 그의 밑이 아니었다. 잠시간의 여유를 만끽했으니 이제 본업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쾅-
민성은 옆 건물로 넘어가 잠겨 있는 옥상의 문을 대검으로 가볍게 베었다. 두 동강 난 문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곤 주저 없이 버섯 앞으로 가 폭신해 보이는 삿갓을 만졌다.
띠링-
[T%@O : 24123에 입장$^@^시@$니까?]
게임종류 : ?
난이도 : B
클리어 보상 : ?
클리어 실패 시: ?
[T%@O : 24123을 클리어하^@^시@$니까?]
“예!”
‘조금만 기다려라.’
다음 소집 전까지 최대한 루비를 확보한다. 그리고 그 잘난 콧대들을 눌러줄 것이다. 희미한 웃음을 흘리던 민성의 몸은 이내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33. 쉬운 길은 없다.
‘이건……?’
캄캄한 어둠 속.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몸을 비틀어봤지만, 밧줄에 묶여 있는 것마냥 답답하기 그지없다. 여태껏 거쳐 왔던 버섯들과는 또 다른 패턴인 것 같았다. 잠시 기다리자 서서히 시야가 밝아왔다. 하지만 그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눈을 통해 앞을 보고 있었다.
최초로 보인 것은 아담한 정원이었다. 잔디가 깔끔히 정리돼 있는걸 봐선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게 분명해 보였다. 시야는 왼쪽, 오른쪽으로 전환됐다. 낮은 돌담이 정원을 살포시 감싸고 있었고, 정면에는 꽤나 넉넉한 크기를 가진 벽돌집이 있었다. 층층이 달려있는 창문들은 집의 층수가 3층임을 짐작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