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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77화 (77/303)

# 77

77화 - 살아있었어?. (1)

“좋아! 오늘은 이년으로 해볼까? 저년도 괜찮을 것 같은데. 흠……. 그냥 둘 다 데리고 가야겠어.”

“헤헤헤…… 헤헤.”

남자가 손짓하자, 수행하던 붉은 가면들은 남자가 지목한 여인들을 끌고 와 그의 뒤를 따른다.

“저건……. 뭡니까, 도대체.”

눈앞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던 민성은 하얀 가면을 노려봤다.

“언제 어디서든 손님들께서 향락을 즐기실 수 있도록 배치한 고깃덩이들입니다.”

“…….”

“다양한 종류의 고깃덩이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대리인께서도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즐기실 수 있습니다. 또한 대리인께서 원하실 경우 죽이시는 것도 가능합니다.”

고저 없는 기계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필요 없습니다.”

영혼은 다르더라도 두르고 있는 살가죽은 같다. 똑같은 사람을 이리 취급하다니. 가면 속에 가리어진 낯짝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고 싶었다. 얼굴을 굳힌 민성은 연신 왼눈을 긁어내렸다.

“대리인께서는 특별히 가고 싶으신 곳이 있으십니까?”

“아뇨. 본주인은 별말 없었습니다.”

민성은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시선을 돌렸다. 헐벗은 나신의 남자들이 붉은 가면의 손에 끌려, 비계를 출렁거리는 할망구의 뒤를 따라간다.

“그러시다면 제가 망각의 도시에서도 인기 있는 곳 위주로 안내를 드리려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현실에도 창녀나 창남이 있잖아.’

민성은 끓어오르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얻은 가면은 그를 둥그런 도넛같이 생긴 건물로 데려갔다.

“생명의 천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역시나 붉은 가면들이 그들을 반겼다. 그들은 청결한 복도를 지나 문 앞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덜컹-

붉은 가면들이 문을 열어주자 내부 광경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자, 이번 물건은 고객님들의 니드를 완벽히 충족시킬 수 있는 물건이 될 것 같습니다!”

중심에 있는 무대 위에선 경매사가 넉살좋게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얼른 시작해라!”

고급 소파들이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고, 소파에 몸을 파묻은 사람들은 목청 높이며 경매사를 독촉했다.

‘뭐야. 일반적인 경매 현장이잖아.’

민성이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내자, 하얀 가면은 지켜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구매자분들께서 몸이 잔뜩 달아오르신 모양이군요.”

경매자가 한쪽에 손짓하자, 붉은 가면이 한 여아를 끌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쇠사슬에 속박되어 있는 벌거벗은 여아는 공허한 눈으로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 물건은 대구 출신의 싱싱하고 푸릇한 15세 소녀. 성노로 쓰셔도 좋고, 비밀사택에서 욕망의 불길을 마음껏 태우셔도 됩니다. 저희 그라운드 마켓은 사체 처리까지 완벽히 지원하니까요.”

경매자의 능글맞은 멘트에 소파들에선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그럼! 시작가 5천부터 시작합니다!”

“5,500!”

“6,000!”

경매물품이 구매자들의 욕구를 끌었는지, 경매는 순식간에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재정신인가…….’

인간을 경매물품으로 삼다니 천인공노할 행위 아닌가. 당황스럽기보단 화가 치밀어 오르며 왼쪽 눈이 욱신거려왔다.

“인간 경매입니까?”

속내와 달리 민성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8,000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경매자는 활기차게 경매를 유도했다.

“그렇습니다. 대리인께서도 원하신다면 경매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하시겠습니까?”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인간의 추악한 본성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져 있단 말인가.

‘아직 이곳의 일부분밖에 안 봤는데, 벌써 동요하면 어쩌자는 거냐.’

재빨리 마음을 다잡은 민성은 본성을 최대한 짓눌러 죽였다.

“아뇨. 그건 다음 기회에. 그나저나 저런 물건은 어디서 구해오는 겁니까?”

민성은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 여아를 가리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처해서 이곳을 오진 않았을 터. 그 출처가 궁금했다. 잠시간 침묵하던 가면에선 한결 같은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본주인께서 장난기가 많으신 분인가 봅니다. 한 해에 실종되는 사람의 숫자, 몇 명인지 아십니까?”

“평균 3만 명에 미발견자들은 4천 명 가량. 아닙니까?”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민성의 대답에 가면은 잠시 뜸을 들였다.

“보기보다 그쪽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얇은 지식도 지층이 구성되면 꽤나 쓸모 있으니까요.”

민성은 공허한 여아의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125번! 1억 2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구매가 3번 호명하고 입찰을 마감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도 아실 겁니다.”

“1억 2천!”

“저 소녀도 결국.”

“1억 2천!”

“실종자들 중 하나라는 소리를.”

“1억 2천!”

“하고 싶었던 것 아닙니까.”

가면은 정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땅-땅-땅-

“축하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소녀는 125번 손님께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물품은 경매가 종료된 후, 대금을 받음과 함께 인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다음 물품은 어머니에게 팔린 비운의 20세 청년…….”

소녀는 어딘가로 끌려가고, 이번에는 전신에 잔 흉터가 새겨진 청년이 올라왔다. 그의 눈 역시 모든 것을 체념한 자의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팔렸다……. 결국 돈입니까?”

