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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59화 (59/303)

# 59

59화 - 목표를 포착했다 (1)

“타시지요.”

남자는 정중하고 공손한 자세로 뒷문을 열었다.

“저렇게 새파란 놈이 차주라고? 거기다 기사까지 있어?”

“재벌 2센가. 누군 운 좋아서 금 수저물고 태어나고 누군……. 시발!”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뒤로한 민성은 조용히 차에 올라탔다.

‘그 노인네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차를 픽업용으로 보내진 않았을 거야. 숨은 뜻이 있겠지. 것보다 도대체 어디의 회장이기에 이런 차를 굴리는 건지.’

“출발하겠습니다.”

민성을 태운 차는 명동을 빠져나갔다. 잠시간 달린 차는 이윽고 분당의 한 고층빌딩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민성은 빌딩에 걸린 로고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곳은…….’

한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굴지의 그룹, 대설그룹이었다.

“보기보다 더 넓군요.”

“아무래도 대설의 본사니까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빌딩의 내부를 휘둘러보던 민성은 남자의 인도를 받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띵-

남자의 인도를 받아 도착한 곳은 거대한 집무실이었다.

“꽤나 넓은 공간이네요.”

“응? 이제 왔는가? 이래 봬도 회장의 집무실인데, 이 정도 사치는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노인에게서 왠지 모를 기품마저 느껴졌다.

“왔어? 기다리다가 목 빠지는 줄 알았다.”

대성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왔군.”

“이거 먹어 볼래요, 크로스?”

“크로?”

이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아루는 크로스의 입주머니에 과자를 집어넣고 있었다.

“어서 앉게나.”

노인은 비어 있던 자리 중 하나를 권했다.

“커피,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수행원은 민성의 찻잔에 커피를 따른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

“그럼, 이제부터 ‘빅스’의 정기모임을 시작하겠네.”

노인은 손목을 포갠 채로 태연하게 말했다.

“빅스는 뭡니까?”

민성이 곧바로 의문으로 응수했다.

“사람이 여럿 모이는 장소에는 그곳을 대표할 이름이 필요한 법이라네.”

노인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은데, 도대체 왜 당신이 대표 행세를 하는 거야?”

대성은 불만스럽게 노인을 노려보며, 중간중간 민성을 흘낏거렸다.

“젊은 층과의 소통을 위해 밤새 고민해온 이름이 아무래도 좋다니, 섭섭하군. 그리고 대표라…….”

인자한 미소를 유지하던 노인의 분위기가 서서히 변해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건 결국 사람이야. 당장 자네에게 회장 직을 넘겨준다 해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루? 이틀?”

“그……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

“아니, 하루. 그게 자리가 매긴 자네의 가치라네.”

차갑다 못해 얼어붙을 것만 같은 목소리다. 전쟁터에서 웃는 낯을 유지하던 그 사람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아무 능력도 없을 때 매긴 자네의 가치지.”

노인이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짓자, 한순간 얼어붙은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녹아내렸다.

‘마냥 꿍꿍이가 있는 노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청중을 압도하는 기백, 대화의 요지와 경험을 기반한 논리로 상대방을 사정없이 폭격한다. 그러면 대화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노인의 것이 된다. 역시 만만하게 여길 상대가 아니다.

“혹시라도 불만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주게.”

노인은 청중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이 이상의 이의는 없다고 생각하고 진행하겠네.”

노인은 점잖게 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대책부의 정책이 판이하게 달라졌어.”

“탄압에서 수용 쪽으로 전환한 것 같더군요.”

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의 말에 동의했다.

“정확하다네. 아예 그들의 산하로 두려는 것 같으니 말이야.”

노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민성을 바라봤다.

“우리는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네.”

“아루는…… 궁금한 게 있어요!”

“얘기해보게, 아루 양.”

자상한 미소에 용기를 얻은 아루는 품고 있던 의문을 내뱉었다.

“할아버지는 대설의 회장이잖아요…….”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라네.”

‘흠…….’

민성은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경청했다. 어디까지가 노인의 진심인지 선뜻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권을 최대한 활용할 거라네. 아군에게는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이고, 적에게는 그 반대의 결과를 내놓겠지.”

노인은 감정이 고조됐는지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협조하겠다는 건데?”

대성은 낮은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당연히 대설의 힘을 등에 업게 해주겠다는 말씀이시겠죠. 조건은요?”

“조건이라니?”

노인은 짐짓 모른 척하며 민성의 질문에 되물었다.

“모르는 척하지 마시구요. 가장 이득을 탐할 위치에 계신 분이 그러시니 좀 어색하네요. 아니면 대설은 자선사업이 모토인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노인은 갑자기 웃음을 뚝 그쳤다.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이야. 자네는 정말…… 생각 그 이상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빅스’의 소속으로 의무감을 갖고 행동할 것. ‘빅스’의 대표인 나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해줄 것. 이 두 가지만 약속한다면 대설도 그 보상을 확실히 이행하겠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민성은 별 감흥이 없었다.

‘이미 어마어마한 것들을 많이 봐버려서…….’

“조건은 그게 끝이죠?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나가봐도 될까요?”

“…….”

희미하지만 노인의 주름에 잔 경련이 일었다.

“이 또한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지만…….”

노인은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노란 서류봉투를 꺼내들어 민성에게 건네었다.

