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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47화 (47/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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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 두 번째 방문 (8)

“저보다 다른 분들이 활약하셨죠.”

가볍게 손사래 치며 미소를 지은 민성이 선박을 둘러봤다. 서로의 능력을 추켜세우며 담소를 나누는 능력자 무리와 달리,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살인을…….”

첫 살인으로 인해 패닉에 빠진 사람부터,

“죽어! 죽어! 시바아알!”

놈들의 시체에 칼을 찍어 내리며 마음에 담고 있던 원통함을 풀어내는 사람까지. 잔혹함에 눈살을 찌푸릴 법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이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나도 그 더러운 감정을 놈들에게 풀어냈었으니까.’

쓴웃음을 흘린 민성이 그의 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초라한 운동화 위로 노인의 마지막 미소가 그려졌다. 몇 번이고 도리질하며 기억을 떨쳐내려 했지만, 감정의 조각 하나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죄책감.

그 감정이 가시가 되어 발끝을 찔러오는 것만 같다.

‘이젠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남아 있었네…….’

“후……. 정신 차리자. 죄책감이고 나발이고 죽으면 다 끝이야. 살아 있어야 죄책감도 느끼는 거지.”

두 뺨을 두드리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인 민성이 고개를 들었다.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앞으로의 대책을 모색하기 위함이겠지만, 의결권은 능력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선 언제나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한다. 사회에서는 그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논리적인 반박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타워 내부는 통상적인 개념이 통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 입을 놀렸다간 죽을 수도 있으니까.’

생존자들의 불안한 눈빛이 이곳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 정리된 것 같은데.”

이신의 고저 없는 웅얼거림에 일부 사람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어떻게 생명을 죽이는데 표정 변화 하나 없을까.”

“이래서 사람은 외관으로만 판단하면 안 돼. 외모는 곱상하게 생겨가지고, 쯧쯧. 같은 사람은 못 죽이겠지? 화살이 내 이마에 꽂힌다고 생각하니까, 어우…….”

사람들의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오자, 민성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무기에 묻은 체액이나 털고 그런 소리를 했다면 약간이라도 이해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저 사람이 제일 심해서 그렇지, 그래도 다른 능력자들은 괜찮지 않았어?”

“아냐! 다 정상이 아니야. 그 돌아간 눈을 네가 봐야 했어! 정말 똑같은 사람이 맞나 싶었다고!”

민성의 낯빛이 조금 시뻘게졌다.

“이거 놓으세요! 저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한테 한마디 해주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아요!”

“민지 님, 제발…….”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이, 마치 이쪽이 들으라는 것 같다.

“기껏 도와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저들의 대화를 들은 사람은 민성만이 아니었다. 다른 능력자들의 표정도 그리 좋지 못했다.

“죽일까? 예전부터 한 번쯤 쏴보고 싶었는데.”

중얼거린 이신이 그의 활을 들어 사람들을 조준하려 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그랬다간 한바탕 난리가 날 겁니다.”

민성이 담담한 어투로 이신을 제지했다. 솔직히 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전투는 진행 중에 있다.

“허허, 역시 젊음이 좋군, 좋을 때야. 나도 저 활잡이 청년과 생각이 비슷했으니 나 역시 좋을 땐가?”

“큭.”

노인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본 사람들은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험악해지던 분위기가 가라안자 표정을 바꾼 노인이 말을 이어갔다.

“우리 능력자들이 별다른 대화 없이 뭉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진중한 노인의 음색에 누구 하나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일세. 수라장을 겪으며 얻어낸 능력. 그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강자들끼리 결탁한 셈이지.”

“그럴듯하긴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크로스는 알 것 같아?”

“크로?”

“크로스도 모른대요.”

초록 머리 여자가 궁금하다는 듯 괴조를 쓰다듬으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들 가까이 와보게나.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조금 전까지 생사가 걸린 싸움을 함께 했던 동료였기에, 능력자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노인에게 다가갔다.

“일단 얘기하기에 앞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네. 순간이지만 전투를 포기하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군.”

잠시 헛기침을 하던 노인이 대화를 지속했다.

“어쨌든 앞으로 세상은 크게 격변할 거라네. 능력자의 숫자는 끊임없이 증가할 것이고, 선택받지 못한 일반인들은 결국 그들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겠지. 아, 물론 내 의견은 어디까지나 타워가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삼은 가정일세.”

민성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주장은 단순한 가정으로 치부하기엔 합리적인 부분이 있다. 전투가 계속 존재하는 이상 능력자들은 끊임없이 배출될 것이다.

“아직 초창기라 멋모르는 일반인들은 능력자들을 탄압하려 하지만,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지. 능력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펼쳐질 거야.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일종의 선발주자라고 생각하네. 여기서 나는 자네들에게 제안을 하고 싶네.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대비해 능력자 집단을 창설하지 않겠나?”

“예?”

노인의 본심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거나 당혹해했다.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그들과 대면했었던 민성은 차분한 모습으로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더 나올지 궁금했다.

“선발주자의 이점을 살리고 싶네. 기득권이 되자는 소릴세.”

‘저게 본론이군.’

다가올 새로운 세상의 왕이 된다. 그것이 노인이 얘기한 대화의 본질이다. 능력자들은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다.

