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81화 (8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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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 새로운 얼굴. (3)

“이, 이건 뭐야?”

“사실대로 말하기 힘들면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들고 가야지. 어디 3주 동안 밀실 알바라도 하고 왔다고 말씀드려. 그리고 신고는 나한테 정신병 있어서 내가 헛소리한 거라고 말씀드리고.”

“야……. 이거 니가 알바해서 번 돈이잖아.”

태성이 돈을 돌려주려 하자, 민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눈깔로 적금 든 거 일부 깼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라.”

“뭐?”

“얼른 가봐라. 부모님 속 더 타들어가기 전에.”

민성은 더 이상의 질문은 듣지 않겠다는 듯 태성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태성은 대설타워를 나와서도 자꾸 돈을 되돌려주려 했다.

“야! 진짜 안 받는다…….”

“택시! 응, 그럼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갚아라.”

민성은 그들 앞에선 택시 앞에 태성을 밀어 넣으며 싱긋 웃었다.

“돌아가서 밥 잘 챙겨먹고. 아, 그리고 요즘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입대는……. 좀 미뤄봐라. 지금 핸드폰은 따로 없으니까 나중에 연락할게.”

“……고맙다.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택시가 서서히 앞으로 이동했다. 택시는 금세 혼잡한 자동차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맙기는, 오히려 내가 고맙지.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내내 달고 다녔던 마음의 짐 덩이 하나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민성은 작게 중얼거리며 택시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후……. 아!”

왠지 모를 후련함에 깊게 숨을 들이키던 민성은 재빨리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아니지. 사놓은 게 있었잖아.’

마스크를 쓰는 것이 어느새 습관이 돼버렸는지, 뒤늦게 아이템창에 있는 인피면구가 떠올랐다. 본거지로 돌아가 착용하기로 맘먹은 민성은 시선을 돌려 열쇠 구멍을 찾았다.

“강민성 님!”

민성은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낯선 남자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존대하는 것으로 봐선 적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여차할 경우, 남자의 목을 베고 도망간다. 빠르게 결론을 내린 민성은 경계를 유지했다.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만복 회장님께서 이걸 전하라 하셔서…….”

남자는 들고 있던 서류봉투를 건넸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꽤 두꺼워 보였다. 가만히 봉투를 내려다보던 민성은 그를 차갑게 노려봤다.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어.”

“저희는 그저 회장님의 명을 받고 대설타워의 입구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만날 수 있을 거라 하셔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뜨문뜨문 그들을 쳐다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네가 그 양반의 부한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건 안의 내용물을 보면 아실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가 봉투를 넘기려 하자, 얼굴을 찌푸린 민성은 손을 까딱거렸다.

“이쪽으로 오지 말고, 거기서 열어봐.”

안 그래도 험난한 세상, 타워가 출몰한 뒤 더욱 위험해졌다. 더군다나 별별 일을 다 겪다보니 남는 것은 사람에 대한 의심뿐이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예?”

“안에 뭐가 들었을지 모르니까 거기서 열어보라고.”

머뭇거리던 남자는 조심스럽게 서류봉투를 밀봉한 테이프를 뜯었다. 안에서 나온 것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편지봉투 하나와 여러 대의 핸드폰이었다. 큰 수상함을 느끼지 못한 민성은 그것들을 받아, 다시 서류봉투 안에 넣었다.

“그럼 저는 이만…….”

남자는 허리를 깊게 숙이더니 빠른 속도로 사라져갔다.

‘그 노인네……. 무슨 생각이지?’

잠시 서류봉투를 바라보던 민성은 미리 봐두었던 문으로 다가갔다.

“가볍게 맥주로 워밍업하고 클럽에서 본격적으로 달리자!”

“형님 와꾸만 믿어라. 마지막 날인데 너희도 한 건 하고 가야지.”

초저녁임에도 강남은 2022년의 마지막 날을 불태우려는 사람들로 넘실거렸다. 개중에는 흑심을 갖고 온 이들도 상당했다.

