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32화 - 버섯이 만만해? (5)
“저, 저는…… 14, 3번 난장이들을 조사했어요.”
“아까 것까지 하면?”
난장이들이 전날에 묵살했었던 정보까지 요구했다.
“그럼 22, 14, 3번이에요.”
18번 난장이가 말을 더듬거리며, 각각의 난장이들을 지목했다.
“그래서! 저 세 명의 정체는 뭔데?”
기다림을 이기지 못한 한 난장이가 목청을 높였다.
“세 명 다 난장이예요.”
18번 난장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인가? 정말 18번 난장이의 말이 사실인가?”
난장이들이 지목당한 난장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대답을 재촉했다.
“맞습니다.”
“네.”
“사실입니다.”
지목당한 전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난장이들이 2번 난장이를 노려봤다.
“그럼 18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게 됐으니, 2번은 공주가 확실해!”
“그래! 2번! 2번을 달아라!”
난장이들이 순식간에 2번 난장이를 몰아붙였다.
“하……. 저렇게 질문하면 당연히 난장이라고 하지 누가 사실대로 얘기하겠습니까?”
“시끄럽다! 이 악랄한 자식.”
2번 난장이가 스스로를 변호했지만 난장이들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다.
“18번 난장이의 말은 전부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후, 끝까지 숨기려 했건만.”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 2번 난장이가 말을 이었다.
“제가 강철 발톱 매를 보유하고 있는 난장이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식! 궁지에 몰렸다고 헛소리를 하는구나!”
2번 난장이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난장이들이 동요했다.
“사실입니다! 최대한 숨기면서 난장이의 승리에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도리가 없군요.”
“그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거냐!”
반론에 2번 난장이가 처량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당신이 난장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증명할 건가요? 사실 공주나 왕자면서 이 분위기에 편승해 저를 몰아붙이시는 건 아닙니까?”
“뭐야!”
“저는 오히려 18번 난장이와 그가 지목했던 난장이들에게 의심이 가는군요. 혹여 서로 입을 맞춘 공주들은 아닐까 하고요. 마침 공주들이 4명인만큼 숫자도 딱 맞네요?”
2번 난장이가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출했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한데. 저 말이 사실일까? 만약 공주였다면 저렇게 당당하게 나오지는 못할 거 아냐.”
“아냐. 범인이 확실해! 지금 저놈은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2번 난장이가 밝힌 정보에 난장이들은 혼란 속에 빠졌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난장이들의 시선은 여러 갈래로 분열됐다. 2번 난장이와 18번 난장이, 그리고 18번 난장이가 언급한 난장이들로 나뉘었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2번, 10표]
[과반수의 표를 얻었기 때문에 집행을 실시합니다.]
“이럴 리가…….”
2번 난장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좋았어! 죽어라!”
“아, 답답하네. 2번은 아니라니까!”
난장이들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이 흘러나왔다.
“이런, 씹새끼 같으니.”
마지막 발언과 함께 2번 난장이의 몸이 그대로 혓바닥에 감겨들어갔다.
[공주를 성공적으로 찾아내셨습니다.]
[남은 공주 수: 3, 왕자 수: 1]
“어……어?”
“와아아아아! 공주를 죽였어! 우리가 드디어 공주를 죽였다고! 18번 난장이의 말이 사실이었어.”
“그러면 저놈이 얘기했던 말도 다 거짓이잖아. 그럼 아직 강철 발톱 매를 갖고 있는 난장이도 있을 수 있어!”
난장이들이 연달아 찾아오는 희소식에 열광했다. 18번 난장이가 그 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일곱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공주가 죽으면 저렇게 표시가 되는구나. 그나저나 18번 난장이의 정체는 확실해졌으니 죽여야겠어.’
왕자가 된 민성이 희미한 웃음을 흘렸다.
[여덟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3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18번 난장이가 강철 발톱 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습니다.]
“좋았어! 누군지 모르겠지만 계속 18번을 살려! 그러면 18번 난장이가 살인자 놈들을 전부 찾아낼 거라고!”
“이대로 가면 손쉽게 이기겠는데? 오늘은 또 누굴 살펴봤나?”
연거푸 들리는 승전보에 신이 난 난장이들이 18번 난장이를 바라봤다.
“24번 난장이를 살펴봤어요. 그는 난장이더군요.”
18번 난장이가 민성을 지목하며 살인자들을 찾지 못해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아쉽게도 꽝이구먼.”
난장이들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응? 이 새끼 봐라.’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아낸 민성이 난장이들에게 미소 지었다.
‘진짠 줄 알았더니…… 연기였어? 하마터면 감쪽같이 속을 뻔했네. 상대를 잘못 골랐어, 인마.’
민성 역시 왕자가 아니라 난장이였다면 그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을 것이다.
‘난장이로 예쁘게 포장해주겠다는데 사양할 필요 없겠지.’
민성이 스산한 눈빛으로 18번 난장이를 바라봤다.
“그럼 정리를 해보지!”
22번 난장이가 박수를 치며 이목을 끌어 모았다.
“나를 포함해 18, 4, 14, 24번 난장이들은 검증을 받았다고 생각하네만. 아, 물론 죽은 난장이들은 제외했지. 현재 조사를 받지 않은 난장이는 총 9명. 그들 중에 공주들과 왕자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난장이들의 생각은 어떠나?”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분명 살인자들은 그 9명 중에 섞여 있을 겁니다.”
