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63화 - 자각사 (2)
“중요한 형! 빨리 타요!”
“허허, 어린이의 순진함은 생불과 다름이 없지.”
연꽃에 오른 동자승은 꽃잎을 탁탁 치며 민성을 독촉했다. 동자승의 독촉에 민성은 천천히 연꽃에 올랐다.
“출발할게요!”
연꽃은 소리 없이 하늘로 오르기 시작했다.
“오오!”
민성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비행기가 뜰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차, 이걸 깜빡했군. 빌려주겠네, 가져가게.”
노승은 가사를 뒤적거리더니 뭔가를 꺼내 민성에게 던졌다.
‘이건…….’
십층 석탑이 각인된 작은 금패였다.
“돌아왔을 때의 표정을 기대하겠네.”
노승은 손까지 흔들며 친절하게 배웅했다.
“형도 바깥에서 왔어요?”
맑은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바깥이라니?”
이곳은 자각사의 내부가 아니었던가.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요! 저도 알 건 다 안다구요! 형도 바깥에서 온 사람이잖아요.”
민성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이 좀 정신이 없는 상태로 이곳에 들어와서.”
일어나 보니 자각사였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치. 중요한 형이라더니, 모자란 형이었어.”
“모자란 게 아니고, 정보가 부족한 형이라고 해주렴.”
“그게 그거잖아요!”
민성이 동자승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높이 솟아오른 연꽃은 하늘을 부유하며 절간을 벗어났다.
연꽃 아래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옥들과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이 보였다. 등 뒤로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거대한 돌기둥이 서 있었다. 기둥 위에는 그들이 나왔던 절간이 보였다. 하늘에서 보니 절간의 크기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
마치 남산타워의 전망대에서 서울전경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경이로운 광경을 접한 민성의 입에서는 탄성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대단하죠? 자각사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구요!”
동자승은 뿌듯해하며 민성의 반응을 즐겼다.
“시장도 있어?”
“당연하죠!”
고개를 크게 끄덕인 동자승은 연꽃의 방향을 한쪽으로 틀었다.
“강 건너 물 타고 온 곱디고운 비단 한번 보고 가요!”
“오늘 수확한 사과! 참 싱싱한 사과가 한 소쿠리에 단돈 3은총! 쌉니다, 싸요!”
번잡한 시장가에 도착하자 가게에선 상인들의 호객소리가 잇따라 들려왔다.
“거 좀 깎아줘요!”
“에헤이, 더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만면에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은총은 뭐야?”
“자각사에서 사용하는 화폐들 중 하나예요.”
연꽃을 색종이마냥 접어 품에 넣은 동자승이 물음에 답했다.
‘설마 독자적인 화폐문화도 있는 건가?’
호기심이 동한 민성은 목청 터져라 소리 지르는 과일장수에게 다가갔다.
“이걸로는 계산할 수 없나요?”
민성은 주섬주섬 꺼낸 만원을 들이밀었다.
“아, 바깥 분이셨수? 그 돈은 사용할 수 없으니, 저쪽 환전소를 이용하시구려!”
상인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시장의 끝 쪽을 가리켰다.
“아, 네……. 감사합니다.”
“환전소에는 안 가셔도 돼요.”
곁으로 다가온 동자승은 금빛으로 빛나는 동전을 건넸다. 동전에는 부처의 얼굴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건……?”
“그건 금총이라고 자각사에서 제일 높은 가치를 지닌 화폐예요. 방주님이 모자란 형을 위해서 챙겨주셨어요.”
민성은 얼떨떨해하며 동전을 받았다. 갓 도시에 상경한 시골 쥐가 된 기분이다.
“저건 뭐야?”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던 민성은 유독 화려하게 치장된 건물을 가리켰다.
“거기는 바깥에서 온 사람들과 자각사의 무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상점이에요. 저는 아직 들어갈 수 없어요.”
동자승은 시무룩해하며 고개를 떨궜다.
“왜?”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요.”
동자승은 나이답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지키는 사람도 없잖아?”
민성은 상점을 슬쩍 쳐다봤다. 그 흔한 경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출입 자체가 안 된다니까요.”
상점의 입구에 다가간 동자승은 잘 보라는 듯 낑낑거리며 문을 밀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헥헥. 봐요! 안 되잖아요.”
“진짜네.”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나 무사님들은 손만 대면 바로 이동하시던데……. 한번 갔다와보실래요?”
동자승의 곁으로 다가간 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대려는 그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게 누구십니다!”
입가에 붉은 소스를 잔뜩 묻힌 남자가 닭 꼬치를 흔들고 있었다.
“당신이 여긴…….”
마교 지부장을 본 민성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참 인연이십니다.”
초승달처럼 기울어진 그의 얇은 눈매는 민성을 주목했다.
“여긴 어쩐 일로?”
“지부장은 바쁘십니다. 그쪽에 볼일이 있으십니다.”
“저에게요?”
“아니십니다.”
손가락을 까딱인 지부장은 민성의 뒤쪽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그렇군요.”
수긍한 민성은 지나가라는 듯 자리를 비켰다.
“감사하십니다.”
슬쩍 웃음을 흘린 지부장은 민성의 곁을 스쳐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 주도 채 안 남으셨으십니다.”
“…….”
그리곤 문을 만지더니 상점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젠장…….’
지부장의 눈빛은 분명 무시의 그것이었다. 왠지 모를 모멸감이 끓어올랐다. 이를 악다문 민성은 지부장이 사라진 문을 노려봤다.