“야! 저기 문 좀 봐! 막 빛이 나는데?”

남자들 중 하나가 작은 선술집을 가리켰다. 절반쯤 열린 작은 대문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잽싸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쾅-

“어디? 미친 새끼가 벌써 취했어?

남자들을 동료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곤 낄낄대며 그를 놀렸다.

“아냐! 분명…….”

당황한 남자는 선술집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아까의 빛은 사라지고 왁자지껄한 내부만이 보였다.

“환각을 봤나. 젠장, 같이 가!”

머리를 갸우뚱대던 남자는 멀어지는 동료들의 뒤를 급하게 따라갔다.

쾅-

“후…….”

비밀스러운 집에 돌아온 민성은 만족스럽게 전방을 바라봤다. 아직은 미천하지만 엄연한 그만의 공간. 이곳만큼 마음 편한 곳도 없을 것이다.

“오오오! 싱싱한 주인! 싱싱한 주인이 다시 돌아왔다!”

좁은 움막으로 들어가자, 시바가 변함없는 냥냥거림과 함께 그를 맞이했다.

‘저놈만 없다면 더 편할 텐데.’

“예, 예.”

귀찮다는 듯 손을 몇 번 흔든 민성은 서류봉투의 내용물을 다시 꺼내어 바닥에 나열했다. 편지봉투와 핸드폰들. 잠시 고심한 뒤, 먼저 편지봉투에 손을 올렸다. 안에선 작은 글씨체가 적힌 편지지 하나가 덜렁 나왔다.

눈매를 좁힌 민성은 편지지에 적힌 내용에 집중했다.

[자네. 핸드폰 좀 들고 다니면 안 되나? 연락할 방도가 없던 차에, 그라운드 마켓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편지와 함께 대포폰들을 남기네. 부디 멍청한 녀석들이 잘 전해줘야 할 텐데 말이야. 레드 존과 더불어 망각의 도시도 잘 감상하고 왔겠지?

봤다시피 도시는 대부호들의 놀이터야. 문제는 그 놀이터의 주권이 미국 코쟁이들에게 있다는 점이지. 뭐,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내가 제일 거슬리는 건 코쟁이들이 날 속였다는 점이야. 여태껏 코쟁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초능력과 자국의 과학력이라는 포장으로 숨겨왔었어. 이 역시도 타워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속았었겠지.

타워에서 돌아온 나는 그 사실이 내내 거북했었고, 놈들을 골려줄 생각을 하던 차에 때마침 자네 생각이 나더군. 일주일 뒤, 코쟁이들을 필두로 한 유적탐사가 계획돼 있네. 나 역시도 용병들을 보낼 생각이지만 자네가 참여해준다면 더 든든할 것 같군. 생각 있으면 핸드폰으로 연락하게. 그럼.

아, 깜박할 뻔했군. 읽은 즉시 편지를 버리게. 자네가 이걸 다 볼 때쯤이면…….]

화르륵-

“불이다! 불! 불! 내 몸이 탄다!”

기겁하는 시바의 냥냥거림이 들려왔다.

“이런 시…….”

갑자기 편지지에 불길이 일자, 민성은 재빨리 편지지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리곤 잔불을 대비해 그것을 발로 짓이겼다. 정보노출을 방지하기 위함임은 알겠지만, 경고문을 맨 앞에 써놔야 할 것 아닌가. 눈매를 살짝 일그러트린 민성은 편지의 내용을 회상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충 내용을 봐선 그 양놈들도 결국 능력자라는 소린데. 과거에는 초능력자라고 불렸다……. 이거 도대체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정보가 없어, 정보가.’

더군다나 유적탐사는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흔히 유적탐사단이라 함은 과거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종의 발굴단으로 알고 있었다.

