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34화 - 변화는 한순간 (2)
TV 화면은 타워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
“아, 정말이라니까 그러네. 이상한 곳으로 소집되더니 괴상한 놈들이랑 싸웠다니까. 이건 전쟁에서 승리하고, 코인으로 산 박스에서 나온 무기고.”
카메라가 남성이 자랑스럽게 들고 있는 나무 활을 클로즈업했다.
“정 믿기 힘들면 기자님도 한번 다녀오시든가. 나도 소문으로만 듣던 걸 직접 겪어보니 알겠더구먼. 물론 살아 돌아온다고 보장은 못 해.”
잠시 타워를 훑어보던 남자가 계속 말했다.
“후, 정말 여의도로 올 줄은 몰랐는데. 난 서울에 살아서 다행이지, 다른 양반들은 어떻게 집에 가려나.”
남자가 껄껄대며 사라지자 화면이 다시 기자를 비췄다.
“저렇게 타워 안에서 나온 사람들은 현대에서 보기 어려운 장비들을 갖고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손에서 불을 뿜거나 얼음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는 걸까요. 이능력이나 무기들이 앞으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NBS 기자…….”
리모컨을 건드려 TV를 끈 민성이 침대에 누웠다.
‘무식한 놈 같으니. 불덩이를 만들어서 은행에 냅다 꽂는 놈은 제정신인가? 털려면 좀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털든가.’
며칠 전 뉴스에 나온 사건을 떠올린 민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잠시간 상념에 빠져 있던 민성이 입을 열었다.
“뭐가 말이냐?”
공룡이 궁금하다는 듯 되물었다.
“앞으로 타워에서 능력이나 무기를 갖고 나오는 일반인들이 속출할 텐데. 생각이 다양한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어서요.”
“답답하긴. 그럴 땐 잠을 자라.”
“예, 예.”
‘이제 능력도 어느 정도 상승했으니 내일은 매장에 가봐야겠다. 꼭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지.’
매장에 민폐를 끼친 일과 직원들의 안부도 묻고 싶었다. 한숨을 내쉰 민성이 천천히 이불을 덮었다.
***
“보고해.”
대통령의 나지막한 음성이 커다란 회의장을 울렸다.
“예, 각하.”
정장을 입은 남자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들고 있던 서류철을 대통령 앞에 놓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타워에서 나온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관리인이라는 자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계속해.”
서류철을 넘겨보며 내용을 살피던 대통령이 고압적인 음성으로 읊조렸다.
“예! 차출된 사람들은 무조건 전투를 치루고 승리해야 타워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사망했을 경우 부활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안 죽고 패배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타워에 방치되는 건가?”
“죄송합니다. 그건 아직 파악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실종자들을 대상으로 최대한 빠르게 수색을 진행하고 있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타워로 끌려들어가서 뒤져도 손가락 빨면서 수색결과만 기다리고 있겠네?”
“그…… 그것이.”
고개를 푹 숙인 남자가 진땀을 흘렸다. 전직 군인 출신 대통령의 압박이 남자의 숨통을 조였다. 철두철미하지만 불같은 성격의 대통령이었기에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계속해.”
“예! 타워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공통된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코인을 지급받는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공헌도를 쌓았느냐에 따라 코인은 차등하게 분배되는 것 같습니다.”
“흠, 그 코인으로 능력이나 무기들을 샀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서류철을 넘기던 대통령의 손가락이 스킬을 쓰는 능력자들의 모습이 담긴 곳에서 멈추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흥미롭다는 듯 남자를 바라봤다.
“호오, 그럼 그 무기들이나 능력들은 강탈할 수도 있는 건가?”
“예! 실험결과 장비들은 가능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이능력들은 최초에 책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책들을 사용할 시 이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용하지 않을 경우 그 책들 역시 강탈이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재밌다는 표정을 지은 대통령이 그의 턱을 찬찬히 쓰다듬었다.
“그럼 최대한 주민들의 협조를 구해 능력과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당연히 나라의 머리가 안전해야 그 밑도 안전한 법이니까.
“예! 그래서 이능력자 대책부 출범에 기를 쓰고 있습니다. 구성은 전직, 현직 특수대원들 및 엄선된 자들을 선발하여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능력자 대책부의 정확한 기능은?”
“쓸 만한 능력을 가진 자들은 영입하고 사회의 악이라고 판단되는 자들은 제거하는 것이 주 역할입니다.”
즉각적인 남자의 대답에 만족한 듯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능력자 대책부를 빠르게 출범시킬 수 있도록. 아둔한 놈들이 힘까지 가졌으니 그걸 사회에 표출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야.”
“예! 각하!”
“그리고 타워에서도 요직 인물들을 호위할 방법을 찾아내. 당장 내일이라도 내가 끌려들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음.”
정장을 입은 남자가 뒤로 물러서자 군복 입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보고해.”
“예! 일단, 더 이상 위협요소가 없다고 판단. 타워에 배치했던 모든 군 장정들을 철수시켰습니다.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하실 것을 대비해 군 운용 준비를 끝마친 상태입니다.”
“훌륭하군. 능력을 믿고 사회의 규율을 파괴하는 놈에게는 조직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각하.”
군인의 보고가 만족스러웠는지 시종일관 무표정이던 대통령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떴다.
“좋아, 다음.”
“예! 각하.”
정장을 입은 또 다른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보고해.”
“타워에서는 저희 국민 이외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근데?”
갑자기 대통령의 음성이 낮아지자 남성이 긴장한 듯 몸을 꼿꼿이 세웠다.
