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 놔둬라 좀.
27. 놔둬라 좀.
“무슨 일이야?”
“대책부에서 범죄자를 잡으러 왔나 봐.”
그 외에도 일반 주민들은 불구경하듯 멀리서 이 광경을 쳐다봤다.
“오랜만이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안경을 만지작거리는 이종범이 있었다.
“…….”
민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검을 꺼내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범죄자 새끼가 사회문명을 버젓이 누리려 한 것부터 죄악이지. 네 대가리에 걸린 액수가 얼만데.”
이종범은 피식거리며 핸드폰을 들어 까딱거렸다.
‘신고? 아니면 위치추적인가?’
“결국 능력자와 타협한 위선자 새끼한테 듣고 싶진 않은데.”
“상부에서 내려온 방침이었다.”
“예, 예.”
민성은 실소하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손가락에는 풀빛 반지를 끼고 있었다. 이종범은 정곡을 찔렸는지 얼굴이 일그러져들었다.
“잡아!”
이종범이 고함을 지르자, 뒤에 있던 부하들이 민성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야아아아!”
수십 명이 단 한 명에게 달려오는 모습은 꽤나 장관이었다.
“골렘의 굳건한 의지.”
차분하게 숨을 한 번 내쉰 민성은 대검을 들고 몸을 날렸다.
‘응? 이게 무슨…….’
몇 걸음 달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순식간에 놈들의 앞에 도착해버렸다. 황당해하는 얼굴과 달리 민성은 주저 없이 대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조심해라!”
푸확-
이종범의 말이 부하들에게 닿기도 전에, 살 갈라지는 소리가 대로변에 퍼졌다.
“끄아아아아악!”
쏟아지는 내장을 틀어막는 사람부터,
“으어어어어!”
꿀렁꿀렁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까지. 민성의 일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정작 민성의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이게 민첩 상승의 효과인가.’
말도 안 되는 이동속도와 검의 움직임. 모든 것이 증가했다. 한순간에 달라진 속도에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지만, 큰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반지에 내장된 스킬까지 사용할 경우 어떻게 될지 두렵기까지 했다.
“쫓아올 때는 좋았지?”
순식간에 대책부 소속 여자의 옆으로 이동한 민성은 스산한 웃음을 흘리며 대검을 들었다.
“사…… 살려주세…….”
“응, 안 돼.”
푸확-
민성은 가차 없이 대검을 휘둘렀다. 여자의 몸은 단절면이 깨끗할 정도로 두 동강 났다. 여태껏 이딴 놈들에게 쫓겼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솟았다.
“꺄아아아악!”
민성은 양떼를 헤집는 사자처럼 거칠 것 없이 움직였다. 대검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절규와 새빨간 피가 바닥을 적셨다.
“괴……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부하들은 두려움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싸워라! 이대로 물러나면 대책부의 위신이 곤두박질친다!”
이종범은 열을 올리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격차에 떨어진 사기는 올라갈 줄을 몰랐다.
“곤란해 보이는데. 내가 도와줄까?”
이종범의 그림자에서 상냥하지만 고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를 악다문 이종범은 작게 중얼거렸다.
“괜찮습니다.”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해 하더니 결국 이 모양이잖아? 정책변경도 결국 내가 도왔고. 흐음……. 생각했던 것보다 무능한 남잔가?”
그림자는 도발을 섞으며 차분하게 그를 유혹했다.
“끄아아아악!”
“네 부하들이 다 죽어도 괜찮은 거야?”
‘악마 같은 년.’
“…….”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내리고, 악마는 대가를 받고 그 짐을 덜어간다. 악마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대로 가면 전멸하겠…….”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침내 승낙이 떨어지자 그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교태로운 웃음을 흘리는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옷의 면적보다 맨살이 드러난 곳이 많은 차림이었다. 짙은 검정 가죽옷 사이사이로 그녀의 은밀한 곳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만 같았다.