“이건?”

“선물이라네. 물론 결정은 자네 몫이지만.”

한숨을 내쉰 노인은 다른 이들을 지그시 바라봤다. 봉투를 받은 민성은 고개를 꾸벅인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인간!”

집무실을 나오자, 티노가 꼬리를 흔들며 날아왔다.

“오셨어요? TV는 재밌게 보셨고요?”

마스크를 착용하던 민성은 다정한 목소리로 티노를 반겼다.

“리모컨을 못 쓰니 한계가 있다. 덕분에 푹 자고 왔다.”

“저런…… 언제 한번 날 잡고 제가 리모컨 붙잡고 있을게요.”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인간!”

민성은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노인네가 뭘 줬으려나.’

민성은 봉투의 입구 부근을 뜯고 두 장의 종이를 꺼냈다.

‘이건…….’

첫 장의 내용을 본 민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상수배범

이름: 강민성

생년월일: 940218

죄목: 다른 범죄자들과 작당해 수많은 일반인들을 살해한 혐의.

등급: 5등급

특이점: 가방이 넓다.

현상금: 150,000,000원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끈질기게 추격했던 부장을 생각한다면 그의 수배서도 있으리라 예상했다. 죄목에 적힌 내용도 어이없었지만 문제는 이 전단지가 노인네의 손을 건너왔다는 것이었다.

‘이 시발새끼가…….’

노인의 의도는 분명한 협박, 협박이었다. 너의 정체를 알고, 여차하면 저쪽으로 넘겨버리겠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다른 의미도 갖고 있었다.

대설을 등에 업어라. 대설이 너의 신변을 보호하겠다.

와지직-

쥐고 있던 수배서를 구겨버린 민성은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 종이를 살폈다. 그것은 종이라기보단 검은 티켓이라는 표현이 걸맞았다.

‘그라운드 마켓 입장권’

티켓 안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지급인 김만복’이 적힌 금색 활자와, 작은 지도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건 무슨 의미지.’

고심하던 민성은 티켓을 아이템창 안에 넣었다. 함정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자 민성은 넓은 복도를 지나 출구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엘리베이터에서도 벨소리가 울렸다.

‘후……. 어쩐다.’

노인의 의도가 명확해진 이상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늘어난 고민에 속이 쓰려왔다.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이 가요!”

아루가 손을 흔들며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옆에는 대성과 이신도 함께였다.

“어쩐 일로……?”

반가운 마음보단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칫, 그 노인네. 네가 나간 뒤에 우리도 바로 내보내더라고. 모이느라 수고했다나 뭐라나. 시발, 우리를 뭘로 보는 거야.”

“쩌리.”

이신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인정해! 인정한다고! 민성이가 활약한 덕에 이길 수 있었어, 근데! 왜 내 가치를 그 새끼가 평가하는 건데! 능력도 확실하지 않은 새끼가!”

대성은 씩씩거리며 몸을 들썩거리더니 고개를 돌렸다.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않아?”

“글쎄요. 저는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네요.”

대성이 격한 감정을 보이자, 민성은 슬쩍 그의 말에 동조해주었다.

“그치? 애초에 그 새끼한테 문제가 있었어. 분명 전투 때도 목숨이 아까워서 숨어 있었던 거야! 분명해! 역시 그놈은 이 모임에서 빼버리는 게 좋겠어.”

“진정하세요…….”

광기까지 느껴지는 모습에 아루는 겁을 집어먹은 듯 울먹거렸다.

“크흠. 너무 흥분했군. 어쨌든 확실하지도 않은 노인네는 빼고 우리끼리 움직이는 게 어떨까?”

대성은 일행의 동의를 구하며 민성을 주목했다. 작든 크든 집단이 유지되기 위해선 중심이 필요했다.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민성이라는 중심이 없으면, 결국 이 관계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글쎄요.”

민성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대성은 애가 탐을 느꼈다.

“노인네는 싫지만,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 다시 전투에서 마주칠 확률이 낮다는 건 알아. 하지만 우리에겐 현실도 있잖아. 우리도 기득권이 될 수 있어! 네가 주축이 되어준다면…….”

드르륵-

대성이 열변하는 사이, 정장 입은 남자가 캐리어를 끌고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아, 고객님.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주문량이 밀려서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저희 사정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쪽도 물량 확보하기 힘들다는 걸. 네, 네, 죄송합니다.”

남자는 연신 고개를 굽신거리며 그들의 옆을 스쳐갔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다.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남자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정체 모를 불길함이 가슴을 자극해왔다.

20. 목표를 포착했다

“그래서 네 생각이 듣고 싶어. 너는 어때?”

“저, 티노 님. 혹시 방금 지나간 남자를 미행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릴게요.”

“뭐라고? 작아서 못 들었어.”

“크흠. 알았다, 인간. 다녀오겠다.”

티노는 빠른 속도로 날아 남자의 뒤를 쫓아갔다.

“대성이 형, 죄송한데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러니까…….”

대성은 엇갈린 대화를 차례차례 풀어나갔다.

*

“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예약 때는 고객님의 발주를 가장 먼저 수령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시발새끼……. 조건도 더럽게 까다로워서.”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남자는 곧바로 욕설을 뱉어냈다. 남자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어느 층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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