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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73화 (73/303)

# 73

73화 - 그라운드 마켓. (1)

그러나 대개의 건물은 유리문을 사용하는 터라 열쇠구멍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켜!”

“꺄아악!”

민성은 마주 걸어오는 시민들을 밀쳐내며 건물들을 훑었다. 정신없이 달리는 민성과 그 뒤를 바짝 쫓는 여인 탓에 젊음의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거다!’

그리고 마침내, 민성은 한 건물을 포착할 수 있었다. 도심에 어울리지 않는 한옥. 대문에는 커다란 문고리와 함께 작은 열쇠 구멍이 보였다. 민성은 주저 없이 한옥 앞으로 달려갔다.

“이제 다시 수업 받을 마음이 들었니?”

민성이 대문 앞에서 멈춰 서자, 여인은 단검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개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가슴만 큰 년이 어딜 선생인 척하고 있어.”

민성은 미리 꺼내놨던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으며 온갖 욕설을 뱉어냈다.

“…….”

“너희 어머니가 그러고 다니라고 미역국 드시면서 널 낳으신 줄 아냐? 어?”

여인의 얼굴에 미묘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잘 좀 하고 살아라. 어? 효도도 좀 하고, 안부 인사도 좀 드리고, 이 개년아.”

그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여인에게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었다.

“유언은 그게 전부니?”

여인은 고혹적인 미소에 살기가 합쳐진 괴이한 미소를 흘렸다.

삐그덕-

문을 열자, 안에선 어서 들어오라는 듯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민성은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닌데?”

굳게 펼친 가운데 손가락을 마지막으로 민성의 몸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래, 마지막으로 선생님이랑 숨바꼭질을 하고 싶었구나.”

여인은 몸을 날려 담장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민성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꽤나 탁월한 몸놀림과 예측이 불가했던 능력. 도망가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놈이었다. 이종범의 부탁이 실패로 돌아갔으니, 이번 것은 횟수에서 제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에는 못 도망가게 다리 하나는 잘라야겠어.”

여인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고용주에게로 돌아갔다.

덜컥-

‘비밀스러운 집’ 안으로 들어온 민성은 곧장 욕설을 뱉어냈다. 설마하니 그런 강자가 대책부에 붙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내가 농락해주마.’

“크…….”

굳게 마음을 다진 민성은 옷을 걷어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살폈다. 길게 나 있는 상처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단순히 스친 것인지, 새어나오는 피의 양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놔둔다면 자연치료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다음에는 의약품도 사놔야 할 것 같다.

‘아차.’

피범벅인 상태로 들어갔다간 내부가 엉망이 될 것이다. 민성은 옷을 홀라당 벗어 아무데나 던져버리곤 다 쓰러져가는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렁-

코를 골며 맘 편히 잠들어 있는 고양이 대가리가 보였다.

‘그래, 계속 잠이나 자라.’

녀석이 일어나면 또 정신 사나울 정도로 입을 놀릴 게 뻔했다. 민성은 아이템창에서 박스를 꺼냈다. 그리곤 입구를 열어 백화점에서 장본 물품들을 하나하나 꺼내었다.

이곳을 아지트로 삼기로 한 이상, 이용할 것은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당장 은닉처와 창고로 활용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지만,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전기가 없으니 그 흔한 TV도, 냉장고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있는 것이라곤 고양이 대가리뿐인, 사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

한숨을 내쉰 민성은 상자에서 이부자리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씻지 못한 탓에 피와 땀내가 섞여 이불속을 진동했다. 거지같은 몰골에 냄새까지 풀풀 풍기는 것이 영락없는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돈도 많겠다, 까짓 거 다시 사면 되지. 아니지, 어차피 범죄자가 된 김에 한번 제대로 악당이 돼봐? 그러고 보니 만복 노인네는 내가 범죄자인 걸 알면서도 날 회유하려 들었었지.’

이미 만복 노인과는 끝이었다. 연관이 있건 없건, 혐오하는 일과 관련돼 있단 것 하나만으로도 인연을 끊기에 충분했다. 사람에겐 죄가 있지만 물건에는 죄가 없다. 민성은 아이템창에 넣어뒀던 ‘그라운드 티켓’을 떠올렸다.

범죄자로 전락한 민성의 처지를 알면서도 건넸던 물건. 혹여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도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범죄자로 전락한 이에게 이런 물건을 권하지 않았을 터. 확실히 가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녀석이 없으니까 뭔가 허전하네.’

감성이 폭발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티노의 공백이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 민성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냥냥냥냥냥냥-

“끙…….”

시바의 울음소리가 귓속을 두들겼다. 민성은 피곤함에 파묻힌 눈을 비비며 상체를 일으켰다.

“싱싱한 주인! 언제 왔나! 왔으면 얘기를 했어야지! 싱싱한 주인!”

“곤히 자고 있었길래 안 깨웠어요.”

민성은 미적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몸이 개운한 걸로 봐선 꽤나 오래 잔 듯했다.

“시간을 물었어! 싱싱한 주인이 시간을 물었어! 12월 31일 오전 10시다, 싱싱한 주인!”

민성이 시계를 확인하려는 찰나, 시바는 재잘거리며 날짜까지 상세히 알려줬다.

“아, 네. 고마워요.”

민성은 고개를 꾸벅인 뒤 돈다발이 들어 있는 박스를 확인했다. 무수한 지폐다발과 금덩이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언제든 범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지만 웬만하면 평화롭게 가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얻은 돈은 더러운 돈. 더러운 돈을 사용함으로써 사회에 재화가 공급되고 그로 인해 경제가 더 활성화되는,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었다.