“어차피 부탁할 거 빨리 하면 좋잖아?”
그림자에서 나온 여자는, 이종범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피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
“대가는, 알지?”
이종범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커헉!”
민성은 남자의 배에 틀어박힌 대검을 거칠게 뽑아냈다. 눈동자가 뒤집힌 남자의 신체가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피를 덮어쓴 민성의 모습은 붉은 악귀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약하다. 약해도 너무 약했다. 수많은 인생들이 그의 대검 앞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꺄아악! 살인이야! 미친놈이야! 빨리 신고해!”
주변은 꽤나 소란스러웠지만 민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이상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검을 고쳐 잡은 민성은 새로운 타깃을 찾아 눈을 돌렸다.
‘어?’
기분 나쁜 오싹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아들었다. 사선을 헤치며 생겨난 작은 본능이 어서 피하라고 경고한다. 민성은 급하게 몸을 뒤로 날렸다.
팅-
민성이 서 있던 자리에 단도가 틀어박혔다.
“누구냐!”
민성은 단도가 날아온 방향을 직시하며 으르렁거렸다. 아스팔트 바닥을 가볍게 뚫을 정도의 위력. 예사롭지 않은 놈이 분명했다.
“못 피할 줄 알았는데. 제법이네?”
검은 생머리 사이로 살짝 째진 눈동자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하게도 입었네.’
터질 듯한 셔츠 사이로 깊게 파인 가슴골과, 딱 달라붙은 가죽치마가 그녀의 몸매를 완연하게 드러냈다. 얼굴도 반반한 것이 매혹적인 여자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공격을 받은 이상 그녀는 죽여야만 하는 고깃덩이에 불과했다.
“그렇군요.”
민성은 대답과 함께 튕기듯 몸을 앞으로 내뻗으며 대검을 내려 그었다.
챙-
“대화 중에 공격을 하다니. 예의 없는 아이네.”
여인은 단도를 올려 기습적인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보기보다 힘이 있나 보네.’
가속이 붙은 일격을 막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얇은 팔이었다. 그녀의 팔목에선 희미한 장미 냄새가 풍겨왔다.
“예의가 밥 먹여줍니까?”
민성은 대검을 슬쩍 물렸다가 여인의 어깻죽지를 내려찍었다.
“매력적인 아이네. 내 거 할래?”
여인은 뒤로 몸을 내빼며 단도를 던졌다.
“까세요.”
민성은 야구선수가 스윙하듯 검면으로 쏘아져오는 단도를 후려쳤다. 단도에 실린 힘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손목이 살짝 저려옴을 느꼈다.
‘도대체 이런 놈들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야.’
단순히 몸매에 자부심이 강한 여잔 줄 알았더니 꽤나 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민성은 증가한 이동속도를 이용해 파상공세를 퍼부었다. 대검은 궤적이 쉽사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움직이며 여인의 목숨을 위협해 들어갔다.
“진짜 생각 없니? 누나가 잘 키워줄게.”
여인은 몽환적인 웃음을 지으며 셔츠를 살짝 벌렸다. 육감적인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여자다! 살아 있는 여자다!]
[죽여서 우리의 친구로 만들자!]
원념이 된 난장이들은 순식간에 여인의 몸에 달라붙었다.
‘미친년인가.’
그녀는 이제껏 상대해왔던 이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머, 귀여워라. 네 스킬이니?”
“…….”
여인은 몸에서 꼬물거리는 난장이들을 귀엽다는 듯 쳐다봤다. 하지만 곧 폭발적인 살기가 민성의 몸을 덮쳤다.
“이렇게 다짜고짜 스킬을 쓰는 아이라니. 유입된 지 얼마 안 된 아인가 보구나? 근데 그거 아니?”
아까까지의 일은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요염한 미소 속에선 숨겨져 있던 강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 무슨…….’
찌릿찌릿한 것이 피부를 자극해왔다. 혜정의 살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스킬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야. 상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내포된 행위란다. 상대방이 내 스킬을 알고 있다는 건 상당히 거북한 일이거든.”
