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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68화 (68/303)

# 68

68화 - 응, 안 돼. (1)

“오랜만이십니다.”

장난기 없는 지부장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날 아나?”

챙-

맹렬하게 움직이는 손과 달리 양측의 얼굴은 담담했다.

“제자 얼굴도 기억 못 하십니다?”

“너는……? 누구냐?”

“되셨습니다. 배신자는 오늘 여기서 죽으십니다.”

머리로 날아오는 대검을 검면으로 흘린 지부장은 역으로 남자의 어깨에 검을 휘둘렀다.

“크하하하하하! 미안하다. 가능성이 없는 조무래기는 기억하지 않는 편이라.”

남자는 광소하며 대검을 옆으로 돌려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발을 들어 지부장의 배를 걷어찼다.

“크윽…….”

고통에 인상을 찌푸린 지부장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죽어라!”

뒤늦게 도착한 민성이 대검으로 남자의 몸을 내려찍었다.

“잔챙이는 꺼져라!”

폭발적인 살기를 담은 일격이 민성의 대검과 맞부딪혔다.

‘무슨…….’

순간, 단 일 합이었지만 민성은 느낄 수 있었다. 일격이 가진 파괴력은 혜정의 것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야말로 하늘 위의 하늘이었다.

“커헉…….”

힘에 밀린 민성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바닥을 몇 차례 뒹군 민성은 죽은피를 뱉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나를 좀 더 즐겁게 해봐라!”

“그런 건 관심 없으십니다.”

지부장은 단 한 치도 밀리지 않으며 남자의 목숨줄을 노렸다.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멀었구나.’

“골렘의 굳건한 의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생명체다! 전부 죽여 버려!]

[죽음 속에서 하나가 되는 거다!]

난장이들은 흉터를 가진 남자에게 날아갔다.

‘오늘 잔챙이한테 된통 당해봐라.’

민성은 살벌한 웃음을 흘리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큭…….”

누적된 충격 탓인지 대검을 정면으로 막아낸 지부장의 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래도 내 몸에 상처 입힌 것은 칭찬해주마. 자랑스러워하며 죽어도 좋다.”

“개소리 하십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부장의 눈은 죽지 않았다.

“잘 가라. 응?”

대검이 지부장의 몸을 가르려던 찰나, 하얀 난장이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얼른 죽어!]

[빨리빨리 죽어라!]

“이건 또…….”

남자는 몸에 달라붙은 난장이들을 털어내려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끈끈이에 붙은 벌레마냥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네놈의 능력이냐?”

“…….”

“내 거다, 이 새끼야!”

민성은 대검에 온 힘을 실어 그대로 내려쳤다.

챙-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새끼는 죽어야지.”

공격을 가벼이 막아낸 남자는 대검을 밀쳐내며, 민성의 몸으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분명 난장이가 달라붙어 있는데도, 이 정도 속도면…….’

“꺼져라!”

민성에게 가까이 붙은 남자는 그대로 대검을 위로 쳐올렸다.

“크윽.”

정면으로 막았다간 아까와 같은 꼴이 날 것이었다. 민성은 본능적으로 바닥에 몸을 던졌다. 한 끗 차이로 대검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다.

치이익-

그와 동시에 민성의 대검은 아주 살짝이나마 남자의 발목에 생채기를 냈다.

“흡……. 이 무슨……?”

마나가 소모됨과 동시에 격한 고통이 몰려왔다.

“잔챙이 무시했다가 훅 간다.”

민성은 스산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 새끼…….”

잔챙이인 줄 알았더니 독을 품은 복어였다. 남자의 머리에 경종이 울렸다. 살려뒀다간 반드시 후회할 것만 같았다.

“반드시 죽인다. 소환…….”

“돌아와라.”

남자가 입을 달싹거리려는 찰나, 목석같이 굴던 소년이 움직였다.

“하지만 대장! 지금 놈을 죽이지 않으면…….”

“시간이 지체됐다. 곧 연합의 지원군이 몰려온다.”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소년의 초점 없는 동공이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것이냐?”

“아니 그것이……. 끙…….”

남자는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대검을 등에 걸쳐 멨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운 좋은 줄 아세요.”

민성은 지지 않겠다는 듯 남자의 등에 쏘아붙였다. 남자는 고개를 돌려 잠깐 노려보더니, 이내 소년의 곁으로 다가갔다.

“후…….”

‘살았다…….’

민성은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야말로 요행이었다.

만약 소년이 명령을 내리지 않았었다면?

놈의 대검은 집요하게 그를 노렸을 것이고, 끝내는 죽었을 게 분명했다.

“제법이십니다.”

지부장은 입에 고인 검은 피를 뱉어내며 검을 집었다.

“저런 괴수를 상대로 호각을 벌이신 분이 하실 말은 아니죠?”

뿌득-

“호각이 아니셨습니다.”

지부장은 진심으로 분하다는 얼굴이었다.

“일단 방주와 합류하십니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승의 상황을 살폈다. 혜정과 싸우던 여자도 이미 소년의 곁에 붙어 있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자각사를 겁박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혜정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눌렀다. 놈들과 손을 섞으며 느낀 것. 놈들의 무력은 그보다 밑이 아니었다.

“어머. 나이가 지긋하셔서 그런가? 며칠 전에 직접 찾아가서 사전경고까지 해드렸었는데, 기억이 안 좋으신가 봐요?”

“네놈들은…….”

노승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빠르게 상기해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전각에 침입했던 복면인의 말.

