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 캐쉬상점 쓴다-48화 (48/303)

# 48

48화 - 두 번째 방문 (9)

“다르마쿠!”

뼈로 이루어진 방패를 소환해내 공격을 막아낸 놈은 곧바로 지팡이를 흔들었다.

“노치푸아!”

쾅-쾅-쾅-

사그라져드는 불길의 장벽 위로 굵은 벼락이 연속해서 꽂혔다. 그렇지만 놈은 부족하다는 듯 끊임없이 스킬을 퍼부었다.

“카르시나!”

작은 태양 같은 거대한 빛 덩어리가 오로지 한 목숨을 노리고 쏘아져간다.

“크라 시쿠나! 카푸챠!”

쩌적-

허공에서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균열이 벌어졌다. 그 틈새로 커다란 눈망울이 지상을 여기저기 응시하더니 이내 목표물을 포착하곤 부릅떠졌다. 시선을 고정한 눈망울 앞에 기이한 알갱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알갱이들이 모여 둥근 형체를 이루자 놈은 충무공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랏샤!”

“끼긱.”

눈동자에서 괴이한 소리가 울리더니 검은 기둥을 쏘아냈다.

쾅-

검은 기둥이 선박에 꽂히자 그 여파로 자욱한 연기가 바다를 뒤덮었다.

‘미쳤다. 미쳤다. 미쳤다. 진짜로 미쳤다.’

운명을 건 일전을 지켜보던 민성이 벌벌 떨리는 손을 움켜잡았다. 한 개체가 갖고 있는 힘이라기엔 너무도 두렵고 강대한 것이었다. 아무리 위대한 장군이더라도 저 스킬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크르카카카!”

거북한 웃음소리가 감싸여 있는 연기를 뚫고 들려온다. 장군께서는 전사하신 게 분명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범접 불가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장군께서도 놈의 손에 전사하셨다. 하물며 일개 병졸과 다를 바 없는 민성에게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다음은 우리 차롄가.”

“최상급 장수라더니 상대 장수 하나 못 죽이는 약골이었잖아! 이제 우리까지 다 죽게 생겼다고!”

압도적인 무력 앞에 사람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장군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연기가 걷히는 순간, 놈들은 남아 있는 생존자들을 차례차례 죽여 나갈 것이다.

시야를 흐릿하게 가렸던 연기가 걷혀간다. 최후의 순간이 머지않았다.

그때, 최후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귓속으로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영웅 이순신은 강강술래.”

벗겨지는 연기 틈새로 빛에 감싸인 형체들이 보인다.

“임진왜란 일어나자 강강술래.”

해풍에 연기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마침내 그들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그것들은 선박들을 한복판에 두고,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정체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장군이 살아계셔! 배도 완전 멀쩡하잖아!”

“맙소사! 그것들을 맞고도 멀쩡하시다니. 내 눈이 이상한 건가.”

가루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의연한 자태로 서 있는 장군의 갑옷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잡히지 않았다.

“크……크륵.”

호쾌하게 웃던 놈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던 적이 살아 있는 것은 둘째 치고, 몸에 상처조차 내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쪽 차원에는 인물이 없나 보군. 아니면 차원의 역사가 짧아서 자네 같은 존재도 장군 취급을 받는 건가?”

어깨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어낸 충무공이 대검을 들어올렸다.

“스스로의 능력을 맹신하는 자는 그 말로가 비참한 법이지.”

“지금처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충무공은 놈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움직임은 묵직한 대검을 쥔 자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순간이지만 서 있던 자리에는 잔상이 남아 있었다.

“이놈!”

순식간에 놈의 앞까지 근접한 충무공은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깊게 휘둘렀다. 무겁지만 날렵한 참격이 놈의 정수리를 파고들었다.

“다르마쿠!”

피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한 놈은 뼈 방패를 소환했다.

콰드드득-

대검이 방패와 맞닿자 뼈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크륵?”

단단하기 그지없는 방패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자, 당황한 놈은 몸을 뒤로 날려 갑판에 착지했다.

“도망가도 소용없다!”

갈라진 뼈 방패 틈으로 충무공의 몸이 놈을 향해 쏘아지듯 달려들었다. 거리를 내주면 놈은 끊임없이 스킬을 난사하리라.

“크라타무드라…….”

결계 안에서 싸웠던 때와는 다른 움직임이다. 움직임은 더 민첩해지고 완력도 증가한 모양이다.

“거북선을 지으시고 강강술래.”

“왜놈들을 몰아냈네 강강술래.”

사람의 형체를 띤 빛들은 흥겨운 가락을 뽑으며 춤을 췄다.

원인은 저것들이 틀림없다. 저것들이 완전히 자리 잡기 전에 승부를 냈어야 한다.

“라피르노!”

“잔기술은 통하지 않는다!”

다리를 붙잡으려는 나무덩굴들을 피해 하늘로 도약한 충무공이 놈의 대가리에 대검을 내려찍었다.

“다르…….”

뼈 방패를 소환하기도 전에 충무공의 대검이 놈의 머리에 닿았다.

촥-

정수리를 파고들어간 대검은 가랑이까지 내리그었다.

“흠.”

결과를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충무공은 대검을 검집에 넣었다.

“크…….”

두 동강 난 놈의 몸이 천천히 허물어진다.

털썩-

깔끔할 정도로 이등분된 시체의 단면에서 보랏빛 체액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전장에 있는 모든 병력들에게 동일한 알람이 전송됐다.

[아군 명장 이순신이 적군 명장 쿠티니를 죽이셨습니다.]

“어……어어어?”

“크륵?”

뜻밖의 결과에 상반된 분위기가 양측진영에 퍼져갔다.

“와아아아아아! 장군이 이겼어!”

