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29화 - 버섯이 만만해? (2)
“인간! 저기에서 희미한 냄새가 난다!”
“어디요!”
갑자기 공룡이 또 어디론가 날아가자 민성도 빠르게 쫓아갔다.
그렇게 10여 분을 내리 달려 도착한 곳은 한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였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가게 내부에 커다란 버섯이 자리하고 있었다.
“헉헉. 이번에는 확실하겠지.”
민성이 숨을 헐떡이며 버섯을 만졌다.
띠링-
[T%@O : 22123에 입장$^@^시@$니까?]
게임종류 : ?
난이도 : C
클리어 보상 : ?
클리어 실패 시: ?
[T%@O : 22123을 클리어하^@^시@$니까?]
“예!”
민성의 승인과 동시에 쪼개진 버섯이 그의 몸을 집어삼켰다.
“여기는…….”
“집이 있다, 인간!”
민성들이 도착한 곳은 커다란 마을이었다. 마을의 중심에는 커다랗고 연녹색의 보석이 있었다. 보석을 중심으로 수십여 가구의 벽돌집이 둥글게 자리했다.
“천천히 접근해보죠.”
조심스럽게 마을에 접근하는 민성의 앞에 갑자기 영상과 함께 잔잔한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옛날, 옛날 먼 옛날에 자그마한 난장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었어요. 그들은 수호보석의 가호를 받으며 과일을 채집하거나 농사를 지으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들 앞에 예쁘장한 공주들이 나타났답니다. 착한 난장이들은 공주들을 친절하게 받아주었어요.]
‘갑자기 이런 걸 왜 보여줄까……. 분명 이유가 있다.’
잠시 의문을 가진 민성이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그날 이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는 난장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난장이들의 의심은 공주들에게 쏠렸답니다. 하지만 공주들이 흘린 눈물에 넘어가 서로를 의심했어요. 그렇게 서로를 의심하던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 공주들이 홀연히 사라졌어요. 공주들이 떠났다고 생각한 난장이들은 이제 다시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치! 이제 평화로워야지.’
어느덧 내용에 빠져든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사실 공주들은 사라진 게 아니었답니다. 변신물약을 먹어 낮에는 난장이가 되고 약효가 다한 밤에는 난장이들을 죽이고 다녔던 것이었어요. 이 사실을 모르는 난장이들은 도움을 받기 위해 먼 나라의 왕자를 불렀답니다. 하지만 마을의 수호보석을 본 왕자의 마음에 어두운 마음이 들어찼어요. 왕자는 마을의 모든 난장이들을 죽여 버리고 혼자 수호보석을 챙길 생각을 했답니다. 결국 왕자 역시 변신물약을 먹어 난장이들의 틈에 들어갔어요. 믿었던 왕자마저 사라지자 난장이들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건 바로…….]
흘러나오던 영상이 갑자기 끊어졌다.
“뭔데! 한창 재밌어질 때 끊으면 어떡해!”
“맞다! 맞다!”
영상에 집중하던 민성과 그의 어깨에 앉아 같이 구경하던 공룡이 화를 냈다.
[게임 시작까지 5분 전입니다. 플레이어들의 위치가 이동됩니다.]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민성의 몸이 어디론가 이동했다.
“여기는.”
갑작스러운 이동은 이미 익숙한 민성이 주위를 살폈다. 작은 테이블과 그 위에 놓인 식기와 그릇 따위들이 보였다. 자그마한 침대와 서랍장도 보이는 걸 봐서는 누군가의 집 안이 틀림없었다.
‘아까 설명에서 나온 난장이의 집인 것 같은데.’
민성이 서랍 쪽으로 다가갔다. 서랍 위에는 작은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액자 안의 그림 속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생긴 난장이들 여럿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게임 시작까지 1분 전입니다. 플레이어들의 직업이 정해집니다. 그에 맞추어 외형이 변형됩니다.]
