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화 - 목표를 포착했다 (2)
“헤헤, 하찮은 상인에게 이런 과분한 관심을…….”
남자가 내리자 곧바로 여러 장정들이 그를 둘러쌌다.
“물건은 가지고 왔나?”
“그, 그럼요! 완벽하게 밀봉해서 꽁꽁 싸맸습니다.”
남자는 연신 허리를 수그리며 저자세를 유지했다.
“착용하고 따라와라.”
장정들 중 하나가 그에게 안대를 건넸다.
“당연합죠!”
남자는 냉큼 지시에 따라 안대를 착용했다. 장정들은 남자를 어느 방으로 데려갔다. 그 중 리더로 보이는 장정은 방 한쪽에 있는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
덜컹-
벽이 올라가고 새로운 방이 나왔다. 새로운 방에서도 마찬가지로 단말기를 찍자 벽이 올라가고 새로운 방이 나왔다.
그러기를 몇 번……
“안대를 풀어도 좋다.”
“어이쿠.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헤헤. 그나저나 이 방은 언제 와도 참 아름답군요.”
한 쌍의 눈알부터 절단된 다리까지. 내부는 실험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신체부위들이 액체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남자의 살가운 태도에도 장정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늦지 않게 왔군. 내가 정 실장만큼 시간관념이 철저한 사람은 본 적이 없어.”
“헤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잔뜩 긴장한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그래, 주문한 물건은 가져왔나? 매우 기대되는군.”
“그럼요! 어느 분이 주문하신 건데, 신중에 신중을 더해 운송해왔습니다.”
남자는 허겁지겁 캐리어의 잠금장치를 풀고 조심스럽게 열어젖혔다.
“오오오…….”
벌떡 일어난 남자는 황홀해하며 캐리어에 다가갔다.
“헤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들고말고! 대금을 지불하도록 하지.”
그것을 찬찬히 어루만지던 남자는 가볍게 손짓했다. 그러자 장정 중 하나가 검은 007가방을 들고 와 남자에게 들이밀었다.
“10억이다. 맞는지 확인해봐.”
“어이쿠, 어느 분이 하시는 말씀이신데요. 당연히 맞겠지요!”
말과 달리 남자는 가방을 슬쩍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황금색 지폐다발들이 보이자 재빨리 가방을 닫곤 실실거렸다.
“완벽해. 완벽한 라인이야……. 역시 다음에도 정 실장에게 맡겨야겠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맡겨만 주신다면 다음에도 완벽한 상태로 드리겠습니다!”
손바닥을 비비던 남자는 이내 장정들과 함께 방을 빠져나갔다.
*
“찾았다……. 드디어.”
티노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모두 전해들은 민성은 거친 호흡을 반복했다. 심층 깊이 묻어놨었던 증오라는 감정이 끓어올랐다. 의안으로 메꾼 왼쪽 안구에서 강한 고통이 밀려왔다. 친구를 잃은 아픔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놈들을 찾아내어 모조리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그는 한없이 약한 존재였었다.
‘진정해. 진정해.’
숨을 고른 민성은 기억을 가다듬었다. 분명 조각상에서 나왔던 USB에 대설의 이름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전혀 접점이 없는 놈들인가.’
각기 다른 조직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놈들을 놔둘 순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민성의 안색이 시시각각 바뀌자, 아루는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죄송한데, 제가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네요.”
“그렇다면 우리도 같이 가겠어.”
“……개인적인 일이라니까요.”
민성은 그들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다. 스스로 매듭지어야 할 일이었다.
“조금 전에 현실에서의 일은 서로 협조하기로 약속했잖아.”
“그 뜻이 아닌 거 잘 아시잖아요.”
하지만 대성은 반쯤 억지를 부리며 도와주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민성은 그를 차갑게 노려보며 구겼던 수배서를 넘겼다.
“이건…….”
“사람을 죽일 겁니다. 그럼 똑같은 신세가 되겠죠. 그래도 따라올 거예요?”
수배서를 받아든 일행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자칫 진로를 잘못 잡았다간 그들 역시 범죄자로 전락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었다.
대성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네가 아니었으면 거기서 다 죽었어. 그리고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래 봬도 우리 역시 수라장을 빠져나온 사람들이니까.”
그 말에 동의하듯 아루와 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하세요. 책임은 지지 않겠습니다.”
“좋아! 리더의 동의도 얻었겠다, 가보자!”
구석에 숨어 기다리길 몇십 분. 마침내 목표가 빌딩을 나섰다.
“놈이 나왔습니다. 쫓아가죠.”
남자가 도로변에 주차된 차에 오르자, 일행도 미리 대기시켜두고 있던 택시에 급하게 몸을 던졌다.
“아저씨! 저 앞의 검은 벤츠만 따라가 주세요.”
“2배를 주겠다는데 여부가 있겠나!”
‘끝장을 보자.’
한 명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놈들의 근거지까지 찾아낸 뒤 깡그리 소탕할 것이다. 눈가를 부여잡은 민성은 앞서가는 벤츠를 노려봤다.
벤츠의 뒤를 따라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홍대의 어느 상가 앞이었다. 남자는 거침없이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저희도 따라 들어가죠.”
일행도 서둘러 뒤를 밟았다. 남자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듯 이리저리 잘도 진로를 바꿨다. 그러더니 이윽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절로 들어간 것 같은데.”
대성은 검은 창문시트에 가려진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피부 관리&네일아트 전문’이라 적힌 간판과, 조금 전까지 출입이 있었다는 듯 문은 앞뒤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네요.”