“거봐! 내가 뭐랬어! 끝까지 지켜보자고 했지!”

장수의 존재여부는 전투의 흐름을 바꿔 놨다. 패잔병마냥 처져 있던 사람들은 무기를 다시 쥐었다.

“장군께서 승리를 거머쥐셨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뭐 있어! 이 기세를 몰아 잔챙이들을 죽이자!”

“와아아아아아아!”

“크르륵…….”

달라진 인간들의 분위기에 적들은 주춤거리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저들의 노래를 들으니 아까보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데? 이것도 장군의 능력인가?”

“나도 그래! 장군님 덕분에 더 수월해지겠군. 남은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자!”

“크럭…….”

전투가 끝나지 않았던 선박에는 때 아닌 혈풍이 불어 닥쳤다.

“끝났군.”

상황은 금세 종료됐다. 사기를 잃은 적들을 상대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기세를 몰아 남아 있는 적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제단을 점령한다.”

전황을 지켜보던 장군은 거북선을 이끌고 제단 밑에 있는 입구로 들어갔다.

잠시 후, 또다시 모든 병력들에게 같은 알람이 전송됐다.

[아군 명장 이순신이 하단 불사조 제단을 활성화하였습니다.]

“이겼어! 우리가 이겼다고!”

어느새 밖으로 빠져나온 거북선의 등 위에 선 장군이, 서로를 얼싸안고 승리를 만끽하던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방심은 금물이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심은 독과 같다. 너희 몸에 독이 깃드는 순간, 전투는 패배한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라!”

“예! 장군!”

장군의 호령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답변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 장군은 거북선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로 들어서자 부관들이 앞 다투어 충무공에게 달려왔다.

“장군! 남아 있는 병력은 대략 삼분지 일쯤 되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진군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장군! 계속 진군하는 것보단 중심부의 아군과 합류해, 불사조의 둥지를 점령하고 전투의 우세를 이어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료됩니다, 장군!”

부관들이 내어놓은 다양한 전략들을 귀 기울여 듣던 충무공이 결단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넬슨의 의견이 우리의 상황에 가장 부합되는 것 같다. 우리는 이대로 진군해 적의 수상 기지를 점령! 그리고 적의 본진까지 들어가 생명의 나무를 파괴한다!”

“예! 장군!”

장군의 결단이 하달되자, 부관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은 병력들을 선박에 모으고, 진형을 재정비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충무공은 모든 전함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진격하라!”

적의 수상 기지를 목표로 한 선박들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나에게도 그런 힘이 있었다면…….’

선미에서 갈라지는 물살을 쳐다보던 민성은 방금 벌어졌던 전투를 상상했다. 힘은 많은 것을 가능케 만든다. 적장군도 대단했지만 그런 놈을 가볍게 죽인 충무공의 힘이 탐났다. 그에게도 그런 힘이 존재했다면 전투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낄 이유가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그를 노리는 존재들을 역으로 없앨 수 있다.

“인간!”

그의 무능력함에 한숨을 내쉬던 민성의 머리 위로 티노가 날아왔다.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이미 전투도 다 끝났는데.”

“내가 갔을 땐, 이미 인간과 적이 마주치는 상황이었다. 알려줘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돼서 적의 진영까지 다녀왔다.”

‘이상하네. 좀 똑똑해진 것 같은데. 녀석이 머리를 굴리면 부려먹기 힘들어지는데. 뭐, TV를 더 잘 보여주면 되겠지.’

매일 TV만 보던 녀석이 예상외의 판단을 보이자, 수상하다는 듯 머리를 갸웃거리던 민성이 티노의 음성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좀 더 가면, 저희가 출발했던 도시와 똑같은 곳이 나온다고요?”

그곳은 적의 수상기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안은 텅텅 비어 있다는 티노의 발언에 민성은 잠깐 고심했다.

‘우리가 상대했던 적들이 전부였나 보네.’

“그렇다, 인간!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다! 거기서 왼쪽으로 이어진 대로를 따라가면 인간의 중심부에 있던 성과 똑같은 성이 존재한다. 안에는 검은 덩어리들과 거대한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위대한 내가 하는 말이니 믿어도 좋다.”

“멀리까지 다녀오셨네요. 고생하셨어요,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티노가 알려준 정보를 머릿속에서 차례대로 나열하던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조가 전쟁에 도움을 준다곤 했지만, 그게 승리의 조건은 아니었어. 그렇다면 설마…….’

“혹시 나무에 뭔가…….”

“누구랑 그렇게 대화하세요? 아, 혹시 혼잣말하시는데 방해한 건가요? 저도 혼잣말할 때 방해받으면 싫거든요.”

티노와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녹색 머리의 여자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 네, 바다가 아름다워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저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요. 그치, 크로스?”

“크로?”

‘친구가 없을 것 같은 그 말투부터 좀 바꿔라.’

속마음과 달리 상냥하게 웃은 민성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어떤 걸 말인가요?”

거두절미하고 다짜고짜 요점을 물어보자, 민성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바보네요. 우리 크로스처럼 척 하면 탁 하고 알아들으셔야죠! 그치 크로스?”

“크로?”

멍청한 표정을 짓는 괴조와 그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민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민성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본 그녀가 잽싸게 말했다.

“농담이에요! 긴장하신 것 같으셔서요. 아까 그 할아버지가 했던 말.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고민 중입니다.”

민성의 차가운 말투에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진짜…….’

물 맞은 강아지 같은 모습에 머리를 긁적이던 민성이 음성을 조금 부드럽게 바꾸었다.

“솔직히 허무맹랑한 소리 같아요. 그리고 그런 건 전투가 완전히 끝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 같고요.”

“그쪽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랑 크로스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군요.”

계속 상대했다간 진이 빠질 것 같다. 고개를 저은 민성은 슬며시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