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54화 - 두 번째 상점
13. 두 번째 상점
‘후……. 마침내 돌아왔나.’
이제는 익숙해진 백색의 공간이다. 민성이 그의 몸을 천천히 내려다봤다. 차차르와의 일전에서 생겨난 잔 상처들은 이번에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무사히 복귀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만. 이번 전투는 꽤나 치열했던 모양이군요.”
귀환자들을 맞이하던 관리인은 어딘가 착잡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의 숫자는 처음과 달리 10분의 1 정도로 토막 나 있었다.
“결국 죽은 놈들은 패배자야. 나처럼 최대한 몸을 사려서 생존확률을 높여야지, 쯧쯧. 어차피 누군가가 해결해줄 건데 병신처럼 나서서 뒈지기는.”
남자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민성 쪽을 슬쩍 바라봤다.
“어이! 관리자! 별다른 전달사항이 없으면 바로 상점으로 가고 싶은데 말이야.”
사람들은 서둘러 검은 철문으로 가기를 원했다.
“네, 상점을 이용하실 분들은 검은 철문으로, 돌아가길 원하시는 분들은 붉은 철문으로 가시면 됩니다.”
관리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앞 다투어 검은 철문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스킬을 뽑아보겠어!”
“무식하긴, 스킬보단 장비지!”
쾅-
육중한 철문이 개방되고 그 안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빨려들듯 사라졌다.
“뭐해? 이번 전쟁의 최고 수훈자가 그런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니.”
대성은 가만히 서 있는 민성에게 다가갔다.
“잠깐 생각할게 좀 있어서요.”
민성은 싱긋 웃으며 먼저 가라는 손짓을 보냈다.
“흠……. 그래! 이따가 약속장소에 오는 것, 잊지 말고!”
“네.”
그 말을 끝으로 대성은 곧바로 검은 철문으로 향했다.
모든 사람들이 검은 철문으로 들어가자 관리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이구나. 물론 그런 욕망들이 승리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검은 철문을 보며 작게 중얼거리던 관리인은 서글픈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게요.”
“어이쿠! 아직 남아 있는 분이 계셨군요. 복귀를 원하신다면 저기 붉은 철문으로 가시면 됩니다.”
놀란 듯 토끼 눈을 한 관리인은 남아 있던 민성에게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이 상황을 기다렸던 민성은 관리자를 노려보듯 쳐다봤다.
“네, 뭐든 물어보시죠. 질문은 자유니까요.”
민성의 날카로운 어투에도 관리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제가 주워들은 정보에 따르면, 이 타워는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하던데요.”
“네, 사실입니다.”
머뭇거림 없는 관리자의 답변에 민성은 슬며시 웃음 지었다. 잘하면 과거, 마교 장로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의문점을 오늘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타워의 존재는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당장 지금의 현실만 봐도 알 수 있죠.”
“네, 그렇지요.”
쉽게 수긍하는 관리자를 본 민성이 말을 이었다. 이제 핵심을 던질 차례다.
“근데 왜 사람들은 타워의 존재를 몰랐던 겁니까? 말도 안 되는 능력, 장비 등을 보급하는 이 기이한 곳을. 과거부터 존재했다면서요.”
흑혈검마와의 대화에서 내내 들었던 의문점. 이렇게 대중에게 노출된 타워가, 그 전에는 어째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던가.
“흠…….”
찰나의 순간이지만, 관리인의 얼굴은 미세하게나마 굳었다.
‘역시 뭔가 있어.’
그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한 민성은 관리자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건…… 비밀입니다! 질문은 자유지만 거기에 답해드려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관리자의 반응을 본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역시 민감한 질문에는 쉽게 답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장로에게 직접 듣는 수밖에 없나. 그러려면 마교에 가입해야 하는데.’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신지요?”
아까와 달리 관리자의 웃음은 어딘가 차가워 보였다.
“아뇨,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볼 일은 다 봤다. 고개를 꾸벅인 민성은 곧바로 검은 철문으로 이동했다.
“흠…….”
관리자의 묘한 시선이 민성의 등을 주시했다.
내부를 밝게 비추는 샹들리에들과 괴이한 조형물들. 일자로 된 기다란 카운터와 박스를 받아가는 손님들까지. 상점 안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아, 글쎄 내가 이번에 공적치 정산에서 48등을 했다고. 한마디로 너희랑은 급이 다른 인물이라는 거야.”
“뭐래, 등신이.”
타차원의 괴이한 생물체들이 내부를 오가고 있었다.
펑-
“갸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시발, 시발! 또 터졌어! 으아아아아아아!”
강화에 실패한 자의 외마디 절규가 멀리서 들려왔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차원 제일의 도둑이 될 수 있는 ‘주머니 훑기’가 단돈 2,000코인!
“어이, 거기! 장비 한번 보고 가! 박스 사는 것보다 완제품을 구매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고!”
상점 한편에선 노점상들이 좌판을 깔고 호객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분명 박스에서 나온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리라. 슬쩍 다가간 민성이 판매하고 있는 낡은 책을 집어 들었다.
[주머니 훑기]
등급: ★★
설명: 도둑질에 능숙했던 좀도둑의 날렵한 손길.
효과: 사용 시 일정확률로 상대방의 물건을 랜덤하게 강탈해온다. 실패 시 상대방이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쿨타임: 60분
소모마나: 40
판매가: 2,000코인
“물건 볼 줄 아는군. 자자, 단돈 2,000코인이라고!”
쥐머리를 한 주인은 현명한 선택이라는 듯 판매에 열을 올렸다.
“이렇게 나열해두면 누가 훔쳐가지 않나요?”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은 민성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뭐야, 초보자였어?
