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화 - 버섯이 만만해? (4)
“분명 말씀드리지만 저는 공주가 아닙니다. 물론, 왕자도 아니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놈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죠.”
“맞다! 우린 할 수 있다!”
여론이 그를 지지하자, 2번 난장이가 계속 말했다.
“그래서 제 생각엔, 29번 난장이가 의심이 가더군요. 계속 지켜봤는데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빨리 이 회의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더군요.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건가요?”
“네?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공주가 아니에요. 억울합니다!”
구석에 있던 난장이가 절박하게 소리쳤다.
“뭐야! 저놈이 공주였어? 빨리 죽이자!”
“죽여!”
약간의 자극이 주어지자 난장이들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나서서 마녀사냥 해주니 좋긴 한데. 아무리 봐도 공주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가보 보유자? 어느 쪽이지?’
민성이 머리를 굴렸지만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조용한 분위기 속에 투표가 진행됐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29번, 20표]
[과반수의 표를 얻었기 때문에 집행을 실시합니다.]
보석에서 나온 빛이 여지없이 29번 난장이의 이마를 비췄다. 곧바로 혓바닥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감쌌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난장이의 고통 어린 비명과 함께 처형이 끝났다.
[세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누가 공주일 것 같아요?”
왕자로 변한 민성이, 숫자판을 앞에 둔 채 공룡을 바라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인간!”
“예.”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 같았다. 민성이 한숨을 내쉬며 번호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은 난장이들의 숫자 위로 붉은 X자가 쳐져 있다.
‘23명 남았네. 연쇄살인마의 탄생이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은 민성이 버튼을 눌렀다.
[네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10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16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불안해하는 난장이들의 사이에서 결과를 듣던 민성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몇 명이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주들도 아주 바보는 아니네.’
팀은 다르더라도 목적은 같았다. 모든 난장이들을 죽이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2번 난장이를 살려둘 필요가 있었다.
‘아니면 2번이 정말 공주든가.’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에는 4번 난장이가 의심이 가는군요. 계속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죽여라!”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2번 난장이를 뒤따라 수많은 난장이들이 동의했다.
“아니에요! 전 공주도 왕자도 아닙니다! 제발 제 말을 믿어주세요.”
“거짓말하지 마! 이 더러운 살인자년.”
4번 난장이가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하지만 험악해진 여론이 순식간에 그를 몰아붙였다.
“그분은 아닌 것 같은데요?”
조심스러운 음성이 난장이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뭐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음성의 근원지를 찾아낸 난장이들이 18번 난장이에게 소리쳤다.
“제가 영험한 나무 조각을 이용해 알아봤거든요. 저분은 정말 난장이가 맞으세요.”
“뭐?”
가보 보유자의 등장에 당황한 난장이들이 수군거렸다.
“그 외에도 2명의 난장이를 더 조사했어요. 하루에 한 명씩 조사할 수 있더군요.”
18번 난장이가 양손을 들어 2명의 난장이를 지목했다. 그들은 각각 2번과 30번 난장이였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저들의 정체를 말해줄 수 있는가?”
“네, 저들의 정체는.”
18번 난장이가 입을 열려는 순간,
“잠깐! 잠깐만 기다려봐!”
30번 난장이가 급하게 18번 난장이를 제지했다.
“네놈의 말을 어떻게 신용할 수 있지? 네가 영험한 나무 조각의 보유자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지? 네가 직업을 속여서 얘기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걸 그냥 눈 뜨고 당해줄 줄 알고?”
“아뇨. 저는 정말…….”
“닥쳐!”
30번 난장이가 가차 없이 18번 난장이의 말을 끊었다.
‘날 보호했다고 했어. 2번 난장이는 틀림없이 강철 발톱 매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18번이 그걸 알 수 있는 데다가 혹시나 까발린다면? 18번의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2번은 한순간에 공주의 표적이 될 거야. 공주 입장에서는 방어수단을 가진 난장이를 먼저 죽이는 게 당연하니까! 막아야 해. 그게 나도 사는 길이다.’
그리곤 끊임없이 욕설을 뱉으며 18번 난장이의 대화를 차단했다.
‘슬슬 움직여야겠다.’
난장이들 틈에 섞여 있던 민성이 움직였다.
“그렇게 욕만 할 게 아니라 얘기를 들어봐야죠. 혹시, 공주세요?”
“뭐야!”
“난 또 공주라 그렇게 정색하는 줄 알았네. 그렇게 방해하면 다들, 그쪽이 걸리는 게 있으니까 그런다고 생각할걸요?
이죽거린 민성이 주변을 가리켰다. 대다수의 난장이들이 30번 난장이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쳐다봤다.
“으.”
분위기에 눌린 30번 난장이가 뒤로 물러나자 민성이 18번 난장이를 바라봤다.
“그럼 이제 얘기해주세요. 2번과 30번 난장이의 정체를.”
“30번은 난장이, 그리고 2번은 공주입니다.”
“뭐!”
“2번 난장이가 공주였어? 그래놓고 연기한 거야? 이런 빌어먹을 놈을 봤나!”