민성은 희희덕거리며 박스에서 5만 원권을 꺼내 지갑에 가득 쑤셔 넣고, 상자는 다시 아이템창에 넣은 뒤 움막을 나왔다.

‘회장의 의도를 확인하러 가볼까.’

만복 노인이 티켓을 준 이유도 궁금하긴 했지만 그의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었다. 그가 털었었던 장기밀매조직과 대설간의 작은 접점을 확인한 이상,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힘이 없었을 때야 현실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경찰에게 안 걸리게 부디 잘 숨어있어라.’

여력이 닿는 한, 그의 눈을 빼간 놈들을 죽이기 전까지 추적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그 와중에 발견한 쓰레기들도 겸사겸사 치워버릴 생각이었다.

“…”

스산한 미소를 흘리던 민성은 올라오는 냄새에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모든 것을 떠나서 씻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몸에는 말라붙은 피와 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급한 대로 옷을 걸쳐 더러움을 감췄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세면실이 없음을 한탄한 민성은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돌리자 여지없이 목록이 떠올랐다.

[돌아가실 장소를 선택하십시오. 장소는 이용자가 방문했던 곳으로 제한됩니다.]

응암동 XX빌라 XX호의 문.

명동 XX모텔 XX호의 문.

.

.

.

잠시 고심하던 민성은 선택을 끝낸 뒤, 문을 열었다.

28. 그라운드 마켓.

삐걱-

‘그라운드 마켓’의 티켓에 적혀 있는 지도에 따르면 그가 가야 할 곳은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대설타워였다. 그에 따라 민성은 목적지와 가장 인접한 곳. 과거 그가 일했던 매장의 건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다른 곳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강남에 있는 문은 여기가 전부였다.

‘설마 마주칠 일은 없겠지.’

그간 연달아 터지는 일들로 매장을 방문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추레한 몰골 그 자체. 거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민성은 혹시나 아는 얼굴을 마주칠까 싶어 후다닥 계단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이제 김 서린 출입문만 빠져나가면 밖이다. 날듯이 걸어간 민성은 잽싸게 문을 열었다.

‘응?’

맞은편에서 양손을 탁탁 치며 걸어오는 익숙한 남자가 보였다. 남자 역시 민성을 슬쩍 보더니 그 동그란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아마 어지간히도 놀란 모양이다.

“민성이 형?”

마스크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있었음에도, 진우는 그를 알아본 듯했다.

“…….”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녀석인지…….’

꼬질꼬질한 행색에 얼굴은 최대한 가렸음에도 그를 알아보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민성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하자 진우는 그의 어깨를 급하게 붙잡았다.

“형! 연락도 안 되고! 전화해도 꺼져 있다고만 나오고! 또 무슨 일 있었어요?”

진우는 민성의 위아래를 훑더니 눈물을 글썽거렸다.

“지금 점장님이랑 지혜 누나도 위에 있어요. 만나고 오신 거예요?”

“미안한데, 형이 급한 볼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다. 다음에 좀 여유가 생길 때, 다시 올게.”

민성은 손사래 치며 잡고 있는 진우의 손을 슬쩍 내려놨다.

“형! 잠깐만요!”

민성이 도망가듯 그의 곁을 벗어나려 하자, 진우는 그를 급하게 제지했다. 그리곤 지갑에서 초록색 지폐 3장을 꺼내 민성의 손에 꼭 쥐여 줬다.

“…….”

“형……. 저는 형이 그럴 사람 아니라는 것 알고 있어요. 밥은 꼭꼭 챙겨 드세요. 예전에 비해 너무…… 야위셨잖아요.”

민성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진우를 바라봤다.

“저는 수배서 따위는 믿지 않아요. 제가 봐왔던 형은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요. 형이 죄인이면, 세상사람 모두가 죄인이에요.”

“……고맙다. 준 돈은 나중에 배로 돌려줄게.”

사실 필요 없는 돈이었지만, 진우의 정성을 거절할 수 없었다. 빵빵한 지갑을 보일 수 없는 탓에, 민성은 돈을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

“형! 전 언제나 형 편이에요!”

싱긋 웃은 민성은 손을 흔들어주는 진우를 뒤로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진우와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야, 민성은 넣었던 지폐를 꺼냈다.

‘새끼…….’

현상금에 눈이 돌아가 신고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의도야 어떻건 간에 녀석의 배려는 감동이 되어 마음을 적셔왔다. 잠시간 물끄러미 지폐를 쳐다보던 민성은 그것을 곱게 접어 지갑 속에 넣었다. 그리곤 바삐 걸음을 옮겼다.

대설타워로 가기 전, 민성은 먼저 모텔에 들렀다. 그를 따라다니는 악취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저희는 18: 00이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운영시간이 대부분 저녁 이후인 탓인지, 주인장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대실비로 10만 원 드릴게요.”

“들어오세요.”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깨끗이 몸을 씻은 민성은 옷을 갖춰 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제 ‘그라운드 마켓’의 정체를 확인하러 갈 시간이었다.

강남의 역세권에 자리 잡은 거대한 타워. 어림잡아 40층 높이만 한 것이, 대설의 능력을 짐작케 했다.

‘들어가 볼까.’

큼지막한 회전문 앞은 오가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내부에 쇼핑몰도 있는 탓일 것이다. 민성도 대열에 합류해 회전문을 밀고 타워 내부로 들어가자, 곧장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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