“타워로 끌려가 강제로 한국에 체류하게 된 자국민들에게 보상 및 귀국 조치하라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비용은…… 전액 저희가 부담하랍니다.”
“미친 새끼들인가? 그게 우리 잘못이야? 엉? 어디야!”
“대부분은 자국의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형식적 항의지만, 중국과 일본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던 남자가 붉어진 얼굴을 보고 끝내 말을 잊지 못했다.
“왜놈새끼들이랑 되놈새끼들은 아니다?”
“예. 자국민들이 입은 정신적 피해와 업무방해 보상, 그리고 타워에서 나온 자국민에 한해 교통편 무료 제공. 이상 중국과 일본 측 요구사항입니다.”
쾅-
“안 그래도 만만한 놈들인데 뜯어먹을 명분까지 확보했다?
“…….”
책상을 내려친 대통령이 보고를 하던 남자에게 소리 질렀다.
“하, 좃 같은 소리 하지 말라는 식으로 해서 반박문 작성해와.”
“예. 각하.”
“다음!”
“예! 합법적인 무기허용에 대한 안건…….”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정장 입은 남자들이 차례차례 앞으로 나섰다.
***
평일임에도 패밀리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민성이 형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연락을 해도 답변도 없고.”
진우의 걱정스러운 음성에 모든 직원들이 숙연해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는 하지만, 저번 일도 그렇고, 걱정이 되는구나.”
점장 역시 민성의 이름이 나오자 그의 안부를 걱정했다. 분위기가 어두워지자 진우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요즘 타워에서 나온 능력자들이 활개치고 다닌다는데. 저희 가게에도 그런 사람들이 올까 봐 좀 무섭네요.”
“그러니까. 살 떨려서 일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어? 안 그래도 험난한 세상이었는데 더 살기 힘들어졌어. 나같이 예쁜 여자는 어디 무서워서 밤길이나 제대로 돌아다니겠니?”
진우의 음성에 지혜가 맞장구쳤다.
“예쁜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건 사실이죠. 그나마 이번에 정부에서 이능력자 대책부를 출범시킨다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잠잠해지지 않을까요? 들어보니 이능력자들을 상대하려 만든 경찰 같던데요?”
“진우야, 네가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래. 그나저나 웬일이래? 이렇게 발 빠른 대응은 처음인 것 같은데?”
“그만큼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벌써 능력을 갖고 장난질 하는 놈들도 상당하구요.”
“뭐야!”
갑자기 식당 한 곳에서 웅성거림이 커지자 직원들이 시선을 돌렸다.
“이 새끼가 뭐라고 했냐? 너 나 알아? 뭔데 시비냐?”
“타워 갖다온 걸 자랑이랍시고 늘어놓는 게 한심해서 얘기한 것뿐인데. 딱 들어보니 몸도 개 사렸던 것 같은데. 왜? 꼽냐?”
흥분한 남자 두 명이 서로의 몸을 밀치며 말다툼을 벌였다.
“내가 자랑을 하든 말든 뭔 상관인데. 이 시발놈아!”
“아니 그냥 현실에서 뭣도 없는 놈이 설치는 게 눈꼴사나워서 사실대로 얘기한 것뿐인데? 찔리냐?”
“이 새끼가! 아이템창!”
흥분한 한 남자가 허공에서 묵직한 도끼를 빼들었다.
“이능력자다! 피해!”
“꺅!”
갑자기 튀어나온 도끼에 근처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급하게 몸을 피했다.
“좋은 말할 때, 사과해라. 뒤지기 싫으면.”
도끼를 든 남자가 상대방을 노려보며 위협했다.
“무서워라. 그 몸으로 휘두를 수나 있겠어? 그리고 그거 휘두르면 곱게 끝나지는 않을걸. 잘 생각해라, 돼지야.”
맨손인 남자가 도끼를 든 남자의 튀어나온 배를 보며 이죽거렸다.
“이놈이 끝까지! 오냐! 죽는 게 소원이라면, 뒤져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남자가 끝내 모자를 쓴 남자의 허리에 도끼를 휘둘렀다.
“아이템창.”
작게 중얼거린 모자 쓴 남자의 손에는 기다란 도가 들렸다.
챙-
“이 새끼가.”
“왜? 너만 있는 줄 알았냐? 너만 특별한 줄 알았냐고! 착각하지 마, 새끼야.”
“죽여 버린다.”
남자들이 맞닿은 무기에 힘을 주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딸랑-
‘욕을 하시더라도 담담이 받아들이자. 다 내 잘못이니까. 응?’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온 민성이 난장판이 된 매장을 바라봤다. 원인은 무기를 들고 대치상태를 유지하는 남자들로 보였다. 반년 동안 일한 터전이 남의 손에 난장판이 된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그들 옆으로 다가간 민성이 낮은 목소리로 남자들을 제지했다.
“일반인은 뒤지기 싫으면 옆으로 빠져 있어라. 죽어도 책임 안 진다.”
“네 몸이나 걱정해라, 새끼야.”
“죽어라!”
“흥!”
민성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들이 다시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 여파에 주위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가 넘어지고 부서졌다.
“골렘의 굳건한 의지.”
작게 중얼거린 민성이 그대로 남자들의 사이로 파고들었다.
“위험해!”
무모한 청년의 행동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비명 서린 고함을 질렀다.
챙-
하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무기들은 단단해진 민성의 신체에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다른 손님들이 식사를 못 하시잖아, 이 새끼들아.”
“억.”
민성이 도끼 든 남자의 복부를 강하게 후려치자 남자가 배를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