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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캐쉬상점 쓴다-23화 (2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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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 현실에서도 (6)

“크르륵!”

남자의 죽음이 신호였는지, 정면과 양옆 빌딩 안에서 민성이 우려하던 놈들이 쏟아져 나왔다. 놈들은 인간보다 건장한 크기에 검은색의 몸체를 가지고 있었다. 신체 위에는 볼품없는 가죽을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들고 있는 무기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워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추어 해골바가지로 엮은 허리띠가 덜렁거렸다.

갑작스러운 괴수들의 등장에 조용했던 행렬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뒤바꿔버렸다.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곳을 찾아 헤매었다. 평화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보급 받은 무기 한 번 사용할 생각을 못 했다.

사방에서 접근하는 놈들을 피해 사람들이 후방으로 몰려들었다.

“비켜! 비키라고!”

“뭔데!”

갑자기 앞에서 사람들이 도망쳐오자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했다. 앞으로 가려는 사람들과 도망가려는 사람들이 행렬의 중간에서 서로 엉켜 혼선을 빚었다.

“좀 나와요!”

중간에 끼어 있던 민성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그 역시 혼잡한 인파 속에 갇혀 오도 가도 못 했다.

“젠장!”

혼잡한 군중 속으로 들어가길 포기한 일부 사람들이 무기를 빼들었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차피 저 안에 들어가도 죽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젠장, 어차피 뒤질 거 싸워보기라도 해야지! K-2라도 있었으면. 아, 어차피 탄이 없겠구나.”

자조 섞인 남자의 음성에 나란히 서 있던 다른 이들의 매가리 없는 피식거림이 들려왔다.

“대한민국 육군을 무시하지 마라, 이 시발 것들아!”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남자는 고함을 내지르며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무기를 들이밀었다.

챙-

화물 주위는 순식간에 혼잡한 난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죽어라!”

“크르!”

생전 써본 적 없는 검을 휘두르며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상황은 인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전역……”

적들의 창에 몸이 꿰뚫린 군복 입은 청년이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에 몸을 뉘었다.

“죽기 싫어!”

“도와줘!”

사방에서 인간의 것으로 짐작되는 절규 서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촥-

쓰러진 남자의 배에서 도끼를 뽑아낸 놈이 묻어나온 내장을 털어냈다. 놈의 허리띠에는 다른 놈들보다 더 많은 해골들이 매달려 있었다. 아직 끓어오른 피를 식히기엔 부족했는지 놈이 적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크륵?”

꼴사납게 몸을 돌려 도망치는 인간들을 포착한 놈의 입에 비웃음이 걸렸다.

“크르아투나!”

도끼를 든 놈이 옆에서 그를 수행하던 놈에게 소리 질렀다.

“카!”

우렁차게 대답한 놈이 허리춤에 달고 있던 뿔피리를 꺼내들어 입에 물었다.

뿌우-

웅장한 소리가 혼잡한 인파를 지나 뒤편에 위치한 빌딩까지 전해졌다.

“괴물이다!”

동굴로 돌아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도로의 후미에 위치해 있던 건물에서 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놈들의 튀어나온 입 사이에서 침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앞으로 가! 시발! 빨리 앞으로 가!”

뒤에 위치했던 사람들이 겁에 질려 고함지르며 앞사람을 밀어붙였다.

“비켜요!”

앞뒤에서 살겠다고 서로를 밀어붙이자 몸이 허약한 자들은 그 충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어이쿠.”

그 속에 끼어 있던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밀지 마! 사람이 쓰러졌다고! 밀지 말라고!”

할아버지의 뒤편에 서 있던 민성이 급하게 소리 질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끊임없이 서로를 밀쳤다.

“이런 시발! 제발, 아…… 안 돼!”

몸에 힘을 주어 최대한 중심을 지탱하던 민성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뒤에서 몰려오는 힘을 이기지 못한 그의 발이 노인을 향해 다가갔다. 위태로운 상황임에도 노인은 미소 짓고 있었다.

‘괜찮네, 젊은이.’

혹시라도 죄책감에 시달릴 청년을 위한 노인의 마지막 배려였다. 곧 물컹거리는 느낌이 민성의 발부터 시작해서 뇌의 중추까지 올라왔다.

콰직-

수많은 발이 오가자 노인이 있던 자리에서는 사람들의 아우성에 가려진 뼈 비틀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크륵!”

“오…… 오지 마!”

검은 육체의 접근에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부들거리는 팔로 사방에다 칼을 휘두르며 위협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슬쩍 뒤를 돌아봤지만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크르륵!”

“비켜! 비키라고!”

뒤에서 우격다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검은 육체가 코앞까지 접근하자 소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곧 놈의 손에 들린 커다란 대검이 그녀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찍을 것이었다.

‘엄마!’

“으아아!”

챙-

죽음을 기다리던 소녀가 눈을 스르륵 올렸다. 입가에 토사물이 잔뜩 묻어 있는 남자가 놈과 무기를 맞대고 있었다. 붉어진 눈으로 놈을 노려보던 민성이 맞물린 칼에 힘을 우겨넣었다.

“뒤져!”

분노에 몸을 맡긴 민성이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놈을 밀쳐냈다. 그리고 방어하려는 듯 놈이 들어 올린 대검을 미친 듯이 내리쳤다.

“병신이야? 허수아비 새끼들이야? 도망치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러니까 네놈들이! 사회에서도! 그 모양이었던 거야! 이 시발놈들아!”

칼과 칼이 맞닿을 때마다 이를 악문 민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스로를 질책하는 것인지 사람들을 꾸짖는 소린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멈춰 있던 사람들의 심장을 강하게 자극했다.