‘가만……. 혹시 유적 안에 과거 능력자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그라운드 마켓을 끝으로 노인과의 관계를 끊을 생각이었지만 이건 좀 군침이 돌았다. 아직 잃어버린 눈에 대한 적금을 더 타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용할 것은 이용하고 버린다. 설령 그것이 장기밀매업자들과 관련돼 있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민성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걸렸다.

그 외에도 민성은 노인이 준 5개의 핸드폰을 살폈다. 타인의 명의로 개통한 대포폰이라면 사용하더라도 추적을 당하지 않을 터. 당장 그에게는 꽤 유용한 물건이었다. 4개는 생활용품을 모은 박스에 넣고 나머지 한 개는 주머니에 챙겼다. 전화번호는 저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전화번호를 모아놓은 메모지가 있으니 상관없을 것이었다.

얼추 정리가 끝나자, 민성은 인피면구 하나를 잡았다. 그리곤 구멍 세 개가 뚫려 있는 곳을 정면으로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다.

“음…….”

스타킹을 쓴 것 같은 강한 죄임이 얼굴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잠시 기다리자, 이윽고 얼굴이 펴지는 것 같으면서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밀려왔다. 민성은 조심스럽게 얼굴을 어루만졌다. 부드럽고 탱탱한 것이 인간의 피부와 다르지 않았다.

거울이 없어 달라진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오오! 싱싱한 주인! 얼굴이 바뀌었다! 마법사 주인!”

대신이라 하기 뭣한 시바의 품평을 들을 수 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인피면구가 제대로 작용된 듯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결국 마스크를 다시 썼다.

‘좋아. 나가볼까. 가만…….’

문 앞으로 이동한 민성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동할 장소를 선택했다.

덜컹-

“쳇.”

방문을 열고 나온 민성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찼다. 그가 선택한 문은 종로에 있는 한 모텔의 방이었다. 본얼굴을 숨겼다는 쾌감이 묘한 범죄 심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가 원하던 그림은 볼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이딴 거죽때기 하나로 본판을 가렸다고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악함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돈 값은 하네.’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에 탄 민성은, 마스크를 벗고 걸려 있는 거울을 보며 얼굴을 품평했다. 다부진 눈매와 적당히 선 코,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은 서울 어디서 볼 법한 흔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 이, 우, 에, 오!”

표정과 입모양도 자연스러웠다. 민성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모텔을 빠져나왔다.

“여보, 오늘 같은 날은 치맥 시키고, 집에서 TV로 봐도 될 텐데. 꼭 나와야…….”

“어이구, 이 화상아! 내가 이런 놈을 남편이라고 10년을 넘게 붙어 살았다니. 얼른 따라와!”

정겨워 보이는 부부의 모습에 민성은 절로 흐뭇한 미소를 보냈다. 차가운 12월에도 따뜻한 날은 3번 존재했다. 크리스마스이브, 크리스마스 당일, 그리고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말. 물론 앞의 두 날은 커플들을 위한 쓰레기 같은 날이었지만, 마지막 날은 그 의미가 달랐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그 동안 고생한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는 하루. 물론 민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안이었다. 맹자들이 득실거리는 능력자들의 세계. 버섯을 찾아 루비를 모으고 타워의 소집을 기다린다. 그것이 당장 민성이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 요즘 너무 치이고 살았어. 오늘은 모든 걸 잊고 평범한 남자로서의 하루를 만끽하자. 그리고 내일부턴 다시 버섯을 찾자.’

민성은 두 손을 불끈 쥐었다. 평소 따갑게만 느껴졌던 시선들도 오늘은 무심히 그를 훑고 스쳐간다. 인피면구의 효과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 민성은 슬쩍 시계를 살폈다. 24시까지 남은 시간은 4시간가량. 오늘만큼은 꼭 눈과 귀로 제야의 종, 그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

“흐흐…….”

그 무엇에도 속박돼 있지 않은 지금의 느낌이 좋았다. 행복감에 미소가 자꾸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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