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53화 - 두 번째 방문 (14)
“크르아아!”
그런 민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달려드는 차차르의 면상에 잇따라 날아온 화살들이 박혔다.
펑-
화살은 폭음을 일으키며 한순간 차차르의 시야를 가렸다.
“어서! 이쪽으로 오게!”
“옙.”
충무공의 다급한 손짓을 본 민성은 냉큼 그의 곁으로 이동했다.
“크르아투 마투이나!”
목전에서 민성을 놓친 놈은 분노를 넬슨에게 돌렸다.
“이해는 하지만, 못 보낸다!”
반쯤 타버린 차차르의 가랑이를 힐끗 살핀 넬슨은 가련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넬슨이 시간을 버는 사이, 충무공은 민성의 눈을 마주치며 심각하게 말했다.
“자네의 능력이 궁금하긴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으로 묻겠네. 내가 놈의 움직임을 묶어놓는 동안, 최대한 타격을 가해주게. 가능하겠는가? 아니, 가능해야만 하네.”
사실 지속되는 전투에 마나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패배는 기정사실화될게 뻔했다. 허나 차차르의 숨통을 끊어놓을 날카로운 비수의 등장은, 충무공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마지막 한 수에 모든 것을 걸어보려 한다.
“가능합니다.”
민성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손에 운명이 달렸어.”
굳은살 가득한 손으로 민성의 어깨를 두드려준 충무공은, 곧바로 활을 들어 차차르를 겨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시작하겠네!”
충무공의 활시위에서 5개의 살이 동시에 쏘아지더니, 격렬한 전투현장 주변에 박혔다.
“장군! 설마! 아, 잠깐…….”
낌새를 눈치챈 넬슨이 크게 부르짖었지만 충무공은 가차 없이 스킬을 발동시켰다.
“대지를 뒤엎는 사슬!”
화살이 박혀 있던 자리에서 황갈빛 사슬들이 쏟아져 나왔다.
촤르르르륵-
그것들은 살아 있는 물체처럼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보이며 넬슨과 차차르를 포박했다.
“지금!”
충무공의 외침이 울리자 민성은 사슬뭉치 앞으로 달려갔다.
“크르아투나!”
“장구우우운! 저까지 포박하시면 어쩌자는 말씀입니까!”
사슬뭉치 속에서 포박당한 대상들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50% 확률인가.”
넬슨의 구슬픈 음성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민성은 주저 없이 사슬틈새로 도를 찔러 넣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날 찌르면 어떡해! 좀 더 왼쪽으로 가!”
“어이쿠.”
넬슨의 고통스러운 비명에 고개를 꾸벅인 민성은 자리를 옮긴 뒤, 다시 도를 밀어 넣었다.
치이이익-
“크르아아아악!”
“정답!”
차차르의 절규를 확인한 민성은 사악한 미소를 흘렸다. 높낮이를 바꿔서도 찔러보고, 찌른 검을 뱅글뱅글 돌려보기도 했다.
챙그랑-
찌르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자, 사슬 안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나가 모두 소진된 차차르의 ‘레인보우 실드’가 파괴되는 소리였지만, 민성이 알 리가 없었다.
“크르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반응이 찰진데!”
더 커진 놈의 비명에 흥이 오른 민성은 휘파람을 불며 도를 놀렸다. 무자비하게 인간들을 죽이던 놈이었기에 동정심이라거나 연민 따위의 감정은 들지 않았다.
“아직 멀었나! 스킬의 유지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
충무공은 혹시라도 차차르가 빠져나올 것을 대비하는 모습이다. 사슬을 겨냥한 활시위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속시간이 있다는 말에 민성도 찌르는 속도를 높였다. 사슬 사이로 놈의 체액으로 추정되는 보랏빛 액체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그것을 본 민성은 놈의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퍽-퍽-
재차 도를 쑤셔 박기를 수차례.
“크르어억…….”
[아군 병사 강민성이 적군 명장 차차르를 죽이셨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고대하던 음성이 전장 전역을 울렸다. 때맞춰 차차르를 포박하고 있던 사슬도 형체를 잃고 사라져갔다.
“해냈군!”
벅찬 감격을 이기지 못한 충무공이 달려와 민성을 얼싸안았다.
“그…… 그러게요.”
장군의 갑주에 묻어 있는 놈들의 체액과 땀내가 코로 흘러들어오자, 민성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영웅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겸손함도 지나치면 누가 되는 법일세.”
정작 당사자가 시원치 못한 표정을 짓자, 충무공은 민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공을 한껏 치하했다.
“그……. 일격은 조금 사나이답지 못했지만……. 어쨌든 진짜 대단했어!”
대성도 환희하는 일행 속에 파고들었다.
“내가 제일 고생했는데…….”
차차르와 같이 묶여 있었던 넬슨의 시무룩한 음성이 들려왔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어?”
“어이, 농담이지?”
성에서는 당혹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알렉산더의 죽음을 본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위대한 장수도 이기지 못했던 존재를 하물며 그들이 이길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승리했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승리라는 값진 보물을 쟁취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개미만도 못한 일개 병사 따위가 장수를 죽인 것이다.
“것보다 저 사람은 누구야!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괴수를 때려잡냐고! 그게 가당키는 한 거야?”
“도대체 무슨 스킬을 갖고 있기에…….”
“흠…….”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며 그들을 주시했다.
[라일라 진영의 모든 영웅들의 죽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아수르 진영이 승리하였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장수의 생존여부도 승리조건 중 하나였던 건가.’
