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화 - 버섯이 만만해? (3)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1번, 21표]
[과반수의 표를 얻었기 때문에 집행을 실시합니다.]
보석에서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빛이 촌장의 이마를 비췄다.
“응, 응? 나? 설마 내가 그 더러운 살인마들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믿기 어렵다는 듯 촌장이 연신 자신을 지목하며 애처롭게 난장이들을 바라봤다.
“난 아니라네. 난 정말 아니라고! 내가 우리 동족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자네들이 나한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애절한 절규에도 항거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그의 몸이 보석 앞으로 이끌려갔다.
“제발…… 하지 마……. 안 돼!”
그의 두 눈망울이 보석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다.
쩌억-
영롱한 보석의 가운데 부분이 갈라지더니 커다란 혓바닥이 튀어나와 촌장을 잡아당겼다.
“으아악!”
가차 없이 잡아당기는 힘에 촌장의 몸이 보석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촌장의 비명이 마을을 울렸다. 보석 안에 갇힌 그의 신체가 천천히 녹아내렸다.
투두둑-
녹아내린 살점 따위가 떨어져 내리고 혈관과 하얀 뼈들이 드러났다. 그마저도 눈 녹듯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살려…….”
마지막 한마디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한 촌장의 일그러진 입술마저 증발했다.
“…….”
잔혹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난장이들이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이놈의 게임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게 없냐.’
민성이 침을 꿀꺽 삼켰다. 차라리 골렘의 방식이 깔끔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집행이 종료됩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밝았던 마을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한순간에 한 치 앞도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내 몸이 또 멋대로.”
당황한 난장이들의 음성이 들렸다.
‘역시 나처럼 난장이로 변신한 어떤 존재들인 게 틀림없어. 일반 난장이들이었다면 이 상황을 몰랐을 리가 없지. 아까야 우연이라고 쳐도 반복되면 그건 필연이지.’
이제 이런 사태는 익숙하다는 듯, 생각을 끝낸 민성이 미지의 힘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덜컥-
여기저기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난장이들이 집으로 들어가자 자동으로 닫힌 문소리가 분명했다.
[밤이 되었습니다.]
[가보 보유자들이 가보를 사용합니다.]
[왕자와 공주들이 활동합니다.]
우드득-
민성이 들어간 집에서 뼈 뒤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아아. 그 아찔한 혓바닥이란, 빨리 보석을 차지해야겠어. 날마다 보석 안에 백성들을 집어넣을 생각하니 너무 짜릿한걸.
왕자가 흥분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럼, 오늘은 어느 난장이를 죽여 볼까.”
왕자의 대사가 끝나자 민성의 앞에 숫자판이 나타났다.
“아! 이제야 말이 나오네. 이놈도 틀림없이 정상은 아닌 놈이야.”
한숨을 내쉰 민성이 고개를 돌려 공룡을 쳐다봤다.
“여기 숫자판 보이죠? 숫자 하나만 골라보세요.”
“7! 7이다! 7!”
선택권을 받은 공룡이 꼬리를 들어 7이 적힌 번호 칸을 두드렸다. 고개를 끄덕인 민성이 버튼을 누르자,
“그래, 오늘은 이놈으로 하자.”
다시 음산한 왕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표물이 정해지자 왕자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대 밑을 뒤적거렸다.
“가볼까.”
기다란 밧줄을 꺼내들은 왕자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곧 그의 몸이 방 안에서 홀연 듯 사라졌다.
[두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벽돌집들에서 문이 벌컥 열리며 난장이들이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일부 문은 열리지 않고 굳게 닫혀 있었다.
‘이런, 시발. 죽이려면 빨리 죽이든가. 천천히 목을 졸라매는 변태새끼였다니.’
간밤에 벌인 살인행각 탓에 찝찝함이 올라왔지만 내색하면 안 됐다. 거짓말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들통 나는 법이다. 난장이가 된 민성도 속마음과는 달리 무표정하게 광장으로 나왔다.
굳게 닫힌 문을 제외한 모든 문에서 난장이들이 나오자 음성이 흘러나왔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13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7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공주들도 난장이를 죽일 수 있다. 공주가 4명인데 죽은 난장이는 1명? 공주들도 숫자와 관계없이 하루에 한 명만 죽일 수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만약 내가 공주를 지목하고 공주가 나를 지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공주와 같은 난장이를 선택하면? 난장이로 변장한 공주를 죽이면 공주라는 걸 알 수 있나?’
계속되는 의문이 민성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의를 시작합니다.]
[남은 회의시간: 30분]
[회의를 통해 의심되는 난장이를 선별하십시오.]
고민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게임이 시작됐다. 겁을 집어먹은 탓인지 난장이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기를 주저했다.
“저희,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가만히만 있다간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을 것 같은데요.”
머리에 숫자 2가 달린 난장이가 무거운 침묵을 깼다.
“그 말에는 동의하지만, 다 똑같이 생겼는데 왕자와 공주들을 어떻게 찾아내나?”
“맞아.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용기를 낸 난장이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지만…….”
2번 난장이가 머뭇거렸다.
“뭐야, 아무런 방책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왜 해!”
“난 또 해결책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살짝 기대에 찬 눈빛으로 2번 난장이를 바라보던 난장이들이 이죽거렸다.
“그럼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다들 죽을 건가요? 방책이 없으니까 대책을 논의하자는 거 아닙니까!”
분개한 2번 난장이가 크게 소리쳤다.