초보자에게 2,000코인이 있을 리 만무했다. 노점 주인은 귀찮다는 티를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상점 내에선 강탈이나 전투 등 기타 범죄행위가 불가하다고. 가능했으면 내가 진작 이거 배워서 털고 다녔겠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자자! 날이면 날마다…….”
허리를 살짝 숙인 민성은 자리를 벗어났다.
“하급 랜덤 스킬 상자 하나 주세요!”
손님들이 몰린 카운터에도 눈이 갔지만, 가장 중요한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7층으로 가볼까.’
보기 좋은 떡은 혼자 먹어야 한다. 한입씩 주다보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7층은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를 개봉하는 데 알맞은 장소였다. 빠른 속도로 내부를 가로질러 원통 앞에 도착한 민성은, 곧장 네모난 문 안으로 들어갔다. 숨겨진 7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간 기다리자 원통의 문이 열렸다.
스르륵-
원통에서 내린 민성은 7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수북한 먼지 속에는 과거 민성의 발자취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자판기 옆, 은빛 광채 앞에 선 민성이 작게 중얼거렸다.
“아이템창.”
마른침을 삼킨 민성은 거북선이 각인된 선물상자를 조심스럽게 광채 위에 올려놨다.
‘제발…… 사기급 하나만 나와라!’
펑-
묵빛을 띤 거대한 대검. 충무공이 전투에서 사용했던 그 대검이다. 수수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어딘가 흉포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오…….’
속으로 탄성을 지른 민성은 저도 모르게 손을 갖다 댔다.
[피에 젖은 충의의 길]
등급: ★★★★★★ (귀속)
공격력: 677~843(+0)
특수능력: 내장스킬 ‘수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장검법 ‘현무검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으아아아아아! 대박! 대박이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것들도 나쁘진 않았지만, 이 대검과는 비교불가였다. 민성은 한참 동안 괴성을 지르며 대검 주위를 뱅뱅 돌았다.
“인간, 미쳤나?”
티노의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지만, 민성은 대검에 내장된 것들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옥]
등급: ★★★★★★
설명: 물 한 방울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효과: 시전자가 마음먹은 곳에 거대한 해일을 일으킨다(단! 시전자 주위에 한 방울 이상의 수분이 필요하다).
쿨타임: 1시간
소모마나: 1,000
‘소모마나가…… 1,000이라고?’
140의 마나통을 가진 민성에겐 어림없는 수치였다. 마나의 절대량을 늘릴 방법이 필요하다. 아이템창을 뒤적인 민성은 보유하고 있던 랜덤 육체 강화 환단 3개를 모두 사용했다.
[민첩이 3 상승하셨습니다.]
[지력이 4 상승하셨습니다.]
[지력이 2 상승하셨습니다.]
이름: 강민성
나이: 22세
HP: 280 MP: 260
스텟:
체력: 14
근력: 15
민첩: 16(+5)
지능: 8
지력: 13
행운: 5
지력이 상승하니 마나통도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수옥’을 사용하기엔 한참 부족한 숫자다. 고심하던 민성은 자판기로 다가가 랜덤 루비 소모품 상자 2개를 구매했다.
‘제발 뭐라도 좋으니까 마나를 뻥튀기할 수 있는 걸로!’
좋은 스킬을 갖고 있더라도 마나가 없으면 결국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펑-
[소생단]
등급: ★★★★★
설명: 죽은 이마저 몸을 벌떡 일으키게 만든다는 전설의 환단.
효과: 어떠한 질병이나 죽음 직전에 몰린 사람도 회생시킨다.
횟수제한: 1/1
[영겁나무의 씨앗]
등급: ★★★★★
설명: 영겁을 살아온 나무의 씨앗. 잘 키우면 그 보은을 받을 수 있다.
효과: ?
5성 소모품이 두 개나 나왔지만 민성의 표정은 처참하게 구겨졌다. 지력과는 어디에도 연관이 없는 아이템들이었다.
‘그나마 소생단은 쓸 만하겠지만……. 젠장, 마나가 없으면 스킬도 소용이 없다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번쯤 도움이 될 것 같다. 한숨을 내쉰 민성은 ‘현무검법’을 살폈다.
[현무검법]
등급: ★★★★★★
설명: 유성룡이 그의 친우를 위해 조선왕실의 보고에서 빼온 검법으로 총 7장까지 구성되어 있다.
효과: ?
쿨타임: ?
소모마나: ?
‘마나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설명만으로는 감을 잡긴 어려웠지만, 6성이 무려 3개였다. 대검을 샀더니 스킬과 검법은 덤으로 딸려온 격이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민성은 대검자루에 쥔 손에 힘을 실었다.
“이제 이 대검을 이용해서……. 어, 어라?”
보기에도 묵직한 것이, 무게도 상당하다.
“으아아아!”
안간힘을 써 겨우 대검을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민성의 모습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띠링-
[‘피에 젖은 충의의 길’의 원활한 사용을 위해선 현무검법을 습득해야 합니다.]
[현무검법 습득을 위해 수련장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아니.”
민성은 단박에 알람의 물음을 거절했다. 그리곤 VIP포인트 보상으로 받은 최상급 랜덤 소모품 상자를 집었다.
‘괜히 수락했다가 이상한 곳으로 끌려가서 시간을 뺏기면 안 되지.’
1층 중심에서 일행들과 합류를 약속했었다.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민성은 서둘러 은빛 광채 위에 다이아로 만들어진 박스를 올려놨다.
펑-
최상급 랜덤 소모품 상자와, 최상급 랜덤 스킬 상자에서 나온 것은 다음과 같았다.
최상급 랜덤 소모품 상자: 비밀스러운 집 열쇠 (★★★★★★)
최상급 랜덤 스킬 상자: 저주의 숨결 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