“형은 안 들어가실 거예요?”
바뀐 분위기를 느꼈는지, 동자승의 태도는 조심스러워졌다.
“응. 괜찮아. 나중에 기회가 될 때 가보려고.”
괜히 들어갔다가 또 지부장의 면상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이내 감정을 가라앉힌 민성은 웃으며 동자승을 쳐다봤다.
“또 볼만한 곳이 있을까?”
“당연히 있죠! 형은 운이 좋아요. 오늘 승천제단에서 성인식이 거행되는 날이거든요!”
“승천제단?”
말보다 보는 게 빠르다며 동자승은 연꽃을 펼치고 민성을 태웠다.
자각사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돌기둥. 그 밑에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 줄줄이 걸린 연등과 수수한 꽃들. 다양한 불상들이 의식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숫자가 어마어마한데?”
제단 밑에는 앞서 와 있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 아들이 드디어 성인식을 치른다니.”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해야지.”
왁자지껄한 것이 시장의 북새통과 다름이 없었다.
둥, 둥, 둥-
“신자들은 주목하십시오!”
방금의 소란이 거짓말인 것처럼 분위기는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지금부터 성인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승려의 말이 끝나자, 한복을 입은 젊은 남녀들이 차례를 따라 제단 위로 올라왔다.
“모든 것은 대자대비하신 부처의 뜻대로.”
눈을 감은 승려는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엄숙한 분위기 탓에 민성은 소리를 죽였다.
“선택하는 거예요. 자각사의 정식 무사가 되길 원하는 자는 앞에 보이는 제단의 내부로 이동하고, 그렇지 않은 자는 불상에 일백 배를 올리고 내려오면 돼요.”
“정식 무사가 되면 이점이 있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요.”
동자승은 어지간히도 부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럼 전부 무사가 되려 하겠네?”
선택지가 두 가지뿐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무사가 되는 쪽을 선택할 것이었다.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요.”
‘이게…….’
동자승의 말대로였다. 상당수의 남녀들은 불상에 절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의지를 가진 자들의 선택이겠지만, 이건 너무 의외였다.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으니, 굳이 무사가 될 이유가 없다는 거겠죠. 하지만 저는 언젠간…….”
각자가 처한 현실이 있고, 사람들은 그에 맞추어 움직인다. 괜한 동정심도, 측은함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듬은 민성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힘내라.”
동자승은 의미 모를 서글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외에도 민성은 동자승의 인도를 받아 자각사의 내부를 구경했다. 식당가부터 유흥거리가 가득한 거리, 그 외에도 널따란 농토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작은 국가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한참을 구경한 뒤에야, 민성은 동자승과 함께 연꽃을 타고 돌기둥 위로 향했다. 동자승은 민성을 내려준 뒤, 연꽃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
“만족스러운 관람이 됐는지 모르겠네.”
노승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반겼다.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승이 줬던 작은 금패를 건넸다.
“덕분에요. 그 패 덕에 공짜로 잘 먹었습니다. 근데 방주의 신패를 타인에게 막 빌려줘도 되는 겁니까?”
노승이 건넸던 금패는 다름 아닌 방주의 신패였었다. 그 덕에 별 불편함 없이 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손녀를 구해줬으니, 이쪽에서도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을 뿐이라네.”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마교지부와는 비교조차 안 되더군요. 이렇게 방대한 곳이 존재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본교도 아닌 지부라니.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네.”
노승의 얼굴엔 한없는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한두 해에 걸쳐서 만들어진 곳이 아닌 것 같던데…….”
“자각사는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지. 중앙에 구비된 도서관은 가보지 않은 건가?”
“전부 돌아보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날을 잡아도 며칠은 족히 걸릴 크기였다.
“저런.”
노승은 정녕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주님!”
그때, 한쪽 멀리서 여무사가 급하게 뛰어왔다.
“기초무사들의 기초교육이 끝났습니다.”
“흠, 그래? 그럼, 지금 바로 가지.”
고개를 끄덕인 노승은 슬쩍 민성을 쳐다봤다.
“자네도 같이 가겠나? 꽤나 재밌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무엇을……?”
“방주님! 외부인에게 보여주셔도 되겠습니까?”
여무사는 불신에 찬 눈으로 민성을 쏘아봤다.
“뭐 어떤가. 검마 밑에 들어갔어도 결국 알게 됐을 일인데.”
아무리 잠시 이성의 끈을 놓았다 하더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노구에 상처 입힌 인물이었다. 나이도 젊은 것이 얼마나 더 뻗쳐올라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인연의 끈을 만들되 그 끈이 삭아버리면 그때 가서 잘라내도 늦지 않을 것이었다.
“어떻게 하겠나?”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닌 것 같은데, 가겠습니다.”
검마까지 언급되자 궁금증이 동한 민성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럼 가세나.”
“민성아!”
때맞춰 일행들을 태운 연꽃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저들도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민성이 동의를 구하자, 한숨을 내쉰 노승은 따라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절간은 위에서 봤을 때보다 방대한 크기였다. 한참을 걷고 나서야 절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뒤로는 나무가 빽빽이 심어진 오솔길이 이어졌다.
“여긴 진짜 없는 것 빼고 다 있더라! 민성아, 홍등가 가봤어? 아가씨들 자태가 그냥…….”
대성은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한심해요. 크로스도 부끄러워서 같이 못 다니겠대요. 아루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루는 더럽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대성과 거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