‘저놈은 정말 난장인가? 아니면 난장이를 연기하는 공주? 어느 쪽이지?’
민성이 열변을 토하는 난장이를 보며 머리를 갸웃했다. 만약 난장이라면 적절한 말로 달라붙어 놈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난 완전한 제3세력이야. 난장이를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지만, 동시에 혼자지. 난장이편에 붙어 공주들을 죽여 나감과 동시에 난장이들이 너무 뭉치지 못하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게 최고의 시나리오지.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고 움직이자.’
생각을 정리한 민성이 의견다툼이 한창인 난장이들을 바라봤다. 30번 난장이와 2번 난장이가 한창 대립구도를 세우고 있었다.
“혹시 네가 공주 아니야? 공주인데 난장이 행세를 하는 것 아냐?”
“그럼 내일 낮에 다시 보시든가요. 그때도 제 목숨이 붙어 있다면, 그때 의심하셔도 늦지 않죠. 오히려 다짜고짜 의심하는 그쪽이 공주 아닌가요?”
“뭐라고? 뭐라고 했냐?”
“아니면 아니라고 하면 되는 걸 왜 혼자 열을 내세요? 괜히 찔리니까 본성이 나오네요.”
난장이들이 실랑이를 반복하며 서로의 감정을 내세울 뿐 이렇다 할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이런, 벌써 시간이.”
“2번! 2번을 찍어! 틀림없이 저 새끼가 공주야! 내 말을…….”
30번 난장이가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투표가 시작됨과 동시에 모든 난장이들의 입이 강제로 봉인됐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난장이들이 침을 삼키며 각자의 숫자판에 집중했다. 한순간의 선택이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2번이나 30번 둘 중에 하나는 사달이 날 것 같은데.’
과열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시선을 집중시켰으니 그 결과를 알 만했다.
[투표가 종료됩니다.]
[최다 득표자: 2번, 11표]
[과반수의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투표가 끝남과 동시에 난장이들의 잠겨 있던 입이 다시 열렸다.
“봐라, 대다수의 난장이들이 너를 의심하고 있잖아. 흥. 4표만 더 얻었어도 공주 한 명을 보낼 수 있었는데. 다음 투표 때 보자.”
“…….”
집행이 실시되지 않았지만 2번 난장이와 30번 난장이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의기양양해하는 30번 난장이와 달리 입을 꼭 다문 2번 난장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밤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여지없이 캄캄한 어둠이 찾아왔다.
[가보 보유자들이 가보를 사용합니다.]
[왕자와 공주들이 활동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통과가 안 돼요?”
“안 된다. 모든 집들이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창문이나 문틈으로도 못 들여다봐요?”
꼼수가 통하지 않자 민성이 답답하다는 듯 공룡을 쳐다봤다.
“보이지 않는 거리였다.”
공룡이 고개를 젓자 민성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통하면 쉽게쉽게 가는 건데.’
“고생하셨어요.”
공룡의 고생을 칭찬한 민성이 번호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몇 번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
잘 선택해야 한다. 막무가내로 죽이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일단 2번이랑 30번은 놔두고.’
앞장서서 혼잡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1등 공신들인 만큼 살려두는 게 이득이다.
‘그래, 이 번호로 가자. 가만히 서 있는 게 수상했어.’
결정을 내린 민성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세 번째 낮이 되었습니다.]
광장에 모인 난장이들이 간밤의 결과를 들려줄 음성을 기다렸다.
[간밤에 공주들의 습격을 받은 30번 난장이가 강철 발톱 매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았습니다.]
[간밤에 왕자의 습격을 받은 26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간밤에 난장이의 독침에 쏘인 20번 난장이가 죽었습니다.]
“가보란 것이 진짜 있나 봐.”
“한 명밖에 못 살린다더니, 어떻게 또 딱 맞췄데.”
“그럼 습격을 받은 30번 난장이는 정말 난장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습격 받을 이유가 없지.”
웅성거리는 난장이들 사이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렸다.
“누구야! 나와! 이 비열한 공주새끼들아! 너지? 너 말고 내 목숨을 노릴 놈이 없어! 네놈이 공주지!”
눈을 부라린 30번 난장이가 2번 난장이에게 달려들었다.
“제가 공주였다면 이렇게 같은 난장이를 의심하는 멍청한 당신은 살려놨을걸요.”
멱살을 잡힌 2번 난장이가 피식거렸다.
“뭐야!”
얼굴이 벌게진 난장이가 주먹을 쳐들었다.
그때, 2번 난장이가 상대방의 멱살을 마주 잡아 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 목숨 살린 거, 그거 바로 나야.”
“뭐?”
갑작스러운 폭탄발언에 당황한 30번 난장이의 몸이 흠칫했다.
[과도한 신체접촉 시 강제패배 처리됩니다.]
“함부로 의심하지 마요!”
경고창이 뜨자 2번 난장이가 상대방의 몸을 밀치며 소리 질렀다.
“너는…….”
혼란해하는 30번 난장이에게만 보일 정도로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인 2번 난장이가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무슨 대화를 나누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넘어갔어.’
분명 죽일 듯이 달려들던 30번 난장이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들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민성 역시 의문을 가지기 어려울 정도로 그것은 미세했다.
‘조심해야겠어. 자칫 이용하려다 오히려 내가 당할 수도. 여차하면 바로 죽여야겠어.’
차가워진 민성의 눈빛이 2번 난장이를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