14번 난장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22번 난장이의 말에 동의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18번의 조사를 받지 못한 다른 난장이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막말로 그 9명만 차례차례 죽이다 보면 난장이가 승리할 것 아닌가?”
“뭐요?”
“나는 투표 때 5번 난장이에게 투표할걸세. 다른 난장이들도 잘 생각했으면 좋겠군.”
22번 난장이의 말이 끝나자 분개한 5번 난장이가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다른 난장이들도 22번 난장이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난장이들이 5번 난장이를 흘낏거렸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5번, 11표]
[과반수의 표를 얻었기 때문에 집행을 실시합니다.]
“난 아니라고! 네놈들은 무사할 것 같아? 너네도 차근차근 죽을 거다!”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5번 난장이가 길쭉한 혓바닥에 끌려갔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녹아내리는 5번 난장이를 지켜보던 난장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여덟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진짜 대단한 놈이네요.”
“뭐가 말이냐, 인간?”
“18번 난장이요. 어떻게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저리 연기를 할 수 있지? 저런 건 좀 보고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요.”
민성의 미묘한 웃음에 공룡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홉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11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23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이제 여기에 있는 난장이들이 전분가.”
광장에는 11명의 난장이가 서 있었다.
“그래도 아직 18번 난장이가 살아 있으니까 희망이 있습니다.”
민성이 동요하는 난장이들에게 소리쳤다.
“그래, 아직 우리에겐 가보가 있지. 오늘은 누굴 찾아봤나?”
“12번 난장이를 조사했습니다. 그는 난장이였습니다.”
18번 난장이의 말에 긴장했던 12번 난장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끙. 그럼 오늘도 어김없이 한 명을 골라야 하는 건가? 지금 18번의 조사를 받지 못한 난장이는 총 5명이구만. 6, 17, 21, 25, 27번 난장이들 중에 4명이 살인자들이란 소린데.”
22번 난장이가 스산한 표정으로 지목받지 못한 다른 난장이들을 쳐다봤다.
“혹시 가보 보유자가 있는가? 있으면 얘기를 해주게. 애먼 난장이를 죽이고 싶지 않다네.”
상냥한 음성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이가 없었다.
“없나 보군. 그럼, 이번에 나는 21번 난장이에게 투표하겠네.”
“공주새끼가 웃기고 있네.”
21번 난장이가 피식거리며 22번 난장이를 바라봤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공주가 난장이인 척 연기하고 앉았으니 가소롭다고, 새끼야. 내가 영험한 나무 조각 보유잔데 18번 난장이랑 짜고 치는 모습이 우스워서. 대단해! 공주 한 명을 버리면서까지 18번 난장이의 말에 힘을 실어준 게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해. 덕분에 나설 타이밍을 완전히 놓쳤어.”
21번 난장이가 이죽거리며 몇몇 난장이들을 지목했다.
“18, 22번 그리고 죽은 2번 난장이들 전부 공주다. 아직 왕자랑 공주 1명은 찾지 못했어. 어쨌든 우리는 지금 저놈들의 연기에 모두 속고 있는 거야.”
“그럼 왜 미리 나오시지 않은 건가요?”
민성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봤다.
“18번 새끼가 판을 먹고 의견몰이를 하는데 내 말이 씨알이나 먹혔을까? 난 목숨에 미련이 없지만, 속고 있는 놈들이 불쌍해서 나선 거야. 나에게 투표해도 좋아. 단! 내가 했던 말을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독침 들고 있는 놈!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살아 있다면 아직 한 발 남아 있는 것 다 안다. 잘 사용해라! 강철 발톱 매 보유자도 공주들 살리는 데 쓰지 말고 현명하게 선택하고.”
할 말을 끝냈는지 21번 난장이가 눈을 감고 침묵했다.
“진짜 같은데? 거짓을 말하는 자의 눈빛이 아냐.”
“생각해보니 22번 난장이가 마구잡이로 난장이를 죽이려 했던 것도 수상하다.”
담담하지만 절절한 그의 말에 흔들린 난장이들이 웅성거렸다.
“공주가 마지막 발악을 하는 거야! 믿으면 안 돼!”
“일단 죽여보고, 난장이라고 나오면 그때 의심해도 늦지 않잖아?”
곧바로 대항하는 의견들도 쏟아져 나왔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난장이들이 갈등 어린 눈빛으로 21번 난장이를 바라봤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21번, 7표]
[과반수의 표를 얻었기 때문에 집행을 실시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잘 생각하고 행동해라. 이제 좀 편히 쉬겠군. 너무 고된 삶이었어…….”
21번 난장이의 몸이 녹아내렸다.
“야! 21번이 죽었는데도 공주가 죽었다는 메시지가 안 뜨잖아! 21번의 말은 진짜였어!”
“그냥 난장이였는데 살고 싶어서 거짓말을 한 걸 수도 있지.”
[아홉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21번의 말은 사실이다. 아마도 그가 진정한 가보 보유자였을 거야. 그렇다면 그가 폭로했던 공주들 역시 사실이라는 말인데. 18번, 22번이 공주라고 가정하고. 한 명만 더 찾아내면 되겠군.’
생각을 끝마친 민성이 번호를 눌렀다.
[열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6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12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난장이의 독침에 쏘인 22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그는 정체를 숨겼던 공주였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뭐, 뭐야! 22번이 정말 공주였어? 그럼 21번의 말이 사실이었던 거잖아.”
느닷없는 정보에 당황한 난장이들이 이내 18번 난장이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