뿜어내는 살기와 달리 여인은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그래서요?”
긴장한 민성은 대검을 꽉 쥔 채로 여인을 노려봤다.
“무작정 스킬을 쓰는 버릇없는 아이에겐 벌을 줘야지. 죽음으로 말이야. 폭살검.”
여인은 잔혹한 미소를 그리며 양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던졌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단검에선 희미한 화약 냄새가 묻어나왔다.
수상한 낌새를 감지한 민성은 대검으로 쳐내는 것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민성이 있던 자리에 단검이 틀어박히고, 단검은 균열이 나더니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쾅-쾅-
폭발의 여파로 건물의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인근에 있던 가게의 간판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서졌다.
“으아악!”
멀리 떨어져 구경하던 구경꾼들에게도 폭발의 여파가 들이닥쳤다.
대검을 방패삼아 바짝 수그리고 있던 민성은 여파가 가라앉자 몸을 일으켰다.
“…….”
여인이 만들어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깊은 구멍이 파여 있었다. 가히 전차가 포격을 가한 듯한 위력이었다.
‘미친년…….’
스킬의 위력도 놀라웠지만, 인파가 있는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런 스킬을 쓰는 여자의 정신머리도 놀라웠다.
“가시나무 숲.”
태세를 갖출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듯 그녀의 공격은 계속됐다. 연기 너머로 섬뜩한 목소리와 함께 흙빛 단검이 날아왔다.
“칫.”
민성은 빠르게 몸을 빼내며 혹시나 다가올 피해를 대비했다. 그러나 민성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스킬의 범위가 바로 그것이었다.
촤아악-
단검이 꽂힌 자리에서 굵은 가시들이 솟아올랐다. 일대를 덮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그것들은 날카로운 칼날을 연상케 했다.
‘뭐 이런…….’
앞뒤로 솟아오른 가시들이 민성의 목숨을 노려왔다. 민성은 대검을 휘둘러 다가오는 가시들을 베어냈다. 하지만 그것들은 고유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지, 자르고 잘라내도 끝없이 파고들어왔다.
촥-
“큭.”
등 뒤에서 날아온 가시를 겨우 피해냈지만, 옆구리가 따끔하더니 이내 고통이 몰려왔다. 가시들과 함께 여인까지 합세할 경우 승산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영락없이 죽을 판이었다.
‘아니 왜 이런 인간이 저 새끼 옆에 붙어 있는 건데!’
민성은 멍하니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는 이종범을 노려봤다. 최초의 만남 때는 능력자들을 싸그리 잡아들일 것처럼 굴더니. 분명 이 여인에겐 꼬랑지를 내린 것이리라. 극도의 태세전환을 펼친 것이 분명했다.
‘일단 튀자.’
빠르게 결단을 내린 민성은 몰려드는 가시들을 베어 넘기며 여인과 반대 방향으로 질주했다.
“아직 수업시간인데 어딜 가려 하니?”
여인은 변함없이 고혹적인 미소를 흘렸다. 하지만 민성은 그 미소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었다.
“꺼져!”
민성은 거칠게 소리치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마침내 가시의 숲을 빠져나온 민성은 미친 듯이 앞으로 질주했다.
“아직 1교시도 안 끝났단다.”
민성은 한 마리의 말처럼 빠른 속도로 달렸지만, 여인은 등 뒤를 바짝 추격해왔다.
‘아니, 도대체 민첩이 몇이길래 따라오는 거야? 시발년! 구멍, 구멍.’
팅-
뒤에선 단검이 계속 날아왔다. 하지만 등에 맨 대검의 넓은 면적이 거북이의 등딱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상승한 이동속도로 여인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민성은 다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확실하게 체감했다. 지금 상태로는 저년을 이길 수 없다. 지금은 어떻게든 간악한 년의 손아귀를 벗어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