18번 난장이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30번은 아까 공주로부터 살아났으니까 진짜 난장이인 거잖아! 이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잖아, 거기에다 2번만 거짓말로 덧붙인 거 아냐?”
그에 맞서 다양한 반론이 제시됐다. 그 외에도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영험한 나무 조각으로 난장이인지 공주인지뿐만 아니라 가보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건가? 30번이 만약 가보를 갖고 있다면, 18번이 왜 말하지 않은 걸까? 설마 18번, 나무 조각을 갖고 있다는 것도 거짓말인가? 더 캐묻고 싶지만, 진실을 말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민성이 논쟁으로 불이 붙은 난장이들을 조용히 지켜봤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난장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2번, 10표]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네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2번이라고, 병신들아! 2번이 공주라고!”
“뭔 개소리야! 18번을 찍었어야지! 머리가 안 돌아가냐?”
어두워진 광장에는 서로의 선택을 비난하는 욕설들이 난무했다.
‘30번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어. 어차피 자신이 난장이라면 직업을 밝히는 데 꿀릴 게 없을 텐데. 아니면 설마…… 2번의 정보가 노출되는 걸 막고 싶었던 건가?’
집으로 들어온 민성이 번호판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겠지. 30번이 2번한테 속고 있다거나 아니면 2번이 강철 발톱 매나 영험한 나무 조각의 보유자라거나. 그렇다면…….’
민성이 번호선택을 끝냈다.
***
“갑자기 뒤통수를 치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한번 해보자는 건가?”
성난 목소리가 집 안을 조용히 울렸다.
“진정하라고.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 거니까. 난장이들이 나서기 전에 선수 친 것뿐이야. 지금 남은 숫자는 22명. 과반수 표를 얻기 위해서는 12표가 필요하지. 하지만 우리 넷은 일단 우리를 제외한 다른 난장이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유효표는 18표가 된다. 18표 중 딱 7표만 돌리면 과반수는 달성하지 못하고, 우리가 계속 판을 장악할 수 있어.”
나지막한 음성이 성난 음성을 달래며 말을 이었다.
“이건 너의 행동에 힘을 실어주는 거지 해가 되는 선택이 아니다. 놈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걸 봤으니 너도 알거 아니야. 미리 얘기하지 못한 건 사과하지.”
“그의 말이 맞다. 확실히 분위기가 혼잡해졌어.”
“하지만 난장이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기 전까지는 방심하면 안 돼.”
또 다른 두 음성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조심해라. 여차하면 여론을 몰아서 네놈부터 죽일 거니까.”
“그리하지.”
***
[다섯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9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30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내가 공주나 왕자였으면 18번부터 죽였다. 영험한 나무 조각 보유잔데 당연한 이치지. 근데 습격을 받지 않은 걸로 봐서는 놈이 공주다! 틀림없어!”
“강철 발톱 매로 18번을 보호해줄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
“뭔데 살인자들 편을 드냐? 네놈이 공주지?”
“뭐야!”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난장이들이 여기저기서 언쟁을 벌였다.
‘난장이들의 분란을 일으키라고 살려둔 거지. 2번의 추종자가 되라고 살려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난장이라는 게 확실히 드러난 이상 이용가치가 떨어졌어.’
생각을 접은 민성이 난장이들을 바라봤다.
“저희끼리 이렇게 싸우면 안 됩니다. 의견을 모아 공주와 왕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2번 난장이가 조심스럽게 그의 뜻을 밝혔지만 소용없었다.
“네놈도 의심 가는 상황인데 무슨 의견을 모아!”
“2번부터 죽이자고! 저놈이 공주라니까! 내 말을 믿어!”
“그렇게 몰아붙이는 게 더 수상한데? 네놈이 공주 아냐?”
구심점이었던 2번이 입을 다물자 난장이들의 의견은 좀처럼 좁혀질 줄을 몰랐다. 공주로 몰리자 영험한 나무 조각 보유를 주장하던 18번 난장이도 침묵했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결국 난장이들의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2번, 7표]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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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28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15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줄어드는 숫자에도 불구하고 난장이들은 무의미한 다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와중에 18번 난장이가 새로운 정보를 밝혔으나, 그것이 다툼을 건설적 토론으로 만들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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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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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19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8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공주 쪽도 머리 돌아가는 놈이 있나 보네. 아직 18번과 2번은 효용가치가 있지. 살려두는 것만으로도 난장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니까.’
민성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난장이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아직 숨어 있는 공주들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젠장 이렇게 의미 없는 싸움만 반복할 거야? 이제 18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이러다 다 죽는 건 시간문제야!”
“그럼 어쩌라는 건데?”
“18번! 18번에게 물어보자! 정말 영험한 나무 조각 보유자라면 2번 더 난장이들의 정체를 확인했을 거 아냐. 18번이 조사한 난장이와 대질심문해서 맞는다면 믿어도 되는 것 아냐?”
별다른 대안도 없는 데다가, 일단 들어서 손해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한 난장이들이 18번 난장이를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