손녀를 죽음의 늪으로 끌어가고 있는 것은 병마가 아니라 저주다. 우리 조직은 저주를 풀 능력이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방주의 신패를 넘기고 혈교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을 것.

“신분조차 밝히지 않는 놈의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그건 저희가 알 바 아니에요.”

“네놈들……. 처음부터 이럴 심산이었구나!”

노승의 악다문 입에서 거친 음성이 토해져 나왔다.

“아직 늦지는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저희의 조건을 수락하신다면 곱게 물러나 드릴게요.”

“자각사는 악의와 타협하지 않는다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그렇다는데요, 대장님?”

여자는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서 있던 소년을 바라봤다. 그러자 소년은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동시에 전각에서 끔직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노승이 목숨보다 아끼는 손녀의 구슬픈 울림이었다. 소년의 중얼거림이 멈추자 비명소리도 마법처럼 끊겼다.

“설마……. 네놈들…….”

“말씀드렸잖아요. 저희는 손녀분의 저주를 풀 수 있다고. 그 말은 곧 뭐겠어요?”

“네놈들이 감히 내 손녀를!”

괴성을 지른 노승이 몸을 날리려 했지만, 여자의 한마디에 제지되었다.

“지금 움직이시면 손녀분의 목숨은 저희도 보장 못 해요.”

“네년이…….”

“꺄아아아아아악!”

또다시 소녀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만! 그만해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괴감이 전신을 감싸왔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대로 손녀딸을 잃으시겠어요?”

“나는……. 나는…….”

석장을 쥔 노승의 주름진 손은 한없이 떨려댔다.

“큰일 나셨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방주가 놈들의 조건을 들어주십니다. 그럼 결국 놈들이 원하는 대로 되시는 것입니다. 아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소생단을 들고 나오셨어야 합니다. 너무 안일하셨습니다.”

지부장은 갈팡질팡하며 대책을 모색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거기!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였다간 방주의 손녀에게 쓴맛을 보여줄 테니까.”

심지어 놈들은 움직임조차 제한하고 있었다.

“5분 내로 결정하지 않으신다면 손녀의 미소는 영원히 볼 수 없을걸요.”

“크윽…….”

‘피로 연결된 가족도 아닌데.’

민성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혜정의 딸 방소혜는 그의 의녀라고 들었다. 의녀야 키운 정과 함께 보낸 세월이 있을 테니 친딸이라고 여긴다 해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녀의 딸, 즉 저 소녀는 달랐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손녀라 하더라도 그 목숨의 가치가 ‘삼족오’라는 연합에서 탈퇴할 정도인가 하는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한 무리의 장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도……. 부럽네.’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본성이 드러난다. 노승의 모습에서 진실한 혈육의 정이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는 너무나도 대비되는 행보였다.

‘그딴 건 어머니가 아니야. 빌어먹을 년.’

잠시 머릿속으로 그린 것만으로도 거북함이 몰려왔다.

“혹시 놈들에게 걸리지 않고 손녀에게 갈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은 있으십니다만, 무슨 연유십니다?”

“잘만하면 놈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민성은 지부장의 귓속에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지부장의 작은 눈매가 크게 벌어졌다.

25. 응, 안 돼.

고풍스러운 외관과 달리 실내는 현대식으로 인테리어 돼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새하얀 침대에 가냘파 보이는 소녀가 누워 있다.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그녀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있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은 그녀의 고통을 어림으로나마 짐작하게 만들었다.

“어…… 엄마, 어딨어……? 너……무 아……파.”

작은 입술에서 신음 비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엄마 여기에 있어! 우리 소미 옆에 꼭 붙어 있어!”

방소혜는 딸아이의 손을 꼭 붙잡았다. 혹시라도 아이가 불안해할까, 눈에 고인 눈물을 연신 훔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 엄……마……는 아……빠처……럼 사라……지지……. 항……상 내…… 옆…….”

“그럼! 엄마는 항상 우리 아가 옆에 있을 거야! 응? 엄마는 소미가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서 행복하게 살 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소미도 얼른 나아야지?”

“응, 헤……. 꺄아아아아아악!”

고통이 소녀를 끝없이 잠식해 들어갔다.

“나무아미…….”

옆에선 승려들이 불경을 외우며 손에서 따스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고통을 덜어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아아……. 어째서 우리 아이가 이렇게…….”

소녀의 눈에 흰자가 드리우자, 방소혜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의 딸이 앓고 있던 지병. 사실 지병이라기보단 저주에 가까웠다.

째깍이는 몸.

소미가 걸린 병마의 이름이었다. 어디서, 왜 걸렸는지 그 이유도 몰랐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알아낸 것이라곤, 당사자가 나이를 먹을수록 장기가 녹아내린다는 것.

이 상태론 15세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미의 몸 상태를 확인한 명의들과 힐러들의 결론이었다. 어떠한 묘약도 스킬도 듣지 않았다. 현재까지 대책으로 제시된 유일한 방법은 소생단을 이용해 신체를 재구축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여태껏 잘 참아낸 딸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고비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모습은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흑흑…….”

방소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통에 울부짖는 소미의 손을 꼭 붙잡아주는 것뿐이었다.

쾅-

고급스러운 나무문이 거칠게 열렸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연 당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후…….”

그리고 투명화돼 있던 민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부장이 그의 동생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벌여주려고 챙겨놨던 공기사탕이 도움이 되었다.

[공기사탕]

등급: ★

설명: 공기 맛을 담은 사탕. 안 보이니 포장지로 잘 감싸도록 하자.

효과: 10분 동안 투명화 상태가 된다.

횟수제한: 1/1

넓적한 전각 내부에서 손녀가 있는 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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