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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66화 (66/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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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 방구 뀐 놈이 성낸다. (1)

24. 방구 뀐 놈이 성낸다.

일행이 나온 곳은 반쯤 허물어져 있는 오크의 동상 앞이었다. 이곳은 들어가기 전과 차이가 없었다. 다만 혜정이 보이지 않을 뿐.

“기다리고 있었다.”

대신이라고 하기 뭐한 남자가 그들을 맞이했다.

‘저 사람은.’

그는 해체실에서 합을 겨루었었던 허살단의 대주였다.

“젠장, 그래도 그렇지 왜 하필 나를……. 방주님도 너무하시지.”

남자는 혼잣말로 뭐라 중얼거렸다. 갈기갈기 뻗은 머리와 사나운 눈매가 그들을 노려봤다. 부하의 부상은 곧 통솔자의 책임. 그는 그 책임을 묻기 위해 이곳으로 나와 있었다.

“고급도 아니고 중급으로 들어갔었다면서 뭐 이리 오래 걸렸어!”

남자는 민성들에게 삿대질하며 분풀이했다. 특히 민성을 집요하게 노려봤다. 부하 두 명을 중상 입힌 놈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방주님은?”

앞서 던전에서의 일 때문에 심기가 상해 있었던 민성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급한 볼일이 생기셔서 먼저 돌아가시고, 대신 내가 왔다. 것보다 지금 반말이냐?”

“예의 없는 놈한테 예의 차릴 필요는 없지.”

받은 대로 돌려준다. 그게 예의이자 배려였다. 상대에게 존중받고 싶거든 먼저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아야 했다. 하지만 대성이고 눈앞의 남자고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긴, 부하고 대장이고 다짜고짜 칼부터 들이미는 놈들한테 예의가 있을 리가 있나.”

“이 새끼가!”

“왜? 꼬우면 덤비든가. 쫄았냐?”

계속되는 도발에 단검을 쥔 남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댔다. 한참을 자리에서 떨던 남자는 몸을 돌렸다.

‘새끼. 보기보다 참을성이 많네. 아니면 방주의 명령이 절대적인 건가?’

이미 감정을 가라앉힌 민성은 올라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냈다. 여태껏 계산이 빠른 노괴들만 상대하다가 이렇게 단순한 놈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찰진 반응이 꽤나 볼만했지만, 더 이상 도발했다간 정말 칼부림이 날 것 같았다.

“따라와라.”

끝내 피식 웃은 민성은 남자의 뒤를 따라 걸었다. 놈은 감정을 삭이고 있는지, 가로수 길을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 부들거렸다. 뒤 한 번 돌아보지 않던 남자는 절간까지 돌아오고 나서야 다시금 등을 돌렸다. 남자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돌아간다. 좀 더 있는다. 선택해라.”

고심하는 척하던 민성이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살대의 대주가 된다.”

“죽여 버린다!”

순간, 남자에게서 폭발적인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농담이다. 그렇게 단순해서 대주는 어떻게 됐나 몰라.”

“이 새끼가 진짜!”

남자의 포효를 무시한 민성은 몸을 돌렸다.

“어떻게들 하실 건가요? 저는 돌아갈 겁니다.”

사실 일행의 의견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씩이나마 붙었던 정이라는 감정은 아이템의 배분문제로 산산조각 났다. 반대의사가 나오면 그땐, 각자 행동을 취하면 될 일이었다.

“나간다.”

“아…… 아루도 같이 나갈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민성은 남아 있는 한 사람을 쳐다봤다.

“나는…….”

던전에서 나올 때까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던 대성만이 대답을 유보했다.

“얼른 결정을 해주셔야 저희도 움직일 수 있어요.”

“남겠어.”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의 동행은 여기까지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정산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정산이라니?”

대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말 그대로 정산입니다. 던전에서 나온 것들에 대해선 터치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해체장을 털면서 나왔던 돈은 정산해야죠. 돈 때문에 사람도 죽이는 세상인데, 설마 홀라당 가져가실 생각은 아니었겠죠?”

민성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대검자루에 손을 갖다 댔다.

“설마……. 헤어질 때쯤 머릿수대로 나누려 했지.”

잠잠한 어투와 달리 대성의 손에는 굵은 핏줄이 솟아올라 있었다. 대성은 아이템창에서 커다란 박스를 꺼냈다. 박스에서 나온 물품은 5만 원 지폐다발 500묶음과 1kg 금괴 50개였다. 한 다발 당 100장의 지폐가 묶여 있었다.

“지폐는 정확히 125묶음씩 분배하면 되고, 금괴는…….”

12개씩 분배할 경우 2개가 남는다.

“민성 씨가 2개 더 챙기세요. 아루는 그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아루는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금괴 2개를 건넸다.

“시가 5,000만 원짜리를요?”

“애초에 민성 씨가 아니었으면 만져보지도 못했을 돈인데요.”

“갖는다.”

이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머뭇거린 민성은 금괴를 받았다.

“정 그렇게들 생각하신다면야, 감사히 받겠습니다.”

배분을 끝내고, 각자 상자를 챙겨 말없이 돈을 담았다. 아루와 이신은 아이템창이 꽉 찬 탓에, 뺄 아이템을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 더 요구할 건 없겠지?”

무뚝뚝한 대성의 말투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네, 고생 많으셨어요.”

“결정했으면 빨리 움직여! 나는 그렇게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대화가 파장되는 듯하자, 대주는 사람들을 재촉했다.

“나가는 길을 알려줘야 나가지.”

“빌어먹을 새끼. 따라와라.”

민성을 노려보던 남자는 인상을 구기고 앞장섰다.