“드루와! 이 새끼야!”

“크르륵!”

대답 대신 놈의 커다란 대검이 머리 위로 날아왔다. 민성이 방패를 들어 올려 내려치는 놈의 일격을 받아냈다.

쾅-

방패에 강한 충격이 몰려오며 민성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적의 대검이 생각보다 묵직했지만 격노에 휩싸인 민성에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여차하면 ‘굳건한 골렘의 의지’도 사용할 생각이었다.

대검을 회수한 놈이 이번에는 그의 옆구리를 베어 들어왔다.

‘느려!’

대검에서 눈을 떼지 않은 민성이 몸을 숙이며 방패로 슬쩍 놈의 공격을 빗겨냈다. 순간 놈의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기회다!’

“뒤져라!”

민성이 허점을 보인 놈의 몸으로 파고들어 그대로 목덜미에 검을 쑤셔 박았다.

“게륵.”

놈의 벌어진 목에서 튀어 오른 보랏빛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놈의 신체가 허물어지자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민성을 바라봤다.

“무기는 뒀다 뭐 할 거야!

민성이 다른 적에게 달려들며 동시에 사람들에게 외쳤다.

“간다, 이놈아!”

배가 살짝 튀어나온 중년이 창을 거칠게 흔들며 민성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 나도 간다!”

“으아아!”

하나둘 청년의 곁으로 뛰어가더니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크륵?”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순한 양같이 굴던 인간들이 기세 좋게 몰려왔다. 갑작스러운 인간들의 태세전환에 당혹한 놈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크르아아!”

기세에서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놈들이 크게 고함질렀다.

“뒤져라!”

“크르르아!”

성난 군중들이 파도처럼 놈들을 뒤덮어갔다.

빌딩 내부에서 놈들의 시체가 검은 산을 이루었다. 부서진 창문들 옆에는 놈들이 쓰던 활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예상 밖이군. 솔직히 이렇게까지 승기를 잡을 줄은 몰랐는데.”

노인이 검을 가볍게 터니 검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던 보라색 체액이 떨어져 나갔다. 창밖을 바라보자 어느새 화물에 있던 적들까지 덮치는 인파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것 보십쇼. 제가 이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의 저력을 너무 무시하시면 안 됩니다.”

성직자가 싱글거리며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그 미소를 마주해주기가 싫어, 그가 들고 있던 빛의 메이스만을 쳐다보았다.

“에잉, 적당히 죽어줬어야 옥석을 가리기가 수월하건만, 반절도 안 죽었군그래. 그나저나 왜 나만 쫓아다니는 건가.”

노인이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적들을 죽이는 내내 따라다니며 그의 사냥감들을 잡아버리는 놈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연히 방향이 겹쳤을 뿐입니다. 혹여나 흑혈검마 님께서 공적을 독식하시다가, 배탈이라도 나실까 걱정도 돼서 말이죠. 형제는 콩 한쪽도 나누어 먹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희가 이러는 사이 다른 놈들도 어디선가 꽤나 올렸을 겁니다.”

멈춰있던 타이머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타이머 안의 흰색 바가 빠르게 검은색으로 바뀌어갔다.

노인의 곁에 다가와 창밖을 바라본 성직자가 말을 이었다.

“벌써 마무리가 되가는군요. 슬슬 저희도 합류하죠, 흑혈검마 형제님.”

“끙…….”

당당한 성직자의 태도에 할 말을 잃은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

‘피곤하다.’

한쪽 구석에 앉은 민성이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분노가 가시자 곧 피곤함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등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손길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고생했네.”

손길의 주인은 얼굴 여기저기 놈들의 체액을 묻힌 배 나온 중년이었다. 민성이 답변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 덕분에 집에 갈 수 있게 됐어. 정말 고맙네.”

그 외에도 그의 행동에 자극을 받았던 사람들이 민성의 등을 토닥거렸다.

“이겼다!”

“이제 집에 갈 수 있어!”

타이머의 끝부분까지 검은색으로 채워지자 승리에 취한 사람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의 얼굴에는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득했다.

[A지점을 점령하셨습니다. 화물 운송을 시작합니다.]

“뭐야! 끝난 게 아니었어?”

“이게 무슨 개소리야!”

점령에 이어 등장한 새로운 미션에 사람들의 얼굴이 당혹감에 젖어들었다.

덜컹-

운전수도 없는 트럭이 갑자기 요동쳤다. 트럭에 가까이 붙어 있던 사람들이 몸을 피했다.

트럭이 적들이 도망쳤던 오른쪽 대각선 방면의 도로로 이동을 시작했다. 잠시간 혼자 움직이던 트럭이 사람들과 일정거리가 벌어지자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런, 빌어먹을!”

“집에 가고 싶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좌절감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영혼이 나간 얼굴로 허공을 보는 사람. 끊임없이 욕지거리를 토해내는 사람. 표현방식도 가지각색이었다.

동요하던 사람들을 지켜보던 민성도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한숨의 의미는 약간 달랐다.

“괜찮나, 인간?”

“네, 괜찮아요.”

걱정스러워하는 공룡의 음성이 들려오자 민성이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젠장.’

노인의 마지막을 떠올리자 다시 그 끔찍했던 감촉이 떠올랐다. 버섯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봤지만, 인간의 죽음은 그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자의는 아니었지만 그는 분명 사람을 죽였다. 노인을 짓밟은 수많은 발 중엔 그의 발도 끼어 있었다.

‘좀 더 강해져야 해. 이런 개 같은 감정, 느낌 같은 건 한 번이면 족해.’

민성의 상념이 이어지는 사이,

“저 새끼야! 저 새끼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거리던 남성이 민성을 발견하곤 크게 고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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