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56화 - 검을 들다
[관리묘 ‘시바’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네.”
[관리묘 시바]
등급: ★★★★★★
설명: 이름 높은 대마도사가 쓸쓸함을 이기지 못하고 만들어낸 키메라로서, 집과 일체화돼 있다. 비밀스러운 집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대마도사가 부여한 마법으로 인해 대화가 가능하다. 집사로서의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공격력: ?
특수능력: ?
“오오오오오! 늙다리가 젊어졌다! 늙다리가 완전 젊어졌다!”
잠시 눈을 끔뻑이던 그것은 황당해하는 민성을 보곤 입을 놀려댔다.
“회춘한 늙다리 주인! 그토록 염원하던 불사의 방법을 냈나! 대단해! 대단해!”
“저…… 저기요?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그럼 새로운 주인? 늙다리 주인이 아니라 팔팔한 주인! 팔팔하고 싱싱한 주인!”
‘늙다리 주인은 아마 이름 높은 대마도사라는 사람일 거고……. 그나저나 왜 이리 말이 많아.’
그것이 정신없이 말을 쏟아내자, 민성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폈다. 아무래도 관리묘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으니 녀석에게서 정보를 얻어야 할 것 같았다.
“혹시 이곳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요.”
“뭐든 물어봐! 싱싱한 주인!”
그것은 민성의 요구를 기꺼워하며 연신 코를 움찔거렸다.
“대마법사가 기거하던 공간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단출하네요. 원래 이런 곳인가요?”
고풍스러운 성은 아니더라도, 멀쩡한 집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움막에서 생활하는 대마법사라니, 상상조차하기 어려웠다.
“아냐! 아냐! 원래 나는 화려해! 늙다리 주인이 재우기 전까진 화려했었어!”
시바는 격하게 부정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흠, 원래는 화려했었다…….’
잠시간 고민하던 민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는 정확히 뭐하는 곳이죠? 그리고 이곳에서 뭘 할 수 있나요?”
“늙다리 주인의 은신처! 늙다리 주인이 생활하던 은신처야! 늙다리 주인은 이곳에서 여가생활을 즐겼어! 여가생활! 늙다리 농부! 늙다리 낚시꾼!”
한마디를 하면 두 마디, 세 마디가 돼서 돌아왔다.
“여기서 농사도 지을 수 있나요? 낚시도 가능하고?”
“가능해! 가능해! 늙다리 주인이 자주했어! 가능해! 내부목록 공개.”
침까지 튀기며 말하는 데 열을 올린 그것은 커다란 창을 띄웠다.
[비밀스러운 집의 내부목록]
[쓰러져가는 움막]
등급: ?
단계: 1/10
설명: 생활하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공간이자 중추. 다른 장소의 단계를 높이기 위해선 ‘쓰러져가는 움막’ 단계의 변경이 선행되어야 한다.
업그레이드 여부: 가능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코인: 100,000
[건설가능 건물]
[텅 빈 농장]
등급: ?
단계: 1/10
설명: 비옥한 토양과 달리 심겨 있는 작물은 없다. 뭐라도 심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능력: 어떠한 작물이라도 심을 수 있다.
작물 숫자 제한: 0/1
필요코인: 5,000
[텅 빈 공터]
설명: 공허함이 가득한 텅 빈 공터다. 공터 이외의 장소엔 건물을 올릴 수 없다.
단계: 1/10
능력: 어떠한 건물이라도 올릴 수 있다.
건물 숫자 제한: 0/1
필요코인: 5,000
[생명이 없는 호수]
설명: 업그레이드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낚싯대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단계: 1/10
능력: ?
필요코인: 5,000
민성은 얼떨떨한 얼굴로 시바가 공개한 내부목록 표를 쳐다봤다. 뭣 하나 친절한 설명은 없었지만 대충 몇 가지는 짐작이 갔다.
코인을 이용해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과, 집의 단계에 따라 다른 공간들도 단계를 올릴 수 있다는 점. 하지만 어떻게든 써먹어보려면 결국 코인이 필요했다.
‘시발……. 이거 완전 코인 잡아먹는 하마 아냐.’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붓던 민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혹시 목록에 나온 것 외에도 건설할 수 있는 다른 건물이 있나요? 공짜로라도…….”
“안 돼! 안 돼! 공짜 좋아하면 늙다리 주인처럼 돼! 그러니까 안 돼!”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모양이었다. 민성은 시바의 속사포 같은 떠들림을 한 귀로 흘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건물의 업그레이드에 드는 비용은 무려 100,000코인. ‘충무공의 랜덤 선물 상자’의 비율로 따졌을 때, 루비로 환산하면 50루비였다. 현실적으로 100,000코인을 충당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필요한 것은 루비였다.
‘또 버섯으로 들어가야 하나.’
무엇 하나 루비가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민성의 경우는 차라리 양반이었다. 루비라는 대체재화가 있는 민성과 달리, 일반인들이 ‘비밀스러운 집’을 얻었다면 확실한 도피처 그 이상의 의미는 가지기 어려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된 게 어디야.’
한숨을 푹푹 내쉰 민성은 아이템창을 열었다. 있는 족족 쓴 대가로 코인과 루비의 잔액은 0을 가리켰다. 그 외에도 안에는 지갑, 핸드폰 따위의 잡다한 물건부터 상점에서 얻었던 물건들이 있었다.