[당신은 비열한 왕자입니다.]
[왕자는 공주의 공격을 받아도 죽지 않습니다.]
[모든 난장이들을 죽이고 수호보석을 쟁취하십시오]
으드득- 으드드득-
‘뭐, 뭐야.’
갑자기 민성의 몸에서 뼈 비틀리는 소리가 울렸다. 움직여보려 했지만 몸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멎자.
“크크큭, 난쟁이 놈들. 꽤나 비싼 걸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놈들에겐 어울리지 않아. 진정한 보석은 주인을 가리지. 물론 그 주인은 나지만. 아차, 변신물약 먹는 걸 깜박했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목에서 흘러나왔다. 수상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모습이 바뀌었다, 인간! 잘생겨졌다가 더 멍청하게 변했다!”
“예?
공룡의 비웃음을 산 민성이 손거울을 집어 들려 했다.
‘팔이 짧아졌는데?’
팔을 뻗은 것보다 거울이 더 멀게 느껴졌다. 서랍에 몸을 더 밀착시켜서야 거울을 집을 수 있었다. 주먹코에 왕방울만 한 눈동자를 가진 난쟁이의 얼굴이 거울 안에 보였다.
‘비웃을 만하네.’
난쟁이가 된 민성이 짧은 팔로 머리를 긁적였다.
[게임이 시작됩니다.]
[낮이 되었습니다.]
덜컹-
음성과 함께 나무로 된 작은 현관문이 갑자기 열렸다.
‘밖으로 나가라는 소리겠지.’
작은 난쟁이가 짧은 다리를 뒤뚱거리며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밖으로 나가자 연녹색의 보석 주위에 모여 웅성거리는 난장이들이 보였다. 그 숫자는 어림잡아 30여 명으로 추정됐다.
‘애매하다. 아까 영상에서 나왔던 난장이들인가, 아니면 나처럼 난장이로 변신한 그 무엇들일까.’
민성이 난장이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난장이들의 머리 위에는 각각의 숫자가 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서로가 다름을 알렸다.
“으아아! 난장이가 되었어!”
“내 몸! 내 몸을 돌려줘!”
‘반응을 봐서는 후자가 확실한데. 근데 일부러 연기를 하는 건가? 분명 놈들도 영상을 봤을 텐데. 뭐지? 아니면 정말로 영상을 봐도 이해를 못하는 멍청이들인가?’
사방에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짧은 팔로 얼굴을 연신 문지르며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그들의 반응은 민성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잠시 그들을 바라본 민성이 곧 혼란스러워하는 난장이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으아아! 내 몸! 내가 난장이라니!”
그리곤 혼란해하는 난장이들을 따라 같이 울부짖었다.
“왜 그러나, 인간? 못생겨지더니 정신까지 못생겨졌나?”
난장이들을 보며 배를 잡고 굴러다니던 공룡이 민성까지 그러자 더 크게 웃었다.
‘어찌 공룡이 인간의 심오한 뜻을 알겠냐. 이 왕자라는 놈은 난장이들 사이에 숨어들어 놈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목적이란 말이야. 그럼 일단 난장이들의 행동을 따라할 필요가 있지. 그럼 오해도 덜 살 것 아냐.’
이제 녀석의 놀림에 면역이 생긴 민성이 공룡을 무시하고 계속 머리를 부여잡고 괴성을 질렀다.
“…”
일부 난장이들은 팔짱을 낀 채 혼란스러운 모습을 관전하고 있었다.
‘저런 놈들은 눈여겨봐야지. 저 난장이들도 나처럼 다 외형이 변형된 상태겠지. 뭐, 어쨌든 다 죽이면 이기는 거니까.’
“주목!”
연녹색 보석 정면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난장이들의 고개가 그쪽으로 쏠렸다. 유일하게 하얀 수염이 달린 난장이가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우리 마을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어도,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건하게 먹어야지! 이 촌장만 믿게!”