“어이, 너는 남는다고 했지? 그럼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괜히 엉뚱한 데 들어갔다가 기관에 뒤지지 말고. 곧 연꽃이 올 테니까, 그걸 타고 나가라. 애초에 이 장소는 외부인이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니까.”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민성들을 데리고 절간의 내부로 들어갔다.

곧바로 남자가 말했던 연꽃이 누군가를 태우고 내려오고 있었지만, 대성은 멀어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발새끼들……. 두고 보자.”

그깟 돈 몇 푼과 조악한 아이템 덕에 자존심은 산산이 박살나버렸다.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빨리 좀 따라와라.”

남자는 점점 절간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봤던 광경과 달리,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담장과 담장이 맞물려 작은 미로를 구축한 것 같았다. 남자의 인도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헤맸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 건데?”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거 아냐!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남자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혼절한 상태로 들어온 민성이 알 리가 없었다.

“입에 걸레를 물고 태어났나, 모를 수도 있지. 다른 손님들한테도 그렇게 대하냐? 방주님이 퍽이나 좋아하시겠다.”

혼절해서 모른다는 내용을 뺀 민성도 그에 응수하며 고개를 저었다. 남자가 눈을 부릅뜨자 민성은 피식거리며 손을 까닥거렸다.

“꼬우면 덤비라니까? 누구 덕에 자각사는 손님을 막 대하는 몰상식한 곳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지겠네.”

“…….”

정곡을 찔렸는지 부들대던 남자는 몸을 홱 돌렸다.

“너무 막 대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루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소곤소곤 거렸다. 과도한 도발 탓에, 자각사의 무사들이 습격해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원래 주는 대로 받는 겁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민성의 지론이자 신념이었다.

다행히도 아루가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입을 다물고 묵묵히 길을 안내했다. 긴 담장을 지나 문을 넘어가자 거대한 전각이 보였다.

‘왕이나 다름없구나.’

사극에서나 볼 법한 궁궐과 호위하는 병력들. 한복을 다소곳이 차려입은 부녀자들이 넓은 부지를 오갔다. 옆에는 유독 삼엄한 경비를 자랑하는 거대한 파란색 게이트가 놓여 있었다.

“다 왔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현실로 나갈 수 있다. 얘기는 다 해놨으니까, 이제 얼른 꺼져.”

대주는 손을 들어 기다란 행렬이 늘어서 있는 게이트를 가리켰다.

“아루 씨, 저놈 말이 사실이에요?”

혼절한 상태로 들어온 탓에 확인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 아루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곳에 들어올 때도 저 게이트를 이용했었어요.”

수긍한 민성은 대주의 옆으로 다가갔다.

“수고했다.”

그리곤 남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이마에 잔 핏줄이 올라온 대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저쪽이 출구로 나가려는 대기 열 같은데. 저희도 저쪽으로 가죠.”

민성들이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오! 또 만나십니다.”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가느다란 눈매에 변함없이 부족한 한국어. 한숨을 내쉰 민성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지부장을 쳐다봤다. 무얼 그리 잔뜩 샀는지, 손에는 묵직한 봉지들이 가득했다.

“그러게요. 과할 정도로 자주 뵙네요.”

“저분은 누구세요?”

아루의 동그란 눈동자가 지부장을 위아래로 훑었다.

“어……. 그냥 안면이 조금 있는 지인이에요.”

민성은 아루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렸다.

“저를 너무 좋아하십니다? 이 정도면 스토커나 다름없으십니다.”

“…….”

“기념으로 특별히 인심을 쓰십니다. 이것 좀 맛보십니다?”

지부장은 봉지를 뒤적이더니 동그란 물체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건……. 뭡니까?”

사과같이 생긴 것이 불꽃 모양까지 새겨져 있으니 여간 수상스러운 게 아니었다.

“이걸 모르십니다? 자각사의 특산물 ‘열나과실’이십니다. 잘 보십니다.”

몸소 시범을 보이려는 듯 지부장은 몸소 과실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화아악-

그러자 지부장의 입에서 뜨거운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이래서 자각사를 자주 방문하십니다. 자, 어서 드셔보십니다. 화끈한 맛이 아주 끝내주십니다.”

지부장은 낄낄거리며 민성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이런 게 특산물이라고요?”

지부장의 기대에 찬 눈을 바라보던 민성은 한숨을 내쉬며 ‘열나과실’을 살짝 깨물었다. 과육은 달콤했다. 민성은 그것을 잘게 쪼개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러나 곧 달콤함 너머로 화끈한 열기가 몰려왔다.

‘겁나 매워!’

열기를 이기지 못한 민성은 입을 열었다.

화아악-

갇혀 있던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물!”

민성은 불길을 토해내며 물을 찾아다녔다.

“끝내주십니다?”

민성의 반응이 웃겼던지, 지부장은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아루도 먹어보고 싶어요!”

“나도.”

화아악-

“그나저……나, 콜록, 여긴 왜……?”

강렬한 후폭풍 탓에 민성은 연신 잔기침을 했다.

“당연한 것 아니십니다? 장보기가 끝났으니 얼른 돌아가십니다. 우리 소소가 기다리십니다. 소소가 좋아하는 오이고기도 잔뜩 사셨으십니다!”

지부장은 손에 가득 든 봉투를 흔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예.”

“이번에는 소소가 치마를 사셨는데, 어찌나 이쁜지…….”

지부장은 한참 동안 동생 칭찬에 열을 올렸다. 확실했다. 놈은 동생바보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또…….”

“저희는 이만 나가봐야 돼서.”

칭찬이 끝날 것 같지 않자, 민성은 지부장을 제지했다.

“어차피 당신들도 게이트를 타지 않으십니다?”

“그렇죠.”

“그럼 만난 김에 같이 타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 소소가…….”

민성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져들었다. 결국 민성들은 지부장과 함께 출국을 기다리는 행렬의 끝에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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