“정말 저곳이 맞는 거야?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가게잖아!”
“들어가 보면 알겠죠. 이럴 때 사용하라고 정부가 범죄자 타이틀을 준 것 같네요. 아이템창.”
민성은 차갑게 비꼬며 검은 대검을 꺼내들었다.
“어……. 그건?”
민성과 함께 유일하게 현장에서 싸웠던 대성은 더듬거리며 검을 가리켰다.
“혹시 충무공이 사용했던 대검 아니야?”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얻은 코인으로 바꾼 무깁니다.”
완고한 대답에 대성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그치?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이제 들어가죠.”
각오를 다진 민성은 유리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딸랑-
“어서 오세……꺄악! 읍!”
민성은 종업원에게 달려들어 목에 대검을 겨눴다.
“잘 들어.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간 그 예쁜 얼굴이 몸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종업원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성은 대검을 슬쩍 내려 해칠 뜻이 없음을 알렸다. 민성이 종업원을 묶어두는 사이, 일행은 가게 내부를 이 잡듯 뒤졌다.
“저……. 없는 것 같은데요.”
이 상황이 불안하고 어색했는지 아루는 연신 몸을 떨면서도, 부여된 임무를 착실히 수행했다.
“이쪽도 없어. 혹시 우리가 착각한 거 아닐까?”
피부 관리실을 전부 살피고 온 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도.”
‘젠장, 그럴 리가……. 아!’
“티노 님, 이 안에 숨겨진 공간이 있나 찾아봐주실 수 있을까요?”
행실이 구린 놈들은 항상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놓기 마련이었다.
“알았다, 인간!”
티노는 사물을 통과하며 은폐된 공간을 찾아다녔다. 잠시 후.
“찾았다, 인간. 저쪽 끝에 있는 문 너머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길을 발견했다.”
“고생하셨어요.”
“잘못 짚은 것 같아요. 일을 벌였으니 이제 저도 범죄자…….”
아루는 말을 잇지 못하고 훌쩍거렸다.
“마스크. 안 걸린다.”
이신이 조용히 아루를 다독였다.
“찾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을……. 뭐?”
“찾았다고요. 비밀통로.”
대검을 어깨에 들쳐 멘 민성은 샵의 끝 쪽에 위치한 문에 다가섰다. 문에는 ‘원장실’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자 선반 가득이 쌓인 박스들이 보였다. 원장실이라기보단 창고에 가까운 장소였다.
“여긴 아까 살펴봤어!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여기에 통로가 어디에 있다고 그래!”
뒤따라온 대성이 의문에 찬 눈으로 창고를 두리번거렸다. 그 어디에도 통로라 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조급한 건 알겠는데, 급할수록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한숨을 내쉰 대성은 창고를 헤집는 민성을 만류했다. 민성이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성은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다른 곳을…….”
“뒤로 물러나세요.”
“응?”
민성은 대검을 들어 창고의 벽 한쪽 면에 망설임 없이 휘둘렀다.
쾅-
벽은 먼지를 풍기며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너머론 검은 공간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도대체 너는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길래…….”
믿기 어려웠는지 대성은 입을 뻐끔거리며 민성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야말로 까면 깔수록 속이 계속 나오는 양파 같은 녀석이었다.
“가시죠.”
민성은 짐짓 모른 체하며 검은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빨리 놈을 붙잡는다.’
민성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남자를 잡아 정보를 캐내는 일밖에 없었다. 기회를 잡았을 때, 그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일은 없어야 했다.
“여기는 너무…… 음산해요.”
좁고 어두운 통로는 밑으로 경사져 있었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크게 구를 것 같았다. 깊숙이 들어가자 퀴퀴한 먼지내와 큼큼한 철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것보다 나는 이런 곳을 찾아낸 민성이의 능력이 놀랍다. 탐색에, 무력에, 이젠 어떤 게 나올지 기대까지 돼.”
“…….”
여유 있는 일행과 달리 민성은 인상을 찌푸린 채 앞으로 전진했다. 그들은 몰랐다. 세상에 밝은 면만이 존재하진 않는다는 것을.
얼마간 통로를 걷자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밝음 속에선 희미한 약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빛이에요!”
어둠이 무서웠던 아루는 유달리 반가움을 표출했다.
“조용히.”
민성이 얼굴을 찌푸리자 아루는 급히 입에 손을 모았다. 티노를 통해 내부의 상황은 얼추 파악이 됐다. 하지만 녀석이 물어다주는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능력자들이 섞여 있는지, 총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빛 너머로는 각자의 판단에 맞기겠습니다.”
무기를 부여잡은 일행들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움직이죠.”
민성과 일행은 문을 향해 내달렸다.
삐-삐-
매스꺼운 약품 냄새가 실내를 진동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소리와 함께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야, 이 시발새끼들아!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하나 사오는 데 얼마나 드는 줄 아냐고! 상품에 흠집 나면 너희 장기로 메꿀 거야? 어? 좀 더 섬세하게 다루라고, 섬세하게!”
수술대에는 의식 없는 사람들이 발가벗은 채 도구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빼낸 장기는 곧바로 포장 후, 특수한 냉동고 안으로 이동됐다.
위이잉-
수술가운을 입은 남자들은 가축을 도축하듯 사람들의 몸을 도륙 냈다.
“좋아! 진작 그렇게 좀 할 것이지.”
정 실장은 수술대를 돌아다니며 진척여부를 살폈다.
“실장님. 이쪽도 시작해도 될까요?”
수술대 위에는 작은 소녀가 누워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어딘가 핼쑥해 보이는 것이 지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