“혈연도 팔아치우게 만들도록 만드는 마물이 돈입니다.”

“혈연도 팔아치우게 만드는 마물……. 정확한 표현이네요.”

민성은 왼눈을 어루만지며 작게 답했다.

뿌득-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인정해버리면 결국 그가 잃은 눈에도 똑같은 이유를 붙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미소를 띤 얼굴과 다르게, 민성은 떨리는 팔을 진정시키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른 곳도 안내해주시죠. 이곳을 보니까 다른 곳은 어떨지 기대가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하얀 가면은 민성을 이끌고 경매장을 나왔다. ‘생명의 천칭’을 나와 그들이 이동한 곳은 ‘죽음의 거울’이라는 곳이었다.

거대한 유리관 속에는 각각의 번호를 단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겁에 질려 식은땀을 흘리는 얼굴들이 안쓰럽게 보였다.

쾅-

“여기만 넘으면 3억이라고. 그러면 빚도……. 끄아아아아아아아악!”

6번 번호를 달고 있는 남자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자, 거대한 폭발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한때는 사람이었을 산산조각 난 고깃덩어리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특수하게 개조된 대전차용 지뢰를 밟은 남자의 최후였다.

“저 병신 새끼! 너한테 5억을 걸었다고!”

“좋았어! 아직 내 3번은 살아 있다고! 골인 지점까지 들어가!”

유리관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큰 환호성을 내질렀다. 가면은 이것을 ‘지뢰 밭 탈출하기’라고 설명해줬다.

살아 있는 인간을 경주마 삼아 게임을 즐긴다. 경주마들의 의욕을 부추기기 위해 목에는 폭발 목걸이를 장착시킨다고 했다.

그 외에도,

“끄아아악!”

FPS를 좋아하는 부호들을 위해 만든 데스 매치. 총에 있는 레이저 포인트로 상대의 신체부위를 맞힐 시, 센서가 반응해 그 부위를 폭발시킨다고 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퀴즈를 좋아하는 부호들을 위한 게임도 있었다. 사회자가 내는 퀴즈의 정답을 맞히지 못할 시, 허공에 매달려 있는 신체는 점점 끓는 물과 가까워진다고 했다. 무엇 하나 인간의 목숨이 걸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곳은 레드 존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잔인함이 팽배해 있었다.

‘이런 게…… 즐겁나?’

그 역시 수차례 살인을 거듭했지만 단 한 번도 즐겁다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의 죽음에 환호하는 사람들. 핏방울과 떨어져 나온 살점이 하늘을 수놓을 때마다, 광기에 찬 환호성이 뒤를 따랐다. 이 이상 봤다간 인간에 대한 환멸만 늘어날 것 같았다.

“휴식처는 따로 없습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가면이 안내한 곳은 사람 없는 텅 빈 카페였다.

“어서- 오십-시오.”

대신 그 자리를 로봇들이 대체하고 있었다.

“주문은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가면은 로봇에게서 커피 한 잔을 받아와 민성에게 건넸다. 깊은 한숨을 내쉰 민성은 김이 올라오는 커피 잔에 입을 댔다. 쌉싸래한 액체가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망각의 도시. 이곳은 대부호들의 놀이터가 분명했다. 도대체 왜 만복노인이 티켓을 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레드 존은 얻을 것이 있었으나 이곳은 아니었다.

“헤헤헤.”

창밖은 여전히 알몸인 사람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동물 취급받는 이들의 현실은 안타까웠으나 그가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설령 문을 사용하더라도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더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나가자.’

마음을 다진 민성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몸을 일으켰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레드 존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얀 가면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옆에 붙었다. 그에 동의한 민성은 카페를 빠져나왔다.

“어서! 이 지옥을 빠져 나가자!”

“서둘러!”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성난 파도처럼 거리로 몰아닥쳤다. 목에는 붉은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옷차림을 봐선 경기에 강제로 참여하던 이들이 분명했다.

‘저들이 어떻게…….’

분명 가면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을 터. 힘없는 그들이 경계를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고 생각했었다.

“조금만 더 빨리! 곧 어둠의 숲으로 들어갈 수 있어!”

“헤헤헤.”

“비켜!”

그들은 조잡한 무기를 휘두르며 거리를 누볐다. 가는 방향으로 보아 목적지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던 곳이 분명했다.

민성은 담담히 서 있는 가면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쩐 일인지 가면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단 하얀 가면뿐만 아니라, 다른 가면들도 손님을 보호할 뿐 탈주자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알아서 하겠……. 어?’

불난 집 구경하듯 사태를 관망하던 민성의 오른쪽 눈이 크게 떠졌다.

“우린 할 수 있어! 나가자!”

“어……어?”

대열의 중간에는 익숙한 얼굴이 끼어 있었다. 핼쑥하게 여위긴 했지만 틀림없었다.

29. 살아있었어?

“태성아!”

민성은 친우의 이름을 크게 부르짖으며 급히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야, 인마!”

재빠른 몸놀림으로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익숙한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자 흠칫한 머리가 뒤로 돌았다.

“어……. 어?”

크게 흔들리던 동공에는 이내 물기가 차올랐다. 지옥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민서…….”

“야, 일단 달려!”

감동적인 해후를 하기엔 장소가 좋지 못했다. 뒤에선 지옥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성은 태성의 등을 떠밀며 행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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