연달아 울리는 알람의 내용을 납득한 민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적치 정산을 시작합니다.]
1.강민성
2.아르민
3.하이엔드
4.이신
.
.
.
당황한 민성은 커다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엉?’
순위표에 오류가 난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가 행했던 일이 결코 작다고 말하기 어려웠지만, 설마 1등에 오르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강민성이라……. 어디 소속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흠……. 역시 아까의 그 남자겠지? 이건 위쪽에다 보고할 필요가 있겠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강자들은 그의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코인이 지급됩니다.]
잠시 보이던 순위창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시야에 지급받은 코인이 둥실거리더니 우측 상단으로 이동했다. 생존한 모든 사람들의 우측 상단에는 각자가 받은 코인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1,000코인이나 주다니.’
지급받은 코인을 확인한 민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이 공헌도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1,000코인이면 최하급 랜덤 스킬상자를 10개나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였다.
‘이제 루비를 사용할 수 있다. 빨리 복귀시켜줘! 복귀!’
다량의 코인 지급도 좋았지만 얼른 상점에서 루비를 사용하고 싶었다.
[초대형 전투를 완수하였습니다. 특수 이벤트가 발동됩니다.]
펑-
폭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꽃잎이 흩날리며 사람들의 앞에 동일한 화면이 나타났다.
[한정판 가게 오픈!]
[장수들의 무용을 본 당신! 그들의 능력이 부러웠는가? 누구보다 강해지고 싶은가? 여러분 역시 강해질 수 있다. 한정판 가게를 이용해 그 누구보다 강해져보자!]
상점 소멸까지 남은 시간: 5분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
등급: ★★★★★★
설명: 너도 충무공이 될 수 있다!
효과: 사용 시 충무공이 보유하고 있던 6성 스킬, 장비, 펫 중 한 종류가 랜덤으로 등장합니다.
가격: 1,000,000코인
그 외에도 아군 장수들의 이름이 적힌 선물상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격도 전부 동일했다.
“1,000,000코인? 장난하나! 이걸 어떻게 사라고 만들어놓은 거야!”
“물론 장수들의 스킬들은 그만한 값어치를 하겠지만……. 이건 너무 비싸잖아.”
잠시나마 눈을 빛냈던 사람들은 상자에 적힌 가격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감히 사려는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가격이었다.
1,000,000코인.
평생 전장에서 썩는다는 가정 하에, 만져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액수였다.
민성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쉽긴 하지만. 1,000,000코인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1등을 한 대가로 받은 코인은 불과 1,000코인. 앞으로 소집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1등을 전제한 전투를 1,000번이나 치러야 한다.
더군다나 민성은 몰랐지만, 전장의 크기에 따라 지급받는 코인도 달랐다. 장군들의 선물상자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민성은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 밑에 있는 구매버튼을 슬쩍 건드려봤다.
띠링-
[보유하고 있는 코인이 부족합니다.]
‘역시…… 이런 한심한 짓거리 할 시간에 타워로 돌려보내 달라고!’
결과를 예상했던 민성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상자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자들이 있기는 한 건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특수 이벤트를 생각해낸 이름 모를 당사자의 면상이 궁금하기까지 했다.
[대체재화인 루비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응?’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
등급: ★★★★★★
설명: 너도 충무공이 될 수 있다!
효과: 사용 시 충무공이 보유하고 있던 6성 스킬, 장비, 펫 중 한 종류가 랜덤으로 등장합니다.
가격: 1,000,000코인 ⇒ 500루비
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린 민성은 상점 창을 멍하니 바라봤다. 빗금 친 코인 옆에는 루비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인간, 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심심하다! 얼른 돌아가자. TV를 보고 싶다!”
티노가 꼬리를 휘두르며 민성을 보챘다. 수많은 눈길 탓에 정찰결과를 보고할 때 빼고는, 민성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네, 네.”
하지만 민성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다. 대충 답변한 민성은 주위를 슬쩍 돌아봤다.
“시발! 농락하지 말고 빨리 타워로 보내라고!”
“저기, 님들! 100코인이면 많은 건가요? 아, 누가 대답 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괜스레 심장이 벌렁거렸다. 4성부터 시작하는 루비상자와 달리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는 6성급 물품이 확정적으로 지급된다.
‘무려 6성이라고!’
민성은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승인버튼을 눌렀다.
[500루비를 사용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를 구매하셨습니다.]
‘사…… 샀다.’
[축하드립니다. VIP포인트 5단계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아이템창이 40칸으로 확장됩니다. 최상급 랜덤 소모품 상자가 지급됩니다.]
[축하드립니다. VIP포인트 6단계를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아이템창이 55칸으로 확장됩니다. 최상급 랜덤 스킬 상자가 지급됩니다. 보상은 아이템창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루비의 소모로 VIP포인트는 6단계를 달성했다. 그에 따른 보상도 짭짤하게 들어왔지만, 민성의 관심은 오로지 ‘충무공의 랜덤 선물상자’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열어보고 싶지만, 타워로 돌아갈 때까진 의연한 모습을 유지해야겠지.’
개봉욕구를 억누른 민성은 그저 5분의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한정판 가게의 유지시간이 만료되어 소멸합니다.]
[타워로 복귀합니다.]
마침내 여성의 음성과 함께 사람들의 신체가 빛에 휩싸였다.
“앞으로 있을 전투들도 부디 승리로 이끌어주길 바라네.”
충무공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민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장군!”
이윽고,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