“자네들, 설마 능력을 갖고 조용히 살 생각을 갖고 있는 건가? 설령 조용히 살길 원하더라도 세상이 가만 놔둘 것 같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생각을 나만 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당장 결정하라는 소리는 아니라네. 일단 이 전투를 끝낸 후, 밖에서 다 같이 커피라도 했으면 싶은데. 물론 커피 값은 이 늙은이가 계산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이 전투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조금도 하지 않는 건가.’

자신만만한 노인의 모습은 어딘가 수상쩍어 보였다.

“아참.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난 이미 새로운 세상을 대비해 여러 가지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네. 잘 생각들 해보게.”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할 말을 끝냈다는 듯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이 전투는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하군. 분명 우리의 목표는 제단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선박을 움직이지 않는 거지? 나이를 먹으니 기억도 오락가락하는 모양이네.”

미묘한 방향으로 흐르던 분위기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폭탄발언에 얼떨떨해하던 사람들도 다시 입을 열었다.

“그…… 그러게요. 이제 어쩌죠? 너도 뭐라고 얘기 좀 해봐, 크로스!”

“크로?”

“윗선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닐까요? 아까도 충무공의 명령에 반응하던 것 같던데요.”

노인의 이야기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민성이 냉정하게 말했다.

“흠. 나도 그렇게…….”

쾅-

민성의 의견에 동의하려던 노인의 음성은 거대한 굉음에 묻혀버렸다.

“어디서 난 소리…….”

쾅-

굉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불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바다를 울려,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것조차 불가하게 만들었다.

“…….”

입을 뻐끔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대화를 포기하고 뱃머리로 달려갔다.

‘언제 저쪽으로 갔지?’

거대한 거북선과 적의 대형 함선이 제단을 옆에 두고 서로 맞물려 있다. 굉음은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맛살을 구긴 충무공이 놈에게 겨누고 있던 화려한 장궁을 등에 이었다. 그리곤 대검을 빼들고 적을 응시했다.

“일부러 둘만의 공간을 마련했건만 그걸 부숴버릴 줄이야. 자네의 후손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갈 터인데, 상관없다는 건가?”

언뜻 봐선 다른 놈들과 차이가 없는 외관이다. 다만 놈의 지팡이에서 시작되는 공격들은 놈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시켰다. 그가 허용한 대상 이외의 존재들은 들어올 수 없는 결계의 막도 놈의 마법에 찢겨나갔다.

“카르시나!”

지금도 마찬가지다. 놈의 지팡이에서 터무니없는 크기의 빛 덩어리가 구성된다. 언뜻 따스해 보이는 빛 속에는 모든 사물을 태워버릴 열기를 품고 있다.

“문답무용이라는 건가. 흠!”

충무공이 대검을 직선으로 휘둘러 날아오는 빛을 두 동강 내버렸다.

펑-

“아니!”

갈라진 빛들이 갈래로 분산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일부는 바닷속으로, 또 일부는 양 진영의 선박으로 떨어져 내린다.

“으아악! 뜨거워!”

“크르어억!”

한창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던 병력들은 때 아닌 날벼락을 맞아야 했다. 빛의 파편에 닿은 자들은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불타올랐다.

“끄아아아아악! 물! 물!!!!”

풍덩-

처절한 비명소리가 도처의 선박에서 들려왔다. 타들어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한 생물들은 바다로 몸을 던졌다.

그들이 주고받은 단 일 합의 부산물로 전장에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충무공의 얼굴에 노여움이 깃들었다. 적병의 죽음에 노한 것이 아니다. 미래를 책임질 후손들을 최대한 피해 없이 이끌지 못한 그의 부족함에 화가 났다.

“네놈이 끝까지!”

“크르카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절규에 기분이 좋았는지, 놈은 지팡이를 갑판에 내려치고 있었다. 지팡이에 걸린 해골들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방울소리는 충무공의 심기를 더욱 거슬리게 만들었다.

‘시간만 들인다면 충분히 놈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만…….’

더 큰 피해가 나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 하지만 장궁을 사용할 수는 없다. 대형스킬을 사용해버린다면 피해는 가중될 것이다.

‘위기에 닥쳤을 때 사용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스킬의 쿨타임이 워낙 길었기에 사용을 망설였었다. 이번 전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횟수는 단 1번. 그렇지만 후손들의 목숨을 온전히 보존한 채로 승리할 수 있다면 아깝지 않았다.

“네놈을 죽이고 후손들의 넋을 기리겠다. 강강술래.”

충무공이 스킬을 발동시키자 하늘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빛에서 사람들의 형상을 띤 것들이 손에 손을 잡고 전장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카차툰!”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놈의 지팡이에서 기괴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검은 불길의 장벽이 충무공의 주위를 감쌌다. 지옥에서 끌어온 불꽃의 열기가 거리를 좁히며 점점 충무공을 압박해들었다.

“놈! 이 대검 앞에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아까의 전투에서 느낀 것이 없는가?”

충무공은 이글거리는 불길을 향해 대검을 횡으로 길게 휘둘렀다.

휭-

서슬 퍼런 검풍이 다가오는 불길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며, 역으로 놈의 숨통을 끊으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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