‘쓸모없는 조각들은 놔두고, 부장한테서 뺏었던 개목걸이, 이것도 처분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이템창을 정리하던 민성은 갑자기 히죽이며 흑색의 대검을 꺼내들었다. 잘빠진 검신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최초로 얻은 6성 장비인 만큼 그 의미도 남다르게 다가왔다.
“끙…….”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었다. 휘청거리던 민성은 이내 대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띠링-
[‘피에 젖은 충의의 길’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선 현무검법을 습득해야 합니다.]
[현무겁법 습득을 위해선 수련이 필요합니다. 수련하시겠습니까?]
당장 ‘비밀스러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을 터. 이참에 대검사용을 가능케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었다. 6성 장비를 갖고 있더라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이곳은 정체불명의 수련장으로 가기에는 제격이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없을 뿐더러, 아까와 달리 시간적 여유도 충분한 상황이다.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장으로 이동합니다.]
[사용자가 원할 시 수련장을 나갈 수 있습니다.]
16. 검을 들다
낯선 공간에 도착한 민성은 딸려 들어온 대검 자루를 만지작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잔잔하게 일렁이고,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티끌 하나 없는 모래사장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땀 냄새를 물신 풍기는 장소를 예상했건만, 어딜 봐도 수련장이라는 느낌을 줄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뭐 어쩌라는 거야.’
목적을 갖고 들어온 장소는 그 목적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고개를 저은 민성은 고요한 모래사장을 찬찬히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사람의 형체를 띤 실루엣이 보였다. 민성은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달려갔다.
붕-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한 손으로 대검을 가볍게 휘두르고 있었다.
“태초에 신께선 방위를 나누어 세상을 수호하는 4마리의 신수를 만들어 내셨다.”
“저기요? 저기요?”
노인에게 다가간 민성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봤지만,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서 대검을 반복적으로 휘두를 뿐이었다.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보이지 않는 건가.’
“그 중 북을 관장하는 현무는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힘을 부여받았으니, 이는 능히 악을 정화하고 세상을 정결케 만든다.”
그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민성은 우두커니 서서 노인의 검무를 바라봤다. 대검은 노인의 손을 타고 허공을 자유로이 누볐다.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변화무쌍함은 없었지만, 일격 하나하나마다 그 무게가 느껴졌다.
“현무의 힘을 담은 현무검법의 소유자는 감히 천하를 논할 수 있을지니. 경지에 오른 자의 일검은 혼란을 멈추게 한다.”
촤악-
노인은 바다를 향해 대검을 내려 긋자 잔잔한 바닷물이 찢어지듯 갈라졌다.
“…….”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민성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스킬이 아닌 단순한 내려치기였다. 헌데 이런 위력을 뿜어내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른침을 넘긴 민성은 노인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바다를 가른 뒤 검무를 멈춘 노인은 이윽고 다시 검무를 펼쳐나갔다.
“태초의 신께선…….”
노인은 맨 처음 펼쳤던 검무를 다시금 펼쳐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 몇 번이고 노인의 검무를 지켜보던 민성은 곧 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따라하라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노인이 행위를 반복할 이유가 없었다. 민성은 질질 끌다시피 가져온 대검을 집어 들었다. 신기하게도 아까와 달리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곤 노인의 동작을 어설프게 따라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그으면서, 여기서 꺾는다!’
민성은 노인의 동작에 맞춰 대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맺혔고, 조금씩 숨이 가빠왔지만 손을 멈추지 않았다.
‘꼭 사용하고야 만다!’
무기가 강함의 척도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하물며 6성 무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6성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면 이런 노력은 골백번이고 더 할 수 있었다. 이를 악다문 민성은 미숙한 검놀림을 이어갔다.
“헉……헉.”
턱에 모여드는 땀방울의 숫자가 늘어나고, 입에선 단내가 풍겨왔다. 자루를 잡은 손은 피로감에 눌려 덜덜 떨려댔다. 계속 반복되는 동작들은 무기력감을 불러왔고, 알 수 없는 시간의 행방은 그의 목을 죄어왔다. 어느덧 한계라는 놈이 닥쳐온 것 같았다. 민성은 순간 고민에 빠졌다.
‘힘든데…… 이제 그만할까? 이제 동작도 거의 따라할 수 있는데 굳이 계속할 필요가 없잖아.’
고민이 거듭될수록 손에 쥔 대검도 점차 아래로 기울어졌다.
‘난 괜찮네, 젊은이.’
왜일까. 갑자기 그의 발에 짓눌렸던, 죽음을 눈앞에 뒀던 노인의 마지막 미소가 머릿속을 덮쳤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던 그 미소다. 지금도 그 미소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잘돼야 남도 있다. 그런 좃 같은 상황은 한 번이면 족해.’
마음가짐이 달라지자 대검의 움직임도 지친 자의 것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서워졌다. 극한의 한계 속에서도 민성은 끊임없이 노인의 행동을 모방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개념은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젠 그저 흘러가는 대로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태초의…….”
노인은 민성의 상태는 아랑곳 않고 무심히 대검을 휘둘렀다.
‘태초의…….’
이젠 노인의 대사마저 완벽히 암기했다. 민성은 검무의 시작에 맞춰 같이 대검을 휘둘렀다.
“일검은 혼란을 멈추게 한다.”
마지막 대사와 함께 노인의 대검이 바다를 갈랐다.
‘일검은 혼란을 멈추게 한다.’
그와 동시에 민성의 대검도 바다를 그었다. 물론 그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지만, 민성의 검무는 노인의 것과 비교해 봐도 무색함이 없었다.
띠링-
[현무검법 제 1장 현무멸악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