난장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쳐준 촌장이 말을 이었다.
“수많은 희생을 통해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내부에 공주들과 왕자가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며칠 전 이걸 발견하고 나서야 확신이 섰다.”
촌장이 빈 유리병을 들어 보였다.
“이건 바로 변신물약이다! 안에 남아 있던 약간의 액체를 마셔보고 알게 되었지. 놈들은 틀림없이 이것을 먹고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이 틀림없어! 수호보석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를 죽여야만 하니까!”
“그래서 숨어든 공주와 왕자는 총 몇 명입니까?”
열변을 토하는 촌장에게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마을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하나! 공주는 총 4명, 왕자는 혼자가 아니던가!”
질문이 나온 방향을 잠시 답답하다는 듯 쳐다보던 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는 비열한 살인마들을 찾기 위해 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는 우리로 변장한 공주들과 왕자들을 찾아 죽이기 전까지 지속된다. 매 회의 때마다 가장 의심이 가는 동족을 골라내면 된다. 그러면 그 동족은 수호보석의 심판을 받게 된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집안의 가보를 갖고 있는 동족들은 그것들을 잘 활용해 꼭 놈들을 찾아주기 바라네.”
“가보는 뭡니까?”
민성이 난장이들 틈에 숨어들어 슬며시 질문했다. 대놓고 물어보면 다른 이들의 눈길을 끌까 봐 취한 행동이었다.
“어이구. 이제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가보마저 깜박한 것인가? 하긴, 동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니 그럴 만도 하지. 영험한 나무 조각 같은 경우, 하루에 한 번 상대방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숨어든 놈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야. 그 외에도 누구든 요절낼 수 있지만 사용횟수가 2번으로 제한된 독침, 하루에 한 번 누구든 지켜주는 강철 발톱 매가 있지.”
촌장의 말이 끝나자 질문이 이어졌다.
“그 가보들은 누가 갖고 있는 겁니까?”
“모르네. 누군가의 집에 하나씩 숨겨져 있겠지.”
촌장이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빌어먹을. 만약 왕자라고 의심을 사면 투표를 통해 저 보석의 심판을 받는다는 소리잖아. 판결은 보나마나 죽음이겠지. 이놈의 게임들은 살려주는 꼴을 못 봤으니까. 만약 저 가보들을 통해 내가 왕자라는 사실이 들통 난다면, 다른 놈들을 최대한 모함하는 것이 관건이다.’
민성이 복잡한 표정으로 촌장을 바라봤다.
“그럼 회의를 개최한다!”
촌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든 난장이들의 앞에 작은 화면이 떴다.
[남은 회의시간: 30분]
[회의를 통해 의심되는 난장이를 선별하십시오]
“무슨 회의를 하라는 거야!”
“사방에 난장이들뿐이구만, 무슨 공주랑 왕자를 찾으라는 거야?”
촌장의 말이 끝나자 다시 난장이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커졌다.
“공주랑 왕자가 어디에 있어!”
민성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목청을 높였다.
‘그래, 그래. 계속 혼란스러워 해라.’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난장이들을 보며 민성이 슬며시 웃었다.
[회의가 종료됩니다.]
결국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낸 난장이들 앞에 작은 창이 떴다.
[투표를 시작합니다.]
[의심되는 난장이를 지정해주십시오]
회의시간이 종료되자 1부터 30까지의 숫자가 적힌 판이 나타났다.
‘비어 있는 숫자가 내 번호겠지. 설마 자신을 찍을 수 있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 아냐.’
민성의 예상대로 판에는 숫자 24가 비어 있었다.
‘촌장도 번호가 있네. 일단 안전하게 가볼까.’
난장이들의 머리를 훑으며 숫자를 살피던 민성이 촌장의 번호인 1번을 지그시 눌렀다. 어차피 약간의 설명을 해주기 위해 등장한 존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